추강 남효은 (추강거사) /추강거사 남효은

추강거사 남효은선생에 대한 자료

아베베1 2011. 12. 29. 14:39

 

              도봉산 입구의  느티나무 이다 2011.12.28  담은것이다

 

 추강 남효은 선생은 본관이 의령이시다

 저가 살던 시골 고향에 아직도 학가정이라는 재실이 있고 어릴적 들었던 남추강에 대한 여러가지를 차츰연구 하여야 할듯하다

 개인적으로 추강선생의 문화생인 전주인 휘 산당공 (전주최 문성공  고려문화시중 휘 아 7세손) 저의 방조님의 스승 되시는 분이다

 연세는 4세정도 차이는 나지 않지만 두분의 학문은 당대에서는  교유를 가졌다는 기록이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부분에 대한 연구를   해보아야 할듯 합니다 . 추강냉화를 저술하시어 생육신 사육신을 서술하신분이다 .

    

 

 

 

추강집 발

추강집 뒤에 적다


하늘이 우리 추강을 낳으니 / 天生吾秋江
곧은 절개로 세상에 홀로 섰네 / 耿介立於獨
성품이 영합하기를 싫어한지라 / 性不喜苟合
세상을 피하여 치욕을 멀리했네 / 脫屣遠恥辱
취중의 얘기는 공연히 준엄했고 / 醉談空崢嶸
세상을 경시하며 늘 크게 웃었네 / 傲世長捧腹
지위에 벗어나 국시를 의논하다 / 出位論國是
집안을 깨뜨리고 부관참시당했네 / 破家身後戮
평소에 유독 나를 대우해 주어 / 生平獨遇我
두 사람이 울며 서로 좇았더니 / 二鳥鳴相逐
타고난 기질이 본래 같은지라 / 氣味本同調
담론을 때로 살촉처럼 펼쳤네 / 談論時拄鏃
머리 숙여 동야에게 절하니 / 低頭拜東野
나의 실은 대나무만 못했네 / 我絲不如竹
재앙 끝에 유고를 얻었는지라 / 禍餘得遺稿
흩어져서 한 묶음도 못 채웠네 / 斷爛不盈束
눈을 문지르며 살펴서 교정하고 / 揩眼考點竄
손으로 적으며 백 번을 읽었네 / 手寫百回讀
얼음 누에 실로 베를 짜다가 / 織成氷蠶絲
이 고상한 선비의 옷을 기웠으니 / 補此高士服
찬란한 비단 무늬는 없을지라도 / 雖無爛錦文
조각조각 모두 속기를 벗어났네 / 段段皆脫俗
특이한 맛으로 소문난 조갯살은 / 賞異江瑤柱
멀리 강해의 굽이에서 구했으니 / 遠致江海曲
육미처럼 배부르게 하진 않지만 / 飽不如芻豢
진기한 맛을 어찌 감히 깔볼까 / 珍味安敢瀆
모래를 헤쳐서 금 구슬 가리고 / 披沙揀金珠
-원문 빠짐- 피육을 집어내니 / □□筯皮肉
우리 추강을 마주 대한 듯하여 / 如對吾秋江
수염 비틀며 눈 부릅뜨고 보네 / 掀髥相瞪目
이어 몇 글자의 발문을 적으며 / 仍書數字跋
그대를 위하여 한 번 통곡하노라 / 爲爾一痛哭
정덕(正德) 경오년(1510, 중종5) 가을에 적암(適庵) 조신 숙분(曺伸叔奮)은 삼가 발문을 쓴다.


 

[주D-001]머리……절하니 : 동야(東野)는 당나라 시인 맹교(孟郊)의 자(字)이다. 이는 한유(韓愈)의 〈취류동야(醉留東野)〉에 나오는 시구(詩句)로, 자신을 한유에다, 남효온을 맹교에다 견준 것이다.
[주D-002]나의……못했네 : 자신이 남효온만 못하다는 말이다. 실은 현악기이고, 대나무는 관악기이다. 도연명의 글에 이르기를 “현악기는 관악기만 못하고, 관악기는 사람의 목소리만 못하다.〔絲不如竹 竹不如肉〕” 하였다. 《陶淵明集 卷6 晉故西征大將軍長史孟府君傳》
[주D-003]정덕(正德) : 명나라 무종(武宗)의 연호이다.
[주D-004]경오년 : 원문은 ‘庚子’로 되어 있는데, 초간본(初刊本)에 근거하여 ‘庚午’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추강집 발
구본(舊本) 발문(跋文)

추강집 발
중간본(重刊本) 발문

추강 남 선생은 곧 나의 증조부인 충목공(忠穆公)의 외증조부이다. 선생이 성종조에 소를 올려 소릉(昭陵)의 복위를 청하였으나 의견이 시행되지 않자 이로 인하여 다시는 세상에 뜻을 두지 않고 끝내 불우한 신세로 세상을 떠났다. 연산조 갑자년(1504, 연산군10)에 이전에 올린 소를 추후에 처벌하여 드디어 재앙이 무덤 속에까지 미쳤고, 선생의 아들 휘 충세(忠世) 또한 연좌되어 죽임을 당했으니, 지금까지 사림이 크게 상심하는 바이다.
선생이 지은 시문 몇 권이 집안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충목공이 일찍이 경상도 관찰사로 있을 때에 이를 취하여 판목에 새겨 널리 전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임진왜란 때에 판목이 망실되어 선생의 불후의 성업(盛業)이 민멸되어 전해질 수 없게 되었으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애석해하였다.
나는 불초한 사람이지만 증조부의 유지(遺志)를 이으려는 생각에 겨우겨우 수습하여 책을 이루었으나, 전사(傳寫)한 것을 얻은 것이라서 비슷한 글자가 뒤섞이는 잘못을 면하지 못하여 이 때문에 흡족스럽지 못했다. 갑인년(1674, 현종15)에 내가 마침 이 고을을 다스리게 되었는데, 얼마 있지 않아 문곡(文谷) 김 상공(金相公)낭주(朗州)로 귀양 와서 우연히 이웃 고을 인사를 통해 구본(舊本)을 얻어 이곳으로 보내왔다. 이에 잘못된 것을 교정하고 판각에 부쳐서 해를 넘겨 공역이 끝났다.
오호라! 이 문집은 갑자년의 재앙에서 겨우 벗어나 충목공에 힘입어 비로소 전해졌고, 또 임진년 난리에 산일(散逸)되었다가 오늘에 이르러 다시 간행되었으니, 어찌 다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는 실로 사문(斯文)과 관계된 것이고 한 집안의 후손이 사사로이 할 바가 아니라서 삼가 그 개괄적인 내용을 문집 뒤에 기록한다. 선생의 문장과 절행(節行)의 아름다움은 국승(國乘)과 야사(野史)에 갖추어 실려 있어 보잘것없는 소자(小子)가 감히 언급할 바가 아니기에 이에 다시 췌언(贅言)하지 않는다.
숭정(崇禎) 정사년(1677, 숙종3) 늦여름에 외후손(外後孫) 통훈대부(通訓大夫) 행 금구 현령(行金溝縣令) 유방은 삼가 기록한다.

[주D-001]충목공(忠穆公) : 유홍(兪泓)을 가리킨다. 충목은 그의 시호이다.
[주D-002]문곡(文谷) 김 상공(金相公) : 김수항(金壽恒)을 가리킨다. 문곡은 호이다.
[주D-003]낭주(朗州) : 전라남도 영암군(靈巖郡)의 고려 시대 이름이다.
[주D-004]숭정(崇禎) : 명나라 의종(毅宗)의 연호이다.
추강집 발
삼간본(三刊本) 발문

종선조(從先祖) 추강 선생의 문집이 처음 영남 감영에서 간행되었고 이어 호남의 금구(金溝)에서 판각되었으니, 이는 실로 선생의 외증손 유 충목공(兪忠穆公) 및 유공의 증손자 현령공(縣令公)이 앞뒤로 힘쓴 덕분이다.
영남 감영의 판목은 임진왜란 때에 소실되었지만, 호남에서 간행한 시점이 숙종 정사년(1677)이었으니, 지금과의 거리가 겨우 200여 년이다. 따라서 그 판목이 혹 아직 보존되어 있을 법도 한데 세상에 선생의 문집을 간직한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아득히 듣지 못하였다. 배우기를 좋아하는 선비들도 모두 한번 보기를 생각하거늘 하물며 후손 된 자는 어떠하겠는가.
우리 집의 아이 병우(秉祐)가 달성(達城)에서 우연히 인쇄본 4책을 얻어 등사(謄寫)하여 간직하였으니, 이는 호남에서 간행한 판본이다. 이후로 이를 세상에 공간(公刊)하지 못함을 늘 한스럽게 여기거늘 내가 그 뜻을 아름답게 여겨서 공인(工人)을 부르고 비용을 헤아려서 판각에 부친 지 반년이 지나 일이 끝났으니, 선생의 글이 장차 이로부터 세상에 크게 유행할 것이다. 글이 유행하게 되면 선생의 넓은 학문과 맑은 절개 또한 이 세상에 높이 드러나 세상을 면려함이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어찌 다만 이 문집만의 다행이겠는가.
돌아보건대 불초에게는 사적인 감회가 있다. 나의 선조 추계공(秋溪公) 휘 진(振)은 선생과 공시(功緦)의 친족이었다. 재앙을 당한 뒤에 남쪽으로 이사하여 조용히 지냈으니, 의령의 인사들이 전부터 제사를 모셔오다가 선생과 병향(竝享)하였다. 그러나 유독 그 유문(遺文)이 모두 유실되고 전해지지 않아 이 문집의 뒤를 이을 수 없다. 지금 이 문집을 간행하면서 서글피 추모하는 마음을 견디지 못하여 이어 아래쪽에 기록하고 이와 같이 덧붙여 적는다.
선생이 돌아가신 지 430년 된 신유년(1921) 10월에 방후손(傍後孫) 남상규(南相圭)는 삼가 기록한다.

신유년 가을 청도군(淸道郡) 신안(新安)에서 간행하다.

[주C-001]삼간본(三刊本) 발문 : 원문에는 별도의 제목이 없으나 내용상 제목을 보충하였다.
[주D-001]공시(功緦) : 상복의 오복(五服)에 있어 아홉 달의 대공(大功)과 다섯 달의 소공(小功)과 세 달의 시마(緦麻)를 말한다. 대공은 종형제의 복(服)이고, 소공은 재종형제의 복이고, 시마는 삼종형제의 복이다.
추강집 제1권
부(賦)
옥부(屋賦)

주자(朱子)가 몸을 집에 비유하고 마음을 집주인에 비유하여 말하기를, “주인이 있으면 뜰과 문호를 청소하고 담과 모퉁이를 정돈하지만 주인이 없으면 이 집은 하나의 황폐한 집에 불과할 뿐이다.” 하였으니, 뒷날 몸과 마음의 본체를 알아서 수양의 방도를 얻는 사람은 또한 이 설이 있음에 힘입을 것이다. 내가 일찍이 이 말씀을 반복하여 완색(玩索)해보니, 마음이 이미 주인이 되면 모든 외물에의 욕심은 객(客)이 되는지라, 객의 설을 펼쳐 사욕을 이기는 공부를 형용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주객(主客)의 설을 세워서 옥부를 짓는다.

기술하노라 / 敷曰
한 번 음이 되고 한 번 양이 되매 / 一陰一陽
음과 양 두 기운이 열리고 닫히니 / 兩儀闔闢
천둥 우레가 치고 비바람이 적셔주며 / 雷霆風雨之鼓潤
추위 더위가 바뀌고 일월이 운행하네 / 寒暑日月之綜錯
오행을 뒤섞어서 / 磨盪乎五行
만물을 빚어내니 / 陶鑄乎萬物
내 집이 그 사이에 / 屋於其間
덩그러니 생겨났네 / 塊然其出
서쪽에는 영대가 우뚝하고 / 西峙靈臺
북쪽에는 안읍이 위치하며
/ 北鎭安邑
삼천 조목의 위의로 모양을 갖추었고 / 模樣乎威儀之三千
삼백 조목의 예의로 단청을 이루었네
/ 丹靑乎禮儀之三百
의로써 그 집의 길을 삼고 / 義爲其路
도로써 그 터를 삼으니 / 道爲其基
그 속에 누운 백발의 늙은이 / 有皤皤翁頹乎其中
그 집의 주인이 되었구나 / 爲其主之
상제의 밝은 명을 받아서 / 受上帝命
무극의 성품을 얻었으니 / 性得無極
당초의 성품을 해칠까 두려워서 / 懼厥初之或戕
날로 부지런히 수양하고 삼가네 / 日孜孜而修飭
사물에게 명하여 청소의 소임 맡게 하고 / 命四勿以司灑掃之任
삼성으로 하여금 도둑의 침범 막게 하며 / 使三省以戒穿窬之盜
뜰에서 가시나무를 자르고 / 剪荊棘於庭除
방구석에서 더러움을 제거하네 / 去汚穢於室奧
술이 방문하면 방문을 닫고서 배척하고 / 歡伯訪而閉戶以斥之
여색이 다가오면 자물쇠 걸어 물리치네 / 女色來而鎖鑰而却之
무릇 마음을 흔드는 모든 외물 / 凡搖之外物
내 문지방을 밟지 못하게 하려고 / 期不履乎我闥
소나무처럼 무성하게 하며 / 庶使茂如其松
대나무처럼 빽빽하게 했더니 / 苞如其竹
새와 쥐도 떠나가 버리고 / 鳥鼠攸去
벽의 좀도 자취를 감추며 / 壁蝎退迹
비가 내려도 새지 않고 / 雨而不能漏
바람이 불어도 뽑히지 않네 / 風而不能拔
천백 명 도적을 거느린 객이 / 客有領賊千百者
백이의 창을 잡고 / 伯夷矛戟
도척의 금슬을 들고
/ 盜跖琴瑟
의기양양 밖에서 들어와서 / 施施然從外來
점점 주인옹을 유혹하기를 / 浸浸然誘主人翁曰
노자는 절학을 주창했고 / 老著絶學
장자는 거협을 설파했소
/ 莊說胠篋
수레바퀴 같은 죽음과 삶 / 車輪死生
집이 무슨 대수이겠소 / 何有於屋
순 임금은 초가집을 짓고 / 舜爲茅茨
주왕은 경실을 세웠으며 / 紂爲瓊室
안연은 누항에서 지내고 / 回也陋巷
석숭은 금곡에서 즐겼소 / 石崇金谷
성인도 있고 우인도 있어 / 或聖或愚
제각각 한결같진 않지만 / 擾擾不一
몸이 한번 흙으로 돌아가면 / 身一歸土
둘 모두 양을 잃게 되거늘 / 兩墮亡羊
그대는 이러한 집에 대하여 / 子之於屋
정신을 어찌 크게 손상시키오 / 神何太傷
청컨대 그대와 요금을 무릎에 걸치고 / 請與子膝橫瑤琴
아황주를 손에 들고 / 手携鵝黃
장대에 누워 돌아가지 않고 / 臥章臺而不返
결코 황망을 후회하지 않으리라 / 誓不悔於荒亡
집이 무너질지라도 / 屋之頹矣
어찌 개의할 것인가 / 胡戀屑屑
아니면 응당 강호에 몸을 던지고 / 不然當脫身於江湖
대자연 속에 자취를 내맡겨서 / 寄迹於泉石
모래톱 갈매기처럼 훨훨 날며 / 沙鷗以飄蕩
구름과 물처럼 자유로울 것이지 / 雲水以瓠落
어찌 달팽이집에 조용히 누워서 / 安用雌伏蝸室
집 때문에 스스로 그르친단 말이오 / 謬自有室
이에 백여 명의 졸개에게 명하여 / 乃命成者百餘
주인옹의 손을 묶고 / 縶翁之手
주인옹의 자리를 흔들어 / 擾翁之坐
함께 일으켜서 동서남북의 객이 되게 하네 / 相與起而爲東西南北之客也
주인옹은 오히려 등을 자리에서 옮기지 않고 / 翁猶背不移席
한가롭게 누워서 객을 꾸짖어 말하기를 / 高臥責客曰
당초 황천이 명을 내리실 때 / 厥初皇天之有命
잠시도 떠나지 않게 했으니
/ 俾須臾其不離
혹 내가 버리고 너를 따른다면 / 儻余舍而從汝
집이 장차 기울 때 누가 지탱해 줄까 / 屋將傾而誰支
젊었을 때부터 닦고 다스렸으며 / 自靑陽而修治
백발에 이르도록 부지런히 가꾸어 / 曁黃髮而矻矻
넓은 집을 거의 이루게 되었거늘
/ 功幾就於廣居
어찌 중도에서 그 길을 바꾸겠는가 / 胡中道而改轍
너는 알지 못하느냐 / 汝不知乎
집이 장대하고 트이면 / 屋其磊開
하상처럼 만족할 것이고
/ 夏商皞皞
집이 거칠고 싸늘하면 / 屋其荒凉
한당처럼 불안하리라
/ 漢唐艸艸
한결같이 수양한다면 / 一其修矣
민증처럼 어질게 되고 / 賢如閔曾
공자처럼 성스럽겠지만 / 聖如孔子
한결같이 무너뜨린다면 / 一其壞矣
난왕처럼 어리석고 / 愚如赧王
노기처럼 간사하리라 / 姦如盧杞
집의 경중이 이와 같거늘 / 屋之輕重如是
너와 함께 천리 밖으로 집을 떠나 / 而與汝去屋於千里之外
망상과 함께 희롱하고 / 罔象與戲謔
이매와 함께 뒤섞여서 / 魑魅與充斥
하염없이 홀로 다니다가 / 悠悠踽踽
세월이 다하도록 돌아오지 않으면 / 喪盡光陰而不復
집은 장차 대청과 방이 무너지고 / 則屋將堂室壞矣
뜰과 문호가 매몰되어 / 庭戶埋沒
분뇨의 하치장이 되고 / 糞尿所聚
지네의 소굴이 되리라 / 蚣蝎所窟
천지가 싫어하고 / 天地厭之
귀신이 주벌하며 / 鬼神罰之
용은 독기로 뒤흔들고 / 龍氣以擾之
‘氣’는 오자(誤字)인 듯하다.*
우레는 불로 해치리니 / 雷火以危之
어찌 이를 염려하지 않고 / 胡不慮此
나를 지리한 말로 유혹하느냐 / 誘我支離
한 방 안에서도 스스로 즐거울 수 있거늘 / 一室之內有以自娛
어찌 반드시 너와 함께 멀리 가겠느냐 / 何必與汝而遠適
또한 네가 잘못되었다 / 且汝誤矣
이리저리 넘어지면서 / 傖囊顚倒
천하를 두루 돌아다님을 / 遍走寰區
너는 유쾌하게 여기느냐 / 以爲快乎
동쪽으로 가면 동쪽만 보일 뿐이고 / 之東所見者只東
북쪽으로 가면 북쪽만 보일 뿐이며 / 之北所見者只北
초로 가면 제를 미처 보지 못하고 / 之楚而見不及齊
호로 가면 월을 미처 보지 못하니 / 之胡而見不及越
어찌 내가 뜰과 대문을 나가지 않아도 / 豈若吾不出庭戶
곧바로 육합을 유람함과 같으랴 / 直遊六合
나보다 큰 것이 없고 / 大莫如吾
객보다 작은 것이 없으니 / 小莫如客
객은 부디 나를 떠나가서 / 客其去矣
다시 문지방을 밟지 말라 / 不復履閾
객이 이에 배회하고 머뭇거리며 / 客乃徘徊逡巡
차마 훌쩍 떠나지 못하고 / 不忍決去
다시 나아와 아뢰기를 / 復進而爲之告曰
그대 어찌 하나만 고집하오 / 子何執一
마치 교주조슬하듯 하는구려 / 膠柱然矣
주인옹이 나를 믿지 않으니 / 翁不信我
지극한 이치로써 질정하겠소 / 請質至理
혼돈은 혼돈을 다스릴 수 없고 / 渾沌不能修混沌
양의는 양의를 다스릴 수 없소 / 兩儀不能修兩儀
또한 하늘이 만물에 대한 것을 알지 못하오 / 且不知天之於萬物乎
바야흐로 봄과 여름이면 / 方春與夏
물건마다 성대히 자라니 / 物物紛霏
복숭아와 오얏은 농염하고 / 豔如桃李
난초와 지초는 향기로우며 / 香如蘭芝
매화는 깨끗하고 / 潔如梅花
두약은 꽃다우며 / 芳如杜若
나비는 자태가 단아하고 / 雅態如蛺蝶
청개구리는 소리가 요란하며 / 繁聲如螻蟈
거미는 정교하게 줄을 치고 / 機巧如蜘蛛
귀뚜라미는 때를 알아 운다오 / 知時如蟋蟀
큰 것과 작은 것 / 至如巨者細者
곧은 것과 굽은 것 / 直者曲者
긴 것과 짧은 것 / 長者短者
검은 것과 흰 것이 / 黑者白者
어지럽고 분분하게 / 繽繽紛紛
대지에 형체를 드러내다가 / 現形坤元
가을을 지나 겨울에 이르면 / 至秋而冬
마침내 흩어져서 근원으로 돌아가니 / 卒爛熳而歸根
예컨대 사람이 출생을 봄으로 여기고 / 如人以生爲春
장년을 여름으로 여기고 / 以壯爲夏
노년을 가을로 여기고 / 以老爲秋
죽음을 겨울로 여기는 것과 같다오 / 以死爲冬
그 여름과 가을일 때 / 其夏及秋
부질없이 허명을 잡아 / 謾把虛名
하나는 요 임금이 되고 / 一爲堯
하나는 도척이 되지만 / 一爲跖
수기가 왕성한 초겨울 / 水旺陽月
전욱(顓頊)이 권위를 행사하면
/ 顓帝行威
함께 무덤에 묻힐 터이니 / 同封馬鬣
하루살이 같은 일생이라 / 蜉蝣一生
선과 악이 모두 헛되구려 / 善惡俱虛
음성(淫聲)을 멀리할 필요 없고 / 聲不須遠
여색을 제거할 것 없으며 / 色不須祛
집을 수리할 필요 없고 / 屋不須治
빗장도 채울 것 없다오 / 扃不須鐍
그대는 어찌 발가락을 가르고 혹을 물어뜯어 / 子何決騈齕疣
본성을 깎아내고 타고난 덕을 침탈한단 말이오
/ 削性繩約
맛과 냄새 / 如味如嗅
탐냄과 분노 / 如貪如嗔
음란과 교만 / 如淫如驕
망각과 상상 / 如忘如想
부함과 귀함 / 如富如貴
이익과 명예를 / 如利如名者
남몰래 맛보시고 / 掩而味之
끌어다 붙잡아두시구려 / 牽而梏之
주인옹이 얼굴을 붉히며 말하기를 / 翁赩然曰
하늘이 내게 성성한 마음을 줌은 / 天之授我惺惺者
너와 졸개를 다스리게 함이다 하고 / 治汝與成也
갑자기 옥대의 거울을 비추고 / 忽焉照玉臺之鏡
막야의 칼을 뽑아서 / 拔鏌鎁之劍
객을 잡고 그 죄를 따지기를 / 執其客數其罪曰
네가 주인을 업신여김이 / 惟汝侮主
거짓되고 또한 음험하구나 / 譎而且險
장차 장자의 황당한 의논을 늘어놓아 / 將鋪張莊叟謬悠之論
항상 우리 유자의 경 자를 무너뜨리려 하니 / 常壞吾儒者之敬字
주인옹을 호방한 데로 내모는 자도 너이고 / 驅主於放曠者汝也
나의 담과 집을 무너뜨리는 자도 너로구나 / 壞我牆屋者爾也
진나라와 수나라에서 힘을 쓰자 / 用事於秦隋
진과 수의 정치가 크게 무너졌고 / 秦隋之政大壞
오대 시대에 위세를 부리자 / 鴟張於五代
오대의 예법이 참혹해졌도다 / 五代之禮慘酷
유자의 벗이 되자 / 爲儒者交
참선비가 일어나지 않고 / 眞儒不作
정승의 벗이 되자 / 爲相者友
참재상이 서지 못하여 / 眞相不立
천년 세월이 지나도록 / 致使千載
오도를 막히게 했으니 / 吾道茅塞
너로 인한 재앙이 / 汝之爲禍
크고도 근심스럽다 / 大而且憂
당우와 더불어 벗하며 / 我欲唐虞與爲朋
보로와 더불어 교유하려고 / 葆老與爲遊
나의 문호를 단단히 묶어 / 綢繆吾之戶
너의 엿봄을 멀리했거늘 / 遠汝之窺
너는 어째서 머뭇거리며 / 爾胡趑趄
틈을 타서 속이려 하느냐 / 投間欲欺
내가 너를 죽이지 않으면 / 我不汝殺
네가 필시 나를 죽이리라 / 汝必我殺
이에 우두머리 객을 베니 / 乃斬首客
뭇 졸개들은 넋을 잃었네 / 衆成禠魄
다시 누워서 편히 뒹굴며 / 復臥坦腹
우주를 쳐다보고 굽어보니 / 俯仰宇宙
한 채의 집이 윤택한지라 / 一屋其潤
온갖 이치가 넉넉해졌도다 / 萬理其富
곁에 대종사가 계시니 / 傍有大宗師
그 이름이 무물이라네 / 其名曰無物
육극보다 아래에 있어 깊고도 깊으며 / 下於六極而爲深
대지보다 앞서 있어 높고도 높으며
/ 先於大塊而爲高
하도낙서의 근원이지만 노쇠하지 않고 / 爲河圖洛書之祖而不爲老
뭇 형체를 만들어내지만 수고롭지 않네 / 刻雕衆形而不爲勞
서로 함께 무하유의 마을과 광막한 들판에서 소요하니 / 相與逍遙乎無何有之鄕廣漠之域
집이란 바로 건곤옹인 태극이라네 / 屋乃乾坤翁太極

[주D-001]주자(朱子)가……하였으니 : 주자가 말하기를, “학문하는 방도를 맹자는 단연 놓아버린 마음을 찾는 데에 있다고 했으니, 배우는 사람은 모름지기 먼저 이 놓아버린 마음을 수습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 마음을 놓아버리면 박학(博學)도 쓸데없는 일이고 심문(審問)도 쓸데없는 일이니, 어떻게 밝게 분별하며 어떻게 독실히 행하겠는가. 대개 몸은 하나의 집과 같고 마음은 한 집의 주인과 같은 것이다. 이 집의 주인이 있은 뒤에야 문호를 청소하고 사무를 정돈할 수 있으니, 만약 주인이 없다면 이 집은 하나의 황폐한 집에 불과할 뿐이다.〔學問之道 孟子斷然說在求放心 學者須先收拾這放心 不然 此心放了 博學 也是閑 審問 也是閑 如何而明辨 如何而篤行 蓋身如一屋子 心如一家主 有此家主然後 能灑掃門戶 整頓事務 若是無主 則此屋 不過一荒屋爾〕” 하였다. 《心經附註 卷3》
[주D-002]서쪽에는……위치하며 : 집의 서쪽에는 영대(靈臺)가 우뚝이 솟아 있고 북쪽에는 안읍(安邑)이 감싸고 있다는 말이다. 영대는 문왕(文王)이 지은 대(臺) 이름이고, 안읍은 우(禹) 임금이 도읍한 곳이다.
[주D-003]삼천……이루었네 : 집, 곧 몸이 위의(威儀)로써 모양을 갖추고 예의(禮儀)로써 장식했다는 말이다. 자사(子思)가 말하기를, “우우히 크도다. 예의가 삼백 가지이고, 위의가 삼천 가지이다.〔優優大哉 禮儀三百 威儀三千〕” 하였다. 예의는 경례(經禮)이고, 위의는 곡례(曲禮)이다. 《中庸章句 第27章》
[주D-004]사물(四勿) : 네 가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공자의 제자 안연(顔淵)이 인(仁)의 조목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하기를,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하였다. 《論語 顔淵》
[주D-005]삼성(三省) : 세 가지로 자신을 반성하는 것이다. 증자(曾子)가 말하기를,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내 몸을 반성하니, ‘다른 사람과 도모하면서 충실하지 못했던가. 벗과 사귀면서 미덥지 못했던가. 스승에게 배운 것을 익히지 않았던가.’ 하는 것이다.〔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하였다. 《論語 學而》
[주D-006]백이(伯夷)의……들고 : 청백(淸白)한 백이와 흉악한 도척(盜跖)을 동일시하고 있는 객(客)을 형용한 말인 듯하다. 장자(莊子)가 말하기를, “생명을 해치고 본성을 손상시킨 것으로 말하면 도척 또한 백이일 뿐이다.〔若其殘生損性 則盜跖亦伯夷已〕” 하였다. 《莊子 騈拇》
[주D-007]노자(老子)는……설파했소 : 노장(老莊)의 주장처럼 성인의 학문을 버리라는 말이다. 노자가 말하기를, “학문을 끊으면 근심이 없을 것이다.〔絶學無憂〕” 하였다. 《老子 20章》 거협(胠篋)은 상자를 열고 남의 물건을 훔치는 작은 도둑을 말한다. 장자가 말하기를, “작은 도둑을 막기 위해 끈으로 묶고 자물쇠로 단단히 채우는 것은 세속에서 말하는 지혜라는 것이다. 그러나 큰 도둑이 와서 상자를 둘러메고 달아날 때 끈과 자물쇠가 단단하지 않을까 근심하니, 세속에서 말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바로 큰 도적을 위해 재물을 쌓아놓는 꼴이지 않겠는가.” 하였고, 또 말하기를, “성인이 생겨나자 큰 도둑이 일어났으니, 성인을 쳐 없애고 도둑을 내버려 두면 천하가 비로소 다스려질 것이다.” 하였다. 《莊子 胠篋》
[주D-008]경실(瓊室) : 은(殷)나라 주왕(紂王)이 지은 궁궐로, 화려하고 사치스러웠다.
[주D-009]누항(陋巷) : 누추한 거리이다. 공자의 제자 안연(顔淵)은 밥 한 그릇 물 한 사발을 마시며 누추한 거리에 살았으나 스스로 즐거워했다. 《論語 雍也》
[주D-010]금곡(金谷) : 금곡원(金谷園)이다. 진(晉)나라 석숭(石崇)이 낙양(洛陽) 부근에 건축한 장원(莊園)으로, 경관이 빼어나고 호화롭기로 유명했다.
[주D-011]둘 …… 되거늘 : 모두 다 부질없기는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장자가 말하기를, “남자 종과 여자 종이 함께 양을 치다가 모두 양을 잃어버렸다. 무슨 일을 하느라 양을 잃어버렸느냐고 물으니, 남자 종은 책을 읽었고 여자 종은 구슬치기 놀이를 하였다고 했다. 두 사람이 한 일은 같지 않았지만 양을 잃은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其於亡羊也 均也〕” 하였다. 《莊子 騈拇》
[주D-012]요금(瑤琴) : 옥으로 장식한 거문고이다.
[주D-013]아황주(鵝黃酒) : 좋은 술을 가리킨다. 두보(杜甫)의 〈주전소아아(舟前小鵝兒)〉 시에 “거위 새끼 누른빛이 술과 같으니, 술을 대하여 거위의 누른빛 사랑하노라.〔鵝兒黃似酒 對酒愛鵝黃〕”고 하였다.
[주D-014]장대(章臺) : 한나라 장안(長安)에 있던 거리 이름으로, 기원(妓院)이 모여 있는 곳을 일컫는다.
[주D-015]황망(荒亡) : 사냥과 주색(酒色)에 빠짐을 이른다. 맹자가 말하기를, “짐승을 쫓아 만족함이 없음을 황(荒)이라 하고, 술을 즐겨 만족함이 없음을 망(亡)이라 한다.〔從獸無厭 謂之荒 樂酒無厭 謂之亡〕” 하였다. 《孟子 梁惠王下》
[주D-016]당초……했으니 : 하늘이 부여한 본성을 잠시라도 떠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장에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하고, 성을 따름을 도(道)라 하고, 도를 품절(品節)해 놓음을 교(敎)라 한다. 도란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니, 떠날 수 있으면 도가 아니다.〔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非道也〕” 하였다.
[주D-017]젊었을……되었거늘 : 젊어서부터 노년에 이르도록 부지런히 노력하여 이제 인(仁)의 경계에 거의 도달하였다는 말이다. 넓은 집은 인(仁)을 표현한 말이다. 맹자가 말하기를, “천하의 넓은 집에 거처하며, 천하의 바른 자리에 서며, 천하의 대도를 행한다.〔居天下之廣居 立天下之正位 行天下之大道〕” 하였다. 《孟子 滕文公下》
[주D-018]집이……것이고 : 몸을 잘 닦아 마음이 장대하고 식견이 트이게 되면 하(夏)나라와 상(商)나라 때처럼 천하가 잘 다스려져서 백성들이 스스로 만족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맹자가 말하기를, “패자의 백성은 매우 즐거워하고 왕자의 백성은 광대하여 스스로 만족한다.〔覇者之民 驩虞如也 王者之民 皥皥如也〕” 하였다. 《孟子 盡心上》
[주D-019]집이……불안하리라 : 몸을 잘 닦지 못하여 마음이 거칠고 차갑게 되면 한나라와 당나라 때처럼 천하가 어지럽고 불안해질 것이라는 말이다.
[주D-020]민증(閔曾) : 공자의 제자인 민자건(閔子騫)과 증삼(曾參)이다.
[주D-021]난왕(赧王) : 동주(東周)의 마지막 천자이다.
[주D-022]노기(盧杞) : 당나라 때 사람이다. 마음이 음험하고 모습이 비루했으나 말재주가 있었다. 덕종(德宗)이 그 재주를 중히 여겨 재상으로 발탁하자 권력을 함부로 휘둘러 충량(忠良)한 사람을 해쳤다. 《舊唐書 卷135 盧杞列傳》
[주D-023]망상(罔象) : 전설 속에 나오는 물속의 괴물이다.
[주D-024]이매(魑魅) : 전설 속에 나오는 산택(山澤)의 요괴이다.
[주D-025]교주조슬(膠柱調瑟) : 거문고의 줄을 괴는 기러기발〔柱〕을 갖풀로 고정시켜 놓고 거문고를 탄다는 말로, 규칙에 구애되어 변통을 알지 못함을 비유한다.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7월 7일 비가 조금 내리고 개다


큰 가뭄에 줄곧 비가 내리지 않아 / 亢陽恒不雨
아침마다 태양은 붉게만 떠오르네 / 朝朝初日紅
이천 리 땅 모두 다 붉게 태워서 / 赤地二千里
동서 어디에도 벼 한 포기 없네 / 禾生無西東
음산한 바람 더운 기운 줄여서 / 陰風殺炎氣
유월에 벌써 초목이 떨어지고 / 六月艸木落
가을 열기 도리어 상도를 잃어 / 秋熱轉無常
넓은 들판에 쇠와 돌을 녹이네 / 平疇流金石
아녀자는 얼굴을 들고서 울며 / 婦女仰面啼
소리마다 땅의 신을 -원문 빠짐- / 聲聲□后土
하늘이 홀연히 은택을 내려서 / 皇天降德澤
한밤중에 한줄기 비를 뿌렸네 / 中宵吹一雨
촌부는 아비와 자식 경계하여 / 村夫戒父子
힘을 다해 김매고 북돋우라네 / 努力事耘耔
다행히 잠깐의 목숨 잇는다면 / 幸迎須臾壽
관청의 조세 -원문 빠짐- / 官租償□誰
아침이 다하도록 비 내린다면 / 冀得終朝雨
굶주림이 끝나리라 기대했었네 / 庶望飢有涯
-원문 빠짐- 도리어 아침 해 떠오르니 / □翻旭日出
하늘의 뜻을 정녕 알 수가 없네 / 天意不可知
애통해하는 조서를 들을 때마다 / 每聞哀痛詔
이내 유생 마음 가누기 어렵네 / 小儒難爲心
어찌하면 뇌공을 채찍질하여 / 安得鞭雷公
세차게 장맛비 쏟아지게 할까 / 滂沱雨成霖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늙은이가 손자를 버린 노래


이 늙은이 집 한강 가에 있어 / 僕家漢江頭
십 대를 밭두렁에서 살아왔으니 / 十世田隴頭
생계는 가을 잎처럼 메마르고 / 生理薄秋葉
목숨은 구층 누각처럼 위태했네 / 有命危九樓
그래도 육기의 조화에 힘입어 / 顧賴六氣調
밭에서 토란과 밤을 수확하니 / 門園芋栗收
가난 속에 열 식구 보존하며 / 艱難保十口
육십 년 세월 지낼 수 있었네 / 得度六十秋
금년 가뭄이 천리를 불태워서 / 今年赤千里
그 재앙 닭과 개에까지 미치니 / 禍及鷄狗愁
곤궁한 늙은이 골수조차 말라 / 窮老骨髓乾
손자 있어도 함께 살 수 없네 / 有孫不得留
으슥한 골목에다 내버려두어 / 棄置窮巷中
제 마음대로 떠돌도록 하니 / 聽汝任浮遊
설령 그 목숨 이어질지라도 / 縱延頸上喘
다시 만날 길 참으로 없네 / 重逢諒無由
만약 내생에 인연이 있다면 / 來生業緣在
골육을 응당 서로 찾으리라 / 骨肉當相求


 

[주D-001]육기(六氣) : 하늘에 있는 6가지의 기운으로, 음(陰)ㆍ양(陽)ㆍ풍(風)ㆍ우(雨)ㆍ회(晦)ㆍ명(明)을 말한다.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풍덕(豊德) 산사(山寺)에 있는 화숙(和叔)에게 부치다


여름 해 왕성한 기운 거두어 / 夏日收恢台
매서운 서리 세모를 재촉하니 / 嚴霜催歲晩
무성했던 만물 뿌리로 돌아가서 / 芸芸物歸根
떨어진 잎사귀 긴 언덕 덮었네 / 落葉被長阪
달빛은 조강 수면에 내려앉고 / 月臨祖江水
하늘은 후릉 봉우리에 맑으리라 / 天晴厚陵巘
절이 조용하여 사리탑이 맑고 / 寺靜闍維淸
땅이 후미져서 시중이 멀다네 / 地偏市朝遠
화숙이 돌아가서 학업을 익히니 / 和叔歸肄業
세세한 일 무엇이 방해할 것인가 / 細累孰推挽
푸른 등불 밝히고 옛글을 읽어서 / 靑燈讀古書
그칠 곳 알아서 빗장을 열어야지 / 知止發關楗
마음을 합하여 뭇 생각 수렴해야 / 齊心萬慮收
하나의 근본을 비로소 알 것이니 / 然後知一本
좌우 어디에서든지 근원을 만나서 / 左右而逢原
자유롭게 유가의 문을 출입하리라 / 掉臂闖儒閫
안으로 쌓아두면 덕성이 높아지고 / 蘊爲德性尊
밖으로 발휘하면 사업이 온당하리 / 發爲事業穩
학문함에 이것이 지극한 공효이니 / 學問此極功
어찌 한갓 문장으로 내달릴 것인가 / 豈徒馳藝苑
이 늙은이 젊어서 학문에 뜻을 두어 / 老子少志學
근본으로 되돌아가기를 기약했더니 / 本根期得返
장자 사상이 나를 그르침으로 인해 / 莊周坐誤我
혼미한 채 뒤늦게 은둔하게 되었네 / 昏冥成晩遁
과거의 공명은 날이 갈수록 멀어지고 / 科名日日疎
성리의 학문은 해가 갈수록 손상되네 / 性學歲歲損
사방을 돌아보아도 가진 것 없으니 / 顧瞻無所有
분노와 울분만 가슴속에 가득하구나 / 憑心胸膈滿
그대는 실패한 내 전철 거울삼아서 / 君視余覆轍
마음 다스리기를 끝내 잊지 마시게 / 治心終莫悗


[주C-001]화숙(和叔) : 남효온의 사위이다.
[주D-001]좌우……만나서 : 맹자가 말하기를, “군자가 깊이 나아가기를 도로써 하는 것은 자득하고자 해서이니, 자득하면 처하는 것이 편안하고 처하는 것이 편안하면 자뢰(資賴)함이 깊고 자뢰함이 깊으면 좌우에서 취하여 씀에 있어서 그 근원을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자득하고자 하는 것이다.〔君子深造之以道 欲其自得之也 自得之則居之安 居之安則資之深 資之深則取之左右 逢其原 故君子欲其自得之也〕” 하였다. 《孟子 離婁下》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다경루(多景樓)에서 한밤중에 자정(子挺)을 생각하다


하룻밤 어룡이 숨을 몰아쉬니 / 一夜魚龍吹
노한 파도 흰 비를 날리는 듯 / 怒潮飛白雨
별빛은 푸른 큰 강에 임하였고 / 星臨大江碧
움직이는 그림자 하늘을 흔드네 / 動影掀天宇
교시가 어둡게 늘어선 듯하고 / 鮫市列冥濛
괴물이 어렴풋이 오는 듯하네 / 物怪來髣像
심상한 일이라 놀라지도 않고 / 尋常不驚人
밤중에 승려 방에 깃들어 묵네 / 夜依僧方丈
창문 열고 나그네 잠 못 드니 / 開囱客不寐
밤 깊을수록 심사가 어지럽고 / 夜久亂心緖
처량하게 서글픈 감정 생기니 / 凄然哀感生
자정이 하던 말이 생각남이라 / 有懷子挺語
우리 함께 감로사 유람하자고 / 偕遊甘露寺
예전에 서로 약속한 적 있었지 / 有約在宿昔
여기 와서 미처 구경도 못하고 / 不及此來觀
자정은 무덤 속으로 떠나버렸네 / 子挺就窀穸
맹동야를 잃어버린 이후로 / 自失孟東野
한 이부는 슬픔이 몹시 심했네
/ 哀甚韓吏部
죽지 않고 나 홀로 찾아왔으니 / 不死我獨來
쓸모없는 이 목숨만 연장했구려 / 淹延樗櫟壽
비통한 노래 대들보에 격렬하니 / 悲歌激屋梁
눈물이 흘러내려 저고리를 적시오 / 淚下濕重襦
평소에 그대 생각하던 한스러움 / 平生憶渠恨
이곳에 이르러 없을 수 없구려 / 到此不能無


[주D-001]맹동야(孟東野)를……심했네 : 자정(子挺)을 잃은 뒤로 내가 몹시 슬펐다는 말이다. 맹동야를 자정에 견주고 한 이부(韓吏部)를 자신에 견주었다. 동야는 당나라 시인 맹교(孟郊)의 자(字)이고, 이부는 이부 시랑을 역임한 한유(韓愈)를 가리킨다.
[주D-002]비통한……격렬하니 : 친구를 몹시 그리워하며 시를 짓는다는 말이다. 두보(杜甫)가 이백(李白)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에 “지는 달빛 들보에 가득 비치니, 오히려 그대 얼굴인가 의심한다오.〔落月滿屋梁 猶疑見顔色〕” 하였다. 《古文眞寶前集 卷3 夢李白》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은진(恩津)

무창의 물고기를 먹지 않으리라 / 不食武昌魚
차라리 건업으로 돌아가 죽으리라
/ 寧還建業死
옛날 백성들 이런 동요 있었으니 / 先民有此謠
예나 지금이나 이주를 신중히 했네 / 今古重遷徙
우리나라는 태조에서 지금까지 / 東韓自太祖
구십 년 동안 태평성대 누리니 / 垂拱九十祀
백성은 다스려지고 재물도 풍부하여 / 民調物亦阜
기름진 들판이 천만리 펼쳐졌네 / 沃野千萬里
예전엔 황제가 두터이 돌보시어 / 頃緣帝顧厚
해마다 중국의 사신 왕래 있더니 / 歲有皇華使
한씨가 우리나라에 화를 끼치고 / 韓氏禍大東
정동은 요구가 그치지 않았네 / 鄭同求不已
은 술잔도 귀하게 여기지 않거늘 / 銀苽不以長
쇠 가마솥을 어찌 쳐다보려 할까 / 鐵釜安肯視
서북 지역에는 저축이 다 비었고 / 西路杼柚空
모든 마을에 돌림병까지 일어났네 / 萬室疫癘起
쇠잔한 백성들 날로 목숨 잃어서 / 殘民日彫喪
들판과 풀숲에 해골이 드러나니 / 草莽暴骨髓
올봄에 성상의 조서 내려져서 / 今春聖詔下
백성을 옮겨 서북방 채우게 했네 / 徙民實西鄙
순찰사가 성화처럼 시행하느라 / 巡使急星火
호령 소리 남도 땅을 뒤흔드니 / 號令擾南紀
남도 땅 이백 개 고을 / 南紀二百州
삼 년 동안 농사를 폐하네 / 三歲廢耒耟
탄식하면서 살 수 없다 하거늘 / 嗷嗷不能存
갓난아이조차도 저곳에 감에랴 / 襁負況適彼
강한 우리도 면하지 못하거늘 / 吾强亦不免
약한 너는 홀로 누구를 믿을까 / 汝弱獨何恃
서북 지방은 거칠고 사나운 곳 / 西方惡厲鄕
그 옛날 홍건적 진 쳤던 땅이네 / 疇昔紅巾壘
흉악한 모습의 저승 수문장이 / 敦脄與血拇
사람을 뒤쫓아 내달리네
/ 逐人駓駓只
내 차라리 손수 자결할지언정 / 吾寧手自決
차마 그곳의 관리가 되겠는가 / 忍爲彼卿士
자손들 만약 옮기지 않는다면 / 子孫若不遷
오히려 제기를 지킬 수 있으리 / 猶得守簠簋
집집마다 부녀자들 통곡하고 / 家家哭婦子
그 재앙 가축에까지 미치네 / 禍及牛羊豕
누가 만년의 계책을 세워서 / 誰建萬歲策
평양으로 도읍을 옮겨낼까 / 箕城徙都市
그렇게 되면 중국과 더불어 / 然後與上國
단지 강물 하나 막혀 있으니 / 只隔一江水
두 나라 사신이 오고갈 때 / 二使之往來
제공되는 비용이 경감되리라 / 庶減供支靡
황해도와 평안도 지방 / 黃海與平安
또한 경기 지역 되리니 / 抑爲近圻爾
임금의 교화로 거친 기운 녹여 / 王風消厲氣
음습한 땅에 백성이 번성하리라 / 瘴地繁生齒
기장과 벼는 열매가 풍성하고 / 黍稷實芃芃
뽕나무와 삼 무성하게 자라서 / 桑麻生薿薿
부모 봉양 자식 기르는 즐거움 / 仰父俯子樂
아마 또한 이로부터 시작되리라 / 其亦自此始
여기다가 세금까지 면제하여 / 因之除貢稅
십 년을 만약 이렇게 한다면 / 十載苟如此
남도 백성 앞 다투어 옮길 테니 / 南民爭日遷
세찬 기세 막아낼 수 없으리라 / 沛然莫能止

[주D-001]무창(武昌)의……죽으리라 : 삼국 시대 오(吳)나라의 손호(孫皓)가 도읍을 건업(建業)에서 무창으로 옮기자 백성들의 생활이 곤궁하여 원망이 높았다. 이에 육개(陸凱)가 “차라리 건업의 물을 마실지언정, 무창의 물고기는 먹지 않겠네. 차라리 건업으로 돌아가 죽을지언정, 무창에 머물러 살지 않겠네.〔寧飮建業水 不食武昌魚 寧還建業死 不止武昌居〕”라는 민간의 동요를 들어 상소한 일이 있다. 《三國志 卷61 吳書 陸凱傳》
[주D-002]한씨(韓氏) : 미상이다.
[주D-003]정동(鄭同) : 명나라 태감(太監)으로, 조선에 파견된 사신이다.
[주D-004]서북 지역에는……비었고 : 서북 지방 백성이 부역에 괴로움을 당한다는 말이다. 《시경》〈소아(小雅) 대동(大東)〉에 “대동과 소동에 베틀 북이 다 비었도다.〔大東小東 杼軸其空〕” 하여, 동쪽에 있는 크고 작은 제후국(諸侯國)들이 주(周)나라 왕실을 위한 부역에 시달리고 있음을 풍자하였다.
[주D-005]흉악한……내달리네 : 이주를 재촉하는 관리의 모습을 저승의 수문장에 비유하였다. 전국 시대 초나라 송옥(宋玉)의 〈초혼(招魂)〉에 “두터운 등판, 피묻은 손가락으로 사람 잡으러 내달리고 있네.〔敦脄血拇 逐人駓駓些〕” 하였다.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관촉사(灌燭寺) 미륵(彌勒)

광종이 천자 권위를 굽히고서 / 光宗屈萬乘
불문의 제자에게 내려서 절했지 / 下拜桑門子
불교가 우리 동방 진동시킬 때 / 象敎動東華
너 미륵불 여기 처음 세워졌네 / 爾佛肇於此
기이한 얘기 궁중을 놀라게 하고 / 奇談駭宮闈
괴이한 의논 민간을 경동시켜서 / 詭論驚閭里
소원이 있으면 반드시 기도하니 / 有願必祈禱
소지 올린 종이 수만 장이 되네 / 狀疏累萬紙
어리석은 백성들 부모처럼 섬겨 / 愚民事如父
그 습속 흘러온 지 사백 년이라 / 流傳四百祀
내 찾아와서 옛 물건을 구경하니 / 我來訪古物
관촉사 가람이 봄 강에 임했구나 / 伽藍臨春水
늙은 승려 억지로 나를 맞이하여 / 老僧强迎我
불화 그려진 속에다 나를 앉히네 / 坐我畫圖裏
내 그대의 청정함은 사랑하지만 / 吾愛爾淸靜
말이 클 뿐 기뻐할 것은 못 되네 / 言厖不足喜
생각건대 옛날 도가 있던 시대 / 憶昔有道時
성왕은 모든 일에 경건했으니 / 聖王敬所止
벼리를 펼치면 그물이 들리듯이 / 綱張萬目擧
독공하여 천하가 잘 다스려졌지 / 篤恭天下理
왕도의 기강이 해이해진 때부터 / 曰自王紀弛
백성은 다투어 괴이함 일삼으니 / 民爭事怪異
가련하다 오복을 내리는 권한이 / 可憐五福權
그대 돌부처에게 옮겨간 것이여 / 移汝石大士

[주D-001]성왕은……경건했으니 : 《시경》〈대아(大雅) 문왕(文王)〉에 “심원(深遠)하신 문왕이여. 아, 계속하여 빛나고 경건하셨도다.〔穆穆文王 於緝熙敬止〕” 하였다.
[주D-002]독공(篤恭)하여……다스려졌지 : 독공은 공손함을 돈독히 한다는 말이다. 《중용장구》 제33장에 “이런 까닭으로 군자는 공손함을 돈독히 하매 천하가 평화로워지는 것이다.〔是故 君子 篤恭而天下平〕” 하였다.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8월 20일, 선친의 공문우(空門友) 일암(一庵) 스님을 구월산(九月山) 패엽사(貝葉寺)에서 찾아뵈었다. 이날은 바로 선친의 기일(忌日)이라, 대사께 청하여 열반당(涅槃堂)에서 제사를 올리고 이어 옛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사의 연세는 여든셋이다.

가을빛이 천지에 찾아와서 / 秋色來天地
온 숲에 비단 낙엽 마르고 / 千林錦葉乾
해와 달이 쉬지 않고 흘러 / 日月流冉冉
머리는 반백이 되었구나 / 頭上二毛斑
이곳으로 대사를 찾아온 날 / 此地尋師日
마침 우리 선친의 기일이라 / 適我先君忌
주인께서 내 정성 허락하여 / 主人許我誠
동자승 불러 제사를 올리네 / 呼僮奠祀事
밥을 지어 금불상 공양하고 / 炊飯禮金身
차를 달여 선령께 올리나니 / 酌茶奠先靈
소자는 두 줄기 눈물 흘리고 / 小子雙垂涕
독경 소리는 아득히 울려 퍼지네 / 梵音徹冥冥
제사 지낸 뒤 막걸리 병 여니 / 奠徹開白酒
황혼에 바람이 비를 몰아오네 / 日夕風吹雨
무릎 맞대어 새벽 종소리 들으며 / 促膝聽晨鍾
등불 밝혀 옛일 자세히 얘기하네 / 明燈細談古
가을 법당엔 이미 더위 물러났고 / 秋堂已推暑
나뭇가지는 제법 가을을 알리네 / 木梢强知秋
이십 년 전의 그 옛날 일들이 / 二十年前事
마음 끝에 뭉게뭉게 일어나네 / 油然到心頭
대사께서 제 얘기 들어보겠소 / 師其聽我否
소자가 청컨대 모두 아뢰리다 / 小子請具陳
그 옛날 천순 연간 말년에 / 在昔天順末
흥천사에서 후인을 가르칠 때 / 興天誨後人
저도 제생의 말석에 참석하여 / 余在諸生後
문묵의 마당에 놀 수 있었더니 / 得遊文墨場
수십 년 세월 흘러간 지금 / 在今數十載
동렬들 모두 조정에 올랐다오 / 同列竝鵷行
유독 저는 품성이 게으른 데다 / 獨余稟性懶
부친의 가르침을 받지 못했고 / 加以阻趨庭
불행히도 젊을 때 배우지 못해 / 坎壈少失學
세상과 함께 취하고 깨었소 / 與世同醉醒
백이면 백 일이 모두 어긋나니 / 百事百蹉跎
돌아가 은거할 곳 그 어디일까 / 菟裘知何處
광야에서 비시를 노래 부르고 / 廣野歌匪兕
언덕의 보리수를 부러워했네 / 原隰羨萇楚
연전엔 지리산을 찾아갔고 / 前年訪頭流
거년에는 풍악산에 올랐으며 / 去歲登楓岳
올해 봄에 관서 땅 들어가니 / 今春入關西
보이는 풍경 모두 삭막했다오 / 觸眼皆索寞
묘향산을 두루 돌아보고 / 眼涉妙香山
비류천에 배를 띄웠으며 / 舟泛沸流川
단군 성전에 시를 올리고 / 獻詩檀君殿
기자 왕의 어진 덕을 찬술하였소 / 贊述箕王賢
패강 가를 돌아다니다 쉬면서 / 流憩浿江邊
위만조선 흔적을 자세히 살폈고 / 細閱衛滿跡
구제궁을 두루 구경하면서 / 歷覽九梯宮
동명왕의 덕을 상상하였소 / 想像東明德
살수는 수나라의 싸움터요 / 薩水隋戰場
현도는 한사군의 하나라오 / 玄菟漢四郡
홍건적이 극성에서 죽었고 / 紅巾死棘城
칠불이 고구려 국운 부지했소 / 七佛扶麗運
박천은 어별교 놓았던 강 / 博川魚鱉橋
흘골산은 송양을 봉한 곳 / 紇骨松讓封
수양산은 지금의 해주 땅 / 首陽今海州
용강은 옛날의 황룡국이라 / 龍岡古黃龍
아득하고 아득한 천고의 일들 / 茫茫千古事
역력히 눈앞에서 헤아려보았소 / 歷歷目前數
근심을 펼칠수록 마음 더욱 어지럽고 / 舒憂心愈亂
억지로 노래할수록 소리 더욱 괴롭소 / 强歌聲愈苦
정녕 이내 몸 둥지 잃은 새 같아 / 正如失棲鳥
긴 밤 내내 슬프게 부르짖는다오 / 長夜呼嗚嗚
바람만 닿아도 일곱 슬픔 생겨나니 / 風觸七哀生
세상 일 자연히 즐거울 게 없구려 / 世事自無娛
친척도 얼굴 돌리고 비웃을 뿐이니 / 親戚背面笑
그 누가 내 잘못 바로잡으려 할까 / 孰肯矯我失
대사께서 삼자를 가르쳐주시니 / 師能誨三字
오늘부터 곧바로 허물을 고치겠소 / 改過從今日

[주D-001]천순(天順) : 명나라 영종(英宗)의 연호이다. 1457년부터 1464년까지로, 조선시대 세조 연간에 해당한다.
[주D-002]광야에서……부르고 : 들짐승처럼 사방을 돌아다녔다는 말이다. 《시경》〈소아(小雅) 하초불황(何草不黃)〉에 “외뿔소가 아니며 범이 아니거늘, 저 광야를 따르게 한단 말인가.〔匪兕匪虎 率彼曠野〕” 하였다.
[주D-003]언덕의 보리수를 부러워했네 : 괴로움을 견디기 어려워서 언덕과 진펄에 자라는 초목의 근심 없음을 부러워했다는 것이다. 《시경》〈회풍(檜風) 습유장초(隰有萇楚)〉에 “진펄에 보리수나무가 있으니, 야들야들한 그 가지로다. 어리고 예쁘며 반들거리니 너의 무지함을 즐거워하노라.〔隰有萇楚 猗儺其枝 夭之沃沃 樂子之無知〕” 하였다.
[주D-004]구제궁(九梯宮) : 동명왕(東明王)의 궁으로, 예전에 평양 영명사(永明寺) 안에 있었다고 한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51 平壤府》
[주D-005]극성(棘城) : 황해도 봉산(鳳山)에 속하는 진(鎭)이다. 고려 공민왕 10년(1361)에 관군이 홍건적을 방어하여 이곳에서 모두 섬멸하였다고 한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41 鳳山》
[주D-006]칠불(七佛)이……부지했소 : 세상에 전하기를, “수(隋)나라 군사가 살수(薩水)를 건너려 하였으나 배가 없어 늘어서 있었는데, 갑자기 7명의 중이 나타나 물을 건넜다. 수나라 군사들은 물이 얕은 줄 알고 다투어 건너다 무수히 빠져 죽었다.” 한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52 安州牧》
[주D-007]삼자(三字) : 《주역》〈복괘(復卦)〉의 ‘불원복(不遠復)’ 세 글자를 가리키는 듯하다. 불원복은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온다’는 말로, 불선(不善)임을 알았으면 곧바로 선(善)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주자(朱子)가 도에 들어가는 차제(次第)를 묻자, 유병산(劉屛山)이 말하기를, “나는 《주역》에서 도에 들어가는 문을 얻었다. 이른바 불원복(不遠復)이라는 것이 나의 삼자부(三字符)이니, 그대는 힘쓸지어다.” 하였다. 《晦庵集 卷90 屛山先生劉公墓表》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기자(箕子) 묘정(廟廷)을 배알하고

무왕이 수를 미워하지 않았으니 / 武王不憎受
성탕이 어찌 주를 노여워했으랴
/ 成湯豈怒周
상나라 주나라 혁명할 즈음에 / 二家革命間
성인은 원망도 탓함도 없었다네 / 聖人無怨尤
교활한 아이 교만하고 음란하여 / 狡童呈驕淫
나의 좋은 계책 듣지 않았었네
/ 不我聽嘉猷
나라는 망해도 도는 망하지 않아 / 家亡道不亡
주나라 위해 홍범구주 진언하니
/ 爲周陳九疇
낙서의 도가 이로 인해 전승되어 / 洛書道有傳
떳떳한 인륜이 천하에 밝아졌구나
/ 彝倫明九州
이에 알겠노니 도는 공공의 기물이라 / 乃知道公器
전수함에 있어 친함과 원수가 없음을 / 傳授無親讎
소인 장근이라는 자가 / 小人張瑾者
평지에 의심하는 주장을 내어 / 平地生疑謀
기자가 무왕의 스승이 된 것을 / 以師武王事
황천의 수치라고 손가락질하니 / 指爲黃泉羞
왕개미가 큰 나무를 뒤흔들 듯 / 蚍蜉撼大樹
혜고가 봄가을을 모르는 꼴이네 / 蟪蛄昧春秋
옛 도읍에는 보리 이삭 패었건만 / 故都麥漸漸
천고의 패강은 유유히 흐르누나
/ 浿江流悠悠
밭에는 아직 정전 구획 남았고 / 田間遺井畫
벌판에는 삼과 뽕나무 빽빽하니 / 大野桑麻稠
백성들도 많고 인심도 순박하여 / 人厖物情孚
지금까지 예악의 고장이 되었네 / 至今禮樂區
관서를 유람하다 사우를 배알하니 / 西遊謁祠宇
신령이 엄연히 머무시는 듯하네 / 神靈儼若留

[주D-001]무왕이……노여워했으랴 : 무왕이 수(受)를 미워하여 정벌한 것이 아니라 백성을 구제하기 위하여 혁명한 것이므로, 성탕(成湯)이 주(周)나라 건국에 노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수(受)는 은(殷)나라 마지막 임금 주(紂)의 이름이다.
[주D-002]교활한……않았었네 : 폭군 주(紂)가 기자(箕子)의 간언을 듣지 않았음을 이른다.
[주D-003]나라는……진언하니 : 기자가 은나라 주왕(紂王)의 숙부이면서 주(周)나라 무왕을 위하여 치국(治國)의 대도(大道)인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일러준 것을 말한다.
[주D-004]낙서(洛書)의……밝아졌구나 : 우(禹) 임금이 홍수를 다스릴 때에 낙수(洛水)에서 거북이 나왔다. 거북 등에 1에서 9까지 배열된 무늬가 있었는데, 이것을 낙서라 한다. 우 임금이 이를 보고 홍범구주를 지었고, 뒤에 기자가 무왕에게 전하였다.
[주D-005]장근(張瑾) : 미상이다.
[주D-006]옛……흐르누나 : 기자의 옛 도읍이 폐허로 변하고 강물만 유유히 흘러간다는 말이다. 기자가 옛 도성을 지나다가 궁궐터가 모두 보리밭으로 변한 것을 보고 〈맥수가(麥秀歌)〉를 지어 서글퍼하기를, “보리가 자라 이삭이 패었거늘, 벼와 기장 무성하고 윤택하도다. 저 교활한 아이여, 나와는 잘 지내지 못했도다.〔麥秀漸漸兮 禾黍油油 彼狡僮兮 不與我好兮〕” 하였다. 《史記 卷38 宋微子世家》
[주D-007]밭에는……남았고 : 기자가 정전법(井田法)을 시행하여 평양성(平壤城) 남쪽에 정전을 구획한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안주(安州) 백상루(百祥樓)에 묵으며 누각 앞의 큰 강은 묘향산에서 발원한 것으로, 옛 이름은 살수(薩水)이고 지금은 청천강(淸川江)이라 부른다. 수 양제(隋煬帝)의 선봉(先鋒) 우문술(宇文述) 등 37만 명이 여기에서 익사하였다.

수나라와 고구려 싸운 이후로 / 隋麗事跡後
큰 강 머리에 누각만 남아 있네 / 樓在大江頭
하룻밤에 신령스러운 비 / 一夜神靈雨
쓸쓸히 삼주를 지나가네 / 蕭蕭過三洲
반세에 흥망성쇠를 겪었으니 / 半世閱興亡
쓰라린 바람만 두 눈을 쏘네 / 酸風射雙眸
백년도 못 사는 한평생 동안 / 人生百年內
허겁지겁 천년을 도모하더니 / 營營千歲謀
하루아침에 어디로 가버렸던가 / 一朝安在哉
성은 비고 시든 풀만 무성하네 / 城空蓑草稠
진부한 선비는 시서를 믿어서 / 腐儒信詩書
덕으로 다스리는 계책만 알 뿐이고 / 但知舞羽籌
무력을 남용하여 공훈을 삼으면 / 窮兵四海功
비록 성공해도 또한 잘못이거늘 / 雖成亦可尤
하물며 백만 군사 전멸시켰으니 / 況覆百萬兵
수나라 그 일은 수치라 하리라 / 隋家事堪羞
고구려는 비록 작은 나라이지만 / 高麗雖小邦
세상에서 예의지국이라 일컬으니 / 世稱禮義區
동명성왕 신령하고 성스러운 덕 / 東王神聖德
오늘까지도 백성들이 노래 부르네 / 至今被歌謳
적 양광이 교만한 군사 일으켜서 / 賊廣發驕兵
우리를 모두 살육하길 기약하더니 / 期我盡虔劉
어찌 알았으랴 하백사에 의해 / 安知河伯使
도리어 물속에 묻히게 될 줄을 / 顧被泉陽留
군사의 숫자로는 대적하지 못하지만 / 衆寡雖不敵
을지문덕 계책이 신묘하기 그지없어 / 乙支神算周
한 대의 수레도 돌아가지 못하고 / 隻輪一不返
귀신의 울음소리만 처량히 울리네 / 鬼哭鳴啾啾
천년이 지나도 땅은 변하지 않아 / 千年地不變
살수는 예전처럼 서남으로 흐르고 / 薩水西南流
싸움 도왔던 강변의 일곱 돌부처 / 江邊七大士
아무렇게나 서 있은 지 몇 해런가 / 謾立幾春秋
민간에 전하기를 한창 싸울 때에 / 人傳方戰時
꾀를 다하여 적들을 속였다 하네 / 騁謀咍賊儔
‘咍’는 ‘紿’가 되어야 할 듯하다.*
돌부처 비록 말은 하지 못하지만 / 渠雖不解語
또한 나라 우환 걱정할 줄 알았네 / 亦知憂國憂

[주C-001]우문술(宇文述)……익사하였다 : 《수서(隋書)》 권61〈우문술열전(宇文述列傳)〉에 의하면 전투에 참가한 인원은 30만 5천 명이고 이 가운데 2700명이 생환하였으며, 우문술도 생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주D-001]반세에 흥망성쇠를 겪었으니 : 수(隋)나라가 38년 만에 망한 것을 말한다.
[주D-002]덕으로……뿐이고 : 《서경》〈대우모(大禹謨)〉에 “유묘(有苗)의 백성이 명을 거스르자, 순(舜) 임금이 문덕(文德)을 크게 펴서 방패와 깃일산으로 두 뜰에서 춤추니, 70일 만에 유묘가 와서 항복하였다.〔苗民逆命 帝乃誕敷文德 舞干羽于兩階 七旬 有苗格〕” 하였다.
[주D-003]적(賊)……일으켜서 : 수 양제(隋煬帝)가 고구려를 침공한 것을 말한다. 수 양제의 이름이 양광(楊廣)이다.
[주D-004]하백사(河伯使) : 하백사자(河伯使者)로, 수신(水神) 이름이다.


 


[주D-026]수기(水氣)가……행사하면 : 인생의 겨울을 맞아 죽게 됨을 말한다. 《회남자(淮南子)》〈천문훈(天文訓)〉에 “북방은 물이다. 그 임금 전욱과 그 보좌 현명이 권세를 잡고 겨울을 다스린다.〔北方 水也 其帝顓頊 其佐玄冥 執權而治冬〕” 하였다.
[주D-027]그대는……말이오 : 《장자(莊子)》〈변무(騈拇)〉에 말하기를, “엄지와 둘째 발가락이 달라붙은 것을 갈라놓으면 아파서 울고, 손에 덧붙은 육손을 물어뜯어 내면 소리 지를 것이다.……걸음쇠ㆍ먹줄ㆍ곡척(曲尺)으로 바로잡는 것은 그 본성을 깎아내는 것이고, 노끈ㆍ아교ㆍ옻칠로써 견고하게 하는 것은 그 덕을 침탈하는 것이다.〔且夫騈於拇者 決之則泣 枝於手者 齕之則啼……且夫待鉤繩規矩而正者 是削其性也 待繩約膠漆而固者 是侵其德也〕” 하였다.
[주D-028]성성(惺惺) : 마음이 혼매하지 않고 밝게 깨어 있음을 이른다. 유가의 수양법인 경(敬)을 말한 것이다. 북송(北宋) 때의 사양좌(謝良佐)가 말하기를, “경이란 항상 성성하게 하는 법이다.〔敬是常惺惺法〕” 하였다. 《心經附註 卷1》
[주D-029]막야(鏌鎁) : 막야검(鏌鎁劍)이다. 간장검(干將劍)과 함께 한 쌍을 이루던 고대의 명검(名劍) 이름이다.
[주D-030]당우(唐虞) : 요(堯) 임금과 순(舜) 임금이다. 당은 요, 우는 순의 나라 이름이다.
[주D-031]보로(葆老) : 미상(未詳)이다.
[주D-032]육극(六極)보다……높으며 : 도가 깊고 높음을 형용한 말이다. 《장자》〈대종사(大宗師)〉에 “도는……태극의 앞에 있으나 높은 듯하지 않고, 육극의 아래에 있으나 깊은 듯하지 않다.〔夫道……在太極之先而不爲高 在六極之下而不爲深〕” 라는 말이 나온다.
[주D-033]무하유(無何有)의……들판 : 적막하고 아득하여 아무것도 없는 세계로, 일체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이른다. 《莊子 逍遙遊》

공은 성이 남씨(南氏), 휘가 효온(孝溫), 자가 백공(伯恭), 자호가 추강거사(秋江居士), 본관이 의령(宜寧)으로, 휘 전(恮)의 아들이다.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어머니 이씨(李氏)를 섬겨 효자로 소문났다. 사람됨이 충담(沖澹)하고 홍의(弘毅)하며 소탈하고 전아(典雅)하며, 가슴속이 시원스러워서 한 점의 속기(俗氣)도 없었다.
일찍이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에게 수업하였다. 점필재공이 감히 이름을 부르지 않고 반드시 ‘우리 추강〔吾秋江〕’이라 하였으니, 존중을 받음이 이와 같았다.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김시습(金時習), 안응세(安應世) 등의 제현(諸賢)과 더불어 형제처럼 서로 추중(推重)하였다.
성종조에 소를 올려 소릉(昭陵)의 복위를 청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자, 드디어 이 세상에 뜻을 끊고 유랑함을 일삼아 명승지로 일컬어진 곳은 발걸음이 거의 다 미쳤다.
정통(正統) 갑술년(1454, 단종2)에 태어나서 성화(成化) 임자년(1492, 성종23)에 세상을 떠나니, 향년 39세이다.
연산조 갑자년(1504, 연산군10)에 소릉의 복위를 청했던 상소를 추후에 처벌하여 뜻밖에 부관참시의 재앙을 만나게 되었다. 하나 남은 아들 휘 충세(忠世) 또한 연좌되어 죽임을 당하니, 이분이 곧 나 유홍(兪泓)의 외조부이다. 집안사람들이 공의 유고(遺稿)가 다시 재앙의 빌미가 될까 염려하여 모두 불 속에 던져 넣어 현존하는 것이 거의 없으니, 애석하도다.
오호라! 사마천(司馬遷)은 옛날의 훌륭한 사관(史官)이었으나 그 글이 생질 양운(楊惲)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천하에 선포되었다. 나 또한 외람되이 외손의 처지인지라, 오직 양운에게 죄를 얻을까 두려워하여 산일(散逸)된 나머지를 수습해 온 지가 몇 해 되었다. 참의(參議) 임보신(任輔臣)이 앞에서 돕고 대사성(大司成) 이충작(李忠綽)이 뒤에서 계속하였고, 사문(斯文) 신호(申濩)와 학관(學官) 권응인(權應仁)이 또 이어서 교정하였다.
시문 총 몇 편으로는 비록 그 유문(遺文)을 다 전할 수 없지만, 또한 한 점의 고기로써 한 솥의 국 맛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니, 나의 오랜 소원이 이에 조금 이루어진 셈이다. 연원(淵源) 있는 학문과 절의에 찬 풍모에 대해서는 국사(國史)에 기록되어 있으니, 내가 어찌 감히 덧붙일 수 있겠는가.
만력(萬曆) 기원 5년 정축년(1577, 선조10) 12월 하한(下澣)에 외증손 가선대부(嘉善大夫) 경상도관찰사 겸 병마수군절도사(慶尙道觀察使兼兵馬水軍節度使) 기계(杞溪) 유홍은 삼가 발문을 적는다.


 

[주D-001]정통(正統) : 명나라 영종(英宗)의 연호이다. 경태(景泰)의 오기(誤記)인 듯하다.
[주D-002]성화(成化) : 명나라 헌종(憲宗)의 연호이다. 홍치(弘治)의 오기인 듯하다.
[주D-003]만력(萬曆) : 명나라 신종(神宗)의 연호이다.

 

 

뜰 가운데에 석탑이 있었다. 탑의 네 모퉁이에 탑을 떠받치는 네 기둥이 있고, 또 부인(婦人)이 중간에 서서 정수리로 떠받치는 형상이 있다. 승려가 말하기를 “이것은 비구니가 된 연기의 어머니입니다.” 하였다. 그 앞에 또 작은 탑이 있었다. 탑의 네 모퉁이에 또한 탑을 떠받치는 네 기둥이 있고, 또한 남자가 중간에 서서 정수리로 떠받치며 탑을 떠받치고 있는 부인을 우러러 향하고 있는 형상이 있으니, 이것이 연기이다. 연기는 옛날 신라
사람으로, 그 어머니를 따라 이 산에 들어와서 절을 세웠다. 제자 천 명을 거느리고서 화두(話頭)를 정밀히 탐구하니, 선림(禪林)에서 조사(祖師)라고 불렀다.

 추강집 제1권
 부(賦)
옥부(屋賦)


주자(朱子)가 몸을 집에 비유하고 마음을 집주인에 비유하여 말하기를, “주인이 있으면 뜰과 문호를 청소하고 담과 모퉁이를 정돈하지만 주인이 없으면 이 집은 하나의 황폐한 집에 불과할 뿐이다.” 하였으니, 뒷날 몸과 마음의 본체를 알아서 수양의 방도를 얻는 사람은 또한 이 설이 있음에 힘입을 것이다. 내가 일찍이 이 말씀을 반복하여 완색(玩索)해보니, 마음이 이미 주인이 되면 모든 외물에의 욕심은 객(客)이 되는지라, 객의 설을 펼쳐 사욕을 이기는 공부를 형용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주객(主客)의 설을 세워서 옥부를 짓는다.

기술하노라 / 敷曰
한 번 음이 되고 한 번 양이 되매 / 一陰一陽
음과 양 두 기운이 열리고 닫히니 / 兩儀闔闢
천둥 우레가 치고 비바람이 적셔주며 / 雷霆風雨之鼓潤
추위 더위가 바뀌고 일월이 운행하네 / 寒暑日月之綜錯
오행을 뒤섞어서 / 磨盪乎五行
만물을 빚어내니 / 陶鑄乎萬物
내 집이 그 사이에 / 屋於其間
덩그러니 생겨났네 / 塊然其出
서쪽에는 영대가 우뚝하고 / 西峙靈臺
북쪽에는 안읍이 위치하며
/ 北鎭安邑
삼천 조목의 위의로 모양을 갖추었고 / 模樣乎威儀之三千
삼백 조목의 예의로 단청을 이루었네
/ 丹靑乎禮儀之三百
의로써 그 집의 길을 삼고 / 義爲其路
도로써 그 터를 삼으니 / 道爲其基
그 속에 누운 백발의 늙은이 / 有皤皤翁頹乎其中
그 집의 주인이 되었구나 / 爲其主之
상제의 밝은 명을 받아서 / 受上帝命
무극의 성품을 얻었으니 / 性得無極
당초의 성품을 해칠까 두려워서 / 懼厥初之或戕
날로 부지런히 수양하고 삼가네 / 日孜孜而修飭
사물에게 명하여 청소의 소임 맡게 하고 / 命四勿以司灑掃之任
삼성으로 하여금 도둑의 침범 막게 하며 / 使三省以戒穿窬之盜
뜰에서 가시나무를 자르고 / 剪荊棘於庭除
방구석에서 더러움을 제거하네 / 去汚穢於室奧
술이 방문하면 방문을 닫고서 배척하고 / 歡伯訪而閉戶以斥之
여색이 다가오면 자물쇠 걸어 물리치네 / 女色來而鎖鑰而却之
무릇 마음을 흔드는 모든 외물 / 凡搖之外物
내 문지방을 밟지 못하게 하려고 / 期不履乎我闥
소나무처럼 무성하게 하며 / 庶使茂如其松
대나무처럼 빽빽하게 했더니 / 苞如其竹
새와 쥐도 떠나가 버리고 / 鳥鼠攸去
벽의 좀도 자취를 감추며 / 壁蝎退迹
비가 내려도 새지 않고 / 雨而不能漏
바람이 불어도 뽑히지 않네 / 風而不能拔
천백 명 도적을 거느린 객이 / 客有領賊千百者
백이의 창을 잡고 / 伯夷矛戟
도척의 금슬을 들고
/ 盜跖琴瑟
의기양양 밖에서 들어와서 / 施施然從外來
점점 주인옹을 유혹하기를 / 浸浸然誘主人翁曰
노자는 절학을 주창했고 / 老著絶學
장자는 거협을 설파했소
/ 莊說胠篋
수레바퀴 같은 죽음과 삶 / 車輪死生
집이 무슨 대수이겠소 / 何有於屋
순 임금은 초가집을 짓고 / 舜爲茅茨
주왕은 경실을 세웠으며 / 紂爲瓊室
안연은 누항에서 지내고 / 回也陋巷
석숭은 금곡에서 즐겼소 / 石崇金谷
성인도 있고 우인도 있어 / 或聖或愚
제각각 한결같진 않지만 / 擾擾不一
몸이 한번 흙으로 돌아가면 / 身一歸土
둘 모두 양을 잃게 되거늘 / 兩墮亡羊
그대는 이러한 집에 대하여 / 子之於屋
정신을 어찌 크게 손상시키오 / 神何太傷
청컨대 그대와 요금을 무릎에 걸치고 / 請與子膝橫瑤琴
아황주를 손에 들고 / 手携鵝黃
장대에 누워 돌아가지 않고 / 臥章臺而不返
결코 황망을 후회하지 않으리라 / 誓不悔於荒亡
집이 무너질지라도 / 屋之頹矣
어찌 개의할 것인가 / 胡戀屑屑
아니면 응당 강호에 몸을 던지고 / 不然當脫身於江湖
대자연 속에 자취를 내맡겨서 / 寄迹於泉石
모래톱 갈매기처럼 훨훨 날며 / 沙鷗以飄蕩
구름과 물처럼 자유로울 것이지 / 雲水以瓠落
어찌 달팽이집에 조용히 누워서 / 安用雌伏蝸室
집 때문에 스스로 그르친단 말이오 / 謬自有室
이에 백여 명의 졸개에게 명하여 / 乃命成者百餘
주인옹의 손을 묶고 / 縶翁之手
주인옹의 자리를 흔들어 / 擾翁之坐
함께 일으켜서 동서남북의 객이 되게 하네 / 相與起而爲東西南北之客也
주인옹은 오히려 등을 자리에서 옮기지 않고 / 翁猶背不移席
한가롭게 누워서 객을 꾸짖어 말하기를 / 高臥責客曰
당초 황천이 명을 내리실 때 / 厥初皇天之有命
잠시도 떠나지 않게 했으니
/ 俾須臾其不離
혹 내가 버리고 너를 따른다면 / 儻余舍而從汝
집이 장차 기울 때 누가 지탱해 줄까 / 屋將傾而誰支
젊었을 때부터 닦고 다스렸으며 / 自靑陽而修治
백발에 이르도록 부지런히 가꾸어 / 曁黃髮而矻矻
넓은 집을 거의 이루게 되었거늘
/ 功幾就於廣居
어찌 중도에서 그 길을 바꾸겠는가 / 胡中道而改轍
너는 알지 못하느냐 / 汝不知乎
집이 장대하고 트이면 / 屋其磊開
하상처럼 만족할 것이고
/ 夏商皞皞
집이 거칠고 싸늘하면 / 屋其荒凉
한당처럼 불안하리라
/ 漢唐艸艸
한결같이 수양한다면 / 一其修矣
민증처럼 어질게 되고 / 賢如閔曾
공자처럼 성스럽겠지만 / 聖如孔子
한결같이 무너뜨린다면 / 一其壞矣
난왕처럼 어리석고 / 愚如赧王
노기처럼 간사하리라 / 姦如盧杞
집의 경중이 이와 같거늘 / 屋之輕重如是
너와 함께 천리 밖으로 집을 떠나 / 而與汝去屋於千里之外
망상과 함께 희롱하고 / 罔象與戲謔
이매와 함께 뒤섞여서 / 魑魅與充斥
하염없이 홀로 다니다가 / 悠悠踽踽
세월이 다하도록 돌아오지 않으면 / 喪盡光陰而不復
집은 장차 대청과 방이 무너지고 / 則屋將堂室壞矣
뜰과 문호가 매몰되어 / 庭戶埋沒
분뇨의 하치장이 되고 / 糞尿所聚
지네의 소굴이 되리라 / 蚣蝎所窟
천지가 싫어하고 / 天地厭之
귀신이 주벌하며 / 鬼神罰之
용은 독기로 뒤흔들고 / 龍氣以擾之
‘氣’는 오자(誤字)인 듯하다.*
우레는 불로 해치리니 / 雷火以危之
어찌 이를 염려하지 않고 / 胡不慮此
나를 지리한 말로 유혹하느냐 / 誘我支離
한 방 안에서도 스스로 즐거울 수 있거늘 / 一室之內有以自娛
어찌 반드시 너와 함께 멀리 가겠느냐 / 何必與汝而遠適
또한 네가 잘못되었다 / 且汝誤矣
이리저리 넘어지면서 / 傖囊顚倒
천하를 두루 돌아다님을 / 遍走寰區
너는 유쾌하게 여기느냐 / 以爲快乎
동쪽으로 가면 동쪽만 보일 뿐이고 / 之東所見者只東
북쪽으로 가면 북쪽만 보일 뿐이며 / 之北所見者只北
초로 가면 제를 미처 보지 못하고 / 之楚而見不及齊
호로 가면 월을 미처 보지 못하니 / 之胡而見不及越
어찌 내가 뜰과 대문을 나가지 않아도 / 豈若吾不出庭戶
곧바로 육합을 유람함과 같으랴 / 直遊六合
나보다 큰 것이 없고 / 大莫如吾
객보다 작은 것이 없으니 / 小莫如客
객은 부디 나를 떠나가서 / 客其去矣
다시 문지방을 밟지 말라 / 不復履閾
객이 이에 배회하고 머뭇거리며 / 客乃徘徊逡巡
차마 훌쩍 떠나지 못하고 / 不忍決去
다시 나아와 아뢰기를 / 復進而爲之告曰
그대 어찌 하나만 고집하오 / 子何執一
마치 교주조슬하듯 하는구려 / 膠柱然矣
주인옹이 나를 믿지 않으니 / 翁不信我
지극한 이치로써 질정하겠소 / 請質至理
혼돈은 혼돈을 다스릴 수 없고 / 渾沌不能修混沌
양의는 양의를 다스릴 수 없소 / 兩儀不能修兩儀
또한 하늘이 만물에 대한 것을 알지 못하오 / 且不知天之於萬物乎
바야흐로 봄과 여름이면 / 方春與夏
물건마다 성대히 자라니 / 物物紛霏
복숭아와 오얏은 농염하고 / 豔如桃李
난초와 지초는 향기로우며 / 香如蘭芝
매화는 깨끗하고 / 潔如梅花
두약은 꽃다우며 / 芳如杜若
나비는 자태가 단아하고 / 雅態如蛺蝶
청개구리는 소리가 요란하며 / 繁聲如螻蟈
거미는 정교하게 줄을 치고 / 機巧如蜘蛛
귀뚜라미는 때를 알아 운다오 / 知時如蟋蟀
큰 것과 작은 것 / 至如巨者細者
곧은 것과 굽은 것 / 直者曲者
긴 것과 짧은 것 / 長者短者
검은 것과 흰 것이 / 黑者白者
어지럽고 분분하게 / 繽繽紛紛
대지에 형체를 드러내다가 / 現形坤元
가을을 지나 겨울에 이르면 / 至秋而冬
마침내 흩어져서 근원으로 돌아가니 / 卒爛熳而歸根
예컨대 사람이 출생을 봄으로 여기고 / 如人以生爲春
장년을 여름으로 여기고 / 以壯爲夏
노년을 가을로 여기고 / 以老爲秋
죽음을 겨울로 여기는 것과 같다오 / 以死爲冬
그 여름과 가을일 때 / 其夏及秋
부질없이 허명을 잡아 / 謾把虛名
하나는 요 임금이 되고 / 一爲堯
하나는 도척이 되지만 / 一爲跖
수기가 왕성한 초겨울 / 水旺陽月
전욱(顓頊)이 권위를 행사하면
/ 顓帝行威
함께 무덤에 묻힐 터이니 / 同封馬鬣
하루살이 같은 일생이라 / 蜉蝣一生
선과 악이 모두 헛되구려 / 善惡俱虛
음성(淫聲)을 멀리할 필요 없고 / 聲不須遠
여색을 제거할 것 없으며 / 色不須祛
집을 수리할 필요 없고 / 屋不須治
빗장도 채울 것 없다오 / 扃不須鐍
그대는 어찌 발가락을 가르고 혹을 물어뜯어 / 子何決騈齕疣
본성을 깎아내고 타고난 덕을 침탈한단 말이오
/ 削性繩約
맛과 냄새 / 如味如嗅
탐냄과 분노 / 如貪如嗔
음란과 교만 / 如淫如驕
망각과 상상 / 如忘如想
부함과 귀함 / 如富如貴
이익과 명예를 / 如利如名者
남몰래 맛보시고 / 掩而味之
끌어다 붙잡아두시구려 / 牽而梏之
주인옹이 얼굴을 붉히며 말하기를 / 翁赩然曰
하늘이 내게 성성한 마음을 줌은 / 天之授我惺惺者
너와 졸개를 다스리게 함이다 하고 / 治汝與成也
갑자기 옥대의 거울을 비추고 / 忽焉照玉臺之鏡
막야의 칼을 뽑아서 / 拔鏌鎁之劍
객을 잡고 그 죄를 따지기를 / 執其客數其罪曰
네가 주인을 업신여김이 / 惟汝侮主
거짓되고 또한 음험하구나 / 譎而且險
장차 장자의 황당한 의논을 늘어놓아 / 將鋪張莊叟謬悠之論
항상 우리 유자의 경 자를 무너뜨리려 하니 / 常壞吾儒者之敬字
주인옹을 호방한 데로 내모는 자도 너이고 / 驅主於放曠者汝也
나의 담과 집을 무너뜨리는 자도 너로구나 / 壞我牆屋者爾也
진나라와 수나라에서 힘을 쓰자 / 用事於秦隋
진과 수의 정치가 크게 무너졌고 / 秦隋之政大壞
오대 시대에 위세를 부리자 / 鴟張於五代
오대의 예법이 참혹해졌도다 / 五代之禮慘酷
유자의 벗이 되자 / 爲儒者交
참선비가 일어나지 않고 / 眞儒不作
정승의 벗이 되자 / 爲相者友
참재상이 서지 못하여 / 眞相不立
천년 세월이 지나도록 / 致使千載
오도를 막히게 했으니 / 吾道茅塞
너로 인한 재앙이 / 汝之爲禍
크고도 근심스럽다 / 大而且憂
당우와 더불어 벗하며 / 我欲唐虞與爲朋
보로와 더불어 교유하려고 / 葆老與爲遊
나의 문호를 단단히 묶어 / 綢繆吾之戶
너의 엿봄을 멀리했거늘 / 遠汝之窺
너는 어째서 머뭇거리며 / 爾胡趑趄
틈을 타서 속이려 하느냐 / 投間欲欺
내가 너를 죽이지 않으면 / 我不汝殺
네가 필시 나를 죽이리라 / 汝必我殺
이에 우두머리 객을 베니 / 乃斬首客
뭇 졸개들은 넋을 잃었네 / 衆成禠魄
다시 누워서 편히 뒹굴며 / 復臥坦腹
우주를 쳐다보고 굽어보니 / 俯仰宇宙
한 채의 집이 윤택한지라 / 一屋其潤
온갖 이치가 넉넉해졌도다 / 萬理其富
곁에 대종사가 계시니 / 傍有大宗師
그 이름이 무물이라네 / 其名曰無物
육극보다 아래에 있어 깊고도 깊으며 / 下於六極而爲深
대지보다 앞서 있어 높고도 높으며
/ 先於大塊而爲高
하도낙서의 근원이지만 노쇠하지 않고 / 爲河圖洛書之祖而不爲老
뭇 형체를 만들어내지만 수고롭지 않네 / 刻雕衆形而不爲勞
서로 함께 무하유의 마을과 광막한 들판에서 소요하니 / 相與逍遙乎無何有之鄕廣漠之域
집이란 바로 건곤옹인 태극이라네 / 屋乃乾坤翁太極


 

[주D-001]주자(朱子)가……하였으니 : 주자가 말하기를, “학문하는 방도를 맹자는 단연 놓아버린 마음을 찾는 데에 있다고 했으니, 배우는 사람은 모름지기 먼저 이 놓아버린 마음을 수습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 마음을 놓아버리면 박학(博學)도 쓸데없는 일이고 심문(審問)도 쓸데없는 일이니, 어떻게 밝게 분별하며 어떻게 독실히 행하겠는가. 대개 몸은 하나의 집과 같고 마음은 한 집의 주인과 같은 것이다. 이 집의 주인이 있은 뒤에야 문호를 청소하고 사무를 정돈할 수 있으니, 만약 주인이 없다면 이 집은 하나의 황폐한 집에 불과할 뿐이다.〔學問之道 孟子斷然說在求放心 學者須先收拾這放心 不然 此心放了 博學 也是閑 審問 也是閑 如何而明辨 如何而篤行 蓋身如一屋子 心如一家主 有此家主然後 能灑掃門戶 整頓事務 若是無主 則此屋 不過一荒屋爾〕” 하였다. 《心經附註 卷3》
[주D-002]서쪽에는……위치하며 : 집의 서쪽에는 영대(靈臺)가 우뚝이 솟아 있고 북쪽에는 안읍(安邑)이 감싸고 있다는 말이다. 영대는 문왕(文王)이 지은 대(臺) 이름이고, 안읍은 우(禹) 임금이 도읍한 곳이다.
[주D-003]삼천……이루었네 : 집, 곧 몸이 위의(威儀)로써 모양을 갖추고 예의(禮儀)로써 장식했다는 말이다. 자사(子思)가 말하기를, “우우히 크도다. 예의가 삼백 가지이고, 위의가 삼천 가지이다.〔優優大哉 禮儀三百 威儀三千〕” 하였다. 예의는 경례(經禮)이고, 위의는 곡례(曲禮)이다. 《中庸章句 第27章》
[주D-004]사물(四勿) : 네 가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공자의 제자 안연(顔淵)이 인(仁)의 조목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하기를,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하였다. 《論語 顔淵》
[주D-005]삼성(三省) : 세 가지로 자신을 반성하는 것이다. 증자(曾子)가 말하기를,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내 몸을 반성하니, ‘다른 사람과 도모하면서 충실하지 못했던가. 벗과 사귀면서 미덥지 못했던가. 스승에게 배운 것을 익히지 않았던가.’ 하는 것이다.〔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하였다. 《論語 學而》
[주D-006]백이(伯夷)의……들고 : 청백(淸白)한 백이와 흉악한 도척(盜跖)을 동일시하고 있는 객(客)을 형용한 말인 듯하다. 장자(莊子)가 말하기를, “생명을 해치고 본성을 손상시킨 것으로 말하면 도척 또한 백이일 뿐이다.〔若其殘生損性 則盜跖亦伯夷已〕” 하였다. 《莊子 騈拇》
[주D-007]노자(老子)는……설파했소 : 노장(老莊)의 주장처럼 성인의 학문을 버리라는 말이다. 노자가 말하기를, “학문을 끊으면 근심이 없을 것이다.〔絶學無憂〕” 하였다. 《老子 20章》 거협(胠篋)은 상자를 열고 남의 물건을 훔치는 작은 도둑을 말한다. 장자가 말하기를, “작은 도둑을 막기 위해 끈으로 묶고 자물쇠로 단단히 채우는 것은 세속에서 말하는 지혜라는 것이다. 그러나 큰 도둑이 와서 상자를 둘러메고 달아날 때 끈과 자물쇠가 단단하지 않을까 근심하니, 세속에서 말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바로 큰 도적을 위해 재물을 쌓아놓는 꼴이지 않겠는가.” 하였고, 또 말하기를, “성인이 생겨나자 큰 도둑이 일어났으니, 성인을 쳐 없애고 도둑을 내버려 두면 천하가 비로소 다스려질 것이다.” 하였다. 《莊子 胠篋》
[주D-008]경실(瓊室) : 은(殷)나라 주왕(紂王)이 지은 궁궐로, 화려하고 사치스러웠다.
[주D-009]누항(陋巷) : 누추한 거리이다. 공자의 제자 안연(顔淵)은 밥 한 그릇 물 한 사발을 마시며 누추한 거리에 살았으나 스스로 즐거워했다. 《論語 雍也》
[주D-010]금곡(金谷) : 금곡원(金谷園)이다. 진(晉)나라 석숭(石崇)이 낙양(洛陽) 부근에 건축한 장원(莊園)으로, 경관이 빼어나고 호화롭기로 유명했다.
[주D-011]둘 …… 되거늘 : 모두 다 부질없기는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장자가 말하기를, “남자 종과 여자 종이 함께 양을 치다가 모두 양을 잃어버렸다. 무슨 일을 하느라 양을 잃어버렸느냐고 물으니, 남자 종은 책을 읽었고 여자 종은 구슬치기 놀이를 하였다고 했다. 두 사람이 한 일은 같지 않았지만 양을 잃은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其於亡羊也 均也〕” 하였다. 《莊子 騈拇》
[주D-012]요금(瑤琴) : 옥으로 장식한 거문고이다.
[주D-013]아황주(鵝黃酒) : 좋은 술을 가리킨다. 두보(杜甫)의 〈주전소아아(舟前小鵝兒)〉 시에 “거위 새끼 누른빛이 술과 같으니, 술을 대하여 거위의 누른빛 사랑하노라.〔鵝兒黃似酒 對酒愛鵝黃〕”고 하였다.
[주D-014]장대(章臺) : 한나라 장안(長安)에 있던 거리 이름으로, 기원(妓院)이 모여 있는 곳을 일컫는다.
[주D-015]황망(荒亡) : 사냥과 주색(酒色)에 빠짐을 이른다. 맹자가 말하기를, “짐승을 쫓아 만족함이 없음을 황(荒)이라 하고, 술을 즐겨 만족함이 없음을 망(亡)이라 한다.〔從獸無厭 謂之荒 樂酒無厭 謂之亡〕” 하였다. 《孟子 梁惠王下》
[주D-016]당초……했으니 : 하늘이 부여한 본성을 잠시라도 떠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장에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하고, 성을 따름을 도(道)라 하고, 도를 품절(品節)해 놓음을 교(敎)라 한다. 도란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니, 떠날 수 있으면 도가 아니다.〔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非道也〕” 하였다.
[주D-017]젊었을……되었거늘 : 젊어서부터 노년에 이르도록 부지런히 노력하여 이제 인(仁)의 경계에 거의 도달하였다는 말이다. 넓은 집은 인(仁)을 표현한 말이다. 맹자가 말하기를, “천하의 넓은 집에 거처하며, 천하의 바른 자리에 서며, 천하의 대도를 행한다.〔居天下之廣居 立天下之正位 行天下之大道〕” 하였다. 《孟子 滕文公下》
[주D-018]집이……것이고 : 몸을 잘 닦아 마음이 장대하고 식견이 트이게 되면 하(夏)나라와 상(商)나라 때처럼 천하가 잘 다스려져서 백성들이 스스로 만족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맹자가 말하기를, “패자의 백성은 매우 즐거워하고 왕자의 백성은 광대하여 스스로 만족한다.〔覇者之民 驩虞如也 王者之民 皥皥如也〕” 하였다. 《孟子 盡心上》
[주D-019]집이……불안하리라 : 몸을 잘 닦지 못하여 마음이 거칠고 차갑게 되면 한나라와 당나라 때처럼 천하가 어지럽고 불안해질 것이라는 말이다.
[주D-020]민증(閔曾) : 공자의 제자인 민자건(閔子騫)과 증삼(曾參)이다.
[주D-021]난왕(赧王) : 동주(東周)의 마지막 천자이다.
[주D-022]노기(盧杞) : 당나라 때 사람이다. 마음이 음험하고 모습이 비루했으나 말재주가 있었다. 덕종(德宗)이 그 재주를 중히 여겨 재상으로 발탁하자 권력을 함부로 휘둘러 충량(忠良)한 사람을 해쳤다. 《舊唐書 卷135 盧杞列傳》
[주D-023]망상(罔象) : 전설 속에 나오는 물속의 괴물이다.
[주D-024]이매(魑魅) : 전설 속에 나오는 산택(山澤)의 요괴이다.
[주D-025]교주조슬(膠柱調瑟) : 거문고의 줄을 괴는 기러기발〔柱〕을 갖풀로 고정시켜 놓고 거문고를 탄다는 말로, 규칙에 구애되어 변통을 알지 못함을 비유한다.
[주D-026]수기(水氣)가……행사하면 : 인생의 겨울을 맞아 죽게 됨을 말한다. 《회남자(淮南子)》〈천문훈(天文訓)〉에 “북방은 물이다. 그 임금 전욱과 그 보좌 현명이 권세를 잡고 겨울을 다스린다.〔北方 水也 其帝顓頊 其佐玄冥 執權而治冬〕” 하였다.
[주D-027]그대는……말이오 : 《장자(莊子)》〈변무(騈拇)〉에 말하기를, “엄지와 둘째 발가락이 달라붙은 것을 갈라놓으면 아파서 울고, 손에 덧붙은 육손을 물어뜯어 내면 소리 지를 것이다.……걸음쇠ㆍ먹줄ㆍ곡척(曲尺)으로 바로잡는 것은 그 본성을 깎아내는 것이고, 노끈ㆍ아교ㆍ옻칠로써 견고하게 하는 것은 그 덕을 침탈하는 것이다.〔且夫騈於拇者 決之則泣 枝於手者 齕之則啼……且夫待鉤繩規矩而正者 是削其性也 待繩約膠漆而固者 是侵其德也〕” 하였다.
[주D-028]성성(惺惺) : 마음이 혼매하지 않고 밝게 깨어 있음을 이른다. 유가의 수양법인 경(敬)을 말한 것이다. 북송(北宋) 때의 사양좌(謝良佐)가 말하기를, “경이란 항상 성성하게 하는 법이다.〔敬是常惺惺法〕” 하였다. 《心經附註 卷1》
[주D-029]막야(鏌鎁) : 막야검(鏌鎁劍)이다. 간장검(干將劍)과 함께 한 쌍을 이루던 고대의 명검(名劍) 이름이다.
[주D-030]당우(唐虞) : 요(堯) 임금과 순(舜) 임금이다. 당은 요, 우는 순의 나라 이름이다.
[주D-031]보로(葆老) : 미상(未詳)이다.
[주D-032]육극(六極)보다……높으며 : 도가 깊고 높음을 형용한 말이다. 《장자》〈대종사(大宗師)〉에 “도는……태극의 앞에 있으나 높은 듯하지 않고, 육극의 아래에 있으나 깊은 듯하지 않다.〔夫道……在太極之先而不爲高 在六極之下而不爲深〕” 라는 말이 나온다.
[주D-033]무하유(無何有)의……들판 : 적막하고 아득하여 아무것도 없는 세계로, 일체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이른다. 《莊子 逍遙遊》

 

추강집 제1권
 부(賦)
대춘부(大椿賦)


꿈속에 내가 나비를 타고서 / 夢余乘胡蝶兮
훨훨 날아 하늘로 올라갔네 / 飄翻翻其上征
찬비로 하여금 먼지를 씻어내게 하고 / 令凍雨灑塵兮
회오리바람을 시켜 길을 열게 하여 / 使飄風戒行
은하수를 건너고 견우 북두를 거치며 / 過銀河而牛斗兮
태미성을 지나 천제의 뜰에 이르렀네 / 歷太微而帝庭
이어 천상의 궁궐에서 대인을 뵈오니 / 仍大人於九霄兮
두 눈이 나를 위해 반갑게 웃음 짓네 / 雙眼爲余而靑
내가 이에 읍하고 머뭇거리며 / 余乃揖而宿之
공경하고 신령스럽게 여겨서 / 敬而神之
곧 앞으로 나아가 말하기를 / 載前而致辭曰
내가 속세에 태어난 지 / 余生下土
거의 삼십 년이 되었소 / 幾三十春
한가하게 홀로 지냈기에 / 居閒處獨
고루하고 견문이 적더니 / 孤陋寡聞
인간 세계의 밖에서 / 世界之外
다행히 이인을 만났구려 / 幸逢異人
어찌 신이한 말을 가르쳐주어 / 盍敎異辭
나의 목마름을 위로하지 않겠소 / 慰我涸鱗
대인이 내 말 듣고 나를 돌아보며 / 大人聞言而眷余
지극히 귀하고 기이한 말 남겼지만 / 留至貴之奇說
말이 크기만 할 뿐 가당하지 않아 / 言有大而無當
마치 은하수처럼 끝이 없구나 / 猶河漢而無極
태초의 아득한 옛날 / 邃古之初
대춘이란 나무 있었으니 / 有大椿者
태어나고 자란 곳 / 其生其長
광막한 들판이었네 / 曠邈之野
서리 맞은 껍질은 빗물에 젖었고 / 霜皮溜雨
쇠 같은 줄기는 벗겨지고 떨어졌네 / 鐵榦剝落
백 아름 뿌리에 개미가 집 짓고 / 蟻穴百圍之根
만 길 잎사귀에 난새가 깃들었네 / 鸞棲萬丈之葉
우사는 천표를 걸어놓고 / 雨師掛天瓢
뇌공은 벽력을 간직하네
/ 雷公藏霹靂
꽃 피움은 조화의 공이고 / 敷榮造化之功
버텨 옴은 신명의 힘이네
/ 扶持神明之力
일만 육천 년을 춘추로 삼고 / 以一萬六千年爲春秋
팔백사십이 개월을 조석으로 삼네 / 以八百四十二月爲朝夕
아득한 하늘과 땅 사이 / 茫茫堪輿
인간 세상 번갈아 바뀌거늘 / 人世遞代
오직 대춘만 홀로 서서 / 惟椿獨立
그 몇 해를 겪어왔던가 / 閱幾年載
초파리가 맷돌을 돎은 / 醯鷄旋磨
음강씨와 대정씨의 연혁이고
/ 陰康大庭之沿革也
모기가 서로 으르렁댐은 / 蚊交雷
헌원씨가 탁록에서 전벌함이고
/ 軒轅涿鹿之戰伐也
아이들 놀이처럼 아득함은 / 杳如兒戲
포희씨가 팔괘를 그은 것이고 / 包羲八卦之畫也
흙덩이를 밟듯이 넘어짐은 / 蹶如歷塊
공공이 부주산을 떠받은 것이고
/ 共工不周之觸也
탄환처럼 보이는 것은 / 視如彈丸
여와씨의 불린 오색석이고
/ 女媧之鍊石也
쑥대 화살처럼 보이는 것은 / 視若蓬矢
후예가 해를 맞힌 것이네
/ 后羿之射日也
한 잔 물을 마루에 부어도 / 杯水覆堂
구하가 범람하고
/ 九河決矣
반 덩이 흙이 무너져도 / 半顆崩頹
지주가 꺾이네 / 砥柱折矣
잠깐 사이 순식간이 / 俄須瞬息
하나라 오백 년이고 / 夏五百籙矣
아침과 저녁 같음은 / 若朝若暮
상나라 육백 년이네 / 商六百曆矣
문왕 무왕의 도가 상실되어 / 文武道喪
주나라가 동으로 옮겨 갔고 / 周東轍矣
제와 진이 번갈아 패자가 되자 / 齊晉交覇
공자의 《춘추》가 지어졌네 / 春秋作矣
천지의 변하는 모습을 보니 / 觀天地之變態兮
무극과 더불어 이웃이 되고 / 與無極而爲隣
풍상을 겪어도 시들지 않으니 / 羌風霜而不凋兮
만고를 지나도 길이 봄이라네 / 歷萬古而長春
저 봄에 나서 여름에 죽는 혜고라든가 / 若夫蟪蛄春生而夏死
저녁에 나서 아침에 쇠퇴하는 조균이란
/ 朝菌暮生而朝衰
일찍이 봄가을과 초하루 그믐을 모르니 / 曾春秋晦朔之未識兮
어떻게 대춘의 장수함을 알 수 있으랴 / 豈大椿長年之可知
이것이 크고 작은 것의 구분이 되니 / 玆其爲大小之辨兮
황제도 듣고 안 바이고 뭇사람이 함께 비웃는 것이네 / 黃帝之所聽瑩而衆人之所共嗤也
내가 듣고 의심하여 / 余聞而疑之
또 이어서 힐난하기를 / 又從而詰之曰
그대 말씀이 너무 커서 / 子言大矣
듣는 이 모두 놀라리라 / 聞者皆驚
내 견해는 이와 다르니 / 愚見異是
그대 한번 들어보시구려 / 子其試聽
천지가 처음 열릴 때 / 洪鈞肇判
홀수 짝수로 이루어지고 / 奇偶以成
종류에 따라 길러져서 / 品類亭毒
삼라만상이 생겨났다네 / 有萬其生
물건이 똑같지 않음은 / 物之不齊
물건의 타고난 본성이라 / 物之情也
작은 것 있고 큰 것 있으며 / 有大有小
짧은 것 있고 긴 것 있으며 / 有短有長
많은 것 있고 적은 것 있으며 / 有多有寡
존재함도 있고 망함도 있으니 / 有存有亡
잃는 것이 아니면 얻음도 없고 / 非喪無得
약한 것이 아니면 강함도 없고 / 非弱無强
죽음이 아니면 삶에 영광이 없고 / 非死生無榮
낮이 아니라면 밤에 빛이 없다네 / 非晝夜無光
대소 득실이 오직 하나의 몸이고 / 惟大小得喪之一體兮
주야 생사가 또한 하나의 이치라 / 亦晝夜死生之一理
도란 어디 가도 없는 곳이 없거늘 / 道無往而不在兮
어찌 저것과 이것을 분변하리오 / 曾何辨於彼此
이런 까닭으로 / 是故
지극한 도는 옳은 대로 맡겨두고 / 至道因是
큰 관점은 만물을 하나로 본다네 / 大觀齊物
하늘은 땅에게 교만할 수 없고 / 天不能驕乎地
해는 달에게 오만할 수 없으며 / 日不能傲乎月
새는 물고기를 비웃을 수 없고 / 飛不能笑乎潛
동물은 식물에 자랑할 수 없네 / 動不能多乎植
누가 지적하여 그르다고 하며 / 孰指而爲非兮
누가 지적하여 옳다고 하리오 / 孰指而爲是
요와 걸도 모두 흙이 되었고 / 堯桀皆土兮
공자와 도척도 모두 죽었다네 / 孔跖俱死
가을 터럭보다 큰 것이 없으니 / 莫大於秋毫兮
태산은 작은 것이고 / 太山爲小
상자보다 장수한 것이 없으니 / 莫壽於殤子兮
팽조는 요절한 것이네
/ 彭祖爲夭
봉황은 날개를 더욱 쳐서 높이 날아가건만 / 鳳凰增擊而高逝兮
올빼미는 썩은 쥐를 잡고 쳐다보며 소리치네
/ 鴟得腐而仰嚇
대붕은 구만 리를 올라 남명으로 가지만 / 鯤鵬九萬里而圖南兮
참새는 쑥대 사이에서 스스로 즐거워하네 / 鷃蓬蒿而自得
또한 각각 본성을 지키기에 / 亦各守性兮
그 의의 모두 마찬가지라네 / 其義一也
하물며 하늘이 물건을 낼 때 / 而況天之生物
재질로 인하여 돈독하게 하니 / 因才以篤
뒤엎음이 원수라서가 아니고 / 覆之非讎
북돋움이 은덕을 끼쳐서가 아니라네 / 培之非德
처음 이치를 얻어 함께 태어났다가 / 始得理而俱生
마침내 변화를 따라 함께 없어지니 / 竟與化而俱滅
조균은 짧은 생애라서 무엇이 손해이며 / 菌小年而何損
대춘은 긴 생애라서 무엇이 유익한가 / 椿大年而何益
작은 것의 편안함을 안다면 / 知小之可安兮
큰 것을 소홀히 할 수 있고 / 高大之可忽
죽는 것의 가벼움을 안다면 / 知死之可輕兮
오래 살 욕심을 물리칠 수 있으리 / 長年之可却
내 그대가 남다른 것 가르칠 줄 여겼더니 / 吾以子爲異之敎
일찍이 대춘에 관한 얘기일 뿐이구려 / 曾說大椿而已
내가 생각건대 조화옹의 본래 뜻이란 / 吾恐造化之本意
여기에 있지 저기에 있지 않은 듯하오 / 在此而不在彼也
대인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노라 / 大人曰咈
달사는 말을 통하여 그 뜻을 찾고 / 達士因辭而求義
현인은 하나를 듣고 열을 아는 법 / 賢人聞一而知十
나는 처음 장자의 골계에 의탁하여 / 余初托漆園之滑稽
지극한 도의 현묘한 뜻을 붙였거늘 / 以寓夫至道之玄密
어찌하여 그대는 식견이 용렬하여 / 何子見之凡庸
되돌려 추론하는 지식이 없었던가 / 無反隅之知識
도리어 궤변의 주장만을 견지하여 / 反挾堅白之鳴
억지로 어리석은 견해를 토로하나 / 强攄愚小之抱
변풍이 예의에 그쳤던 것처럼 / 變風止乎禮義
대춘도 도리를 비유할 수 있다네 / 大椿可以喩道
대개 지인은 자기가 없고 / 蓋其至人無己
신인은 작위함이 없으니 / 神人無爲
나를 없애고 나를 잃으며 / 亡我喪我
옳음도 없고 그름도 없다네 / 無是無非
육기의 정대한 이치를 타고서 / 乘六氣之正理
천지의 현묘한 기틀을 안다네 / 知天地之玄機
지락을 얻어서 지락에 노닐며 / 得至樂而游至樂
깨끗이 염려와 사념이 없으니 / 澹無慮而無思
또한 대춘이 속진을 뛰어넘어 / 亦何異於大椿
홀로 기이함과 무엇이 다르랴 / 超氛埃而獨奇
느긋한 자는 근심을 품고 / 縵者懷憂
심각한 자는 속세에 매여 / 窖者繫俗
두려워하거나 멍청해지며
/ 惴惴縵縵
근심하거나 비통에 잠기네 / 忉忉怛怛
맹세하듯이 굳게 주장하고 / 留如詛盟
방아쇠처럼 시비를 가리네
/ 散若機栝
승리를 지키는 데 진기를 맡겼다가 / 托眞氣於守勝
끝내 흐리멍덩한 늙은이가 되리라 / 終貿貿而老洫
어찌하여 소견의 편협하고 작음이 / 何所見之偏小
초하루 그믐도 모르는 조균 같은가 / 類朝菌之晦朔
이런 까닭으로 / 是故
현인과 우인은 같지 않으며 / 賢愚不齊
대인과 소인은 등급이 다르니 / 大小異級
우인이 현인을 어찌 알 것이며 / 愚於賢何知
소인이 대인에 어찌 미치랴 / 小於大何及
영광과 욕됨을 분별할 뿐이라네 / 辨乎榮辱而已
송영자가 어찌 바람을 타는 열자가 걷는 것만 면했을 뿐임을 알 것이며 / 宋榮安知列子之御風止於免行而已
열자가 어찌 지인의 드러난 공이 없음을 알겠는가
/ 列子安知至人之無功
가령 삼황이 하늘의 뜻을 계승함과 / 且如三皇繼天
오제가 표준을 세운 공을 말하자면 / 五帝立極
우뚝하고 광대하며 / 巍巍蕩蕩
성대하고 아름답네 / 熙熙穆穆
요 임금은 본성대로 실행한 분이고 / 放勳安安
순 임금은 큰 지혜를 지닌 분이라 / 重華大智
우 임금은 순 임금의 선위를 받았고 / 禹受舜禪
탕 임금은 하나라 말년에 혁명했네 / 湯革夏季
덕이 있고 수명이 있었으며 / 有德有壽
이름이 있고 지위가 있었네 / 有名有位
사악과 구관이 곁에서 보필했고 / 四岳九官之輔翼
백익과 아형이 좌우에서 도왔네
/ 伯益阿衡之左右
백성을 고무시켜 새롭게 만들고 / 作新民於鼓舞
천하를 태평성대에 올려놓으니 / 措天下於仁壽
이름은 일월과 더불어 나란히 밝고 / 名與日月而齊明
덕은 천지와 짝하여 함께 영원하리 / 德配天地而竝久
저 어두워서 지각이 없는 자들은 / 彼昏不知
법도를 등지고 굽은 것을 좇는지라 / 背繩墨而追曲
자포하고 자기하기를 달가워하다 / 甘自暴而自棄
도리어 천하의 큰 죽임을 당하고 / 顧爲世之大戮
초목과 더불어 함께 문드러져서 / 與草木而同腐
이름이 후일에 전해지지 못하네 / 名不傳於後日
이런 까닭으로 / 是故
요 임금의 죽음은 도척의 죽음과 다르고 / 堯死異於跖死
선을 행함은 악을 행함과 다른 것이거늘 / 爲善異於爲惡
그대는 몰아서 마찬가지로 여기니 / 子驅而同之
너무나 어리석고 미혹되다 하리라 / 甚癡且惑
오호라 / 嗚呼
태상은 덕을 세움이니 / 太上立德
이른바 대춘일 것이고 / 所謂大椿
하우는 옮길 수 없으니 / 下愚不移
이른바 조균일 것이다 / 所謂朝菌
그렇다면 이 대춘이란 / 然則斯椿也
어찌 장자의 소요일 뿐이리오 / 豈獨莊叟之逍遙
또한 사문과 관계됨이 있노라 / 抑亦有關於斯文
내가 듣고 기이하게 여겨 / 余聞而奇之
두 번 절하고 사례하기를 / 再拜而謝之曰
나는 본래 둔하고 거칠어 / 僕本鹵莽
학술이 갈팡질팡했더니 / 術業蒼黃
방외의 학설을 물었다가 / 問以方外之說
학문의 방법을 얻었구려 / 得聞爲學之方
작은 것을 듣고 큰 것을 들었으며 / 聞小聞大
또 성인이 범인과 다름을 들었다오 / 又聞聖人之異於尋常也
이윽고 기지개 켜며 문득 꿈을 깨니 / 俄欠伸而倏悟
떨어지는 달빛만 빈 들보에 가득하더라 / 但落月之空樑


 

[주C-001]대춘부(大椿賦) : 대춘은 오래 산다는 나무 이름이다. 《장자》〈소요유(逍遙遊)〉에 “아득한 옛날에 대춘이란 나무가 있었으니, 8천 년을 봄으로 삼고 8천 년을 가을로 삼았다.〔上古有大椿者 以八千歲爲春 八千歲爲秋〕”라고 하였다.
[주D-001]우사(雨師)는……간직하네 : 우사는 비의 신이고, 천표(天瓢)는 천신(天神)이 비를 내릴 때 사용하는 표주박이고, 뇌공(雷公)은 우레의 신이다.
[주D-002]꽃……힘이네 : 두보의 〈고백행(古柏行)〉 시에 “버텨 온 것은 본래 신명의 힘이고, 정직함은 원래 조화의 공에 인하네.〔扶持自是神明力 正直元因造化功〕” 하였다.
[주D-003]초파리가……연혁이고 : 음강씨(陰康氏)와 대정씨(大庭氏)의 역사도 대춘의 눈에는 다만 초파리가 맷돌을 따라 도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음강씨와 대정씨는 상고 시대의 제왕 이름이다. 《진서(晉書)》 권11〈천문지 상(天文志上)〉에 “하늘이 오른쪽으로 돌고 땅이 왼쪽으로 도는 것은, 비유컨대 맷돌 위를 기어가는 개미와 같아서 맷돌이 왼쪽으로 돌면 개미는 오른쪽으로 기어가는 듯하다.” 하였다.
[주D-004]모기가……전벌함이고 :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가 탁록(涿鹿)에서 싸운 것은 모기끼리 서로 으르렁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황제가 제후에게 군사를 징발하여 탁록의 들판에서 치우(蚩尤)와 싸움을 벌였는데 마침내 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고 한다. 《史記 卷1 五帝本紀》
[주D-005]흙덩이를……것이고 : 천지가 무너지는 일도 흙덩이를 밟듯이 대수롭지 않게 보인다는 것이다. 공공(共工)이 전욱(顓頊)과 황제의 지위를 다투다가 분노하여 부주산(不周山)을 떠받자 천주(天柱)가 꺾이고 지유(地維)가 끊어졌다고 한다. 《淮南子 天文訓》
[주D-006]탄환처럼……오색석(五色石)이고 : 여와(女媧)의 불린 오색석도 탄환처럼 작게 보인다는 것이다. 복희씨(伏羲氏)의 며느리인 여와란 신선이 오색의 돌을 불려서 하늘의 이지러진 곳을 깁고, 자라의 다리를 잘라 사방을 지탱시킴으로써 천하가 안정되었다고 한다. 《淮南子 覽冥訓》
[주D-007]쑥대……것이네 : 해를 맞혔던 예(羿)의 화살도 쑥대 화살처럼 볼품없이 보인다는 것이다. 요(堯) 임금 때에 열 개의 해가 함께 나와서 초목이 타고 마르자, 요 임금이 예에게 명하여 아홉 개를 맞혀 떨어뜨리게 하였다고 한다. 《淮南子 本經訓》
[주D-008]한……범람하고 : 대춘의 눈에 한 잔 물이 쏟아져도 곧 천하의 구하(九河)가 범람한다는 것이다. 구하는 고대 황하(黃河)의 아홉 개 지류(支流)이다. 《장자》〈소요유(逍遙遊)〉에 “한 잔의 물을 마루 위 오목한 곳에 부으면 지푸라기가 배처럼 뜨지만 잔을 놓으면 바닥에 붙게 되니, 물이 얕고 배가 크기 때문이다.〔覆杯水於坳堂之上 則芥爲之舟 置杯焉則膠 水淺而舟大也〕” 하였다.
[주D-009]지주(砥柱) : 황하의 거센 흐름 속에 우뚝 서 있는 바위산이다.
[주D-010]저……조균(朝菌)이란 : 혜고(蟪蛄)는 쓰르라미로 여름에만 살기 때문에 가을이 있는 줄 모른다. 조균은 거름더미 위에서 아침에 났다가 저녁에 죽는 버섯으로, 수명이 매우 짧기 때문에 한 달의 처음과 끝인 초하루와 그믐을 알지 못한다. 이는 식견이 짧은 사람은 그 이상의 세계를 알지 못함을 비유한 것이다. 《莊子 逍遙遊》
[주D-011]황제도……바이고 : 《장자》〈제물론(齊物論)〉에 “장오자(長梧子)가 말하기를, ‘이는 황제도 듣고서 알았던 것이니, 공자가 어찌 알 수 있었겠습니까.〔長梧子曰 是黃帝之所 聽瑩也 而丘也 何足以知之〕’ 하였다.” 하였다.
[주D-012]지극한……맡겨두고 : 모든 것은 상대적인 관계로 이루어져서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옳음이 있으면 그름이 있으므로, 어느 한쪽에 집착하지 않고 ‘옳음은 옳음대로 두고 그름은 그름대로 두는 것〔因是因非〕’이 천리(天理)를 따르는 지극한 도라는 것이다. 《莊子 齊物論》
[주D-013]가을……것이네 : 《장자》〈제물론〉에 “천하에 가을 짐승 터럭보다 더 큰 것이 없고 태산이 작은 것이며, 상자(殤子)보다 오래 산 것이 없고 팽조(彭祖)가 요절한 것이다.〔天下莫大於秋毫之末 而太山爲小 莫壽乎殤子 而彭祖爲夭〕” 하였다. 상자는 성년이 되기 전에 일찍 죽은 사람이고, 팽조는 800세를 살았다는 전설상의 신선이다.
[주D-014]봉황(鳳凰)은……소리치네 : 《장자》〈추수(秋水)〉에 “남방에 원추(鵷鶵)라는 새가 있다. 원추는 남해에서 출발하여 북해까지 날아가는데,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고 단 샘물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 올빼미가 썩은 쥐를 얻었다가 원추가 지나가자 그를 쳐다보며 놀라 버럭 소리질렀다.〔鴟得腐鼠 鵷鶵過之 仰而視之 曰嚇〕” 하였다. 원추는 봉황의 일종이다.
[주D-015]대붕(大鵬)은……가지만 : 북명(北冥)의 대붕이란 큰 새가 남명(南冥)으로 옮겨 갈 때 구만 리나 높이 올라서 여섯 달을 날아간 뒤에 한 번 쉰다고 한다. 곤(鯤)은 북명에 사는 물고기이고, 붕(鵬)은 이 물고기가 변하여 된 새이다. 《莊子 逍遙遊》
[주D-016]참새는……즐거워하네 : 남명으로 날아가는 대붕을 보고 안(鷃)이라는 작은 새가 웃으며 말하기를, “저 새는 또 어디로 가는가. 나는 펄쩍 날아올라 몇 길도 오르지 못하고 내려와서 쑥대 사이를 날아다니니, 이 또한 지극히 즐겁거늘, 저 새는 또 어디로 가는가.” 하였다. 《莊子 逍遙遊》
[주D-017]변풍(變風)이……것처럼 : 변풍은 《시경》〈국풍(國風)〉 중의 패풍(邶風)에서 빈풍(豳風)까지 열세 나라의 시를 말한다. 모시서(毛詩序)에 “변풍이 정(情)에서 나와서 예의에 그쳤으니, 정에서 나옴은 백성의 성(性)이고, 예의에 그침은 선왕의 은택이다.〔變風發乎情 止乎禮義 發乎情 民之性也 止乎禮義 先王之澤也〕” 하였다.
[주D-018]육기(六氣) : 하늘에 있는 6가지 기운으로, 음(陰)ㆍ양(陽)ㆍ풍(風)ㆍ우(雨)ㆍ회(晦)ㆍ명(明)을 말한다.
[주D-019]느긋한……멍청해지며 : 《장자》〈제물론(齊物論)〉에 “너그러운 자도 있고 심각한 자도 있으며 꼼꼼한 자도 있다. 두려움이 작을 적에는 두려워서 떨지만 두려움이 크면 멍청해진다.〔縵者 窖者 密者 小恐惴惴 大恐縵縵〕” 하였다.
[주D-020]맹세하듯이……가리네 : 《장자》〈제물론〉에 “쇠뇌의 줄을 놓듯이 튀어나온다는 것은 시비를 가릴 때를 이르는 말이고, 신에게 맹세하듯이 변함없다는 것은 남에게 승리를 지키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其發若機栝 其司是非之謂也 其留如詛盟 其守勝之謂也〕” 하였다.
[주D-021]송영자(宋榮子)가……알겠는가 : 송영자, 열자(列子), 지인(至人)은 《장자》〈제물론〉에 나오는 인물이다. 송영자는 세상의 영욕에 급급하지 않는 훌륭한 사람이지만 바람을 타고 다니는 열자만 못하고, 열자도 바람에 의지하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조차 잊고 지내는 지인이나 큰 공을 흔적 없이 이루어내는 신인(神人)만 못하다고 하였다.
[주D-022]사악(四岳)과……도왔네 : 사악은 요(堯) 임금 때의 벼슬 이름이고, 구관(九官)은 순(舜) 임금 때의 아홉 대관(大官)이고, 백익(伯益)은 순 임금의 신하이고, 아형(阿衡)은 탕왕(湯王)의 재상인 이윤(伊尹)의 관호(官號)이다.
[주D-023]태상(太上)은 덕을 세움이니 : 썩지 않고 영원히 전해지는 삼불후(三不朽) 중의 첫 번째인 입덕(立德)을 말한다. 춘추 시대 노나라 대부 숙손표(叔孫豹)가 진(晉)나라에 갔을 때에 범선자(范宣子)가 오래 되어도 썩지 않는 것을 묻자, 그가 대답하기를, “가장 좋은 것은 입덕이 있고, 그 다음은 입공(立功)이 있고, 그 다음은 입언(立言)이 있다. 비록 오래되어도 없어지지 않으니, 이를 불후라고 하는 것이다.〔太上有立德 其次有立功 其次有立言 雖久不廢 此之謂不朽〕” 하였다. 《春秋左氏傳 襄公24年》
[주D-024]하우(下愚)는 옮길 수 없으니 : 하우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을 말한다. 공자가 말하기를, “오직 상지와 하우는 변화시킬 수 없다.〔唯上智與下愚不移〕” 하였다. 《論語 陽貨》

 

 

추강집 제1권
 부(賦)
약호부(藥壺賦)


객이 구름과 달로 마음을 삼고 / 客有雲月爲心
바람과 우레로 기운을 삼으며 / 風霆爲氣
가슴에는 뭇별을 늘어놓고 / 胸羅列宿
뜻은 하늘과 땅을 삼켰네 / 志呑天地
동도의 비바람을 실컷 마시고 / 飫東都之風雨
비술에 현묘한 생각 내달리며 / 馳玄思於秘術
항해의 서늘한 기운을 마시고 / 飮以沆瀣之浮凉
정양의 깨끗한 물로 양치하네
/ 漱以正陽之精液
아홉 번 단약 달이느라 해가 거듭되고 / 丹九還而歲重
진경을 외워서 공부가 쌓였네 / 誦眞經而功積
장차 백양을 굽어보고 / 將欲伯陽乎下風
교송을 능가하려 하네
/ 喬松而可軼
현포에 올라서 낭풍을 지나가고 / 登玄圃而歷閬風
대학을 뛰어넘어 열결에 올랐네 / 超大壑而昇列缺
훨훨 나는 약옹이여 / 翩翩之藥翁
어느 길로 가야 만날 것인가 / 道安適而逢之
수염과 눈썹은 하얗고 희며 / 鬚眉晧白
형상과 모습 맑고 기이하니 / 狀貌淸奇
뚜렷이 한중의 자태이고 / 依然韓衆之態
의젓이 악전의 거동이라
/ 儼乎偓佺之儀
여남의 시장에서 나에게 읍하고 / 揖余汝南之市
호로 속의 세계로 나를 맞이하네 / 迎余壺中之域
삼광이 동천에 벌려 서서 밝고 / 三光森朗於洞天
지축이 지척간에 가만히 옮겨졌네 / 地軸潛移於咫尺
황웅과 청시가 울어 부르짖고 / 黃熊靑兕之啼號
경궁과 자부가 곁에 늘어섰네
/ 瓊宮紫府之傍列
옥루가 높으니 복지가 시원하고 / 玉樓高兮福地爽
현단이 우뚝하니 서운이 모였네
/ 玄壇峙兮瑞雲集
교리와 화조가 가득하고 / 交梨火棗之盈衍
빙도와 벽우가 널려 있네
/ 氷桃碧藕之錯落
이것이 이른바 신선이 산다는 단구가 아니며 / 玆乃所謂羽人之丹丘
옹은 곧 몸을 단련하여 환골한 신선이 아닌가 / 而翁乃鍊形之換骨者乎
객이 이에 / 客於是
마음이 놀라고 넋이 두려워하며 / 驚心慄魄
간담이 놀라고 머리털이 곤두섰네 / 駭膽竪髮
장풍을 따라 무릎 절로 굽어져서 / 順長風而膝下
용장을 던지고 부복하여 말하기를 / 投龍杖而俯伏曰
신 비장방은 감히 천사께 아뢰오 / 臣長房敢告天師
아래 세상은 흉년이 들어 / 下土凶荒
큰 도가 날로 쇠퇴해졌소 / 大道日衰
진나라는 이세 만에 사라졌고 / 秦二世而靡靡
한나라는 양도에서 쇠퇴했거니
/ 漢兩都而陵夷
세도가 저와 같음을 개탄하고 / 慨世道之如彼
나를 알아주는 이 없음을 슬퍼하오 / 悲無人以我知
낮은 관직생활 괴롭고 힘겨우니 / 一掾酸辛
쇠잔한 인생은 더부살이 같구려 / 殘生如寄
아침저녁으로 사방을 내달리며 / 朝東暮西
취한 듯 살다가 꿈꾸듯 죽으니 / 醉生夢死
황량에서 영고를 느끼고 / 感榮枯於黃粱
망양에서 득실을 깨닫는다오 / 悟得失於亡羊
이에 침중의 《홍보》를 얻어서 / 玆得枕中之寶
계견의 소망을 둘 뿐이지만
/ 顧有鷄犬之望
어쩌리오 연분이 적어서 / 奈何緣淺分薄
한갓 세월만 허비하였다오 / 徒費居諸
금을 먹고 옥을 복용하나 / 餌金服玉
삼시는 처음과 마찬가지이고
/ 三尸如初
구름을 삼키고 달을 마시나 / 嚥雲吸月
더럽고 거칢은 제거되지 않았소 / 麤穢不除
세월은 물처럼 흘러가고 / 歲年流亡
몸과 정신은 날로 마르니 / 形神日枯
원컨대 진묘한 비결을 전수하여 / 願授妙眞之訣
불로장생의 계책을 삼게 하소서 / 以爲長年之圖
옹이 눈썹을 낮추고 말하려다가 / 翁乃低眉欲言
괴로운 눈물을 만 줄기나 흘리네 / 酸淚萬行
나는 본래 상제의 신하로 / 僕本帝臣
언제나 상제 곁을 모셨다오 / 備侍帝傍
아침에는 봄의 사신이 되어 / 朝爲靑陽之使
봄 농사를 고루 이루도록 하고 / 俾平秩乎東作
저녁에는 가을 수확의 명을 띠고 / 夕銜西成之命
서황으로 하여금 숙살하게 하였소 / 令西皇乎肅殺
옥토끼를 볼기 쳐서 약 찧기를 재촉하고 / 笞玉兔兮催擣藥
뇌공을 채찍질하여 비 내리기를 독려했네 / 鞭雷公兮督雨賜
은하수 가에 쉬면서 직녀를 감독하였고 / 憩銀渚兮監女織
북두칠성 자루를 당겨 원기를 잔질했네 / 授斗杓兮酌元氣
헌원씨가 하늘로 올라올 때 / 軒轅之上昇兮
내가 찬비를 몰고서 길을 인도했고 / 余佩凍雨而先路
진 목공이 상제에게 조회할 때 / 秦穆之朝帝兮
내가 사문에서 맞아들여 영접했네 / 余賓四門而接遇
상제의 조정에 지위가 가장 높고 / 位極帝庭
뭇 신선 중에 은총이 으뜸이었소 / 寵冠群仙
권세의 불꽃은 사람을 태우고 / 勢焰薰人
은혜의 물결은 하늘에 닿았소 / 恩波滔天
어찌 알았으랴 화에는 복이 기대어 있고 / 何圖禍兮福所倚
복에는 화가 숨어 있을 줄을 / 福兮禍所伏
《황정경》을 잘못 읽음에 연루되어 / 坐讀黃庭之誤
멀리 하계까지 귀양 오게 되었소
/ 遠被下界之謫
하늘 문이 열려서 상령이 날지만 / 天門開兮爽靈飛
백일이 하늘에 걸려 운병을 좇을 수 없네
/ 白日懸天兮雲軿不可以追逐
북해 가에서 양을 친 지 사십 년이요 / 看羊海上兮四十年
인간 세상에 학이 된 지 삼천 년이네
/ 化鶴人間兮三千齡
정신은 자미궁의 담장으로 돌아가고 / 神歸紫微之垣
꿈에도 태일이 계신 뜰을 서성이네
/ 夢繞太一之庭
슬픈 바람 쓸쓸히 불고 / 悲風蕭蕭
소나기 어둡게 쏟아지니 / 驟雨冥冥
쇠잔한 몸은 퇴락하고 / 殘形銷鑠
살아갈 계책 고단하네 / 生計竛竮
적막한 호로 속에서 누구와 얘기할까 / 壺中寂寞誰與語
번잡한 시장에서 한갓 기다릴 뿐이었네 / 軟紅噴薄徒延竚
오늘 저녁이 어떤 저녁이던가 / 今夕何夕
어진 선비를 만나게 되었네 / 邂逅良士
풍모가 범상하지 않으니 / 骨法非凡
이치를 말할 수 있으리라 / 可以語理
허나 도에는 사와 정이 있고 / 然而道有邪正
술법에도 곡과 직이 있는 법 / 術有曲直
선비가 고명한 견해를 자부하다 / 士負高明之見
혹 곁길이나 지름길로 들어가면 / 或自傍蹊而入
필시 다섯 석의 구리를 주조하여 / 則未必無鼓鑄五石之銅
스스로 신선이 되겠다고 하지만
/ 自謂神仙之得
눈앞의 일들이 밖에서 공격하고 / 眼前之務外攻
오래 살 욕심이 안에서 찍어대니 / 長生之欲內斸
옥 가루가 그 마음을 태우고 / 玉屑焦其心
단사가 그 뼈를 해쳐서 / 丹砂毒其骨
모든 맥이 들끓어 맑지 못하고 / 百脉鼎沸而不澄
정신이 피곤하여 멍청해지네 / 精神疲倦而恍惚
육체는 쇠잔하여 무너지고 / 鼎器殘弊而頹頑
약물이 시들어서 고갈되니 / 藥物凋喪而耗竭
천 번 거행하여 만 번 무너지고 / 千擧而萬敗
크게는 어리석고 작게는 영리하네 / 大癡而小黠
종종 홍안이 시들기도 전에 / 往往朱顔未凋
몸이 귀신 명부로 돌아가니 / 身歸鬼錄
불로장생을 구하다가 / 求以長生
이로써 요절할 뿐이네 / 適以殀沒
어지럽고 들썩거리다가 / 紛紛藉藉
이로 인해 죽은 사람들 / 以是而死者
이루 다 말할 수 없도다 / 不可殫說
이런 까닭으로 / 是故
보서가 잘못 인도하고 / 寶書誤入
금단이 사람을 죽이니 / 金丹殺人
그대 혹 여기에 종사하여 / 子無乃從事於斯
곡신을 잃은 것이 아닌가 / 以失谷神
오직 마음에서 구함이 / 唯求之心
바로 도의 참됨이리라 / 乃是道眞
그러나 도는 전수할 수 있지만 / 然道可以授兮
언사로써 형용할 수는 없다네 / 而不可形於言辭
고요할 때에는 잃어버리기 쉽고 / 其靜易亡兮
움직일 때에는 위태롭기 쉽다네 / 其動易危
너의 심혼을 어지럽히지 말고 / 無猾而心魂兮
너의 사지를 수고롭게 말며 / 無勞而四肢
마음을 텅 비워서 기다리고 / 虛以待之兮
무위로써 안정시켜야 하리라 / 安之以無爲
용이 읊조리고 범이 울면 / 龍吟虎嘯兮
달아나지 않도록 억누르며 / 鎭之以不走
납과 수은이 서로 맺히면 / 鉛汞交結兮
때에 맞게 채취해야 하리라 / 及時以采取
너의 화후를 지켜서 / 守而火候兮
너의 때를 씻어내고 / 滌而塵垢
너의 신실을 닫아서 / 閉而神室兮
외물에 유혹됨이 없으면 / 無爲物誘
장차 천근을 돌릴 열쇠를 볼 것이며 / 將見轉天根之關楗兮
삼단전에 육기를 두를 수 있으리라 / 匝六氣於三田
마음이 중정하고 순수함이여 / 心中正而純粹兮
만 가지 이치를 모아 자연스럽게 되리라 / 會萬理而自然
그렇다면 태초를 이웃하고 무극을 벗하여 / 然則可以隣太初友無極
음양과 함께 묘하게 합하고 / 陰陽而妙契
귀신과 더불어 덕을 합하니 / 鬼神而合德
몸은 아득히 점점 멀어져서 / 形穆穆而浸遠
인간을 떠나 멀리 숨는다네
/ 離人間而遁逸
적리를 타고 위로 오르니 / 乘赤鯉以上征
해와 더불어 똑같이 빠르네 / 與日馭兮齊速
수명은 천지와 더불어 끝이 없고 / 壽與天地而無際
세상을 굽어보매 좁쌀 하나 같으리 / 俯視人寰而如一粟
어찌 단약을 만드는 데 연연하여 / 安用區區於煉丹
명맥을 스스로 해칠 필요 있으랴 / 自戕其命脉也哉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 言未旣
객의 마음 절로 깨닫게 되어 / 客心靈自悟
막힌 의심이 얼음처럼 풀리니 / 滯疑氷釋
약옹에게 재배하고 사례하기를 / 再拜藥翁而謝之曰
하늘과 땅 사이에는 / 天地之間
이치가 하나일 뿐이니 / 惟理一也
신선이 비록 신비스럽다지만 / 神仙雖秘
이치 밖의 사물이 아니리라 / 理外無物
나는 처음 밖에서 찾아 얻지 못했더니 / 余初求外而不得
이제 몸에 돌이켜서 바야흐로 알았다오 / 乃今反身而方識
가르침은 주공 공자와 다르지 않고 / 敎不異於周孔
오묘함은 복희의 《역경》과 서로 같구려 / 妙參同於羲易
내 이제야 몸이 화로와 솥이고 / 吾然後知身爲罏鼎
마음이 단약인 줄을 알겠구려 / 心爲丹藥
건곤과 감리는 / 乾坤坎離者
이 마음의 윤곽이고
/ 此心之匡郭也
문화와 무화는 / 文武火候者
이 마음의 완급이고
/ 此心之緩急也
음양과 사괘는 / 牝牡四卦者
탁약을 갖추는 바이고
/ 所以備槖籥也
항룡과 복호는 / 降龍伏虎者
욕심을 막는 바라네
/ 所以防佚欲也
육절이 서로 싸움은 / 六節相戰者
일신의 회삭이고
/ 一身之晦朔也
갑을을 분속시킴은 / 甲乙遞配者
일신의 납갑이고
/ 一身之納甲也
마음이 보전되어 잃지 않음은 / 心存不舍
영백에 처하는 바이고 / 所以載營魄也
움직임이 천기에 부합함은 / 動合天機
생생하여 멸하지 않음이니 / 所以生不滅也
어찌 참으로 단정 연홍과 부부 남녀와 일월 한서와 건곤 천택이라는 것이 있겠소 / 豈眞有丹鼎鉛汞夫婦男女與夫日月寒暑乾坤川澤者乎
아 선생이 아니었다면 / 噫微夫子
거의 이 몸을 그르쳤으리라 / 幾誤此身
내 장차 이 비결을 갖고서 / 吾將乎此決
나의 천군에게 주려 하오 / 以遺兮天君


 

[주C-001]약호부(藥壺賦) : 약호는 약을 파는 호공(壺公)으로, 진(晉)나라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에 나오는 인물이다. 신선 호공이 여남(汝南)의 저잣거리에서 약을 팔고 있었는데, 모두 그저 평범한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후한(後漢)의 시장 하급관리〔市掾〕인 비장방(費長房)은 호공이 해가 진 뒤 옥상에 걸어둔 호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매일같이 정성껏 그를 모셨다. 하루는 호공이 그를 데리고 호로 속으로 들어갔더니, 호로 속은 완전히 별천지로 해와 달이 있고 선궁(仙宮)이 있었다. 호공이 비장방에게 말하기를, “나는 본래 신선이었으나 옛날 천조(天曹)에 있을 때 공사(公事)를 부지런히 수행하지 않은 죄로 견책당하여 인간 세상에 귀양 온 것이다.” 하였다.
[주D-001]항해(沆瀣)의……양치하네 : 항해와 정양(正陽)은 도가에서 말하는 육기(六氣)의 하나이다. 《명경(明經)》에 이르기를, “봄에 조하(朝霞)를 먹으니 조하라는 것은 해가 뜨려 할 때의 적황(赤黃)의 기운이고, 가을에 윤음(淪陰)을 먹으니 윤음은 해가 진 뒤의 적황의 기운이고, 겨울에 항해를 먹으니 항해는 북방의 야반(夜半)의 기운이고, 여름에 정양을 먹으니 정양은 남방의 일중(日中)의 기운이다. 천지의 현황(玄黃)의 기운과 합하여 이를 육기라 한다.” 하였다.
[주D-002]장차……하네 : 백양(伯陽)은 한나라 때의 선인(仙人) 위백양(魏伯陽)이고, 교송(喬松)은 신선인 왕자교(王子喬)와 적송자(赤松子)이다.
[주D-003]현포(玄圃)에……지나가고 : 현포와 낭풍(閬風)은 곤륜산 꼭대기에 있다는 선경(仙境)이다. 굴원(屈原)의 〈이소경(離騷經)〉에 “아침에는 내 백수를 건너고 낭풍에 올라 말고삐를 매려네.〔朝吾將濟於白水兮 登閬風而緤馬〕” 하였다.
[주D-004]대학(大壑)을……올랐네 : 대학은 큰 골짜기이고, 열결(列缺)은 높은 공중에 있는 틈으로, 이곳에서 번개가 일어난다고 한다. 《초사(楚辭)》〈원유(遠遊)〉에 “위로 열결에 이름이여, 아래로 큰 골짜기를 바라본다.〔上至列缺兮 降望大壑〕” 하였다.
[주D-005]뚜렷이……거동이라 : 한중(韓衆)과 악전(偓佺)은 모두 고대의 신선 이름이다.
[주D-006]삼광(三光)이……밝고 : 삼광은 해, 달, 별의 세 가지 광채를 말하고, 동천(洞天)은 도가(道家)에서 신선이 거처한다고 하는 곳을 가리킨다.
[주D-007]황웅(黃熊)과……늘어섰네 : 황웅은 전설 속의 짐승이고, 청시(靑兕)는 무게가 천근(千斤)인 외뿔 소이고, 경궁(瓊宮)은 옥으로 장식한 궁궐이고, 자부(紫府)는 신선이 사는 곳이다.
[주D-008]옥루(玉樓)가……모였네 : 옥루와 복지(福地)는 신선이 사는 곳이고, 현단(玄壇)은 도교의 사원이고, 서운(瑞雲)은 상서로운 구름이다.
[주D-009]교리(交梨)와……있네 : 선과(仙果)가 지천으로 많다는 말이다. 교리ㆍ화조(火棗)ㆍ빙도(氷桃)ㆍ벽우(碧藕)는 모두 도교(道敎)에서 말하는 선과이다.
[주D-010]진(秦)나라는……쇠퇴했거니 : 진나라는 이세(二世)인 호해(胡亥) 때에 망했고, 한나라는 도읍을 옮긴 뒤로 점점 쇠퇴해 갔다는 말이다. 양도(兩都)는 전한의 도읍인 장안(長安)과 후한의 도읍인 낙양(洛陽)이다.
[주D-011]황량(黃粱)에서 영고(榮枯)를 느끼고 : 황량은 누른 기장이고, 영고는 영고성쇠이다. 당나라 심기제(沈旣濟)의 《침중기(枕中記)》에 실려 있는 한단몽(邯鄲夢) 이야기이다. 노생(盧生)이란 사람이 한단의 객점(客店)에서 도사 여옹(呂翁)를 만나 그가 주는 베개를 베고 잠들었다. 꿈속에서 수십 년 동안 부귀영화를 다 누리고 깨어보니, 자신이 잠들기 전에 객점 주인이 삶고 있던 황량이 채 익지 않았다고 한다.
[주D-012]망양(亡羊)에서 득실을 깨닫는다오 : 장자가 말하기를, “남자 종과 여자 종이 함께 양을 치다가 모두 양을 잃어버렸다. 무슨 일을 하느라 양을 잃어버렸느냐고 물으니, 남자 종은 책을 읽었고 여자 종은 구슬치기 놀이를 하였다고 했다. 두 사람이 한 일은 같지 않았지만 양을 잃은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其於亡羊也 均也〕” 하였다. 《莊子 騈拇》
[주D-013]침중(枕中)의……뿐이지만 : 유안(劉安) 같은 선인(仙人)을 만나 계견(鷄犬)처럼 천상 세계에 오르려는 소망을 갖는다는 말이다. 침중의 《홍보(鴻寶)》는 한나라 회남왕(淮南王) 유안이 베개 속에 비장(秘藏)하던 도술 서적이다. 《漢書 卷36 劉向傳》 계견이란, 유안이 팔로단경(八老丹經) 36장을 받아 단약(丹藥)을 단련하여 이를 먹고 대낮에 승천하였는데, 개와 닭이 솥 속에 남아 있던 단약을 핥아먹고 또 승천하여, 닭은 천상에서 울고 개는 구름 속에서 짖었다고 한다. 《神仙傳》
[주D-014]금을……마찬가지이고 : 금단(金丹)과 옥액(玉液)을 복용해도 신선이 되지 못했다는 말이다. 삼시(三尸)는 사람의 몸속에 있는 귀신이다. 상충(上虫)은 뇌 속에 있고, 중충(中虫)은 명당(明堂), 즉 이마에 있고, 하충(下虫)은 위(胃) 속에 있는데, 경신일(庚申日) 밤에 몸 밖으로 나와서 사람의 잘못을 천제(天帝)에게 고하여 해를 끼친다고 한다. 신선이 되려면 이 삼시를 제거해야 한다. 《遵生八牋 卷9》《柳宗元 罵尸虫文》
[주D-015]서황(西皇)으로……하였소 : 서황은 서방(西方)의 제(帝)가 된 소호(少皞) 금천씨(金天氏)를 이르고, 숙살(肅殺)은 가을의 엄혹(嚴酷)하고 소슬한 기운이 초목을 말라죽게 하는 것을 말한다.
[주D-016]헌원씨(軒轅氏)가……때 : 황제(黃帝)가 형산(荊山) 아래에서 솥〔鼎〕을 주조하여 완성했을 때에 용이 수염을 드리우고 내려와서 황제를 맞이하였다. 황제가 올라타고 군신(群臣)과 후궁 70여 명이 따라 오르자 용이 곧 하늘로 올라갔다. 나머지 소신(小臣)들은 타지 못하여 용의 수염을 잡으니 수염이 뽑혀 떨어졌고 이때 황제의 궁검(弓劍)이 함께 떨어졌다. 이에 백성들은 그 궁검과 수염을 끌어안고 슬프게 울었다. 그래서 후대에 이곳을 정호(鼎湖)라 불렀다. 《史記 卷28 封禪書》
[주D-017]황정경(黃庭經)을……되었소 : 천상에서 《황정경》을 정밀하게 읽지 않았기 때문에 멀리 인간 세상으로 귀양 왔다는 말이다. 《황정경》은 도가(道家)의 경전으로, 양생(養生)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집선록(集仙錄)》에 “사자연(謝自然)이 날마다 《황정경》을 열 번씩 송독하였다. 외울 때에 동자(童子)가 시립(侍立)하다가 열 번 읽을 때마다 곧 상계(上界)로 데려가려 하였다. 동화부인(東華夫人)이 말하기를, ‘생각을 정밀히 하여 송독하는 사람은 복을 얻고 거칠게 송독하는 사람은 죄를 얻는다.’ 하였다.”라고 하였다.
[주D-018]하늘……없네 : 상령(爽靈)은 사람에게 있다는 삼혼(三魂)의 하나이고, 운병(雲軿)은 신선이 타는 구름으로 만든 수레이다. 소식(蘇軾)의 〈부용성(芙蓉城)〉 시에 “천문이 밤에 열릴 때 상령이 날지만, 다시 대낮에 운병을 탈 길이 없구나.〔天門夜開飛爽靈 無復白日乘雲軿〕” 하였다.
[주D-019]북해(北海)……년이네 : 소무(蘇武)처럼 괴롭게 귀양 살다가 정영위(丁令威)처럼 인간 세상으로 내려왔다는 말이다. 소무는 한나라 무제(武帝) 때의 충신으로, 흉노(匈奴)에 사신 갔다가 억류되어 북해에서 양을 치는 등 갖은 고난을 겪다가 19년 만에 돌아왔다. 《漢書 卷54 蘇建傳 蘇武》 정영위는 한나라 요동(遼東) 사람으로, 영허산(靈虛山)에 가서 신선술을 배워서 천년 뒤에 학이 되어 요동에 돌아왔다고 한다. 《搜神後記》
[주D-020]정신은……서성이네 : 몽매간에도 항상 천상의 세계로 돌아가기를 생각한다는 말이다. 자미궁(紫微宮)은 천제(天帝)가 사는 곳이고, 태일(太一)은 천제의 별명(別名)이다.
[주D-021]필시……하지만 : 승로반(承露盤)을 주조하여 불로장생을 꾀한 것을 말한다. 한 무제(漢武帝)가 선약(仙藥)을 만들 때 사용하는 이슬을 받기 위해 동(銅)으로 선인(仙人)을 만들어 승로반을 받들게 하였다. 이 이슬을 옥가루와 섞어 먹어 선도(仙道)를 구하였다고 한다.
[주D-022]곡신(谷神) : 골짜기의 신이라는 말로, 도를 가리킨다. 노자가 말하기를, “골짜기의 신은 죽지 않으니, 이것을 현묘한 암컷이라 이른다.〔谷神不死 是謂玄牝〕” 하였다. 《老子 6章》
[주D-023]삼단전(三丹田)에……있으리라 : 삼단전에 육기가 충만하게 운행된다는 말이다. 삼단전은 도가에서 말하는 세 곳의 단전(丹田)으로, 두 눈썹 사이의 상단전(上丹田)과 심장의 중단전(中丹田)과 배꼽 아래의 하단전(下丹田)을 말한다. 육기(六氣)는 《명경(明經)》에 이르기를, “봄에 조하(朝霞)를 먹으니 조하라는 것은 해가 뜨려 할 때의 적황(赤黃)의 기운이고, 가을에 윤음(淪陰)을 먹으니 윤음은 해가 진 뒤의 적황의 기운이고, 겨울에 항해를 먹으니 항해는 북방의 야반(夜半)의 기운이고, 여름에 정양을 먹으니 정양은 남방의 일중(日中)의 기운이다. 천지의 현황(玄黃)의 기운과 합하여 이를 육기라 한다.” 하였다.
[주D-024]몸은……숨는다네 : 《초사(楚辭)》〈원유(遠遊)〉의 “몸은 아득히 점점 멀어짐이여. 사람들을 떠나 숨어지내도다.〔形穆穆以浸遠兮 離人群而遁逸〕”라는 구절을 차용하였다.
[주D-025]적리(赤鯉) : 신선이 탄다는 붉은색의 잉어이다.
[주D-026]건곤(乾坤)과……윤곽이고 :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에 이르기를, “건곤은 역(易)의 문호로 모든 괘의 부모이며, 감리(坎離)는 윤곽(輪廓)으로 바퀴통을 돌리고 굴대를 바르게 한다.〔乾坤者 易之門戶 衆卦之父母 坎離匡郭 運轂正軸〕” 하였다.
[주D-027]문화(文火)와……완급이고 : 약한 불과 강한 불로 단약(丹藥)을 달인다는 말이다. 문화는 화력이 약한 것이고, 무화(武火)는 화력이 센 것이다.
[주D-028]음양(陰陽)과……바이고 : 음양과 사괘(四卦)는 탁약(槖籥), 곧 풀무와 같아 이로 인해 만물이 끊임없이 생성된다는 것이다. 노자가 말하기를, “천지의 사이는 탁약과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텅 비어 있으면서도 바람이 그치지 않고, 움직일수록 더욱 세차게 나온다.〔天地之間 其猶槖籥乎 虛而不屈 動而愈出〕” 하였다. 《老子 4章》
[주D-029]항룡(降龍)과……바라네 : 도사(道士)들이 용을 항복시키고〔降龍〕 범을 복종시킨다〔伏虎〕는 것은 욕심을 막는다는 뜻이다.
[주D-030]육절(六節)이……회삭(晦朔)이고 : 여섯 가지 감정이 마음속에서 싸우는 것은 달이 초하루에서 그믐까지 차고 기우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육절은 호(好)ㆍ오(惡)ㆍ희(喜)ㆍ노(怒)ㆍ애(哀)ㆍ락(樂)의 여섯 가지 정(情)이고, 회삭은 초하루와 그믐이다.
[주D-031]갑을(甲乙)을……납갑(納甲)이고 : 천간(天干)을 팔괘(八卦)에 분속시킨 것은 바로 천간을 일신(一身)에 분속시킨 것과 같다는 것이다. 납갑은 팔괘의 건(乾)을 천간의 갑임(甲壬)에, 곤(坤)을 을계(乙癸)에, 진(震)을 경(庚)에, 손(巽)을 신(辛)에, 감(坎)을 무(戊)에, 이(离)를 기(己)에, 간(艮)을 병(丙)에, 태(兌)를 정(丁)에 분납(分納)한 것이다. 《주역참동계》에 월체납갑도(月體納甲圖)가 있다.
[주D-032]영백(營魄)에 처하는 바이고 : 《노자》10장에서 “늘 거처하는 곳에서 지내며 하나의 참됨을 껴안고서 떠나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載營魄抱一 能無離乎〕” 하였다. 이에 대한 왕필(王弼)의 주(註)에 “재(載)는 처(處)와 같고, 영백은 사람이 항상 거처하는 곳이고, 일(一)은 사람의 참됨이다. 사람이 상거(常居)하는 집에 있으면서 본래의 청신(淸神)을 껴안고서 항상 떠나가지 않을 수 있다면 만물이 절로 객이 됨을 말한다.〔載猶處也 營魄 人之常居處也 一 人之眞也 言人能處常居之宅 抱一淸神 常無離乎 則萬物自賓也〕” 하였다.
[주D-033]천군(天君) : 마음을 일컫는다. 순자(荀子)가 말하기를, “마음이 가운데 빈곳에 있으면서 오관(五官)을 다스리니, 이를 천군이라고 한다.〔心居中虛 以治五官 夫是之謂天君〕” 하였다. 《荀子 天論》

 

 추강집 제1권
 부(賦)
애인생부(哀人生賦)


애달프다 언제나 수고로운 인생이여 / 哀人生之長勤兮
아 마음에 번민하며 무엇을 구하는가 / 喟憑心而何求
봄가을이 천지 사이에서 뒤바뀜이여 / 春秋代於逆旅兮
백년이 틈을 지나는 말보다 빠르도다 / 百年駃於隙駒
슬퍼하노라 시서로 무덤을 파헤침이여 / 窃悲夫詩書之發塚兮
또한 지혜가 기심을 만들어내는 것이라 / 亦知慧之生機
아 꿈속처럼 혼미하여 깨닫지 못함이여 / 嗟夢迷而不悟兮
성인이나 현인이나 모두 함께 돌아가네 / 曁聖賢而同歸
좋은 옷과 음식을 즐기고 좋아하며 / 娛樂於衣食
쇠퇴와 영화에 기뻐하고 분노하여 / 喜怒於枯榮
크게는 나라를 도모하고 / 大則圖國
작게는 명예를 도모하네 / 小則圖名
큰 꿈 홀연히 깨고 보면 / 大夢忽醒
지난 일은 순식간이라 / 往事倏忽
천년에 전할 이름 / 千載之名
적막하게 매몰되리 / 寂寞埋沒
헌원씨의 수의지치를 우러르고 / 仰觀夫軒轅之垂衣兮
모든 사람이 무위지치라 칭송하지만 / 萬口雖稱其無爲
나는 한갓 물건을 만드는 데 힘을 들여 / 余徒見勤力於創物兮
천지간에 인문을 내건 것만 보이노라 / 揭人文於兩儀
탁록에서 활과 화살을 처음 만듦이여 / 肇弓矢於涿鹿兮
문물과 제도를 변방까지 통하게 했네 / 通車書於三陲
또한 어찌 담박하고 고요함이 있었으랴 / 亦何有於恬虛兮
평생을 다하도록 부지런히 힘썼도다
/ 期百年以孜孜
활과 칼만 갑자기 정호에 남겨지니 / 弓劒忽遺於鼎湖兮
만민이 모두 노하며 더욱 슬퍼했네
/ 萬民齊怒而增悲
순 임금이 만 가지 기미를 살핌이여 / 有虞之萬機兮
하루 이틀 사이에도 온갖 일이 생기니
/ 一日而二日
찬성할 때에 어찌 배부름이 있었겠으며 / 飽煖何有於都兪
반대할 때에 음란함이 들어오지 못했네
/ 淫聲不入於吁咈
신하들이 탐닉하지 말기를 경계하여 / 群臣相戒乎罔淫
하루라도 안일하게 지낸 적이 없었네 / 無一日之居佚
순 임금이 백 세에 노래를 부른 뒤로 / 帝生百年而賡一歌
여생이 적적하여 즐거운 일이 없었고 / 餘日寂寂兮無娛
창오의 구름이 일조에 홀연히 끊어지니 / 蒼梧之雲一朝而忽斷兮
남쪽 훈풍을 바라보매 초목이 거칠어졌네
/ 瞻南薰而草蕪
우 임금은 촌음을 아껴서 / 禹惜寸陰
성스러운 임금이 되었다네 / 做得聖賢
나랏일에 부지런하고 집안에 검소하며 / 勤于邦而儉于家兮
팔 년 동안 네 가지 탈 것을 탔으니 / 乘四載於八年
부부가 함께 누리는 즐거움은 없고 / 無夫婦之合歡
손발이 부르트는 부지런함만 있었네
/ 有胼胝之倦勤
응룡에게서 신매를 통하고 / 通神媒於應龍
헌원산에서 곰으로 변하여 / 化爲熊於軒轅
삼강과 칠택이 / 三江兮七澤
구하와 함께 편안히 흘렀건만 / 與九河兮安流
당일에 실행한 말과 이룬 공적 / 當日兮允功
죽음을 따라 천추에 사라졌네 / 隨化去兮千秋
탕 임금이 박읍에서 정치할 때 / 亳邑修勤
밤낮 쉬지 않고 정무에 힘쓰느라
/ 宵衣旰食
음성과 미색을 가까이하지 않고 / 聲色不邇
재화와 이익을 증식하지 않았네
/ 貨財不殖
열한 번이나 정벌하여 / 十有一征
싸움에 모두 이기었고
/ 功捷戰克
천하에 검소한 덕을 밝혀서 / 昭儉德於天下兮
하나라에 대통을 계승시켰으나 / 繼大統於夏禹
붕어하고 사 년도 넘지 않아 / 崩未逾於四載兮
전형이 후손에 의해 뒤집혔네
/ 典刑覆於後嗣
문왕이 왕업의 기틀을 열고 / 文王開基
성왕과 강왕이 이를 지키느라 / 成康守成
감히 유람이나 사냥하지 않아 / 不敢游田
계속하여 빛나고 밝게 되었네 / 繼續光明
주공은 삼왕을 잇기를 생각하여 / 周公思兼
앉아서 새벽이 되기를 기다렸고
/ 坐而待旦
〈무일편〉을 지어 간절히 기원하며 / 篇無逸而拳拳兮
일곱 번이나 오호라 탄식하였네
/ 七嗚呼而興嘆
몇 년 동안 경영한 뒤에 / 經營乎幾年
문무의 대덕을 완성하니 / 成文武之大德
우주가 개벽한 이래로 / 自宇宙之開闢兮
당시의 예악만 한 것이 없지만
/ 無當日之禮樂
평왕이 동천한 이래로 / 曰自平轍一東
서주 땅이 쓸쓸해지니
/ 西周黍離
이 또한 사시 가운데에 / 亦如四時
공을 이룬 계절이 지나감과 같았네 / 成功者歸
한 고조는 부상당해가며 천하를 도모했고 / 且夫漢高謀國於被創兮
광무제는 피로한 몸을 콩죽을 먹고서 풀었으며 / 光武豆粥於勞躬
유현덕은 넓적다리를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렸고 / 玄德流涕於拊髀
당 태종은 요동을 침략할 때 장수의 피를 빨았네 / 唐宗吮血於遼東
송 태조는 황포를 걸치고서 천하를 도모했고 / 宋祖經營乎黃袍
노속은 범공에게 눈물을 흘렸었네 / 勞俗涕於范公
이 대여섯 사람 중에 / 玆五六人
창을 잡고 임금을 위협한 자는 / 執戈脅主者
탕 임금과 무왕의 공로를 자랑했고 / 誇湯武功
간교한 방법으로 선양을 취한 자는 / 狐媚取禪者
순 임금과 우 임금의 충정을 빙자했고 / 藉舜禹忠
조종과 계파가 연결된 자는 / 派連祖宗者
주나라 종실과 같다고 하였고 / 謂周宗同
사방 오랑캐에 공을 구한 자는 / 要功四夷者
삼묘를 정벌한 기풍을 기약했네 / 期征苗風
수고롭게 백년의 인생을 살면서 / 勞生百年之內
부질없이 만년의 계획을 세웠고 / 浪營萬歲之計
하루의 땅에서 황금 옷 입었으니 / 金衣一日之土
누가 왕이 되며 황제가 된 것인가 / 孰爲王而爲帝
공자의 자리는 따뜻하지 않아서 / 若夫孔席不煖
정대한 의논이 이로써 일어나니
/ 大論以興
그 덕은 천지와 짝하여 크며 / 德配天地以大
그 이름은 일월처럼 높았으나 / 名高日月之升
하루아침에 두 기둥의 꿈을 꾸고 / 一朝兩楹之夢
홀연히 태산이 무너지게 되었네
/ 忽爲太山之崩
위백양이 단사를 녹여서 / 伯陽銷丹
납과 수은이 서로 섞이니 / 鉛汞交腸
장차 때에 맞게 연단을 채취하여 / 將欲及時而取采兮
거의 칠요의 빛이 시들 뻔했으나 / 庶幾七耀乎彫光
하늘 문이 열리고는 닫히지 않아 / 天門闢而不闔兮
무덤이 이 때문에 거칠어졌다네 / 馬鬣爲之榛荒
사위국의 세자인 부처는 / 舍衛世子
곡식을 물리치고 음란을 끊고서 / 辟穀斷淫
육 년 동안 괴롭게 수행하느라 / 六年苦行
주린 창자는 솔개가 우는 듯했네 / 飢腸鳶吟
생멸이 없다고 스스로 주장하다 / 自謂生滅之無期
마침내 발제의 물가에서 죽었고 / 竟斃拔提之潯
푸른 눈을 가진 서쪽의 달마대사 / 碧眼胡僧
동쪽에서 양나라 무제를 만나서 / 東逢俗君
계책을 버리고 완고함을 열게 하여 / 欲遣謀而啓頑兮
둘이 아닌 법문을 전하려 했으나 / 傳不二之法門
가르침이 천에 하나도 효험이 없어 / 敎未效於千一兮
낙엽이 뿌리로 돌아가듯 하였네 / 落葉歸於本根
이러한 때를 당하여 / 當此之時
날아가는 새가 종적이 없듯 / 飛鳥無蹤
성인 현인이 모두 다 흙이 되니 / 聖賢俱土
흘러가는 구름도 빛이 사라졌네 / 行雲沒彩
보존된 것으로는 / 所可存者
《사기》의 〈오제본기〉 / 軒轅帝紀
《서경》의 이제와 삼모 / 二帝三謨
필삭을 가한 오경 / 五經筆削
용호의 신묘한 그림 / 龍虎神圖
상주의 역사와 《한서》 / 商周漢書
당송 시대의 역사책 / 唐宋史籍
천 상자 만 두루마리의 / 千圅萬軸
구마라습의 번역이니 / 鳩摩之譯
믿지 않을 수도 없고 / 無不可恃
또한 믿을 수도 없네 / 亦不可恃也
일원의 운회가 다하게 되는 날 / 歷止一元之日兮
아무 일 없었던 듯 천지가 사라지리니 / 消天地於無事
그렇다면 이 도와 이 사람은 / 則斯文與斯人
모두 오음육률이 귀를 지나는 것이리라 / 俱是五音六律之過乎耳
성인과 현인도 이와 같거늘 / 聖賢如是
우매한 자야 무엇을 책할까 / 愚孩何責
선비는 부귀영달을 구하고 / 士邀利達
농부는 많은 수확을 바라고 / 農邀多穫
장사꾼은 이익을 추구하고 / 商賈市利
공인은 밤낮없이 쉬지 않네 / 工維額額
파리나 개처럼 구차히 탐내다 / 蠅營狗苟
관을 덮어야 비로소 그만두니 / 蓋棺乃已
비유컨대 모여든 모기 떼들이 / 比如聚蚊
바람을 만나면 그침과 같도다 / 遇風則止
내 세상에 태어남이 쓸쓸함이여 / 余生世之濩落兮
교유를 끊고서 홀로 지냈더니 / 絶交遊而獨處
위로 올라가 혼돈과 벗함이여 / 仰惟混沌尙友兮
나를 위해 이 말을 남겨주네 / 爲余留此之語
어두운 방이 갑자기 밝아지고 / 昏室蹔明
먹었던 귀가 갑자기 소통되니 / 聾耳蹔通
장차 가슴에 새기고 잃지 말아서 / 庶將服膺而勿失兮
이 쇠잔한 인생을 꿈속에 부치리 / 付此殘生於夢中


 

[주D-001]백년이……빠르도다 : 백년의 인생이란 망아지가 틈을 지나가기보다 더 빠르다는 말이다. 《장자》〈지북유(知北遊)〉에 “사람이 천지간에 살아감은 마치 흰 망아지가 틈을 지나가는 것과 같아서 별안간에 끝나버린다.〔人生天地間 若白駒之過隙 忽然而已〕” 하였다.
[주D-002]시서로 무덤을 파헤침이여 : 《장자》〈외물(外物)〉에 “유가는 시례(詩禮)로써 무덤을 파헤친다.〔儒以詩禮發冢〕” 하였다. 이에 대한 임희일(林希逸)의 주(註)에 “유세하는 선비가 시서(詩書)와 성인의 말을 빌려서 자신의 간교함을 꾸밈을 비유한 것이다.” 하였다.
[주D-003]헌원씨(軒轅氏)의……우러르고 : 수의지치(垂衣之治)는 성군(聖君)의 무위지치(無爲之治)를 이르는 말이다. 《주역(周易)》〈계사전 하(繫辭傳下)〉에 “황제와 요순이 의상을 드리운 채 가만히 앉아 있었으나 천하가 지극히 잘 다스려졌다.〔黃帝堯舜 垂衣裳而天下治〕” 하였다. 헌원(軒轅)은 황제(黃帝)의 이름이다.
[주D-004]탁록(涿鹿)에서……만듦이여 : 황제(黃帝)가 탁록에서 싸울 때 처음 활과 화살을 만들었다는 말이다. 탁록은 황제가 제후에게 군사를 징발하여 치우(蚩尤)와 싸움을 벌인 들판인데 거기서 마침내 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고 한다. 《史記 卷1 五帝本紀》
[주D-005]또한……힘썼도다 : 황제가 청정(淸淨) 무위(無爲)에 마음을 둔 것이 아니라 평생토록 정무(政務)에 부지런히 힘썼다는 말이다. 《장자》〈천도(天道)〉에 “허정염담하고 적막무위한 것이 천지의 정해진 이치이고 도덕의 지극한 일이다. 그러므로 제왕과 성인의 마음이 여기에 그친다.〔夫虛靜恬淡 寂漠無爲者 天地之平 而道德之至 故帝王聖人休焉〕” 하였다.
[주D-006]활과……슬퍼했네 : 황제(黃帝)가 승천하자 만백성이 몹시 슬퍼했다는 말이다. 황제가 형산(荊山) 아래에서 솥〔鼎〕을 주조하여 완성했을 때에 용이 수염을 드리우고 내려와서 황제를 맞이하였다. 황제가 올라타고 군신(群臣)과 후궁 70여 명이 따라 오르자 용이 곧 하늘로 올라갔다. 나머지 소신(小臣)들은 타지 못하여 용의 수염을 잡으니 수염이 뽑혀 떨어졌고 이때 황제의 궁검(弓劍)이 함께 떨어졌다. 이에 백성들은 그 궁검과 수염을 끌어안고 슬프게 울었다. 그래서 후대에 이곳을 정호(鼎湖)라 불렀다. 《史記 卷28 封禪書》
[주D-007]순 임금이……생기니 : 하루 이틀 사이에도 일의 기미가 또한 만 가지로 닥칠 수 있기 때문에 순 임금은 하루라도 방종하거나 욕심 부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고요(皐陶)가 순 임금에게 아뢰기를, “안일과 욕심으로 제후를 가르치지 마시어 경계하고 두려워하소서. 하루 이틀 사이에도 기미가 만 가지나 됩니다.〔無敎逸欲有邦 兢兢業業 一日二日 萬幾〕” 하였다. 《書經 皐陶謨》
[주D-008]찬성할……못했네 : 순 임금이 정무를 돌보느라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거나 음란한 소리를 듣거나 아름다운 여색을 가까이 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도유(都兪)는 정책에 대한 찬성을 뜻하고 우불(吁咈)은 반대를 뜻한다.
[주D-009]신하들이……경계하여 : 익(益)이 순 임금에게 아뢰기를, “안일함에 노닐지 마시고 즐거움에 탐닉하지 마소서.〔罔遊于逸 罔淫于樂〕” 하였다. 《書經 大禹謨》
[주D-010]순 임금이……뒤로 : 순 임금이 93세 때 우(禹)에게 섭위(攝位)한 것을 말한다. 이 때 순 임금이 노래하고 고요(皐陶)가 화답하였다. 《서경》〈대우모(大禹謨)〉에 “순 임금이 말하기를, ‘이리 오라, 너 우(禹)야. 짐이 제위에 있은 지 33년이라, 늙어서 부지런해야 할 정사에 게으르니, 너는 태만히 하지 말아서 짐의 무리를 거느리라.’ 하였다.〔帝曰 格 汝禹 朕宅帝位 三十有三載 耄期 倦于勤 汝惟不怠 總朕師〕” 하였고, 〈익직(益稷)〉에 “순 임금이 노래를 지어 말하기를, ‘하늘의 명을 삼갈진대 때마다 삼가고 기미마다 삼가야 한다.’ 하니,……고요가 화답하기를, ‘임금이 현명하시면 신하가 어질어서 모든 일이 편안할 것입니다.’ 하였다.〔帝庸作歌曰 勅天之命 惟時惟幾……乃賡載歌曰 元首明哉 股肱良哉 庶事康哉〕” 하였다.
[주D-011]창오(蒼梧)의……거칠어졌네 : 순 임금이 세상을 떠나자 훈풍이 불어오지 않아 초목이 거칠어졌다는 말이다. 창오는 순 임금이 세상을 떠난 곳이고, 남쪽의 훈풍은 순 임금이 오현금(五絃琴)을 타면서 지었다는 〈남풍시(南風詩)〉를 말한다. 《사기(史記)》 권1〈오제본기(五帝本紀)〉에 “순 임금이 남쪽으로 순수하다가 창오의 들판에서 돌아가셨다.〔舜南巡狩 崩於蒼梧之野〕” 하였고, 《공자가어(孔子家語)》〈변악해(辯樂解)〉에 “옛날 순 임금이 오현금을 타면서 〈남풍시〉를 지었다. 그 시에 ‘남풍의 훈훈함이여, 우리 백성의 노여움을 풀겠구나. 남풍이 때맞춰 불어옴이여, 우리 백성의 재물을 성대하게 하리로다.〔南風之熏兮 可以解吾民之慍兮 南風之時兮 可以阜吾民之財兮〕’하였다.” 하였다.
[주D-012]우 임금은 촌음을 아껴서 : 촌음은 아주 짧은 시간을 말한다. 《진서(晉書)》 권66〈도간열전(陶侃列傳)〉에 “대우는 성인이면서도 오히려 촌음을 아끼셨으니, 중인에 이르러서는 마땅히 분음을 아껴야 할 것이다.〔大禹聖者 乃惜寸陰 至於衆人 當惜分陰〕” 하였다.
[주D-013]나랏일에……검소하며 : 《서경》〈대우모(大禹謨)〉에 순 임금이 우에게 말하기를, “나랏일에 부지런하고 집안에 검소하여 자만하지 않고 큰 체하지 않음은 너의 어짊이다.〔克勤于邦 克儉于家 不自滿假 惟汝賢〕” 하였다.
[주D-014]팔……탔으니 : 우 임금이 네 가지 탈 것을 타고서 팔 년 동안 치수(治水)한 것을 말한다. 《서경》〈익직(益稷)〉에 우가 말하기를, “홍수가 하늘에 닿아 넘실넘실 산을 감싸고 언덕까지 올라가 백성들이 혼란에 빠지거늘, 내가 네 가지 탈 것을 타고서 산을 따라 나무를 제거하고 구주(九州)의 냇물을 터놓아 사해에 이르게 하였다.〔洪水滔天 浩浩懷山襄陵 下民昏墊 予乘四載 隨山刊木 予決九川 距四海〕” 하였다. 이에 대해 《서경집전(書經集傳)》에 “네 가지 탈 것이란 물에서는 배를 타고 육지에서는 수레를 타고 진흙에서는 썰매를 타고 산에서는 나막신을 신은 것이다.〔四載 水乘舟 陸乘車 泥乘輴 山乘樏〕” 하였다.
[주D-015]부부가……있었네 : 우 임금이 가정과 일신을 돌아보지 않고 치수에 부지런했던 것을 말한다. 《서경》〈익직〉에 우 임금이 말하기를, “저는 도산씨에게 장가들어 겨우 신ㆍ임ㆍ계ㆍ갑의 4일만 지냈고, 아들 계(啓)가 고고히 울었으나 자식으로 여겨 사랑하지 못했습니다.〔娶于塗山 辛壬癸甲 啓呱呱而泣 予不子〕” 하였고, 《사기》 권87〈이사열전(李斯列傳)〉에 “우 임금이 용문을 뚫고 구하(九河)를 소통시킬 때 손발이 부르트고 얼굴이 누렇게 초췌하였다.〔禹鑿龍門 疏九河 手足胼胝 面目黧黑〕” 하였다.
[주D-016]응룡(應龍)에게서 신매(神媒)를 통하고 : 응룡을 통하여 치수의 방도를 얻었다는 것이다. 응룡은 우 임금이 홍수를 다스릴 때에 꼬리로 땅에 구하(九河)를 그려서 물을 바다로 들어가게 했다는 전설상의 용이고, 신매는 혼인을 맡아보는 신이다.
[주D-017]헌원산(軒轅山)에서 곰으로 변하여 : 우 임금이 치수할 때 헌원산에서 곰으로 변했다고 한다.
[주D-018]당일에……공적 : 《서경》〈대우모(大禹謨)〉에 순 임금이 말하기를, “이리 오라, 우야. 홍수가 나를 경계하거늘, 아뢴 말을 실천하고 공을 이룬 것은 그대가 현명하기 때문이다.〔來禹 洚水儆予 成允成功 惟汝賢〕” 하였다.
[주D-019]탕(湯) 임금이……힘쓰느라 : 박(亳)은 상(商)나라 탕 임금이 도읍한 곳이고, 소의간식(宵衣旰食)은 날이 새기 전에 일어나 옷을 입고 해가 진 후에 저녁을 먹는다는 뜻으로 제왕이 정사에 부지런한 것을 이른다.
[주D-020]음성(淫聲)과……않았네 : 《서경》〈중훼지고(仲虺之誥)〉에 “왕께서는 음성과 미색(美色)을 가까이하지 않고 재화(財貨)와 이익을 증식하지 않았습니다.〔惟王 不邇聲色 不殖貨利〕” 하였다.
[주D-021]열한……이기었고 : 《맹자》〈등문공 하(滕文公下)〉에 이르기를, “탕 임금이 첫 번째 정벌을 갈(葛)나라로부터 시작하여 11개국을 정벌하매 천하에 대적할 이가 없었으니, 동쪽을 향하여 정벌하면 서쪽 오랑캐가 원망하고 남쪽을 향해 정벌하면 북쪽 오랑캐가 원망하여 ‘어찌하여 우리를 뒤에 정벌하시는가.’ 하였다.〔湯始征 自葛載 十一征而無敵於天下 東面而征 西夷怨 南面而征 北狄怨曰 奚爲後我〕” 하였다.
[주D-022]붕어하고……뒤집혔네 : 《맹자》〈만장 상(萬章上)〉에 이르기를, “이윤이 탕 임금을 도와 천하에 왕이 되게 하였더니, 탕 임금이 붕어하자 태정은 즉위하지 못하고 죽었고 외병은 2년, 중임은 4년 재위하였으며 태갑이 즉위하여 탕 임금의 떳떳한 법을 전복시켰다.〔伊尹相湯 以王於天下 湯崩 太丁未立 外丙二年 仲壬四年 太甲顚覆湯之典刑〕” 하였다.
[주D-023]주공(周公)은……기다렸고 : 《맹자》〈이루 하(離婁下)〉에 이르기를, “주공은 삼왕을 겸하여 네 가지 일을 시행하기를 생각하되 부합하지 않는 것이 있으면 우러러 생각하여 밤으로써 낮을 이었고 다행히 터득하게 되면 앉아서 새벽이 되기를 기다렸다.〔周公 思兼三王 以施四事 其有不合者 仰而思之 夜以繼日 幸而得之 坐以待旦〕” 하였다. 삼왕은 탕 임금, 문왕, 무왕을 이른다.
[주D-024]무일편(無逸篇)을……탄식하였네 : 〈무일〉은 《서경》의 편명이다. 《서경집전》에 의하면, 성왕(成王)이 처음 정사를 다스릴 때에 주공이 그가 편안함만 알고 편안하지 말아야 함을 알지 못할까 염려하여 이 글을 지어 훈계하였다고 한다. 〈무일〉에 “주공왈 오호(周公曰嗚呼)”라고 한 것이 모두 일곱 번이다.
[주D-025]우주가……없지만 : 주공이 제정한 뛰어난 예악을 말한다. 《예기(禮記)》〈명당위(明堂位)〉에 “주공이 예법을 제정하고 음악을 지으며 도량형을 반포하자 천하가 크게 복종하였다.〔周公 制禮作樂 頒度量 而天下大服〕” 하였다.
[주D-026]평왕(平王)이……쓸쓸해지니 : 주(周)나라 평왕이 동천(東遷)한 뒤로 서주(西周)의 궁궐에 잡초가 쓸쓸히 우거져서 문왕ㆍ주공의 부지런했던 정치가 덧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리(黍離)는 《시경》〈왕풍(王風)〉의 편명으로, 주나라가 낙양(洛陽)으로 동천한 뒤 대부(大夫)가 옛 수도인 호경(鎬京)을 지나다가 종묘(宗廟)와 궁성의 터가 폐허가 되어 기장만 무성한 것을 보고 슬퍼하여 읊은 시이다.
[주D-027]한 고조(漢高祖)……도모했고 : 제갈량(諸葛亮)의 〈후출사표(後出師表)〉에 “고제는 밝음이 일월과 같으시고 모신들은 지혜가 못처럼 깊었으나 위험을 겪고 상처를 입어 위태로운 뒤에야 편안하였습니다.〔高帝 明竝日月 謀臣淵深 然涉險被創 危然後安〕” 하였다. 한 고조 유방(劉邦)이 광무(廣武)의 싸움에서 항우(項羽)의 군사가 쏜 화살에 가슴을 맞아 중상을 입은 적이 있다. 《史記 卷8 高祖本紀》
[주D-028]광무제(光武帝)는……풀었으며 : 광무제가 초야에 노숙하며 요양(饒陽) 무루정(無蔞亭)에 이르렀을 때 날이 몹시 추웠는데, 풍이(馮異)가 콩죽을 올렸다. 이튿날 아침에 광무제가 여러 장수에게 말하기를, “어제 공손의 콩죽을 먹고서 굶주림과 추위가 모두 풀렸다.〔昨得公孫豆粥 飢寒俱解〕” 하였다. 공손은 풍이의 자(字)이다. 《後漢書 卷17 馮異列傳》
[주D-029]유현덕(劉玄德)은……흘렸고 : 현덕은 촉(蜀)의 선주(先主) 유비(劉備)의 자이다. 유비가 형주(荊州)의 유표(劉表)에게 수년간 의탁하고 있을 때에 변소에 갔다가 넓적다리에 살이 오른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유표가 괴이하게 여겨 그 까닭을 물으니, 유비가 말하기를, “나는 일찍이 말안장을 떠나지 않아 넓적다리 살이 모두 빠졌었는데, 지금 다시 말을 타지 않아 넓적다리에 살이 올랐소. 세월은 쏜살같아 늙음이 닥치려 하거늘 공업을 세우지 못하고 있으니 이 때문에 슬퍼하오.” 하였다. 《三國志 卷32 蜀書 先主傳 注》
[주D-030]당 태종(唐太宗)은……빨았네 : 당 태종이 요동을 침략하여 백암성(白巖城)을 공격할 때 우무위장군(右武衛將軍) 이사마(李思摩)가 화살에 맞았다. 태종이 그를 위하여 친히 피를 빨아주자 장수와 사졸들이 모두 감격하였다고 한다. 《貞觀政要 仁惻》
[주D-031]송 태조(宋太祖)는……도모했고 : 황포(黃袍)는 황색의 도포로, 천자가 입는 옷이다. 이 구절은 송나라 태조가 장수들에 의해 천자로 추대될 때의 일을 읊은 것이다. 태조가 일찍이 진교(陳橋)에 이르러 취하여 누워 있었다. 이른 새벽에 제장(諸將)들이 갑옷을 입고 무기를 잡고서 곧바로 침문(寢門)을 열며 말하기를, “제장들에게 주군(主君)이 없어 태위(太尉)를 천자로 삼고자 합니다.” 하였다. 태조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황포가 이미 몸에 걸쳐지게 되었다고 한다. 《宋史 卷1 太祖本紀》
[주D-032]노속(勞俗)은……흘렸었네 : 미상이다.
[주D-033]삼묘(三苗)를……기약했네 : 삼묘는 강남(江南)의 형주(荊州)와 양주(揚州) 사이에 있었던 나라 이름이다. 순(舜) 임금이 삼묘를 삼위(三危) 땅으로 몰아내었다고 한다. 《書經 舜典》
[주D-034]공자의……일어나니 : 공자가 천하를 떠도느라 앉은 자리가 따뜻해질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정대한 의논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공석묵돌(孔席墨突)의 고사를 차용하였다.
[주D-035]하루아침에……되었네 : 공자가 세상을 떠남을 이른다. 공자가 장차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말하기를, “태산이 무너지고 대들보가 꺾이고 철인이 쓰러질 것이다.” 하였고, 또 두 기둥 사이〔兩楹之間〕에 앉아 제전(祭奠)을 받는 꿈을 꾸고는 장차 죽게 될 것임을 예견하였는데, 7일 뒤에 세상을 떠났다. 《禮記 檀弓上》
[주D-036]위백양(魏伯陽) : 한나라 때의 선인(仙人)으로 도술(道術)를 좋아하여 장생불사한다는 단약(丹藥)을 연구하였다. 제자 세 사람과 같이 산중에 들어가서 단약을 구워 만들어서 신선이 되었다 한다. 그의 저술에 《참동계(參同契)》라는 것이 유명하다.
[주D-037]거의……뻔했으나 : 불로장생할 뻔했다는 말이다. 칠요(七耀)는 일월(日月)과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 오성(五星)을 가리킨다. 이백(李白)의 〈비룡인(飛龍引)〉 시에 “자황께서 이에 흰토끼가 찧은 약을 내려주니, 하늘을 뒤로하고 삼광을 시들게 하네.〔紫皇乃賜白兔所擣之藥方 後天而老凋三光〕” 하였다.
[주D-038]이제(二帝)와 삼모(三謨) : 이제는 《서경》의 〈요전(堯典)〉, 〈순전(舜典)〉이고, 삼모는 〈대우모(大禹謨)〉, 〈고요모(皐陶謨)〉, 〈익직(益稷)〉이다.
[주D-039]구마라습(鳩摩羅什)의 번역 : 구마라습은 삼종론(三宗論)의 개조(開祖)이다. 서역(西域) 구자국(龜玆國) 태생으로 후진(後秦) 때 장안(長安)에 들어와서 경론(經論) 300여 권을 번역하였다.
[주D-040]일원(一元)의……날 : 천지가 운행이 다하는 날이다. 일원은 소옹(邵雍)의 원(元)ㆍ회(會)ㆍ운(運)ㆍ세(世)에 입각하여 말한 것으로, 하늘과 땅이 개벽하여 끝나는 기간이라 한다.

 

추강집 제1권
 부(賦)
득지락부(得至樂賦) 내가 〈애인생부〉를 짓고 나니, 몸 밖의 결습(結習)이 사라지고 마음속의 천유(天游)가 자재(自在)하였다. 술이 다하고 사람들이 흩어졌으나 흥취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아 다시 〈득지락부〉를 지었다.


내 일찍이 멀리 유람함이여 / 余曾遠遊兮
지락이 있는 곳을 찾음일세 / 求至樂之所在
걸음이 상하에 두루 닿았고 / 行李彌於上下兮
족적이 사해에 널리 미쳤네 / 足跡遍於寰海
약화를 꺾어 반찬으로 삼고 / 折若華而爲羞兮
경실을 찧어 양식으로 삼아
/ 精瓊實而爲粻
공동을 지나 엄자에 이르고 / 歷崆峒而崦嵫
월굴을 넘어 부상에 닿았네
/ 超月窟而扶桑
빠른 기린과 천리마를 타고 / 乘麒騏之瀏瀏兮
밤낮을 이어서 쉬지 않았네 / 繼日夜而不休
아 천체가 왼쪽으로 돎이여 / 羌天體之左轉兮
어찌나 하늘 축이 굴러가던지 / 何回極之浮浮
해가 뉘엿뉘엿 저물려 함이여 / 日曖曖其將暮兮
아 내 인생이 때를 만나지 못했도다 / 嗟余生之不時
내 수레 남으로 돌려 은하수 건너고 / 南余轅兮航銀渚
사명에게 나아가서 말씀을 아뢰었네 / 就司命而陳詞
내 벽지에 태어난 지 거의 사십 년 / 余生一隅垂四十年兮
어찌 뜻은 크건만 계책은 엉성했던가 / 何志大而計疎
떠들썩하게 비방의 말이 일어남이여 / 聒簧口之嘈嘈兮
내 처음 먹었던 뜻이 바뀌게 되었다오 / 志已改於余初
굶주림과 추위가 내 마음 혼란시키고 / 飢寒亂我心曲兮
세상일이 날마다 어지럽게 생기노라 / 世故逐日而繽紛
하루도 입을 엶이 없어야 할 것이니 / 無一日之開口兮
백년의 근심과 수고로움이 있으리라 / 有百年之憂勤
마음이 울적하여 풀리지 않음이여 / 心絓結而不解兮
심중이 근심으로 안절부절 못하노라 / 中憫瞀之忳忳
신명이 나를 만난 인연에 힘입어 / 願賴夫神明之結我兮
지락의 문을 보여주길 원하노라 / 顧示至樂之門
사명이 하나의 비결을 남겨주니 / 司命留一訣兮
지극히 귀중하여 비할 바 없도다 / 至貴而無偶
근심과 즐거움은 일정함이 없어 / 憂樂無方兮
가는 곳마다 생기게 마련이지만 / 隨處而有
방촌의 사이에는 / 方寸之間兮
천유가 구차하지 않거늘
/ 天游不苟
괴롭게도 어찌 몸 밖에서 찾느라 / 苦何求之身外兮
분주함에 붉은 얼굴 시들게 하나 / 彫朱顔於奔走
말을 듣고 홀연히 깨달으니 / 聞言忽悟兮
술에 취했다 깨어난 듯하네 / 如醉而醒
황급히 수레를 되돌려서 / 星言回駕兮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니 / 復夫故鄕
언덕은 예전 그대로이고 / 一丘依然兮
전원도 황폐하지 않았네 / 田園不荒
아이들의 땋은머리도 어제와 같으며 / 兒童頭角如昨兮
어머님 백발도 쇠하지 않았고 / 慈顔白髮不衰
아내는 살아서 만남을 기뻐하며 / 室人歡喜於生逢兮
친척도 기쁜 듯 반가운 눈빛이라 / 親戚靑眼以怡怡
친구는 술병 들고 와서 위로하니 / 情朋壺酒以來慰兮
모든 일이 예전과 바뀌지 않았네 / 萬事不改於舊時
육착이 홀연히 통하여 아홉 구멍이 소통되고 / 六鑿忽透兮九竅通
허심하게 사물을 응하여 즐거움이 또 무궁하네 / 虛以應物兮樂且無窮
구천의 용과 코끼리 춤추고 / 舞九天之龍象兮
옥 방울이 딸랑딸랑 울리네 / 鳴玉鑾之啾啾
지락을 얻어 지락에서 노니니 / 得至樂而遊至樂兮
또한 무엇을 염려하고 무엇을 구할까 / 亦何慮而何求
천뢰는 귀에 들어와 소리가 되고 / 天籟入耳而爲聲兮
역상은 눈에 깃들어서 빛이 되도다 / 易象寓目而爲色
소리와 빛이 된 까닭은 찾을 수 없으니 / 所以爲聲色者覓不得兮
나를 따르는 벗들이 무극이라 이름하네 / 朋來隨我者名無極兮


 

[주D-001]약화(若華)를……삼아 : 약화는 약목(若木)의 꽃이고, 경실(瓊實)은 선과(仙果)의 별칭이다. 약목은 곤륜산(崑崙山)에 자란다는 전설 속의 나무이다.
[주D-002]공동(崆峒)을……닿았네 : 공동은 황제(黃帝)가 광성자(廣成子)에게 도를 물었다는 산 이름이고, 엄자(崦嵫)는 해가 진다는 전설상의 산 이름이다. 월굴(月窟)은 달이 지는 곳이고, 부상(扶桑)은 해가 돋는다는 전설상의 지명이다.
[주D-003]방촌(方寸)의……않거늘 : 방촌은 마음을 가리키는 말로, 심장의 크기가 사방 한 치인 데서 연유한다. 천유(天游)는 마음이 몸의 주인이 되어 천리(天理)로써 스스로 즐거워함을 말한다. 《장자》〈외물(外物)〉에 “사람의 몸에는 텅 빈 공간이 있고 마음은 그 속에서 천유한다. 마음에 천유가 없으면 육착(六鑿)이 서로 빼앗을 것이다.〔胞有重閬 心有天遊 心無天遊 則六鑿相攘〕” 하였다.
[주D-004]육착(六鑿) :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ㆍ의(意)의 육근(六根)을 말한다.
[주D-005]천뢰(天籟) : 하늘의 피리소리로, 자연의 소리이다. 《장자》〈제물론〉에 “너는 사람의 피리소리는 들었으나 땅의 피리소리는 듣지 못했고, 너는 땅의 피리소리는 들었을지라도 하늘의 피리소리는 듣지 못했을 것이다.〔汝聞人籟而未聞地籟 汝聞地籟而未聞天籟夫〕” 하였다.

 

 

추강집 제1권
 부(賦)
거문고 부〔玄琴賦〕


천지조화 처음 굴러 쉼 없이 운행되니 / 洪鈞初轉流不舍
성대한 기운 발육시켜 모두가 변화하네 / 氤氳發育同而化
바른 소리 생기고 송축 노래 일어나니 / 正聲生兮歌頌興
십이율이 아각에서 처음으로 정해지고 / 律呂肇於阿閣
피리 생황 거문고 비파의 명칭과 제도 / 簫笙琴瑟之名數
성인을 기다려서야 번갈아 만들어졌네 / 待聖人而迭作
헌원씨로부터 요순에 이르기까지 / 自軒轅而堯舜
팔음이 천하에 두루 퍼지더니 / 八音遍於九州
현학이 천 년에 한 번 내려와서 / 玄鶴千年而一下
함원전 머리에서 울었네 / 鳴含元之殿頭
여왕이 음을 본떠 악기를 만드느라 / 麗王象音而刱物
신묘한 계책을 마음속에 운용했고 / 運神機於宸衷
악기를 만들어 거문고라 이름하니 / 制爲樂器曰玄琴
남산 우뚝한 오동나무를 다 사용했네 / 罄南山之孤桐
여덟 방위를 중첩하여 괘를 설치하니 / 重八位而置卦
열여섯 괘(棵)가 밝게 돌아가네 / 十有六其昭回
여섯 개 현은 육기에 배속하고 / 六絃配於六氣
세 개 기둥은 삼재에 참여하니 / 三柱參於三才
그 당시에 일어났던 예악 문물이 / 興當日之禮樂
성상 시대 이르러 더욱 꽃피었네 / 至聖明而益開
소리가 청아하여 옛날보다 나으니 / 聲音雅而軼古
후기가 왕손 중에 태어났고 / 后夔生於金枝
거문고 잡고서 이름 내달리려 / 執玄琴而騁名
서호를 받들어 스승을 삼았네 / 推西湖而爲師
생각건대 서호의 주인은 / 惟西湖主人
풍채가 대범하고 중후하며 / 風儀簡重
골법이 순수하고 아름답고 / 骨法粹美
태어나면서 관현악을 알아 / 生知管絃
사양의 손가락을 꺾었네 / 攦師襄指
우조는 장대한 가락이라 / 羽調壯
항왕이 힘차게 말 몰아 / 項王躍馬
명검을 허리에 울리며 / 雄劍腰鳴
큰 강 서쪽을 공격하여 / 大江以西
견고한 성이 없는 듯하네 / 攻無堅城
만조는 한가한 가락이라 / 慢調閒
금리 선생 / 錦里先生
초당에는 낮 해가 긴데
/ 艸堂日長
아내가 잿불을 헤칠 때 / 山妻撥灰
토란과 밤 향기로운 듯하네 / 芋栗馨香
평조는 조화로운 가락이라 / 平調和
낙양 땅 삼월에 / 洛陽三月
소자가 수레를 타고 / 邵子乘車
온갖 꽃 우거진 속으로 / 百花叢裏
고삐 풀고 천천히 가는 듯하네 / 信轡徐徐
계면조는 원통한 가락이라 / 界面調怨
정영위가 고향을 떠났다가 / 令威去國
천년 뒤 비로소 돌아오니 / 千載始歸
즐비한 무덤 앞에 / 纍纍塚前
성곽만 의구하고 옛사람 사라진 듯하네
/ 物是人非
밤섬에 비둘기 울고 / 至若栗島鳩鳴
양화진 날씨 맑으며 / 楊花日晴
저택이 한강 향하고 / 朱門面江
십 리에 봄빛 밝을 때 / 十里春明
방초를 묶고 혜초를 깔고서 / 結芳艸而藉蕙
흰 팔 내밀어 서서히 퉁기니 / 攘皓腕而徐彈
궁음이 넉넉하여 온갖 귀에 순한지라 / 宮音紆遠而百耳順
어룡이 나와서 듣고 함께 기뻐하네 / 魚龍出聽兮共成歡
온갖 꽃 나부끼고 추사가 가까우며 / 若復百花飄綻近秋社
온 강물 넘실대고 나뭇잎 떨어질 때 / 千江始壯木葉下
흰 마름 올리고서 거문고 줄 뜯으니 / 登白蘋而撥絃
광막한 들판에 가을비 그치게 하네
/ 逗秋雨於曠野
오질이 잠을 깨뜨리고 / 吳質破眠
금오가 둥지 떠나니 / 日烏離棲
옥토끼도 물러서고 항아도 우네 / 玉兔却立姮娥啼
높고 높은 잠실 고개 / 蠶嶺峨峨
그 위에 단풍 숲 있으니 / 上有楓林
상음 한 곡조가 가을 마음 상심케 하네 / 商音一曲傷秋心
음악이 반쯤 연주되었을 때 / 樂半
추강거사가 주인에게 읍하고 말하기를 / 有秋江居士揖主人而言曰
아름답도다 조화로운 소리여 / 美哉渢渢
넓도다 밝고 밝은 소리여 / 廣矣熙熙
곧으면서 거만하지 않고 / 直而不倨
조화로우면서 해이하지 않네 / 和而不弛
그러나 또 저 심음과 격률의 방법을 아는가 / 然亦知夫審音格律之方乎
궁음이 장대함은 임금을 높임이고 / 宮長尊君
상음이 은미함은 신하를 누름이고 / 商微抑臣
치음이 짧음은 사무이기 때문이고 / 徵短者事
각음이 낮음은 백성이기 때문이라 / 角卑者民
순궁은 사단에 있어 인이 되고 / 順宮者四端爲仁
이기에 있어 양이 되고 / 二氣爲陽
오행에 있어 목이 되고 / 五行爲木
사상에 있어 강이 되고 / 四象爲剛
십이진에 있어 자월이 되고 / 辰爲子月
십이율에 있어 황종이 되고 / 律爲黃鍾
《주역》에 있어서는 건이 되고 / 其在易曰爲乾
사람으로는 요순 복희 신농이네 / 於人堯舜羲農
변궁은 사단에 있어 의가 되고 / 變宮者四端爲義
이기에 있어 음이 되고 / 二氣爲陰
사상에 있어 유가 되고 / 四象爲柔
오행에 있어 금이 되고 / 五行爲金
십이진에 있어 신월이 되고 / 辰爲申月
십이율에 있어 이칙이 되고 / 律爲夷則
《주역》의 괘로는 혁괘가 되고 / 易布卦而爲革
사람으로는 탕무의 방벌이라오 / 爲湯放與武伐
주인이 재배하고 말하기를 그렇소 / 主人再拜曰諾
듣는 즉시 도의 소재를 알겠으니 / 耳聞道存
그대의 훌륭한 말을 스승 삼겠소 / 師汝昌言


 

[주D-001]십이율이……정해지고 : 십이율은 음악의 표준인 육률(六律)과 육려(六呂)이다. 황제(黃帝)가 악관(樂官) 영윤(伶倫)에게 악률(樂律)을 만들라고 명하자, 영윤이 해계(嶰谿) 골짜기 대나무를 취하여 12개의 통(筒)을 만들고 봉황의 울음소리를 듣고서 12음률을 구별했는데, 수컷 울음소리로 육률을 삼고 암컷 울음소리로 육려를 삼았다고 한다. 《呂氏春秋 仲夏紀 古樂》 아각(阿閣)은 사면에 모두 차양이 있는 누각이다. “옛날 황제 헌원씨 때에 봉황이 아각에 둥지를 틀었다.〔昔黃帝軒轅 鳳凰巢阿閣〕” 하였다. 《文選 古詩 西北有古樓 李善注》
[주D-002]후기(后夔) : 순(舜) 임금 때 음악을 맡았던 사람이다.
[주D-003]사양(師襄)의 손가락을 꺾었네 : 사양을 능가한다는 말이다. 사양은 악사(樂師)인 양(襄)으로, 공자가 사양에게 음악을 배웠다고 한다. 《古文眞寶後集 卷4 師說》
[주D-004]금리(錦里) 선생……긴데 : 두보(杜甫)가 한가하게 지내던 때를 말한다. 두보의 〈남린(南隣)〉 시에 “오각건을 쓴 금리 선생이여, 밭에서 토란과 밤을 수확하니 온통 가난하진 않구나.〔錦里先生烏角巾 園收芋栗不全貧〕” 하였다. 이 시는 두보가 금리(錦里)에 있을 때 남쪽 이웃 주산인(朱山人)과 왕래하면서 지은 것이다.
[주D-005]소자(邵子)가 수레를 타고 : 소자는 북송(北宋) 때의 소옹(邵雍)이다. 소옹이 외출할 때에 작은 수레를 타고 한 사람이 끌게 하여 오직 마음 내키는 대로 다녔다고 한다. 《宋史 卷427 邵雍列傳》
[주D-006]정영위(丁令威)가……듯하네 : 도연명(陶淵明)의 《수신후기(搜神後記)》에 “정영위는 본래 요동(遼東) 사람으로 영허산(靈虛山)에서 도를 배워 신선이 되었는데, 그가 뒤에 학으로 화하여 성문 앞의 큰 기둥인 화표(華表)에 앉아 있었다. 이때 한 소년이 활로 쏘려고 하자 학이 날아서 공중을 배회하며 말하기를, ‘새여, 새여, 정영위로다. 집을 떠난 지 천년 만에 이제야 돌아오니, 성곽은 예전과 같은데 백성은 옛사람이 아니로다. 어찌 신선술을 배우지 않아 무덤만 즐비한가.〔有鳥有鳥丁令威 去家千年今始歸 城郭如故人民非 何不學仙塚纍纍〕’ 하고 날아가 버렸다.” 하였다.
[주D-007]추사(秋社) : 입추 뒤 다섯 번째 무일(戊日)에 토지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주D-008]온 강물……하네 : 봄이 지나고 가을이 되었을 때 가인(佳人)을 기다리며 현금(玄琴)을 탄다는 말이다. 《초사(楚辭)》〈상부인(湘夫人)〉에 “가을바람 살랑살랑 불어오니, 동정호에 물결 일고 나뭇잎 떨어지네. 흰 마름을 제물(祭物)로 올리며 멀리 바라봄이여, 가인과 함께하길 기약하며 저녁에 장막을 설치하노라.〔嫋嫋兮秋風 洞庭波兮木葉下 登白蘋兮騁望 與佳期兮夕張〕” 하였고, 이하(李賀)의 〈이빙공후인(李憑箜篌引)〉 시에 “여와가 오색석(五色石)을 구워 하늘을 기운 곳에, 돌이 깨지고 하늘이 놀라 가을비를 그치게 하네.〔女媧鍊石補天處 石破天驚逗秋雨〕” 하였다.
[주D-009]오질(吳質) : 달 속의 신(神)인 오강(吳剛)을 말한다. 이하(李賀)의 〈이빙공후인(李憑箜篌引)〉 시에 “오질이 잠 못 이루며 계수나무에 기대어 섰고, 이슬이 비껴 날아 차가운 달을 적시네.〔吳質不眠倚桂樹 露脚斜飛濕寒兎〕” 하였다.
[주D-010]금오(金烏) : 해 속에 산다는 삼족오(三足烏)를 말한다.
[주D-011]항아(姮娥) : 달 속에 산다는 선녀 이름이다.
[주D-012]탕무(湯武)의 방벌(放伐) : 탕왕이 걸(桀)을 유치(留置)하고 무왕이 주(紂)를 정벌한 것을 말한다.

 

추강집 제1권
 시(詩)○사언고시(四言古詩)
사선정(四仙亭)에 적다


바위 앞에는 미역 캐고 / 巖前采藿
바위 면에는 대합 캐네 / 巖面采蛤
오래 앉았다 무심해지니 / 坐久無心
백구가 심히 가까이하네 / 白鷗甚狎
푸른 바다 닿을 곳 없고 / 滄溟無津
땅의 굴대는 끝이 없네 / 坤軸無極
이에 알겠노라 이 신세 / 是知身世
큰 창고의 한 좁쌀임을 / 太倉一粟
마음은 본래 텅 비었고 / 心兮本虛
동정은 물과 같은지라 / 動靜如水
물결이 자면 고요하고 / 波伏而伏
물결이 일면 움직이네 / 波起而起
위도 하늘 아래도 하늘인데 / 上天下天
네 개 바위가 몹시 기이하네 / 四石絶奇
아마도 꿈속의 일인 듯하여 / 疑是夢中
아쉬운 마음에 돌아가길 잊노라 / 眷戀忘歸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첩박명(妾薄命) 2수


주인댁 삼천 명 첩 가운데 / 主家三千妾
첩의 몸이 은총이 지극했소 / 妾身恩寵極
천금으로 비취머리 장식하고 / 千金粧翠髮
백금으로 얼굴빛을 꾸몄다오 / 百金調顔色
은총 깊고 고운 얼굴 믿어서 / 恩深恃蛾眉
여칙은 외울 겨를 내지 않았소 / 不暇誦女則
미색으로 섬겼던 일 한탄하니 / 但恨色事人
덕으로 섬김만 같지 못했구려 / 不如事以德
예전 총애 받을 땐 어여뻤으나 / 萋斐竟寧前
아름다운 곡식에 벌레가 생기니 / 佳穀生螟螣
끝끝내 눈길 한번 돌리지 않고 / 終然不可目
번화한 거리 곁에 내던져 두었소 / 擲置九衢側
가령 부인의 순한 덕 지켰더라면 / 假令守婦順
어찌 이런 참혹한 일 만났겠는가 / 安能遭此酷
후회해도 참으로 어쩔 수 없는 일 / 後悔諒無由
하루아침에 뜻밖의 재앙을 당했네 / 一朝禍不測
위에선 까마귀와 솔개가 울어대고 / 在上烏鳶嚇
아래선 땅강아지와 개미가 파먹네 / 在下螻蟻食
비록 단단히 묶여 떠나갈지라도 / 雖爲束縛去
또한 가시덤불에 묻히게 되리라 / 亦得埋荊棘
귀뚜라미 울어 갠 하늘 눈물짓고 / 蛩鳴晴昊泣
달이 떨어져서 온 숲이 깜깜하네 / 月落千林黑
주인의 은혜는 도처에 두터우니 / 主恩到處厚
저승의 긴 밤에 영원히 생각하리 / 脩夜長相憶




첩이 젊었을 때 길쌈을 잘했고 / 妾少治紡績
재주도 겸하여 경사를 섭렵했네 / 才兼經史涉
군자의 집으로 시집온 뒤로는 / 得登君子堂
한번 돌아보매 은총이 넘쳐났네 / 一顧恩波浹
슬픔과 기쁨은 서로 찾아오는 법 / 悲歡亦相仍
총애만 한결같이 가질 수 없었네 / 有寵不得挾
붉은 얼굴이 꽃처럼 고왔지만 / 紅顔豔如花
이내 운명 낙엽처럼 박했다오 / 有命薄如葉
가을바람 나에게 급하게 불어 / 秋風吹我急
부채처럼 상자 속에 버려졌다오 / 團扇棄諸篋
좋은 글을 사들일 돈이 없어서 / 無金買好賦
저물녘에 눈물로 붉은 뺨 적셨네 / 薄暮啼紅頰
장문궁에는 찬 해만 희게 비치고 / 長門寒日白
가을이 이르러 풀숲만 처량하네 / 秋至草莽菨
주인의 은혜는 갚지도 못하고 / 不得報主恩
하루저녁에 저승길로 나서네 / 一夕修冥業
한 끼 곡식 담아서 내게 올리고 / 奠我一飯粟
수 폭 무명으로 나를 염습하며 / 斂我數幅氎
푸른 덩굴 가지로 나를 묶어서 / 束我靑藤枝
첩첩산중으로 나를 보내었소 / 送我山重疊
바람 불어 지는 해 황금빛이고 / 風吹落日黃
우레 울어 산귀신도 두려워하네 / 雷鳴山鬼慴
어느 때나 이 원한 녹을 것인가 / 何時寃恨銷
무덤 속서 만겁 세월 보내나이다 / 窀穸度萬劫


 

[주C-001]첩박명(妾薄命) : 한나라 악부(樂府)의 하나로, 여인이 자신의 박명을 탄식하는 내용이다. 한나라 성제(成帝)의 황후인 허 황후(許皇后)가 총애를 잃었을 때 한나라에 재변이 들었다. 당시 이 재변의 책임을 내전(內殿)에 돌리자, 허 황후가 스스로 변론하여 말하기를 “첩이 박명하여 정히 선왕의 때를 만났습니다.〔妾薄命端遇景寧前〕” 하였다. 경녕(竟寧)은 원제의 네 개 연호 중에 마지막 연호이다. 성제를 직접 말할 수 없어 원제를 거론한 것이다. 《漢書 卷97下 外戚傳 孝成許皇后》
[주D-001]좋은……없어서 : 한 무제(漢武帝)의 진 황후(陳皇后)가 총애를 잃고 장문궁(長門宮)에 있을 때에 부(賦)를 잘 짓는 사마상여(司馬相如)에게 황금 백근을 보내어 자신의 고독하고 처량한 신세를 털어놓았다. 사마상여가 〈장문부(長門賦)〉를 지어 주상을 깨닫게 하여 황후가 다시 총애를 얻었다고 한다. 《文選 長門賦 序》 그러나 역사적 사실과는 다소 차이가 있으니, 진 황후는 폐위되었다.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이릉(李陵)과 소무(蘇武)가 하량(河梁)에서 이별하다 이 시는 칠언고시(七言古詩)에 편입되어야 할 듯하다.*


한 사람은 오천 군사의 장수가 되어 / 一爲五千將
오천 군사 기련 언덕에서 전멸하였고
/ 五千死盡祁連坂
한 사람은 부절 잡은 사신이 되었다가 / 一爲持節使
큰 움에 깊이 갇혀 가죽 씹어 먹었네
/ 幽囚大窖氈爲飯
십구 년 동안 모진 어려움 다 겪고서 / 艱難十九年
한 마리 오리 먼저 남쪽으로 돌아가네 / 一鳧先南返
그대 돌아가거든 무릉 찾아 곡하고 / 君歸哭茂陵
원신의 간절한 마음 모쪼록 아뢰어주오 / 須陳遠臣懇
백발에도 변치 않는 임 향한 이 마음 / 白首葵傾心
다른 사람 그 누가 스스로 헤아릴까 / 他人誰自忖
신 술로는 기쁨을 이루지 못하고 / 酸酒不成歡
언 비에 푸른 봉우리만 시름겹네 / 凍雨愁蒼巘
된서리는 온갖 풀을 시들게 하고 / 嚴霜凋百艸
겨울바람은 명해에 가득하구나 / 朔風溟海滿
산은 겹겹이고 시력은 짧나니 / 山重目力短
차가운 날씨에 한 해가 저무네 / 天寒歲年晩


 

[주D-001]한……전멸하였고 : 기련(祁連)은 흉노족이 사는 곳의 산 이름이다. 한 무제 때 이릉(李陵)이 군사 오천 인을 거느리고 흉노에 대비하다가, 보병 부대를 이끌고 준계산(浚稽山)에서 선우(單于)의 군대 수천 인을 격살(擊殺)했으나 후속 부대의 지원이 없어 군사가 전멸하고 자신은 흉노에 항복한 것을 말한다. 《漢書 卷54 李陵傳》
[주D-002]한……먹었네 : 한 무제 때 중랑장(中郞將) 소무(蘇武)가 흉노에 사신 갔다가 억류되어 큰 움 속에 갇히고 북해(北海)에서 양을 치는 등 19년 동안 갖은 고초를 겪었으나, 모직물을 뜯어 눈과 함께 씹어 먹고 땅을 파서 들쥐를 잡아먹으며 버티다가 소제(昭帝)가 즉위하여 흉노와 화친하자 한나라 부절을 안고 돌아오게 되었다. 《漢書 卷54 蘇武傳》
[주D-003]무릉(茂陵) : 한 무제의 능이다.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한강에서 영남의 전원으로 돌아가는 덕우(德優)를 송별하고 겸하여 항아(姮娥) 노랑(老娘)에게 보내다 2수


강북에는 지금 갈까마귀 우짖고 / 江北方啼鴉
강남에는 가을이 이미 한창이네 / 江南秋已午
늙음에 이르면 이별의 마음 아니 / 臨老別心知
쟁반의 단 냉이도 쓰기만 하구나 / 離盤甘薺苦
인간 세상에 인재 얻기 어려워서 / 人間才甚難
공자가 탄식을 발한 적이 있나니
/ 有嘆起尼父
사림의 선비들 두루 살펴보건대 / 歷覽士林中
그대의 시 솜씨 대가로 손꼽히네 / 君詩大家數
한스럽게도 천거하는 글이 없어 / 恨無薦鶚書
회음후가 번쾌와 대오를 함께하네 / 淮陰噲與伍
이 늙은 추강과 교분이 깊어서 / 交深老秋江
다행히 그대에게 용납을 받았네 / 幸爲子所取
생년도 같아 갑술년이고 / 生同甲戌年
거처도 같아 서울 땅이고 / 居同禁城土
스승도 같아 점필재를 섬기고 / 師同事畢齋
학업도 같아 훈고를 익히네 / 業同調訓詁
마음도 같아 분화를 싫어하고 / 心同惡紛華
행실도 같아 가난을 견디고 / 行同耐貧窶
뜻을 얻지 못함도 같아 / 落魄又同調
노년에 가무를 배운다네 / 晩來學歌舞
거문고와 바둑으로 생애를 삼고 / 琴棊作生涯
취향에 놀아 세월이 예스럽더니 / 醉鄕日月古
이별이 어찌 이리 갑작스러운가 / 離別一何遽
어지러운 구름이 비를 불어오네 / 亂雲吹以雨
아이종은 증별시를 거두어 가고 / 奚奴收贈詩
뱃사공은 이별의 노를 울리누나 / 篙工鳴別櫓
시가 이루어진 이릉의 자리라서 / 詩成李陵席
아득한 포구에 눈물이 떨어지네 / 有淚垂極浦




가을은 다시 봄이 되지 못하나니 / 秋天不復春
눈물 거두며 그대 행차 보낸다오 / 收淚送君行
해질 무렵 험한 길 나서는 사람아 / 坎壈薄暮人
말 앞의 강물도 평온하지 않구려 / 馬前江不平
해가 떨어져서 온 숲이 어두우니 / 日落千林黑
반딧불이 내게 몹시 밝게 보이네 / 螢火吾甚明
일생은 백구가 틈을 달려감이요 / 人間白駒馳
영화는 귀를 스치는 바람 소리라 / 榮華過耳聲
인하여 사십 년 세월 탄식하나니 / 因嗟四十年
배운 바가 어떤 일이 이루어졌나 / 所學何事成
술 선생에게 이내 몸 의탁했으나 / 麴生託末契
돈 형님은 제대로 섬기지 못했네 / 不能事錢兄
늙은 뒤로 온갖 생각 쇠퇴하지만 / 老來萬慮衰
은둔의 맹세만은 저버리지 않으리 / 但不負鷗盟
연전엔 관동 지방 여행하였고 / 前年關東行
거년에는 관서 지방 돌아보았지 / 去年關西征
지나간 해에는 두류산을 찾았다가 / 往歲尋頭流
동남의 여정을 모두 다 밟았었네 / 踏盡東南程
그 걸음이 해운대를 지나갈 때 / 行過海雲臺
미인이 두 눈으로 반가워했었지 / 美人開雙睛
물정이란 쇠잔한 사람을 싫어하니 / 物情惡衰歇
누가 썩은 선비의 이름 기억할까 / 誰記腐儒名
조운이 홀로 더러운 모습 견디며 / 朝雲獨耐醜
소 선생을 비루하게 여기지 않았네
/ 不鄙蘇先生
따라와선 온탕에서 나를 보살펴서 / 從來護溫湯
영원히 묵은 병을 낫게 하였다오 / 永使沈痾平
이별한 이래로 몇 해가 흘렀던가 / 別來幾寒暑
꿈속에서 경경이라 불렀으리라 / 夢中呼卿卿
그대 돌아가는 길 봉원을 지난다니 / 君歸過蓬原
그대를 보내며 어찌 무정히 있으랴 / 送君豈無情
이별에 임하여 시 한 수를 부치니 / 臨分寄一詩
좋은 옷 선물보다 의미가 깊으리 / 意重貂襜誠


 

[주C-001]덕우(德優) : 신영희(辛永禧 : 1454~1511)의 자(字)이다. 본관은 영산(靈山), 호는 안정(安亭)이다.
[주D-001]인간……있나니 : 공자가 말하기를, “인재를 얻기가 어렵다는 말이 옳지 않겠는가. 당우 이후로 주(周)나라가 가장 성대하였으나 부인이 들어 있으니 아홉 사람뿐이었다.〔孔子曰才難 不其然乎 唐虞之際 於斯爲盛 有婦人焉 九人而已〕” 하였다. 《論語 泰伯》
[주D-002]한스럽게도……없어 : 천악(薦鶚)은 어진 인재를 추천한다는 뜻이다. 후한(後漢) 공융(孔融)의 〈천예형표(薦禰衡表)〉에 “수리 수백 마리가 한 마리 큰 수리만 못하다.〔鷙鳥累百 不如一鶚〕” 하였다.
[주D-003]회음후(淮陰侯)가……함께하네 : 한신(韓信)이 초왕(楚王)에서 강등되어 회음후로 있을 때 하루는 번쾌(樊噲)의 집에 들렀더니, 번쾌가 무릎 꿇고 절하면서 “대왕께서 기꺼이 신의 집에 왕림하셨습니다.” 하였다. 한신이 문을 나서다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번쾌와 같은 대오가 되었구나.〔生乃與噲等爲伍〕” 하였다. 《史記 卷92 淮陰侯列傳》
[주D-004]시가……자리라서 : 하량(河梁)에서 이릉이 한나라로 귀국하는 소무에게 시를 지어준 것을 인용하였다. 《漢書 卷54 蘇武傳》
[주D-005]조운(朝雲)이……않았네 : 조운처럼 나를 잘 시중들었다는 말이다. 조운은 소식(蘇軾)의 애첩이다. 소식이 혜주(惠州)로 좌천되자 여러 첩이 모두 떠났으나 조운만은 끝까지 따랐다고 한다.
[주D-006]경경(卿卿) : 경(卿)은 아내가 남편을 친근하게 ‘그대’ 정도의 의미로 부르는 말이다. 진(晉)나라 왕안풍(王安豐)의 아내가 항상 안풍을 그대라고 하였다. 왕안풍이 말하기를, “아내가 남편을 그대라고 하는 것은 예법에 있어 불경(不敬)한 것이니, 다시는 그러지 마시오.” 하니, 아내가 말하기를, “그대를 친애하여 그대를 그대라 하는 것이니, 내가 그대를 그대라 하지 않으면 누가 응당 그대를 그대라 하겠소.〔親卿愛卿 是以卿卿 我不卿卿 誰當卿卿〕” 하였다고 한다. 《世說新語 惑溺》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조숙도(曺叔度)에게 부치다


조후는 시인 중의 성인이라 / 曺侯詩中聖
동국에 아름다운 명성 높구려 / 東家令聞尊
웅대한 마음 종횡으로 드러내고 / 英心呈縱博
빼어난 구절로 술내기를 하시네 / 秀句賭開罇
목마른 붕어가 물을 얻고 기뻐하듯 / 涸鮒喜得水
반년이나 은혜롭게 토론해 주더니 / 半年惠討論
생각지도 못하게 연분이 적었던가 / 不意緣分少
나를 등지고 오두막으로 돌아갔네 / 背我歸蓽門
외롭게 홀로 서서 짝할 이 없으니 / 煢煢立無偶
낙엽만 무너진 담을 메울 뿐이네 / 落葉塡毁垣
나를 기억할 사람 단연코 없으니 / 斷無人記取
늙고 병든 몸 날로 더욱 혼미하네 / 老病日益昏
찬 등불 잠 못 드는 사람 비추고 / 寒燈照無睡
밤비는 까닭 없이 넋을 녹이네 / 夜雨坐銷魂
훗날 그대와 다시 얘기할 때면 / 夫君如再話
곤륜산의 은자처럼 맑으시리라 / 淸似隱崑崙


 

[주C-001]조숙도(曺叔度) : 숙도는 조신(曺伸)의 자인 듯하다.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영남으로 돌아가는 풍애(楓崖) 우덕보(禹德父)를 보내며


우리 같은 무리 세상에 몇일까 / 吾徒世幾多
뜻 맞는 사람 한둘로 헤아릴 뿐 / 可人一二數
자정은 귀신 명부에 들어갔고 / 子挺落鬼錄
여경은 잡무 처리에 고달프네
/ 餘慶困刀簿
문을 닫고 앉아서 근심만 하는데 / 杜門但坐愁
초가지붕에 비바람 몰아치네 / 屋茅風以雨
마음 아는 이는 오직 덕보뿐이니 / 心知惟德父
마음 씀이 지극히 맑고 굳세구려 / 用心極淸苦
허나 우리 집에 오동나무 없으니 / 然我家無桐
어찌 봉황의 날개를 머물게 하리 / 安得留鳳羽
천 리를 달리려는 새로운 각오로 / 翻懷千里思
영남 땅으로 책 상자를 지고 가네 / 負笈嶺南土
말하기를 점필재 선생을 배알하고 / 爲言拜佔畢
곧이어 뇌계 주인을 찾을 것이고 / 旋訪㵢溪主
그런 뒤에 남쪽 바다를 구경하고 / 然後訪南溟
두류산 나무에서 몸을 쉬겠다 하네 / 躳憩頭流樹
어찌 더욱 나를 저버리려 하시는가 / 夫何益孤我
근심과 한스러움 종횡으로 교차하네 / 愁與恨交午
밀물은 차가운 다듬이 소리에 울고 / 落潮鳴寒杵
뭉게구름은 아득한 포구에 솟아나네 / 屯雲出極浦
산이 밝아 붉은 단풍 메마르고 / 山明紅葉乾
맑은 눈물 수풀 속에 떨어지네 / 淸淚迸林莽
돌아올 땐 응당 해가 바뀌리니 / 歸來應歲換
차마 이별의 금루곡 부르지 못하네 / 不堪唱金縷


 

[주C-001]우덕보(禹德父) : 덕보는 우선언(禹善言 : 생몰년 미상)의 자이다.
[주D-001]자정(子挺)은……고달프네 : 자정은 세상을 떠났고 여경(餘慶)은 공무를 보느라 고달프다는 말이다. 자정은 안응세(安應世)의 자, 여경은 홍유손(洪裕孫)의 자이다. 도부(刀簿)는 도필(刀筆)과 부서(簿書)로써 문서 작성, 재물 출납 등의 공무를 말한다.
[주D-002]뇌계(㵢溪) : 유호인(兪好仁 : 1445〜1494)의 호이다.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권유지(權裕之)에게 부치다


당성에서 여경을 이별하고 / 唐城別餘慶
월계에서 덕보를 하직하니 / 月溪辭德父
천백 리 밖으로 전송한지라 / 相送千百里
견우와 직녀 같은 신세라오 / 天孫與河鼓
자정이 내 꿈속에 들어오니 / 子挺入夢中
또한 평소에 보는 듯했지만 / 亦若平生睹
꿈속의 영혼은 떠나기 쉬운지라 / 夢魂易聚散
꿈 깬 뒤에 눈물 줄줄 흘렀다오 / 夢覺淚交午
그대 또한 타향에 계시니 / 夫君亦異鄕
내 어디서 법도를 취할까 / 吾安取規矩
평소 괴롭게도 철부지 아이들 / 平生苦兒輩
문밖에서 호언장담 떠드니 / 門外語詡詡
어찌하면 천일주를 얻어 / 安得千日酒
고락을 모두 잊을 수 있을까 / 坐忘樂與苦
노목은 참담히 하늘 닿았고 / 老樹慘連天
산성엔 시월에 비가 내리네 / 山城十月雨
맑은 눈물 옷과 수건 적시고 / 淸淚濕衣巾
거센 바람은 풀숲을 스쳐가네 / 長風抄林莽
그대 회포도 나와 같으리니 / 君懷亦如我
빨리 와서 얼굴을 보이시라 / 速來展眉宇


 

[주D-001]천일주(千日酒) : 옛날 중산(中山) 사람 적희(狄希)가 만들었다는 술로, 이 술을 마시면 취해서 천 일 동안 잠든다고 한다.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이천(伊川)으로 귀양가는 백연(伯淵)을 보내며


천고에 이름 전할 주자양처럼 / 千年朱紫陽
그대 뱃속에 경전이 가득하네 / 爾腹五經笥
지극한 정성은 용안을 움직였고 / 精誠動天顔
분격한 논설은 소인을 물리쳤네 / 奮舌傾險陂
참언이 갑자기 상자에 가득하여 / 謗書俄滿篋
대붕이 큰 날개를 떨어뜨렸네 / 大鵬垂逸翅
이천 골짜기로 몸을 벗어나니 / 脫身伊川峽
사는 사람 태반이 두억시니라 / 居民半魑魅
이 친구 마음 몹시 괴로울 때 / 故人惡懷抱
누구를 좇아서 대의를 물어볼까 / 從誰質大義
평소에 귀양 가는 동파를 보내며 / 平生送東坡
일찍이 진무기가 되지 못했다오
/ 不作陳無己
어찌 국법을 두려워하지 않을까만 / 豈不畏三尺
임안은 참으로 정성이 한결같았소 / 任安誠不二
싱거운 술은 기쁨을 이루지 못하고 / 魯酒不成歡
근심은 구름처럼 겹겹이 일어나네 / 愁雲疊疊起
산은 텅 비고 한 해는 저물어가니 / 山空歲年晩
서리와 눈이 천지간에 가득하구려 / 霜雪滿天地
혹독한 추위 까마귀를 얼게 하니 / 融寒凍慈烏
효도하지 못함은 그대 뜻 아닐세 / 失哺非其意
하늘은 아득하고 시력은 짧으니 / 天長目力短
말에 기댄 이 마음 취한 듯하오 / 倚馬心如醉


 

[주C-001]백연(伯淵) : 이심원(李深源 : 1454〜1504)의 자이다.
[주D-001]주자양(朱紫陽) : 자양은 주자(朱子)의 별호이다.
[주D-002]사는……두억시니라 : 변방으로 귀양 왔다는 말이다. 순 임금이 사흉(四凶)을 사방의 변방으로 유배 보내어 두억시니〔魑魅〕를 막게 했다고 한다. 《春秋左氏傳 文公18年》
[주D-003]평소에……못했다오 : 동파(東坡)는 소식(蘇軾)의 호, 무기(無己)는 진사도(陳師道)의 자이다. 진사도가 경내(境內)를 벗어나 귀양 가는 소식을 전송한 일이 있다. 《宋史 卷444 陳師道列傳》
[주D-004]임안(任安)은……한결같았소 : 임안처럼 신의를 지켜 권세를 좇지 않았다는 것이다. 임안은 한 무제(漢武帝) 때 사람이다. 한 무제가 대장군 위청(衛靑)과 표기장군(驃騎將軍) 곽거병(霍去病)을 모두 대사마(大司馬)로 삼자, 위청은 날로 쇠락하고 곽거병은 날로 더욱 귀하게 되니, 위청의 문하(門下) 대부분이 곽거병을 섬겨 벼슬을 얻었으나 오직 임안만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史記 卷111 衛將軍驃騎列傳》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주잠(酒箴) 신축년(1481, 성종12) 2월 5일 남산 기슭에서 과음으로 실수하고 짓다.


술자리 처음에는 예의가 엄숙하여 / 初筵禮秩秩
손님과 주인이 거친 행동 경계하니 / 賓主戒荒嬉
오르고 내림에 진실로 예법이 있고 / 升降固有數
나아가고 물러날 때도 절도가 있네 / 進退抑有儀
석 잔 술이면 말이 비로소 많아져서 / 三桮言始暢
법도를 잃음을 스스로 알지 못하고 / 失度自不知
열 잔 술이면 소리 점점 높아져서 / 十桮聲漸高
주고받는 얘기가 더욱더 어지럽네 / 論議愈參差
뒤이어 언제나 노래하고 춤추니 / 繼以恒歌舞
온몸이 피로한 줄 깨닫지 못하네 / 不覺勞筋肌
술자리 마칠 때면 동서로 치달려서 / 筵罷馳東西
저고리 바지가 온통 진흙투성이라 / 衣裳盡黃泥
올라탄 말 머리가 향하는 곳마다 / 馬首之所向
아이들이 손뼉 치면서 비웃어대고 / 兒童拍手嗤
끝내 비틀대다 넘어지고 자빠져서 / 終然顚與躓
부모가 주신 몸을 손상시키고 마네 / 而傷父母遺
술의 재앙을 모르는 바 아니건만 / 非不知酒禍
스스로 좋아하기를 단 엿처럼 하네 / 顧自甘如飴
무풍은 《서경》에서 경계하였고 / 巫風戒於書
〈빈지초연〉은 《시경》에 실려 있네 / 賓筵播於詩
양웅은 일찍이 주잠(酒箴)을 지었고 / 揚雄曾著箴
백유는 술 때문에 죽었거늘 / 伯有死於斯
어찌하여 이러한 광약을 마시는가 / 胡爲此狂藥
덕을 잃음이 항상 여기에 있다네 / 失德常在玆
술에 대한 경계가 서책에 있으니 / 酒誥在方策
의당 생각하여 법규로 삼아야 하리 / 宜念以爲規


 

[주D-001]무풍(巫風) :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삼풍십건(三風十愆)의 하나이다. 《서경》〈이훈(伊訓)〉에 “감히 궁중에서 항상 춤추고 집에서 술 취하여 노래함이 있으면 이것을 무풍이라 한다.〔敢有恒舞于宮 酣歌于室 時謂巫風〕” 하였다.
[주D-002]빈지초연(賓之初筵) : 《시경》〈소아(小雅)〉의 편명이다. 위(衛)나라 무공(武公)이 술을 마시고 잘못을 뉘우치며 지은 시이다.
[주D-003]백유(伯有) : 춘추 시대 정(鄭)나라 사람 양소(良霄)의 자이다. 양소는 술을 좋아하여 집에 지하실을 만들어 종을 치며 밤새도록 술을 마시다가 결국 자석(子晳)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 《春秋左氏傳 襄公30年》
[주D-004]술에……있으니 : 〈주고(酒誥)〉가 《서경》에 실려 있다는 말이다.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의총시(義塚詩)


백년간 지속된 호운이 다하니 / 百年胡運窮
가련하다 원나라 지정 임금이여
/ 可憐至正主
온화한 기운은 천지를 떠나가고 / 元和辭大爐
숙살의 기운만 천하에 가득했네 / 殺氣滿天宇
흰 칼날로 불의한 자를 복수하느라 / 白刃讎一義
‘一’은 오자인 듯하다.*
중원이 거의 다 승냥이가 되었건만 / 中原半豺虎
지정 임금 능히 막아내지 못하여 / 至正不能禁
홍건적 세력이 심히 강성해졌네 / 紅巾吾甚武
승상은 이미 사약을 받아 죽었고 / 丞相已賜藥
불화는 새로 적에게 잡혀 죽으니 / 不華新死虜
누가 우리 군사를 강성하게 할까 / 誰能張我師
천자의 육군조차 대오가 없어졌네 / 六軍無部伍
요망한 군사가 사직을 취하려고 / 妖軍問周鼎
도성 들판에 흰 깃 화살 날리니 / 郊畿飛白羽
백만 군사 일제히 무기를 놓고서 / 百萬齊放仗
같은 날 괴로운 혼백이 되었도다 / 同日魂魄苦
떠나올 때 아녀자가 목 놓아 울며 / 去時兒女啼
내 옷자락 잡고 이별곡 불렀건만 / 牽我唱金縷
돌아갈 날은 아득히 기약이 없고 / 歸期杳茫茫
이내 해골만 언덕에 내버려졌네 / 形骸委丘塢
천자께서 의귀들을 애닯게 여겨 / 天子哀義鬼
무덤을 만들어 은혜를 더하시니 / 窀穸加恩數
원사가 내려와선 금귀를 풀어서 / 院使解金龜
풀숲에 뒹구는 백골을 수습했네 / 白骨收草莽
만 사람 무덤을 나누어 만드니 / 分爲萬人坑
의총이 몇 개의 언덕이 되었네 / 義塚數丘土
원통한 울음소리 긴 밤에 많고 / 煩寃脩夜多
내리치는 우레가 대낮에 노하네 / 雷霆白日怒
옛길에는 까마귀 솔개 내려오고 / 古道烏鳶下
빈 숲에는 여우 토끼가 춤추네 / 空林狐兎舞
구름이 바뀌듯 인간 세상 빠르나 / 雲翻人代速
낙강은 하염없이 만고에 흐르네 / 樂江流萬古
거친 무덤에 사초 풀 해묵었는데 / 荒隴莎草宿
밤새도록 가을 산엔 비가 내리네 / 一夜秋山雨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이 평하기를, “비록 옛 시인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누가 다른 말을 하겠는가.” 하였다.


 

[주D-001]백년간……임금이여 : 백년간의 원(元)나라 국운이 다하였다는 말이다. 지정(至正)은 원나라 마지막 황제인 순제(順帝)의 연호이다. 원나라는 1260년에 건국하여 1367년에 망하였다.
[주D-002]불의(不義) : 《속동문선(續東文選)》 권3에 실린 〈의총시〉에는 ‘일의(一義)’가 ‘불의’로 되어 있다.
[주D-003]불화(不華) : 저불화(褚不華 : ?~1356)를 가리키는 듯하다. 저불화는 원나라 순제 때 홍건적이 일어나자 회안(淮安)을 지키고 있었는데, 처음엔 잘 싸워 염방사(廉防使)로 승진하기도 하였다. 나중에 성이 함락되어 적에게 붙잡혔으나 굴복하지 않아 살해당하였다.
[주D-004]원사(院使)가……풀어서 : 고관(高官)이 내려와서 금귀(金龜)를 팔아 유해를 수습했다는 것이다. 원사는 원나라의 벼슬 이름이고, 금귀는 황금으로 만든 거북 모양의 관인(官印)이다.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고희지(高熙之)의 몽자정록(夢子挺錄) 끝에 붙여 자정의 뜻에 화답하다


천상에는 조금 괴로움이 적으므로 / 天上差少苦
이하가 돌아가기를 마다하지 않았을 터 / 李賀歸不辭
어찌 넋을 쉽게 잃는다고 하면서 / 何云易喪魂
저승길을 편안하게 여기지 않는가 / 不安冥路爲
자정이 고생(高生)에게 준 시 구절에 “저승길 괴로움에 넋을 쉽게 잃는다오.〔地府勞苦易喪魂〕” 하였다.
그대가 일찍이 나에게 말하기를 / 吾侯嘗語余
산수를 즐거워함이 나의 생애라 / 山水我生涯
시를 읊조림은 죽어서도 얻으리니 / 吟詩死亦得
어찌 괴롭게 슬퍼하겠는가 하였소 / 何用煩悲思
지금 이미 풍월을 읊을 수 있거늘 / 今旣得吟風
또 이르기를, “황천의 지하에서 홀로 풍월을 읊조리오.〔黃泉地下獨吟風〕” 하였다.
한하는 바가 어찌 이것과 다르던가 / 所恨何反玆
나의 생애 어찌 이다지도 괴로울까 / 我生何太苦
세상 물정 모른다고 남들 함께 비웃네 / 褦襶人共嗤
엉성하고 게을러서 영락함이 분수이니 / 疎慵分落拓
날마다 그대 따라 술 마시고 시 지었네 / 日從侯酒詩
지금 도리어 날 버리고 떠나가니 / 如今却棄我
이승과 저승은 돌아올 기약 없구려 / 兩地返無期
세월은 끊임없이 흐르고 흘러 / 年光流冉冉
봄날의 해가 이미 길어졌도다 / 春日已遲遲
가련하다 나를 아끼는 그대 마음 / 憐侯愛我心
죽고 난 뒤에도 줄어듦이 없구려 / 死去亦無虧
돈 생기면 즉시 술을 사라 했으니 / 得錢卽沽酒
이 말씀 참으로 나의 스승이거늘 / 此說眞吾師
어찌 곧바로 나에게 고하지 않고 / 何不直告我
도리어 남을 통해 말을 전하는가 / 反借人傳辭
아득하고 아득한 우주 안에 / 茫茫宇宙內
득실을 끝내 어디에다 펼칠까 / 得失竟安施
나는 장차 번뇌를 내버리고 / 吾將棄煩惱
돌아가서 낚싯줄을 손질하리 / 歸去理釣絲
큰 강 가를 한가롭게 거닐어 / 逍遙大江濱
그대의 의심을 받지 말아야지 / 勿受吾侯疑
고생의 꿈에 자정이 말하기를, “백공(伯恭)종지(宗之)는 어디에 있소?” 하니, 고가 말하기를, “절에 올라가서 글을 읽고 있소.” 하였다. 자정이 즉시 시를 읊기를, “문장과 부귀란 모두 뜬구름 같거늘, 어찌 수고롭게 글 읽기에 부지런한가. 돈을 얻거든 술이나 사서 마실 뿐이니, 세간의 인간 일이란 말할 것이 못 되네.〔文章富貴摠如雲 何須勞苦讀書勤 但當得錢沽酒飮 世間人事不須云〕” 하였으니, 이는 나를 경계한 것이다.


 

[주C-001]고희지(高熙之) : 희지는 고순(高淳)의 자이다.
[주D-001]이하(李賀)가……터 : 자정(子挺), 즉 안응세가 이하처럼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을 말한다. 이하는 당나라 시인으로 자(字)가 장길(長吉)이다. 재능이 뛰어났으나 27세에 요절하였다. 당나라 이상은(李商殷)이 지은 〈이하소전(李賀小傳)〉에 의하면, 이하가 몰락한 종실의 후예로서 뜻을 펴지 못했는데, 어느 날 낮에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상제(上帝)께서 백옥루(白玉樓)를 지었는데 그대를 불러 기문(記文)을 짓게 하려 한다.”라고 적힌 판자를 가지고 찾아온 것을 보고 난 후에 죽었다 한다.
[주D-002]백공(伯恭) : 남효온(南孝溫)의 자이다.
[주D-003]종지(宗之) : 남효온과 교유한 이씨(李氏) 성의 시인으로, 자가 종지이고 이름은 미상이다. 제2권 〈신축년 9월 11일……〉 시 참조.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벗들과 더불어 배를 타고 모포(毛浦)를 건너 압구정(狎鷗亭)에 오르다


설창은 왕실의 자손이고 / 雪囱王者孫
수천부정(秀川副正) 이정은(李貞恩)이다.
소총은 호해의 선비이지 / 篠叢湖海客
남양리(南陽吏) 홍유손(洪裕孫)이다.
우리 숙부 보병처럼 어질고 / 吾宗步兵賢
숙부 남률(南慄)이다.
내 벗은 농서의 호걸이라 / 吾友隴西傑
죽혜(竹蹊) 이윤종(李尹宗)이다.
승려와 우풍애 모두 아홉 명 / 僧兼禹作九
승려 초운(艸雲)ㆍ해월(海月)과 풍애(楓崖) 우선언(禹善言)이다.
이런 모임 예전에 없던 일이네 / 此會無宿昔
서로 어울려 푸른 강 건널 때 / 相將渡蒼江
수풀 너머 뿔피리 소리 들리고 / 隔林聞畫角
바람 자고 계수나무 노 짧으니 / 風恬桂棹短
만경의 물결 유리처럼 푸르네 / 萬頃琉璃碧
배를 매어두고 정자에 올라서 / 繫舟此登亭
시골 막걸리 한두 잔 돌린다네 / 村酒聊細酌
이곳이 곧 한 상공의 정자라니 / 云是相公亭
날 듯한 용마루 방 벽에 걸렸네 / 飛甍掛室壁
빙 돌며 벽에 걸린 시 살펴보니 / 周章看壁詩
하나하나 모두 빼어난 작품이라 / 一一登鸞鵠
호금을 퉁겨서 한 곡조 연주하니 / 胡琴奏一聲
굽어보고 펼침에 백구가 친할 만하네 / 俯暢鷗可狎
잠깐 사이 큰 강에 바람이 몰아쳐 / 須臾大江風
노한 물결 백 길 높이로 솟는구나 / 怒蛟百丈立
사공이 나에게 출발하자 말하면서 / 篙師告我行
떠나지 않으면 바람 더욱 험하다 하네 / 不去風愈惡
허둥지둥 배와 노를 정리하니 / 蒼皇理舟楫
좌중의 모든 사람 낯빛을 잃었네 / 坐中皆無色
인생은 반드시 죽음이 있으니 / 人生必有死
백년 세월 순식간에 지나가리 / 百年駒過隙
명령은 비록 대년이라 하지만 / 螟蛉雖大年
끝내 변화에 따라 모두 소멸하니 / 竟與化俱滅
또한 어찌 다를까 조균이 일평생에 / 亦何異朝菌
초하루와 그믐을 알지 못하는 것과 / 生不知晦朔
고래가 삼켜도 아랑곳하지 않거늘 / 鯨呑不復知
험한 물결이야 탄식할 게 무엇이랴 / 惡浪何嗟及
하물며 다시 입 벌리고 웃을 일 / 況復開口笑
한 달에 두 번 얻기 어려움에랴 / 一月不再得
모쪼록 나를 위해 다시 앉아서 / 爲我更須坐
내 노래 한 곡조를 들어보시오 / 聽我歌一闋
그러나 슬픔은 기쁨에서 생기니 / 雖然哀生歡
또한 지나치게 즐기지는 마시라 / 亦勿太樂極


 

[주D-001]우리……어질고 : 보병(步兵)은 진(晉)나라 보병교위(步兵校尉)를 역임한 완적(阮籍)을 이른다. 그와 함께 죽림칠현(竹林七賢)의 일원인 완함(阮咸)이 조카이기 때문에 완적은 숙부의 대명사, 완함은 조카의 대명사가 되었다.
[주D-002]내……호걸이라 : 이윤종(李尹宗)이 이백(李白) 같은 호걸이라는 말이다. 농서(隴西)는 중국의 감숙성(甘肅省)으로, 이백의 선대 세거지이다. 이 때문에 농서 이씨(隴西李氏)라고 하였다.
[주D-003]한 상공(韓相公) : 한명회(韓明澮)를 말한다.
[주D-004]백년……지나가리 : 《장자》 〈지북유(知北遊)〉에 “사람이 천지간에 살아감은 마치 흰 망아지가 틈을 지나가는 것과 같아서 별안간에 끝나버린다.〔人生天地間 若白駒之過隙 忽然而已〕” 하였다. 그러므로 백년의 세월이란 망아지가 틈을 지나가기보다 더 빠르다는 말이다.
[주D-005]조균(朝菌) : 거름더미 위에서 아침에 났다가 저녁에 죽는 버섯으로, 수명이 매우 짧기 때문에 한 달의 처음과 끝인 초하루와 그믐을 알지 못한다. 이는 식견이 짧은 사람은 그 이상의 세계를 알지 못함을 비유한 것이다. 《莊子 逍遙遊》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밤에 성광(醒狂)을 꿈꾸고 신축년(1481, 성종12) 3월 9일이다.


옛 친구 천리를 달려와서 / 故人千里來
나의 꿈나라에 들어오니 / 來入我睡鄕
평소의 혼백인 양 여기고 / 疑是平生魂
은근히 시를 주고받았네 / 慇懃和詩章
공이 올 때 봄풀이 생기더니 / 公來春草生
공이 떠나매 관산이 아득하네 / 公去關山長
산의 귀신 한쪽 다리가 짧고 / 山鬼一脚短
긴 뱀은 열 자 남짓 길이라 / 脩蛇十尺强
공이 이런 물건과 친하다니 / 公肯狎此物
이내 마음 참으로 아프구려 / 我懷良可傷
옷깃 붙잡고 소리 내어 울음 우니 / 攀衣啼一聲
하늘 뜻인가 저녁 바람 서늘하네 / 天意颯晩凉
인하여 그대의 처지를 탄식하니 / 因嗟子夫子
지난날 조정의 반열에 있었었지 / 往者在鵷行
한마디 말로 국사를 부지하더니 / 一言扶國事
이제는 한바탕 꿈이 되어버렸네 / 到今成黃粱
그 옛날의 청포는 영락하여 / 零落舊靑蒲
처량하게 풍우의 장이 되었네 / 凄凄風雨場
단심만 부질없이 해를 꿰뚫으니 / 丹心空貫日
하늘은 또한 아득하기만 하구려 / 眞宰亦茫茫


 

[주C-001]성광(醒狂) : 이심원(李深源)의 호이다.
[주D-001]청포(靑蒲) : 궁궐의 와내(臥內)에 푸른색으로 땅에 규획해 놓은 것을 말한다. 여기서는 이심원의 집을 뜻하는 듯하다. 한나라 사단(史丹)이 원제(元帝)가 병이 들어 태자를 폐하고 그 아우 정도왕(定陶王)을 세우려 하자 곧바로 임금의 침실로 들어가 청포 앞에서 울며 간하여 원제의 마음을 돌렸다. 《漢書 卷82 史丹傳》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내가 한창 시구를 찾다가 멀리 서울에 불이 난 것을 보고 즉시 내려왔더니 장통방(長通坊)의 화재였다. 머뭇거리는 사이에 임금을 보았는데, 경복궁에 가셨다가 환어(還御)하는 때였다.


빠른 세월 나그네 속여서 / 光陰欺客子
봄빛이 괴로움을 가져오니 / 春色來懊惱
앵두꽃 살구꽃 온통 봄이건만 / 櫻杏萬般春
이 늙은이 부질없이 초췌하네 / 短髮空潦倒
네 명의 거사와 함께 어울려서 / 相將四居士
같은 날 그윽한 경치를 찾았네 / 同日事幽討
삼각산은 백 길이나 높이 솟고 / 華山百丈高
온 골짜기 비로 쓴 듯 깨끗하네 / 萬壑淨如掃
두견화에 붉은 빛이 선명하고 / 紅明杜鵑花
개울가 풀에 푸름이 깃들었네 / 靑入澗邊草
거문고 잡고 시 구절 찾다가 / 携琴覓詩句
석문 길에까지 발걸음 다했네 / 行盡石門道
흥취가 다하면 슬픔이 생기니 / 興極而悲生
장안이 연기와 불로 부옇구나 / 長安煙火暠
불길이 번져서 수백 집을 태우니 / 延燒數百家
재와 화염이 맑은 하늘에 불어나네 / 塵焰漲晴昊
남곡은 맑은 눈물 떨어뜨리고 / 嵐谷滴淸淚
소총은 마음 몹시 괴로워하네 / 篠叢惡懷抱
하산하자 날이 이미 어두운데 / 下山日已暝
마음이 몹시 슬프고 어지럽네 / 心緖極悼恅
붉은 불빛 만 길이나 솟아올라 / 紅光立萬丈
검은 밤하늘을 십 리나 밝히네 / 黑夜十里縞
등 굽은 노인들 혹 내닫다 죽으니 / 癃疾或赴死
금은보화 타버림은 그래도 다행이라 / 哿矣銷金寶
부녀자들 울음소리 들리는 듯하더니 / 如聞婦女泣
길 끼고서 어린이 늙은이 내달리네 / 挾路馳幼老
볼수록 이내 마음 슬프고 참혹하여 / 余看轉慘戚
몸과 안색이 이미 마르고 시들었네 / 形色已枯槁
성상의 행차 소식 갑자기 들으니 / 俄聞至尊行
외딴섬에 기쁨의 물결 불어나네 / 喜波漲絶島
북소리 피리소리 앞뒤에서 울리니 / 鼓吹奏前後
타는 듯한 이내 근심 위로가 되네 / 慰我憂心懆
근심과 즐거움은 참으로 무상하니 / 憂樂信無常
천명에 맡길 뿐 축원할 수 없다네 / 聽天不可禱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금강산 유람하는 첨정(僉正) 신윤종(申胤宗)을 전송하며


풍악산이 푸른 하늘에 닿았으니 / 楓岳根靑冥
서른여섯 봉우리마다 봄이리라 / 三十六峰春
새는 청련거사 병풍을 지나가고 / 鳥度靑蓮屛
산은 곽희의 산수화처럼 밝으리
/ 山明郭熙眞
공이 지금 말을 타고 떠나가면 / 公今騎馬去
응당 적막한 물가를 찾으리라 / 應探寂寞濱
지금 한창 도리화가 피어나서 / 時方桃李開
봄의 흥취 하나하나 새로우리 / 春事一一新
이별의 자리에 백 잔 술 마시니 / 離筵酒百桮
저문 길에 가벼운 먼지 날리네 / 晩路飛輕塵
아아 나처럼 죄지은 사람이야 / 嗟余謫罪者
결단코 기억할 사람 없으리라 / 斷無記取人
이제까지 십 년 세월 지나도록 / 到今一十年
금강산 유람객이 되고 싶었으나 / 欲作金剛賓
도리어 속세 일에 묶인 몸이라 / 却縛塵纓在
부끄럽게도 학철어가 되었다네 / 慚爲化涸鱗


 

[주D-001]서른여섯……봄이리라 : 금강산 골짜기와 봉우리마다 봄빛이 어렸을 거라는 말이다. 서른여섯 봉우리는 도가의 삼십육동천(三十六洞天)과 관련시킨 것으로, 삼십육동천은 신선이 산다는 서른여섯 곳 명산의 골짜기이다.
[주D-002]새는……밝으리 : 청련거사(靑蓮居士)는 이백(李白)이고, 곽희(郭熙)는 송나라 때의 산수화가이다. 이백의 〈청계행(淸溪行)〉 시에 “사람은 명경 가운데를 걸어가고, 새는 병풍 속을 지나가누나.〔人行明鏡中 鳥度屛風裏〕” 하였다.
[주D-003]부끄럽게도……되었다네 : 학철어(涸轍魚)처럼 곤궁한 신세가 되어 금강산을 유람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학철어는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에서 헐떡이는 물고기이다.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5월 5일 단옷날 강에 배를 띄우고 기분 좋게 취했다가 굴원(屈原)을 생각하다 이날 매제(妹弟) 최계사(崔季思)가 함께 따랐다.


굴자가 추란을 허리에 찼건만 / 屈子紉秋蘭
왕은 그의 충정 알지 못했구나 / 王不知忠誠
외로운 영혼이 길 알았던 것은 / 營營魂識路
남쪽의 달과 별들 통해서라네
/ 南指月與星
돌을 안고서 오일날 익사하니 / 懷沙五日死
남긴 한이 〈이소경〉에 들어 있네
/ 遺恨有離騷
오늘에 이르기까지 죽지사는 / 至今竹枝詞
같은 날 만 사람이 함께 노래하네 / 同日歌萬夫
내 어찌 이리도 뒤늦게 태어나서 / 我生何太晩
그대와 같은 시대 살지 못했던가 / 不得子同時
강물에 임하여 한잔 술을 따르니 / 臨江酹一桮
하늘의 뜻인가 서늘한 바람 부네 / 天意颯風吹
달은 캄캄하고 강바람 비릿한데 / 月黑江風腥
외로운 등불만 밤을 비추고 있네 / 照夜有孤燈
외로운 배는 흐린 물결에 잠기고 / 孤舟汨濁浪
‘濁浪’이 어떤 본에는 ‘駛流’로 되어 있다.
우뚝한 바위는 백 층이나 솟아 있네 / 立石危百層
인하여 탄식하며 매서에게 이르기를 / 因嗟語妹婿
오늘이 어떤 밤인지 자네는 아는가 / 此宵君解未
영균이 돌아간 날이 바로 오늘이니 / 靈均歸日是
만고를 내려오며 강물이 끓는다네 / 萬古江湯沸
물고기가 어찌 슬픈 충정을 알리오 / 魚豈解哀忠
큰 고래는 사람 먹기를 기뻐한다네 / 長鯨喜食人
시통을 던지며 이렇게 경도하니 / 投筒此競渡
맑은 눈물이 하염없이 솟아나네 / 淸淚迸無津
그 누가 불평한 울분을 되돌릴까 / 誰回不平憤
자초 자란의 고기를 씹고 싶다네 / 欲食椒蘭肉
차마 자세히 말하지 못하겠으니 / 不忍細細陳
다 말하면 그대 응당 통곡하리라 / 說盡君應哭


 

[주D-001]굴자(屈子)가……찼건만 : 굴 선생이 아름다운 덕과 고결한 지절(志節)을 지녔다는 말이다. 굴원의 〈이소경(離騷經)〉에 “강리와 벽초를 몸에 두르고, 가을 난초 엮어 허리에 찼다오.〔扈江離與辟芝兮 紉秋蘭以爲佩〕” 하였다.
[주D-002]외로운……통해서라네 : 굴원이 서울로 돌아가려는 마음이 간절했으나 임금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초사(楚辭)》〈구장(九章) 추사(抽思)〉에 “일찍이 길을 알지 못했더니, 달과 별을 통해 방향을 알았네. 서울〔郢〕로 빨리 가고자 하나 가지 못함은, 영혼이 길을 알았지만 홀로 가서 함께할 이 없기 때문이네.〔曾不知路之曲直兮 南指月與列星 願徑逝而不得兮 魂識路之營營〕” 하였다. 《朱子全書 楚辭集注 卷4》
[주D-003]돌을……있네 : 굴원이 5월 5일, 〈회사부(懷沙賦)〉를 짓고 멱라수(汨羅水)에 투신한 것을 말한다. 자신이 모래와 돌을 안고 물에 빠져 죽는 연유를 말하고 있다.
[주D-004]죽지사(竹枝詞) : 소식(蘇軾)의 〈죽지가(竹枝歌) 자서(自序)〉에 의하면, 본래 초나라에서 발생한 노래로 회왕(懷王)ㆍ굴원ㆍ항우(項羽) 등의 슬픈 이야기가 전승되어 원통하고 애달픈 곡조를 띠게 되었다고 하였다. 여기서는 굴원의 한을 읊은 노래를 의미한다.
[주D-005]영균(靈均) : 굴원을 말한다. 굴원이 〈이소경(離騷經)〉에서 자기를 소개하며 “나에게 이름을 주어 정칙이라 하고 나에게 자를 주어 영균이라 하였다.〔名余曰正則兮 字余曰靈均〕” 하였다. 홍흥조(洪興祖)의 보주(補注)에서 이에 대해 ‘영(靈)’을 하늘로, ‘균(均)’을 땅으로 보아 하늘과 땅의 높고 평평한 표상을 그의 자인 ‘원(原)’의 뜻으로 해석하였다.
[주D-006]시통(詩筒)을……경도(競渡)하니 : 오늘 강물을 건너며 굴원을 생각하는 시를 짓는다는 말이다. 시통은 시를 담아 전하는 대나무로 만든 통이고, 경도는 단옷날 배를 타고 경주하여 굴원의 넋을 위로하던 놀이이다.
[주D-007]자초(子椒)……싶다네 : 굴원을 참소하여 추방당하게 한 초나라 대부 자초와 초 회왕(楚懷王)의 동생 사마(司馬) 자란(子蘭)을 몹시 미워하는 말이다. 〈이소경〉에 “진실로 시속을 따라 흐르다 보면, 또 뉘라서 변하지 않겠는가. 산초와 난초가 이와 같음을 보나니, 하물며 게거와 강리 따위야 말해 무엇 하랴.〔固時俗之流從兮 又孰能無變化 覽椒蘭其若玆兮 又況揭車與江離〕” 하였다. 게거와 강리 모두 향초(香草)의 이름이다.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임인년(1482, 성종13) 2월 일에 경 징군(慶徵君)의 부음을 듣고

징군은 휘(諱)가 연(延)이고, 자가 대유(大有)로, 청주(淸州) 남계(南溪) 사람이다. 은거하여 부모를 모시며 그 효성을 다하였다. 세조가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다가 주상 즉위 9년(1478, 성종9)에 벼슬길에 올라 사재감 주부(司宰監主簿)가 되었다. 특별히 부르자 징군이 부름에 나아가니 내전에서 인견(引見)하였고, 이듬해 이산 현감(尼山縣監)에 제수되었다. 이산에 있은 지 5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름답게도 인걸이 태어나니 / 有美生人傑
천연으로 순효의 자품이었소 / 天然純孝姿
군의 마음은 천하의 독보이고 / 君心天下獨
군의 행실은 만세의 사표라오 / 君行萬世師
군의 정성은 천지를 감동시켜 / 君誠感天地
그 덕화 미물에까지 미쳤으니 / 化及蟲魚微
굳은 얼음에 두 잉어 길었고 / 堅氷雙鯉脩
‘脩’는 오자인 듯하다.*
섣달에 푸른 채소 살쪘다오 / 臘月靑菜肥
겨울철에 부친이 병이 들어 승검초를 먹고 싶어 했다. 징군이 울자 승검초가 돋아났다.
초목 또한 군의 이름 알았고 / 草木亦知名
대신들도 알고서 탄복하더니 / 太公知服之
한명회(韓明澮) 같은 사람들 또한 그의 어짊을 추천하였다.
행실을 닦은 지 육십 년 세월 / 修行六十年
만년에 군왕의 지우를 만났소 / 晩遇君王知
논설은 임금의 마음 감동시켜 / 論說動萬乘
군왕께서 장자라 추중했으니 / 君王推長者
당시 상이 징군을 내전에서 인견하여 친히 묻기를, “경이 고향에 있을 때 얼음을 두드리자 물고기가 뛰어나왔다고 하니 참으로 그러한가?” 하니, 징군이 대답하기를, “신이 집에 있을 때 신의 아비가 병이 나서 물고기를 먹고 싶어 했습니다. 신이 그물을 잡고 물가로 가서 얼음을 뚫고 그물을 쳤으나 날이 다하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신이 밤새도록 떠나지 않고 하늘을 부르며 곡하기를, ‘옛사람은 얼음을 두드리자 물고기가 뛰어나왔거늘, 지금 나는 그물을 잡고도 얻지 못하니 정성이 부족하여 이러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날 밤 우연히 큰 물고기 한 마리가 그물에 들어와서 신이 가지고 돌아왔더니, 신의 아비가 기뻐하며 말하기를, ‘너의 효성의 소치이다.’ 하였고, 마을 사람 또한 ‘너의 효성의 소치이다.’ 하였습니다. 신은 실로 얼음을 두드려 물고기를 얻은 일이 없거늘, 떠도는 말이 어찌 성상의 귀를 번거롭게 했단 말입니까.” 하였다. 상이 얼굴빛을 고치며 말하기를, “경은 무엇 때문에 벼슬하지 않는가?” 하니, 군이 아뢰기를,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요구함이 있지만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요구함이 없는 법입니다. 또 신은 노모 때문에 부름에 나아가지 못했으나 이제 노모가 죽었습니다. 이는 신이 전하를 위하여 충절을 다할 때이니, 신은 죽은 뒤라야 그만둘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경은 몇 가지 책을 읽었는가?” 하니, 군이 말하기를, “사서이경(四書二經)을 읽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사서이경 중에 어떤 일이 첫 번째 의리이던가?” 하니, 군이 아뢰기를, “사서이경 중에 신은 대순(大舜)이 부모를 섬긴 것으로 효를 삼기를 기약하고 대순이 임금을 섬긴 것으로 충(忠)을 삼기를 기약합니다.” 하였다. 상이 위연(喟然)히 탄식하기를, “참으로 현인(賢人) 장자(長者)로다.” 하였다.
높고 빼어난 대현의 그 명성 / 嶷然大賢名
하루아침에 조야에 알려졌소 / 一日聞朝野
단군께서 우리나라 개국하여 / 檀君開東邦
삼천칠백 년이 지나는 동안 / 三千七百年
지자와 우자 분분히 많았지만 / 紛紛智與愚
그 누가 군과 어깨를 견주겠소 / 孰與君幷肩
이로써 알겠노라 군의 그릇은 / 以是知君器
한 고을 다스릴 재주가 아님을 / 非是百里才
밝은 시대에 재상이 되었다면 / 儻使相明時
순후한 풍속을 앉아서 회복하리 / 坐使淳風廻
무엇 때문에 묘당의 의논이 / 如何廟堂議
하찮은 자에만 미쳤단 말인가 / 只及屠估兒
우물 안 개구리 하늘을 모르니 / 井蛙不知天
참으로 평지의 의심이 있으리라 / 信有平地疑
한 고을 현감으로 제수되어 / 除爲一縣宰
허리의 인끈 검게 드리우니 / 腰綬黑纍纍
진령 높은 곳은 구름이 비꼈고 / 雲橫秦嶺高
장사 낮은 지역 땅이 후미지네
/ 地偏長沙卑
천리마의 기량 펼치기도 전에 / 不及展驥足
오호라 무덤으로 돌아가시니 / 嗚呼就窀穸
남쪽 백성은 두모를 노래하고 / 南民歌杜母
친구들은 옛일을 슬퍼한다오 / 故人悲宿昔
친구는 중화재(中和齋) 강응정(姜應貞), 산인(山人) 김시습(金時習) 같은 사람이다.
오늘 아침 슬픈 소식 이르러 / 今朝哀聞至
내 마음 몹시 괴롭게 하건만 / 使余惡懷抱
남쪽 시내엔 봄풀이 돋아나 / 南溪春艸生
끊임없이 세월은 늙어 가오 / 冉冉歲月老
사람의 한평생 백년 사이에 / 人生百年間
누군들 생의 끝이 없겠는가 / 孰無生有涯
다만 사직을 위해 통곡할 뿐 / 但爲社稷慟
사사로운 정을 곡함이 아닐세 / 非以哭吾私

[주C-001]경 징군(慶徵君) : 징군은 조정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학덕이 높은 선비를 일컫는 징사(徵士)의 존칭이다. 경 징군의 성(姓)은 경이고 이름은 연(延)이다.
[주D-001]진령(秦嶺)……후미지네 : 서울에서 먼 험지(險地)에서 벼슬살이함을 표현한 말이다. 진령은 섬서성(陝西省)에 있는 산 이름으로, 당나라 한유(韓愈)가 조주(潮州)로 좌천되어 가다가 이곳을 지난 적이 있으며, 장사(長沙)는 호남성(湖南省)에 있는 군 이름으로, 한나라 가의(賈誼)가 장사왕 태부(長沙王太傅)로 좌천된 적이 있다. 한유의 〈좌천지남관시질손상(左遷至藍關示姪孫湘)〉 시에 “구름은 진령에 비꼈는데 집은 어디 있는가. 눈이 남관을 둘러 말이 가지 못하누나.〔雲橫秦嶺家何在 雪擁藍關馬不前〕” 하였다.
[주D-002]남쪽……노래하고 : 남쪽 지방 백성들이 두모(杜母)를 그리워하듯이 군을 칭송한다는 말이다. 두모는 후한(後漢)의 두시(杜詩)를 남양(南陽) 사람들이 어머니처럼 친애하여 부른 칭호이다. 그가 남양 태수가 되어 선정(善政)을 베풀자 남양 사람들이 전한(前漢) 때에 남양 태수로 선정을 펼친 소신신(召信臣)에 견주어 “전에는 소부(召父)가 계시더니, 뒤에는 두모가 계시네.〔前有召父 後有杜母〕”라고 하였다. 《後漢書 卷31 杜詩列傳》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자정(子挺)의 처 민씨(閔氏)의 부음을 듣고 자정이 세상을 떠난 뒤로 병에 걸려 오래도록 앓다가 18개월 만에 죽었다. 첨정(僉正) 민수(閔粹)의 따님이다.

갈까마귀 떼 숲에 가득 울어 / 烏鴉啼滿林
봉이 둥지를 틀 수 없는지라 / 鳳鳥不可畜
한번 날아 일만 길 솟아오르니 / 一擧一萬丈
힘찬 나래 쫓아갈 수가 없도다 / 風翮不可逐
황이 울며 외로운 둥지 지키다 / 凰鳴守孤棲
한밤중 바람이 살갗을 찢으니 / 午夜風破肉
온갖 새들 슬퍼하고 슬퍼하여 / 哀哀百鳥群
우짖는 소리 지축을 뒤흔드네 / 有聲動地軸
차라리 일조의 목숨 버릴지언정 / 寧捐一朝命
차마 백년의 고독을 견딜 것인가 / 忍堪百年獨
봉을 따라 저승으로 떠나가니 / 冥隨其鳳去
빈 골짝에 어린 새끼만 남았네 / 有雛在空谷
천년 전 여영이 바로 이분이라 / 千年女英是
괴로운 눈물 자국 반죽에 남았네
/ 苦淚遺斑竹
팥배나무 그늘 날로 짙어지는데 / 棠梨日陰陰
두견새는 맑은 낮에 슬피 곡하네 / 杜鵑晴晝哭

[주D-001]천년……남았네 : 남편을 애도하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여영(女英)은 순(舜) 임금의 아내이고, 반죽(斑竹)은 아롱진 무늬가 있는 대나무이다. 옛날 순 임금이 창오산(蒼梧山)에서 별세하자, 두 비(妃)인 아황(娥皇)과 여영이 소상강(瀟湘江)이 막혀 있어 건너가지 못하고 피눈물을 대나무 숲에 뿌리며 통곡하다가 강가에서 죽었다. 그 후 대나무에는 눈물 자국이 선명하게 나타나 반죽이 되었다 한다.
[주D-002]팥배나무……짙어지는데 : 팥배나무는 백양(白楊)과 함께 무덤 곁에 심는 나무이다. 백거이의 〈한식야망음(寒食野望吟)〉 시에 “팥배나무 꽃이 백양나무에 비치니, 이 모두 생사 간에 이별하는 곳이네.〔棠梨花映白楊樹 盡是死生離別處〕” 하였다.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천왕봉을 유람하다

두자미가 청성산에 들어가서는 / 子美入靑城
청성 땅에 침을 뱉지 않았거늘
/ 不唾靑城地
이 몸 이제 지리산 유람객 되어 / 身爲方丈客
감히 게으른 뜻을 일으키겠는가 / 敢作怠惰意
술을 끊고 육식도 하지 않으며 / 斷酒不茹葷
밤새도록 앉아서 잠자지 않다가 / 達曙坐不寐
맑은 새벽 나서서 상봉에 오르니 / 凌晨上上峰
천왕신 모신 사당 깊고 엄숙하네 / 天王神宇邃
곁의 사람은 절하지 않는다고 의아해하나 / 傍人疑不拜
신령에게 아첨함이 어찌 부끄러움 없을까 / 媚神寧無愧
태산의 신령이야 임방보다 나을 터 / 泰山過林放
신령이 기꺼이 술과 음식 요구하랴
/ 神肯要酒食
바람에게 운무를 거두도록 하고 / 令風收雲霧
우레 시켜 산도깨비 쫓게 하며 / 使雷驅魑魅
용백이 남쪽 바다 맑게 하고 / 龍伯淸南海
풍이가 상서로움 드러내는지라 / 馮夷呈祥瑞
산과 바다 뚜렷이 헤아릴 수 있어 / 山海歷歷數
밝은 시야 시원히 펼칠 수 있도다 / 可以展淸視
인간 세상엔 세계가 더 넓고 / 人間世界廣
머리 위엔 흰 해가 빨리 달리네 / 頭上白日駛
방촌의 공도 거두지 못했거늘 / 未收方寸功
백년 인생은 한번 취한 듯하네 / 百年如一醉
유가는 명덕을 밝힌다 하고 / 儒言明明德
선가는 정기를 다스린다 하고 / 僊言治鼎器
노자는 현빈을 지킨다 하고 / 老言守玄牝
불가는 불이를 닦는다 하니
/ 佛言修不二
분분한 수만 가지 학설 중에 / 紛紛萬說者
무엇이 제일가는 의리일런가 / 孰爲第一義
정상에 올라선 더욱 처참하여 / 登臨益慘悽
도주공의 생각을 길이 애통해하네 / 永痛朱公思

[주D-001]두자미(杜子美)가……않았거늘 : 자미는 두보(杜甫)의 자(字)이다. 두보의 〈장인산(丈人山)〉 시에 “청성의 나그네가 되면서부터, 청성 땅에 침을 뱉지 않았네.〔自爲靑城客 不唾靑城地〕” 하였다.
[주D-002]태산(泰山)의……요구하랴 : 지리산 신령이 임방(林放)보다 예(禮)의 근본을 더 잘 알기 때문에 예법에 맞지 않는 제물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임방은 춘추 시대 노(魯)나라 사람으로, 공자에게 예의 근본을 물어 칭찬받은 적이 있다. 계씨(季氏)가 참람되이 태산에 제사 지내려 하자 공자가 말하기를, “오호라. 일찍이 태산의 신령이 임방만도 못하다 하던가.〔嗚呼 曾謂泰山不如林放乎〕” 하였다. 《論語 八佾》
[주D-003]용백(龍伯) : 대인국(大人國)의 거인(巨人)을 말한다.
[주D-004]풍이(馮夷) : 수신(水神) 하백(河伯)의 이칭이다.
[주D-005]유가는……하니 : 명덕(明德)은 사람이 하늘에서 타고난 밝은 덕이고, 정기(鼎器)는 단(丹)을 달이는 그릇이고, 현빈(玄牝)은 암컷으로 도를 이르고, 불이(不二)는 체(體)와 용(用)이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D-006]도주공(陶朱公)의……애통해하네 : 도주공은 범려(范蠡)의 별호이다.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패업(覇業)을 이루고 범려를 상장군(上將軍)으로 일컫자, 범려가 생각하기를, ‘큰 명성 아래에는 오래 머물기 어렵다.〔大名之下 難以久居〕’ 하고 바다에 배를 띄워 종적을 감추었다. 이에 제(齊)나라로 가서 성명을 바꾸고 산업을 일삼아 수십 만 금의 재산을 이루었다. 제나라 사람이 그가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재상으로 삼으니, 범려가 탄식하며 말하기를, “집안에서는 천금을 이루었고, 관직은 경상(卿相)에 이르렀으니, 이는 포의(布衣)의 신분으로 지극한 것이다. 오래도록 높은 명성을 받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일이다.〔久受尊名 不祥〕” 하고는 재상의 인장을 돌려보내고 재산을 모두 친구와 이웃에 나누어 주고 떠났다. 도(陶)에 이르러 도주공이라 자칭하고 또 거부를 이루었다. 《史記 卷41 越王句踐世家》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영천 군수(永川郡守)로 부임하는 신 사군(申使君) 윤종(胤宗) 을 삼가 전별하며 2수

연전에도 가뭄이 극심하여 / 前年旱魃甚
산과 바다 깨끗이 말랐더니 / 滌滌山與海
금년에도 작년과 비슷하여 / 今年似前年
병진년 가뭄보다 더 심하네 / 有甚丙辰載
거리 아이들 장난삼아 징과 북을 치고 / 街童戲錚鼓
토룡은 허수아비처럼 서 있으나
/ 土龍如傀儡
우레 소리 끝내 적막하니 / 雷公竟寂寞
이는 응당 하늘의 죄이리라 / 應是眞宰罪
비단 한 필로 쌀 한 말 바꾸니 / 綾羅換斗米
곡식 값 백 배라 말할 것도 없네 / 寧論直百倍
장성한 사람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 壯夫散四方
궁벽한 거리에는 노약자 굶주리네 / 窮巷老弱餒
성상께서는 술도 드시지 않으니 / 聖主不御酒
애통한 조서 백관을 경동시키네 / 哀詔動百寀
간절한 마음으로 현재를 구하니 / 側席求賢才
그래서 그대가 수령이 되었다오 / 所以子作宰
큰 도량 그대와 견줄 이 없으니 / 寬弘無子比
그대의 재주는 재상이 마땅하리 / 子才宜鼎鼐
지방관으로 두루 시험하려 함이고 / 歷試以百里
공적을 따져서 제수한 것 아닐세 / 非試載采采
백성은 모두 다 나의 갓난아이니 / 生靈吾赤子
부지런히 돌봐서 태만치 마시라 / 撫字勤無怠
국법은 참으로 나의 스승이요 / 三尺眞吾師
황음은 한갓 후회만 부른다오 / 荒淫徒後悔
무마기처럼 정무에 부지런하면 / 戴星法馬期
훗날 복자천처럼 거문고 타리니
/ 彈琴異日在
영천을 육 년 동안 다스린 날 / 永川六朞日
나는 선보가 되리라 기대한다오 / 吾以單父待




황패가 영천 땅 다스리던 날 / 黃覇治潁川
봉황이 그 지경에 모였거늘
/ 鳳凰集其境
어찌하여 누리와 마디충만 / 如何蝗與螟
오늘날 전답에 내려앉는가 / 當日下田頃
고을 원은 중한 상 받았지만 / 太守受重賞
굶주린 백성들 함정에 빠지니 / 飢民陷諸穽
이에 알겠노라 명성을 떨침이 / 乃知騁聲名
자신을 반성함만 못한 것임을 / 不如反身省
사또는 행실이 돈독한 분이라 / 使君篤行者
명실의 분수를 이미 잘 아시니 / 名實分已領
더욱이 가뭄 재앙 만난 이때에 / 況當災旱時
남쪽 백성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 南民一何幸
응당 아시리라 부임하는 당일에 / 應知下車日
창고를 열자고 맨 먼저 건의한 뒤 / 首建開倉請
사양의 예절로써 백성을 교화하고 / 漸之以禮讓
청정한 도로써 백성을 안정시킴을 / 鎭之以淸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휴식하며 / 晝作而夜息
밭을 갈아 먹고 우물 파서 마시니 / 耕田而鑿井
칭송 소리 새벽 농사 길에 일어나고 / 頌興湛露斯
기리는 노래 새참 때도 지어지리라 / 歌作麥隴餠
어찌 모름지기 봉황만 날아올까 / 何須有鳳凰
그 교화 소백과 더불어 나란하리라
/ 化與召伯竝
내가 여기 와서 짧은 시를 갖고 / 我來將短章
도성 동쪽 고개로 그대를 보내오 / 爲送城東嶺
누른 먼지 아침저녁으로 일어나서 / 黃塵日夕起
높은 나무에 맑은 그림자 없구려 / 喬木無淸影
가을바람 말갈기로 불어오는데 / 秋風吹馬鬣
안장에 기대어 쓸쓸히 한번 웃네 / 倚鞍一笑冷

[주D-001]거리……있으나 : 거리의 아이들이 징 치고 북 치는 놀이를 하며, 토룡(土龍)이 이곳저곳 서 있을 정도로 기우제를 많이 지낸다는 것이다. 토룡은 흙으로 만든 용으로, 비를 빌 때에 사용한다.
[주D-002]공적을……아닐세 : 고요(皐陶)가 순 임금에게 아뢰기를, “그 사람이 가진 덕을 총괄하여 말하려면 아무 일과 아무 일을 행했다고 하는 것입니다.〔亦言其人有德 乃言曰載采采〕” 하였다. 재(載)는 행함이고, 채(采)는 일이다. 《書經集傳 皐陶謨》
[주D-003]무마기(巫馬期)처럼……타리니 : 무마기를 본받아 밤낮 정무에 부지런히 힘쓰면 뒷날 복자천(宓子賤)처럼 거문고를 타는 일이 있게 되리라는 것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찰현(察賢)〉에 “복자천이 선보(單父)를 다스릴 때 명금(鳴琴)을 타고 몸이 당을 내려오지 않았으나 선보 땅이 잘 다스려졌고, 무마기는 별을 보고 나가고 별을 보고 들어와서 밤낮 쉬지 않고 몸소 친히 돌보아서 선보 땅이 또한 잘 다스려졌다.”라고 하였다.
[주D-004]황패(黃覇)가……모였거늘 : 전한(前漢) 때 영천 태수(潁川太守) 황패는 지방관으로서 치적이 천하에 제일이었다. 이때에 봉황과 신작(神爵)이 자주 군국(郡國)에 모였는데, 영천이 더욱 많았다고 한다. 《漢書 卷89 循吏傳 黃覇》
[주D-005]어찌……나란하리라 : 황패(黃覇)의 선정(善政)을 넘어서 소백(召伯)의 선정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소백은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아들 석(奭)이 소남(召南)을 다스릴 때의 칭호이다. 선정을 베푼 일로 유명하다.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계묘년(1483, 성종14) 3월 19일에 관동으로 돌아가는 동봉(東峰) 열경(悅卿)을 전송하다. 열경은 육경(六經)과 자사(子史)를 싣고서 관동의 산수를 둘러본 뒤에 기장 심을 땅을 구하여 농사지으며 살 작정이고 다시 고향에 돌아올 뜻이 없다. 내가 박주(薄酒)를 가지고 가서 손잡고 탄식하며 천리 밖의 서로 만날 기약 없는 이별로 삼는다.

허유가 기산에 들어간 뒤로 / 許由入箕山
맑은 이름이 세상과 막혔으니 / 淸名與世隔
요 임금 덕이 얇어서가 아니고 / 非薄帝堯德
산수를 몹시 즐겼기 때문이라 / 偏成山水癖
하물며 밝고 성스러운 시대엔 / 況當聖明時
미치광이를 좋아하지 않음에랴 / 不喜風漢客
진퇴에는 정해진 운명 있으니 / 行藏有定命
득실에 대해 무엇을 근심하랴 / 得失何戚戚
서울 거리에 바람이 종일 불어 / 終風十二街
온통 여우와 토끼 자취뿐이라 / 莫非狐兎跡
인간 세상은 사는 맛이 물리고 / 人寰世味飫
관동 지방은 산수가 후미지네 / 關東山水僻
높은 산에는 큰 소나무 빼어나고 / 山峻秀長松
얕은 시냇물에 작은 돌 부딪치리 / 水淺擊小石
천추에 아름다운 이름 빛날 것이고 / 千秋令名昭
사적은 구름과 물처럼 깨끗하리라 / 事與雲水白
내가 와서 박주를 마련하여 / 我來資薄酒
등불 아래 얘기하며 밤을 보내네 / 談話供燈夕
할 말이 많아 헤어질 수 없으니 / 刺刺不能別
가슴속 회포를 무엇으로 풀리오 / 有懷何由釋

[주D-001]허유(許由)가……뒤로 : 요(堯) 임금 때의 고사(高士) 허유가 기산(箕山)에 은둔한 것을 말한다.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유교와 불교

만상은 각각 흩어져서 다르고 / 萬像各散殊
고금은 장기판의 한 개 말이니 / 古今爲一馬
만약 가지마다 같기를 구한다면 / 若求枝枝同
근본이 하나임을 아는 이 아니네
/ 非知一本者
검은빛 흰빛은 색이 같지 않고 / 黑白不同色
유교와 불교는 자취 각각 다르네 / 儒釋各異跡
그런데 어찌하여 장상영이란 자 / 云何張商英
유교를 끌어다가 불교에 붙이는가 / 援儒以附釋
네모를 깎아다가 둥글다고 하여 / 剜方以爲圓
눈먼 주장이 인의를 더럽혔도다 / 瞽說汚仁義
동일한 처음 이치 알려고 하다간 / 要知同一初
일곱 성인 모두 길 잃은 꼴 되리라 / 七聖皆迷地
이 길을 어찌 말하기가 쉽겠는가 / 玆地豈易言
돌아가서 각각 겸허함을 지켜야지 / 歸各守其雌
모름지기 구자산으로 들어가야만 / 會須入具茨
바야흐로 그대 의문 풀 수 있으리라 / 方得釋汝疑

[주D-001]만상은……다르고 : 현상 세계에 드러난 만물의 모습은 각기 다르다는 말이다. 《예기(禮記)》〈악기(樂記)〉에 “하늘은 높고 땅은 낮기 때문에 만물이 각기 흩어져 다르다.〔天高地下 萬物散殊〕” 하였다.
[주D-002]고금은……말이니 : 만물 속에 들어 있는 이치는 동일하다는 말이다. 《장자》〈제물론〉에 “천지는 한 개의 손가락이고 만물은 한 개의 장기판 말이다.〔天地一指也 萬物一馬也〕” 하였다. 천지가 비록 크지만 한 개의 손가락이 가릴 수 있고, 만물이 비록 많지만 한 개의 말이 이치를 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D-003]만약……아니네 : 겉으로 드러난 만물의 모습에서만 근원의 이치를 구한다면 ‘참된 이치〔理一而分殊〕’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주D-004]장상영(張商英) : 북송(北宋) 휘종(徽宗) 때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지냈다. 자(字)가 천각(天覺)이고, 호가 무진거사(無盡居士)이다. 《宋史 卷351 張商英列傳》
[주D-005]일곱……되리라 : 황제(黃帝)가 방명(方明)ㆍ창우(昌寓)ㆍ장약(張若)ㆍ습붕(謵朋)ㆍ곤혼(昆閽)ㆍ활계(滑稽)와 함께 구자산(具茨山)으로 대외(大隗)를 만나러 가다가 양성(襄城)의 들판에 이르러 일곱 성인이 모두 길을 잃었다. 마침 말 먹이는 동자를 만나 구자산과 대외의 소재를 알았다고 한다. 《莊子 徐無鬼》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최진국(崔鎭國)에 대한 만사 2수. 이름은 하림(河臨)이고, 진국은 그의 자(字)이다. 병오년(1486, 성종17)에 세상을 떠나니, 향년 32세였다. 일찍이 서울에 살았고, 문명(文名)이 있었다.

나그네 인생길 영원한 목숨 없어 / 征途無長年
세월이란 날아가는 화살과 같도다 / 歲月似飛羽
신령한 용이 큰 골짜기를 떠나니 / 神龍失大壑
땅강아지와 개미가 -3자 원문 빠짐- / 螻蟻□□□
내 일찍이 듣건대 -2자 원문 빠짐- / 吾嘗聞□□
문에 기대어 노래하고 춤추려 하였네 / 倚門欲歌舞
영구에 임하여 눈물을 금하지 못하고 / 臨柩淚不禁
참담한 -원문 빠짐- 애간장이 쓰라리구려 / 慘□中腸苦
어머니는 의탁할 곳 없음을 상심하고 / 有母傷無托
아내는 섬길 남편 없음을 상심하도다 / 有妻傷無主
노복들은 또한 누구를 우러를 것이며 / 有僕亦何仰
아이들은 또한 누구를 믿고 살아갈까 / 有兒亦何怙
돌아가는 기러기는 자취가 전혀 없고 / 歸鴻沒無迹
한강 물은 아득히 만고로 흘러가누나 / 漢江流萬古
명복 비는 지전은 초목에 걸려 있고 / 紙錢掛林薄
높은 바람이 차가운 비를 몰아치네 / 高風吹凍雨
수풀이 무성한 남양의 무덤길에는 / 莽莽南陽阡
묽은 술이나마 올릴 사람 없구려 / 無人酹薄酤




연단하는 솥 속에서 세월이 늙더니 / 鼎中烏兎老
단이 완성되어 삼시를 벗어났구려 / 丹成解三尸
어느덧 신선의 학 수레 채찍질하여 / 輾輾鞭鶴馭
하늘나라 대궐에서 상제를 뵙는구려 / 帝閽朝玉墀
가을의 과거장에는 인재가 적막하니 / 秋圍人寂寞
범 떠난 곳에 여우 살쾡이 울부짖네 / 虎逝號狐狸
곤륜산의 한 조각 옥이 버려지고 / 崑山遺片玉
계림의 한 가지 계수나무 꺾였소
/ 桂林摧一枝
그 옛날 그대와 문물을 익힐 때에 / 伊昔業文物
하루도 함께하지 않은 날 없더니 / 無日不相隨
중년엔 남북으로 떠돌아다니느라 / 中歲飄南北
결국 서로 그리워만 했을 뿐이네 / 居然費相思
어찌 알았으랴 백년 인생 이별이 / 安知百年別
머리 검은 날에 가까이 있을 줄 / 近在黑頭時
적막한 황공의 술집에는 / 寂寞黃公壚
공연히 비탄한 말만 남았구려 / 空餘悲嘆辭
훨훨 제비는 강남으로 돌아가고 / 翩翩社鷰歸
처량히도 누런 잎은 시드는구려 / 慘慘黃葉萎
무성했던 만물이 뿌리로 돌아가니 / 芸芸物歸根
그대에게 만사로 애도를 표한다오 / 古人哀挽詞

[주D-001]단이……벗어났구려 : 연단(煉丹)을 통하여 불로장생의 신선이 되어 하늘나라로 올라갔다는 말이다. 삼시(三尸)는 도가에서 말하는, 사람의 몸속에 있다는 무형(無形)의 세 마리 벌레이다. 이것이 그 사람의 과실을 알아 경신일(庚申日) 밤 사람이 잘 때 하늘로 올라가 천제(天帝)에게 과실을 아룀으로써 몸에 병이 생긴다고 한다.
[주D-002]곤륜산의……꺾였소 : 옥 같고 계수나무 같은 문사(文士)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이다. 진 무제(晉武帝)가 극선(郤詵)에게 묻기를, “경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니, 극선이 대답하기를, “신이 현량과에 응시하여 올린 대책문(對策文)이 천하에 제일가는 것은 마치 계림의 나뭇가지 하나나 곤산의 옥 한 조각 같은 것입니다.〔臣擧賢良對策 爲天下第一 猶桂林之一枝 崑山之片玉〕” 하였다. 《晉書 卷52 郤詵列傳》
[주D-003]황공(黃公)의 술집 : 황공주로(黃公酒壚)라 하여 옛날 친구들끼리 술을 마시던 곳을 말한다.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왕융(王戎)이 황공주로 앞을 지나다가 이곳에서 함께 술을 마셨던 혜강(嵆康)ㆍ완적(阮籍)의 죽음을 생각하며 탄식한 적이 있다. 《世說新語 傷逝》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공산(公山)에서 진백원(陳百源)에게 시를 남기고 작별하다

세월은 강물처럼 끝없이 흘러가니 / 歲年閱江浪
흐르는 인간 세상 빠르기도 하구려 / 荏苒人代速
어느덧 이내 나이 서른하고 넷이라 / 居然三十四
짧은 머리카락이 조릿대처럼 많다오 / 短髮多如簇
세상일이 내 귀를 뜨겁게 만들고 / 世故熱我耳
누른 먼지가 내 눈을 따갑게 하오 / 黃塵眯我目
목숙 나물은 내 창자 쓰리게 하고 / 苜蓿苦我腸
북쪽 찬바람은 내 살을 파고드오 / 朔風破我肉
못난 소인들 내가 온 것 꺼려서 / 蒼蠅忌我來
공산목 관아에다 나를 소송하니 / 訴我公山牧
관가 노비들은 내 술을 찾아내고 / 官奴覓我酒
관가 아전들은 내 종을 잡아갔소 / 官吏束我僕
세상 인심은 쇠락함을 싫어하니 / 世情惡衰歇
누가 고단한 나를 위로하려 할까 / 誰肯慰我獨
진군은 장자의 풍모를 지닌 사람 / 陳君長者徒
성대한 행실로 빈 골짜기 지켜왔소 / 純茂守空谷
생꼴 한 다발로 망아지 묶어두니 / 生芻繫白駒
이 사람 속마음을 모두 터놓았소 / 末契敷心腹
우리 모두 세상에 불우한 사람이라 / 俱是沈淪者
하늘 끝에서 함께 〈복조부〉 읊었다오 / 天涯同賦鵩
이별이 어찌 이렇게도 빠르던가 / 取別一何速
마음 괴로워서 이맛살 찌푸려지오 / 草草天庭蹙
보리밭 언덕에 봄바람이 불어오고 / 春風吹麥阪
해 수레가 이미 동쪽 땅 닿았구려 / 日馭已東陸
눈이 녹아 금강의 물이 불어나고 / 雪消長錦水
하늘이 흐려서 박쥐가 날아다니오 / 天陰飛蠖蝠
전송하는 그대를 손 흔들어 작별하며 / 揮手謝送者
봄 산의 기슭에서 눈물을 참노라 / 忍淚春山麓
남겨둔 이별시를 나를 보듯이 하여 / 留詩如見我
달마다 서너 편씩 부쳐주길 바라오 / 月寄三四幅

[주D-001]생꼴……묶어두니 : 내가 타고 온 흰 망아지에게 싱싱한 꼴을 먹여 떠나지 못하도록 묶어둠으로써 나를 머물게 한다는 것이다. 《시경》〈소아(小雅) 백구(白駒)〉 시를 차용하였다.
[주D-002]하늘……읊었다오 : 먼 지방 공주에서 그대와 함께 한(漢)나라 가의(賈誼)처럼 신세를 슬퍼한다는 말이다. 〈복조부(鵩鳥賦)〉는 가의가 지은 부이다. 가의가 좌천되어 장사왕 태부(長沙王太傅)로 있을 때 올빼미의 일종인 복조가 집에 날아들었다. 가의가 스스로 오래 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슬퍼하면서 〈복조부〉를 지어 자신을 위로하였다. 《史記 卷84 賈生列傳》
[주D-003]해 수레가……닿았구려 : 계절이 이미 봄이 되었다는 말이다. 동륙(東陸)은 동쪽의 땅으로, 봄이 되면 해가 동륙에 이른다고 한다.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자신의 만사 네 편을 지어 점필재(佔畢齋) 선생께 올리다


공손한 마음으로 공조(工曹) 상공(相公) 점필재 김 선생의 자리 아래에 삼가 아룁니다. 섣달이 이미 다하고 봄철이 시작되어 바야흐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즈음에 문인 제자가 예의상 마땅히 달려가 배알해야 할 것입니다만 삼동에 병을 앓은 나머지 두 다리가 마비되었고 또 타고 갈 말도 구할 수 없어 감히 사람을 보내어 안부를 여쭙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나라를 위하여 몸을 진중(珍重)히 하소서.
이곳의 제자는 병들지 않았을 때, 밖으로 육맥(六脈)을 짚고 안으로 오장을 살피며, 팔괘(八卦)를 두루 찾고 용호(龍虎)를 참고하여 이에 수명이 조석 간에 달렸음을 알았습니다. 지난 가을이 끝날 무렵, 집안의 액운이 크게 겹쳐 상사(喪事)가 반복되니, 바쁘게 쫓아다니는 사이에 마음이 허하고 미친 듯 두근거리는 병을 얻어 요망하고 실없는 말을 절도 없이 발설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약물의 힘을 입어 큰 병세는 조금 가라앉았지만 남은 독기가 아직 거세니, 지난번에 얻었던 점괘가 공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에 교거(僑居)에서 만가(挽歌) 네 편을 지었는데, 아들 녀석에게 맡겨 다시 정서(淨書)한 뒤에 선생의 자리 아래에 올립니다. 비루한 제가 세상맛을 탐내어 명리(名利)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음을 지극히 잘 알고 있으니, 어찌 다시 옛사람이 생사를 동일시하고 물아(物我)를 잊어버리는 경지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다만 병중에 정신이 소모되고 지기(志氣)가 꺾여서 거친 말이 필시 문리가 접속되지 않을 것이니, 행여 바로잡아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양의가 아직 나뉘기 전에는 / 兩儀未判前
도가 무명 질박함에 있더니
/ 道在無名朴
태극이 이미 움직인 뒤에는 / 太極旣動後
만사가 드넓어 끝이 없도다 / 萬事浩無極
이로 인해 호오가 생겨나고 / 由玆好惡生
이 때문에 기심이 축적되니 / 以是機心蓄
누구나 다 빈천을 싫어하여 / 莫不惡貧賤
죽을 때까지 작록을 꾀하네 / 抵死營爵祿
생사의 관문에 이르러서는 / 至於生死關
달인조차 면할 수 없었으니 / 達人免不得
우산에서 낙조를 탄식했고 / 牛山嘆落暉
구루에서 단약을 구했었지 / 句漏求丹藥
우군은 팽상을 서글퍼했고 / 右軍悲彭殤
굴원은 적적히 상심했으며 / 屈原傷逖逖
왕가는 약사발을 내던졌고 / 王嘉擲藥巵
추양은 양옥을 두려워했네 / 鄒陽懼梁獄
생을 탐함이 예부터 이러하니 / 貪生古來然
나 또한 세속과 마찬가지라서 / 余亦諧世俗
《음부경》 속의 신선에 관한 일 / 陰符經內事
하나하나 귀곡 선생께 배웠네
/ 一一習鬼谷
해와 달과 별빛을 시들게 하여 / 庶幾彫三光
상제처럼 빨리 내달리려 했더니 / 與帝驅齊速
어느새 무덤이 말 앞에 이르고 / 佳城馬前至
성명이 귀신 명부에 떨어졌구나 / 姓名墮鬼錄
땅강아지가 내 입에 들어오고 / 螻蟻入我口
파리 모기가 내 살을 빨아대며 / 蠅蚋嘬我肉
새로 꼰 새끼가 내 허리를 묶고 / 新繩束我腰
해어진 거적이 내 배를 덮누나 / 弊苫蓋我腹
다섯 딸은 아버지를 찾아 울고 / 五女索父啼
한 아들은 하늘 부르며 곡하고 / 一男呼天哭
동복은 와서 박주를 올리고 / 僮來奠薄酒
승려는 찾아와 명복을 빌도다 / 僧來祝冥福
경사는 풀을 베어 제사 지내고 / 經師斬草祭
지전은 풀과 나무에 걸렸는데 / 紙錢掛林薄
상여꾼이 늙은 뼈를 땅에 묻고 / 香徒瘞老骨
열 달구로 소리 맞춰 무덤 쌓네 / 十杵齊聲築
이때에 나는 어떠한 마음이던가 / 是時余何心
혼돈처럼 일곱 구멍이 막혔으니 / 混沌七竅塞
세상에 있을 때 살려고 했던 마음 / 在世欲生心
죽음과 함께 적막한 데로 돌아가네 / 與化歸寂寞
여희가 시집올 때 운 것 후회하고 / 孋姬悔來泣
약상이 고향으로 돌아간 듯하도다
/ 弱喪歸故國
이는 소문이 거문고를 타지 않고 / 昭文不鼓琴
사광이 악기를 치지 않는 격이니
/ 師曠不枝策
생전에 입을 벌리고 웃을 때에야 / 生前開口笑
누가 이 즐거움 함께할 수 있으랴 / 孰能竝此樂
다만 한스럽기는 사람이었을 때에 / 但恨爲人時
참혹하게 여섯 가지 액이 있었다네 / 慘慘有六厄
모습이 추하여 여색이 다가오지 않고 / 貌醜色不近
집이 가난하여 술이 넉넉지 못했지 / 家貧酒不足
행실이 더러워서 미치광이로 불렸고 / 行穢招狂號
허리가 곧아 높은 사람 노엽게 했지 / 腰直怒尊客
신발이 뚫어져 발꿈치가 돌에 닿고 / 履穿踵觸石
집이 낮아 서까래가 이마 때렸다네 / 屋矮椽打額




아침 이슬이 마르듯이 인생이 잠깐인데 / 人生朝露晞
해와 달은 머리 위로 재빨리 지나가네 / 日月頭上速
천년 뒤 돌아온 학이 돌기둥에 앉으니 / 千年鶴歸表
요동의 성곽에는 무덤만 즐비하였네
/ 有塚滿城郭
쉬지 않고 흘러가는 나그네 인생 길 / 苒苒征途上
불로장생할 사람이 그 누가 있으랴 / 孰有長年客
운명 맡은 신이 내 목숨 거둬 가고 / 司命收我壽
고양이와 쥐들이 내 양식 뺏어가네 / 猫鼠奪我食
무당들은 내 옷을 나누어 가지고 / 巫師分我衣
다른 사람이 내 집에 들어오누나 / 他人入我屋
연단하던 방에는 《홍보》만 남았고 / 鍊室遺鴻寶
책 읽던 방에는 서책만 놓여 있네 / 文房有書冊
늙은 어머니 시신 만지며 통곡하고 / 老母撫屍痛
친한 벗은 상여 줄 당기며 곡하네 / 親朋執引哭
남양의 무덤길로 장사 지낼 때 / 相送南陽阡
언 시신 나무토막처럼 꼿꼿하네 / 凍屍直如木
조촐하게 박한 술로 제상 갖추어 / 草草魯酒奠
내게 술 올리고 무덤에 들게 하네 / 酹我入新宅
저승은 까마득히 만리나 먼 곳이라 / 九泉邈萬里
아득하고 아득하여 이승과 막혀 있네 / 茫茫與世隔
하늘이란 본래 소리도 냄새도 없고 / 上天無聲臭
높고도 넓으며 텅 비고도 고요하지 / 高廣且寥廓
지극히 은밀해서 들어도 들리지 않고 / 至隱聽不聞
지극히 정미해서 흔적도 잡히지 않네 / 至微軌不搏
귀신과 더불어 길흉이 합치하고 / 鬼神合吉凶
사철과 더불어 소식을 함께하니 / 四序同消息
세상에 있을 때 좋고 싫은 생각들 / 在世好惡念
하나도 가슴속에 걸린 것이 없다네 / 無一掛胸臆




무양이 나의 충성 천거하니 / 巫陽薦我忠
상제가 내 재주를 기뻐하네 / 上帝悅我才
용백이 잉어에다 멍에 얹고 / 龍伯駕文鯉
우사가 티끌 먼지 걷어내며 / 雨師開塵埃
뇌공이 도로를 맑게 치우고 / 雷公淸道路
나를 맞으러 화양으로 오니
/ 逆我華陽來
붉은 진흙으로 봉해진 조서 / 詔書紫泥封
가을 강 모퉁이 밝게 비추네 / 照輝秋江隈
천상에는 영예가 지극하지만 / 天上榮觀至
인간 세상엔 구족이 슬퍼하네 / 人間九族哀
아내는 관 앞으로 나아가서 / 室人就柩前
허둥지둥 한잔 술을 올리며 / 匍匐奠單桮
내게 말하되 저승에 돌아가면 / 謂我歸重泉
음식은 어디에 의탁할까 하네 / 食飮焉托哉
어찌 알리오 사후의 즐거움이 / 焉知死後樂
생전의 재앙보다 더 나은 줄을 / 勝於生前災
내 일찍이 인간의 몸이었을 때 / 余嘗爲人時
무용한 사람이라 온 세상 비웃었네 / 擧世嘲散材
현인은 나의 방랑함을 미워하고 / 賢人憎放浪
귀인은 나의 영락함을 능멸했지 / 貴人陵傾頹
궁귀는 쫓아도 오히려 달라붙고 / 窮鬼逐猶隨
동전은 절대로 다가오지 않았네 / 孔方絶不徠
서른하고 여섯 해 사는 동안 / 三十六年間
언제나 세인의 시기를 받았네 / 長被物情猜
오늘 밤은 다시 어떤 밤이던가 / 今夕復何夕
연화대에 이 몸을 서게 하였네 / 立我蓮花臺
붉은 대궐은 빛나고 드넓은데 / 彤庭赫弘敞
질서정연하게 구빈이 늘어섰네 / 秩秩九賓開
상빈이 〈녹명〉을 노래하고 / 湘濱歌鹿鳴
복비가 〈남해〉를 연주하니 / 虙妃彈南陔
음악 소리는 희이를 뒤섞었고 / 簫管混希夷
붉은 구름은 금 술잔을 채웠네 / 紅雲盛金罍
계단에 동궁을 펼쳐서 부르니 / 陛陳彤弓招
광주리로 폐백을 받아 돌아오네 / 承筐玄幣回
옥황상제는 나를 보고 웃으시고 / 玉皇向我笑
뭇 신선들 나를 끼고서 배회하네 / 群仙擁徘徊
은혜를 받아 하루아침에 / 承恩一朝間
명성이 팔방에 진동하니 / 聲名振八垓
사후의 복이 누가 나와 같을까 / 冥福誰我竝
나를 위해 재물 쏟지 말지어다 / 毋爲我傾財




신선의 무리 항만도여 / 仙曹項曼都
가소롭고 실없는 사람이라 / 堪笑妄庸人
그대 보건대 화식하는 사람 / 君看火食者
누가 죽지 않는 몸 가졌던가 / 孰有不死身
어저께 밤 비파를 탈 때에는 / 昨宵彈琵琶
맑은 소리 구천을 꿰뚫더니 / 淸聲徹九旻
오늘 새벽 네 줄이 끊어져서 / 今晨四絃斷
나를 적막한 곳에 눕게 하네 / 臥我寂寞濱
모지랑붓에는 거미줄 얽혔고 / 禿筆罥蛛網
마른 벼루엔 누른 먼지 잠겼네 / 枯硯沒黃塵
부질없이 호리사를 지어 와서 / 空成蒿里詞
길옆에 만장이 어지럽게 날리네 / 路左挽紛繽
누런 구름은 얼어서 날리지 않고 / 黃雲凍不飛
흰 상여는 삐걱거리며 굴러가네 / 素車驅轔轔
백부님 숙부님 길을 끼고 따르며 / 伯叔挾路隨
내 나이 마흔 못 됨을 탄식하시네 / 嘆我未四旬


 

[주D-001]양의(兩儀)가……있더니 : 태극(太極)에서 양의, 즉 음양(陰陽)으로 나뉘지 않은 상태는 이름도 없고 그저 질박했을 뿐이라는 말이다. 노자(老子)가 말하기를, “도는 언제나 이름도 없고 질박한 것이다.〔道常無名樸〕” 하였다. 《老子 32章》
[주D-002]우산(牛山)에서 낙조를 탄식했고 : 우산은 춘추 시대 제(齊)나라 도성 동남쪽에 있던 산이다. 제나라 경공(景公)이 우산 위에 올라 노닐다가 북쪽으로 제나라를 바라보고 말하기를, “아름답도다, 나라여. 만약 죽음이 없다면 과인이 이곳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는가.” 하고, 고개 숙여 눈물 흘렸다고 한다. 《韓詩外傳 卷10》
[주D-003]구루(句漏)에서 단약을 구했었지 : 구루는 한대(漢代)부터 교지군(交趾郡)에 두었던 현(縣) 이름이다. 진(晉)나라 때 갈홍(葛洪)이 연단(鍊丹)을 통해 장생(長生)하려고 교지에 단사(丹砂)가 난다는 소문을 듣고 구루 현령이 되기를 자청하였다. 《晉書 卷72 葛洪列傳》
[주D-004]우군(右軍)은 팽상(彭殤)을 서글퍼했고 : 우군은 진(晉)나라 우군장군(右軍將軍)을 지낸 왕희지(王羲之)이고, 팽상은 800세를 살았다는 팽조(彭祖)와 어릴 때 죽은 상자(殤子)를 말한다. 왕희지는 〈난정기(蘭亭記)〉에서 “팽조와 상자를 마찬가지로 보는 것은 망녕된 일이다.〔齊彭殤爲妄作〕”라고 슬퍼한 적이 있다. 《古文眞寶後集 卷1 蘭亭記》
[주D-005]굴원(屈原)은 적적(逖逖)히 상심했으며 : 적적은 근심하고 두려워함이다. 굴원이 말하기를, “내 지난날의 희망이 실현되지 못함을 원망하고, 장래의 일이 나를 근심케 함을 애도하노라.〔吾怨往昔之所冀兮 悼來者之逖逖〕” 하였다. ‘장래의 일이 근심케 한다’는 것은 장차 멱라수로 달려가서 죽을 것임을 말한다. 《楚辭集注 九章 悲回風》
[주D-006]왕가(王嘉)는 약사발을 내던졌고 : 왕가는 한나라 애제(哀帝) 때의 승상이다. 간신에게 식읍을 하사함이 부당하다고 극간(極諫)하다 애제의 노여움을 사서 하옥되었다. 옥리(獄吏)가 사약을 올리자 약사발을 땅에 던지고 말하기를, “삼공(三公)이 나라를 저버렸으면 마땅히 저잣거리에서 형벌을 받아야 할 것이거늘, 어찌 약을 먹고 죽겠는가.” 하였다. 《太平御覽 卷438 烈士》
[주D-007]추양(鄒陽)은 양옥(梁獄)을 두려워했네 : 추양은 한나라 임치(臨淄) 사람이고, 양옥은 양(梁)나라 감옥이다. 양나라 효왕(孝王)이 참소하는 말을 듣고 추양을 하옥시켜 죽이려 하자, 추양이 죽음을 두려워하여 옥중에서 글을 올려 석방된 적이 있다. 《史記 卷83 鄒陽列傳》
[주D-008]음부경(陰符經)……배웠네 : 《음부경》을 귀곡(鬼谷) 선생의 주석을 통해 배웠다는 말이다. 《음부경》은 황제(黃帝)가 지었다는 도가(道家)의 서적이고, 귀곡은 도가에서 일컫는 전설적인 인물로, 《음부경》에 주석을 달았다고 한다.
[주D-009]혼돈(混沌)처럼……막혔으니 : 장자(莊子)가 말하기를, “남해(南海)의 제(帝)가 숙(儵)이고 북해(北海)의 제가 홀(忽)이고 중앙의 제가 혼돈이다. 숙과 홀이 때때로 혼돈의 땅에서 만나니, 혼돈이 그들을 융숭히 대접하였다. 숙과 홀이 혼돈의 덕을 갚으려고 말하기를, ‘사람들은 모두 일곱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 쉬거늘 이 혼돈만이 그것이 없으니, 뚫어주어야겠다.’ 하고, 날마다 하나의 구멍을 뚫었더니 7일 만에 혼돈이 죽었다.” 하였다. 《莊子 應帝王》
[주D-010]여희(孋姬)가……듯하도다 : 생전에는 죽음을 싫어했으나 사후에는 죽음이 도리어 즐겁고 편안하다는 말이다. 여희는 진 헌공(晉獻公)의 후처로, 애(艾) 땅 봉인(封人)의 딸이었고, 약상(弱喪)은 어려서 고향을 떠나 타향으로 떠돌아다니는 것을 말한다. 장자가 말하기를, “내 어찌 삶을 기뻐하는 것이 미혹된 일이 아닐 줄 알겠는가. 내 어찌 죽음을 싫어하는 것이 어려서 고향을 떠나 돌아갈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닐 줄 알겠는가. 여희가 진나라로 처음 왔을 때 울어서 눈물이 옷깃을 적셨으나 궁궐에서 왕과 함께 자고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된 뒤로는 처음에 울었던 일을 후회했다.” 하였다. 《莊子 齊物論》
[주D-011]소문(昭文)이……격이니 : 죽은 뒤에는 일념(一念)도 일어나지 않아 물아(物我)의 구별이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소문은 거문고를 잘 연주한 사람이고, 사광(師曠)은 진(晉)나라의 악사(樂師)이다. 장자가 말하기를, “이루어짐도 무너짐도 없는 것을 비유하자면, 옛날 소씨가 거문고를 타지 않는 경우이다.〔無成與虧 故昭氏之不鼓琴也〕” 하였다. 《莊子 齊物論》
[주D-012]천년……즐비하였네 : 천년 뒤 돌아온 학은 정영위(丁令威)이다. 도연명(陶淵明)의 《수신후기(搜神後記)》에 “정영위는 본래 요동(遼東) 사람으로 영허산(靈虛山)에서 도를 배워 신선이 되었는데, 그가 뒤에 학으로 화하여 성문 앞의 큰 기둥인 화표(華表)에 앉아 있었다. 이때 한 소년이 활로 쏘려고 하자 학이 날아서 공중을 배회하며 말하기를, ‘새여, 새여, 정영위로다. 집을 떠난 지 천년 만에 이제야 돌아오니, 성곽은 예전과 같은데 백성은 옛사람이 아니로다. 어찌 신선술을 배우지 않아 무덤만 즐비한가.〔有鳥有鳥丁令威 去家千年今始歸 城郭如故人民非 何不學仙塚纍纍〕’ 하고 날아가 버렸다.” 하였다.
[주D-013]무양(巫陽)이……오니 : 하늘의 사자가 나를 데려가기 위해 화양(華陽)으로 내려왔다는 말이다. 무양은 전설 속 무녀(巫女)의 이름이고, 용백(龍伯)은 용백국(龍伯國)의 거인이고, 우사(雨師)는 비를 맡은 신이고, 뇌공(雷公)은 우레를 맡은 신이고, 화양은 삼각산(三角山) 남쪽이다.
[주D-014]상빈(湘濱)이 녹명(鹿鳴)을 노래하고 : 상빈은 상수(湘水) 물가로, 여기서는 상수에 빠져죽은 굴원(屈原), 혹은 순(舜) 임금의 두 비(妃)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가리키는 듯하다. 〈녹명〉은 《시경》〈소아(小雅)〉의 편명으로, 빈객을 연향(宴饗)하는 것을 읊은 시이다.
[주D-015]복비(虙妃)가 남해(南陔)를 연주하니 : 복비는 복희씨(伏羲氏)의 딸로, 낙수(洛水)에 익사하여 수신(水神)이 되었다고 한다. 〈남해〉는 《시경》〈소아〉의 편명으로, 효자가 서로 경계하여 부모를 봉양함을 읊은 시이다.
[주D-016]음악……뒤섞었고 : 색깔도 없고 소리도 없는 오묘한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진다는 말이다. 노자가 말하기를,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을 이(夷)라 하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을 희(希)라 한다.〔視而不見 名曰夷 聽而不聞 名曰希〕” 하였다. 이는 곧 도(道)를 가리킨 말이다. 《老子 14章》
[주D-017]계단에……부르니 : 동궁(彤弓)은 임금이 공이 있는 사람에게 하사하는 붉은 활이다. 《시경》〈소아 동궁〉에 “풀어놓은 붉은 활을 받아서 보관했더니, 내 아름다운 손님 있어 진심으로 주려 하네.〔彤弓弨兮 受言藏之 我有嘉賓 中心貺之〕” 하였다.
[주D-018]항만도(項曼都) : 하동(河東) 포판(蒲坂) 사람으로, 신선술을 배운 지 십 년 만에 돌아와서 집안사람을 속이기를, “천제(天帝)를 배알하다 실수하여 쫓겨났다.” 하니, 하동에서 그를 척선인(斥仙人)이라 불렀다. 《論衡 卷7 道虛篇》
[주D-019]호리사(蒿里詞) : 옛날의 만가(輓歌)를 말한다. 진(晉)나라 최표(崔豹)의 《고금주(古今註)》에 “해로(薤露)와 호리(蒿里)는 모두 초상 때 부르는 노래로, 전횡(田橫)의 문인(門人)에게서 나왔다. 전횡이 자살하자 문인들이 상심하여 비가(悲歌)를 지었는데, 그 내용은 사람의 목숨은 염교〔薤〕에 맺힌 이슬처럼 덧없고 사람이 죽으면 혼백이 호리산(蒿里山), 즉 묘지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하였다.

 

추강집 제1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이날 밤에 술이 얼큰하여 감회가 있어 짓다


인생은 슬픔 즐거움 반반이다가 / 人生半哀樂
순식간에 지난 일이 되어버리니 / 造次成今古
번성하고 화려한 오늘의 이 몸 / 繁華今日身
적막하게 내일의 흙이 되리라 / 寂寞明日土
어찌 한 움큼의 흙을 얻으려고 / 安得土一抔
부질없이 이름 좇아 괴로워할까 / 浪逐浮名苦
벗 데리고 이렇게 배에 오르니 / 携朋此登舟
하늘 가득한 구름 먼 포구 가렸네 / 屯雲迷極浦
큰 강이 온통 산 모습 비추니 / 大江純浸山
움직이는 그림자 하늘 흔들고 / 動影掀天宇
아득한 양쪽 언덕 깜깜해지니 / 蒼茫兩岸黑
신령스런 비 내리려는 것이리라 / 欲作神靈雨
거룻배에 걸터앉아 술 단지 여니 / 柂樓開瓦甌
흥취와 감회가 종횡으로 교차하네 / 興與感交午
정신이 맑아 온갖 걱정 사라지니 / 神淸萬慮空
병든 몸에도 날개가 돋으려 하네 / 病骨欲生羽


 

 

 

 

 

추강집 제2권
 시(詩)○오언고시(五言古詩)
행주(幸州) 전장(田莊)에서 동봉(東峰)을 생각하며 나와 이별할 때 준 시에 차운하다


가을장마가 띳집 처마 적시는데 / 秋霖濕茅榮
밤에 일어나 먼 곳 사람 생각하네 / 夜起憶遠人
도를 배우다 어정쩡한 사람 되어 / 學道反類狗
앉아서 하릴없이 세월만 보내누나 / 坐度秋與春
세상은 이 풍한객을 기억지 못하니 / 世不記風漢
우리의 도가 깊은 산에 묻혀버렸네 / 吾道屬嶙峋
부질없이 술에 흠뻑 취한 가운데 / 空然醉鄕裏
허둥지둥 내 마음을 다 쏟는다오 / 顚沛倒吾囷

붙임 동봉의 시


옛사람 지금 사람과 비슷하고 / 昔人似今人
지금 사람 뒷날 사람과 같으리 / 今人猶後人
인간 세상은 흐르는 물과 같아 / 世間若流水
유유히 가을이 다시 봄이 되네 / 悠悠秋復春
오늘 소나무 아래서 술 마시고 / 今日松下飮
내일 아침 깊은 산으로 향하리 / 明朝向嶙峋
깊은 산 푸른 봉우리 속에서 / 嶙峋碧峰裏
그대 생각에 마음 울적하리라 / 思爾情輪囷


[주D-001]도를……되어 : 도를 배우긴 했으나 옳은 도를 루지 못했다는 말이다. 원문의 유구(類狗)는 ‘범을 그리다 제대로 그리지 못하면 개를 닮고 만다.〔畫虎不成反類狗〕’는 뜻으로, 이상만 높고 현실적인 성취가 없음을 비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