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 양정제공 휘 방언/휘 방언(미백) 관련기사

己巳愍節錄기록된 양정제공 11대 조고 관련자료

아베베1 2013. 12. 26. 07:25

 

 己巳愍節錄기록된 양정제공

 정재선생은 반남인 이시며 저의 집안과 교유가 있었던분으로  서계초수 서계 선생의 자제분이시고 수락산  아래 노강서원에 배향되고있으며 , 수락산 아래에 묘소가 소재하시고 계신다

 연촌공의 문집의 서문을 쓰신 박서체선생도 반남이시다 ... 

 저가 개인적으로 수락산 아래의 반남인의 여러사적을 우연히 조사를 하다가 보니  이런 연관관계를 알수가 있었고 수 백년전에 인연이 된 집안과의 저가 무엇 인가 영감이 통한듯....   

아울러 문정공파와도 깊은 교유관계를 알수가 있었다 ..

 

 
定齋後集卷之五


 
  
 己巳愍節錄[上]
縉紳䟽 重出 a_168_359a
 


伏以臣等。竊惟人君之有后妃。所以共承祖宗之統。幷臨衆庶之上。治化之所本。王敎之所基。古之聖王重妃匹之際者。良以此也。惟我母后之主中壼而臨一國者。今已九年于玆。先后之所親選。以托我殿下。而殿下之所與共經先后之喪者也。中外之過言不聞。臣民之仰戴方切。伏見昨者下賓廳168_359b 之批。辭旨極嚴。有非臣子所敢忍聞者。王言一播。觀聽震駴。豈意聖明之世。乃有此傷恩害義之擧耶。噫。宮闈之事。有非外人所知。臣等未知所謂假托矯誣者。果是何事。而設令內殿。微有過差。夢想所記。不過言語之失。而未著於行事。則此胡大過。而遽加摘發暴揚。不少假借。被之以罔極之名。震之以不測之威者。何哉。况元子誕降。實是宗社無疆之慶。深山竆谷。莫不懽抃。則內殿之心。甯有不悅者乎。頃年命選嬪御之擧。出於內殿之勸導。則其悶儲嗣之不廣而忘有我之私心。盖可見矣。及今168_359c 元良載誕之後。反懷不平之心。加以慍懟之色。揆以常情。必知其無此理矣。婦人性褊。鮮不妬忌。自非任姒之聖哲。前世后妃。誰能免此。閭巷匹士之有一妻一妾者。亦必須愼名分略苛細。以防閨門不靖之端。諺曰。不癡不聾。不可以作家長。信夫苟或不然。釁生於相軋。嫌起於相逼。惎間愛惡之說。交亂於其間。而浸潤稔熟。不復究察。則其禍之所流。可勝言哉。殿下每以爲宗社慮患爲敎。臣等尤有所未曉也。元子旣已進號。上係於嫡。則卽爲中宮之所子也。烏有傾中宮而後方安元子之理哉。異時元168_359d 子漸長。聞知今日之擧。則豈不衋然而傷痛乎。傳曰。父母之所愛亦愛之。又曰。子不宜其妻。父母曰善事我。則子行夫婦之禮。沒身不衰。設令內殿處事。有未當於聖心。若念及於我先后當日撫愛之篤。則以殿下維則之思。豈忍以廢絶之意。加之而無所難哉。易曰。衆允悔亡。釋之者曰。謀從衆則合天心。自有此事以來。凡爲殿下臣子者。上自大臣卿宰。下至三司庶官。或登對而極諫。或在廷而籲呼。何責譴罰相隨而不知止。至於韋布之士。亦皆相率抗章。婦孺之賤。莫不奔走涕洟。凡若是者。豈有他哉。良以168_360a 天地氣乖。萬物不遂。父母不和。衆子不甯故也。人心所在。天意可知。殿下縱欲徇一己之私。而顓行不顧。獨不念人心天意之不可强拂也歟。傳曰。人孰無過。改之爲貴。誠願殿下。深惟大義之所在。俯察羣情之所同。收還威怒。亟寢成命。俾天地日月。復見合德而齊曜。以慰東方億兆憂遑顒望之情。不勝幸甚。臣等俱以世臣。立殿下之朝。食殿下之祿。仰戴兩宮。蒙恩罔極。今者適在散班外列。不得廁於庭僚之末。以自伸其區區痛迫之忱。玆敢相率疾籲於黈纊之下。惟殿下之留神裁省焉。臣等無任168_360b 痛泣祈懇之至。謹昧死以聞。
前判書臣吳斗寅。前監司臣李世華。前行司直臣兪櫶。前承旨臣金載顯。前郡守臣崔渲。牧使臣李墪。前承旨臣徐文裕。及第臣趙聖輔。前府使臣徐宗泰。前牧使臣李光夏。前應敎臣朴泰輔。前府使臣沈思泓。前經歷臣申汝晳。前府使臣李行夏。前郡守臣沈楫。前郡守臣李志䧺。前郡守臣柳命才。前郡守臣尹塼。前郡守臣尹坪。前郡守臣權相夏。前正郞臣洪受瀗。判官臣李東馣。府使臣李宜昌。前參議臣沈壽亮。縣監臣朴泰淳。168_360c 前都事臣金演。前察訪臣徐宗憲。前典籍臣金斗南。前正郞臣金洪福。前正郞臣金夢臣。都事臣兪命弘。前縣監臣李彦紀。前司果臣李三碩。前判官臣洪萬選。前判官臣柳成運。前縣令臣安重。前縣監臣吳斗宬。前縣監臣李鼎基。前縣監臣朴龍見。前縣監臣金梓。前主簿臣金世楨。前別提臣韓德亮。前博士臣李震栻。前別檢臣李箕疇。前察訪臣任元聖。前待敎臣李寅燁。前正字臣趙大壽。前郡守臣李懏。前縣監臣尹以徵。前僉正臣柳時蕃。前郡守臣李寅爀。前縣令臣李寅熽。前奉168_360d 事臣李寅熺。前縣監臣鄭正陽。前縣監臣李世瑗。前司果臣金德基。前奉事臣李世瑜。前奉事臣邦彦。前判官臣洪受漸。前奉事臣李廈成。前奉事臣李萬亨。參奉臣鄭維漸。參奉臣李德齡。參奉臣南磐。參奉臣朴世集。前參奉臣李齊夏。前參奉臣柳命䧺。前參奉臣金龜瑞。前參奉臣李世敬。及第臣金世翊。前參奉臣閔光益。前縣監臣姜錫範。前縣監臣李萬徵。前縣監臣李行迪。前府使臣趙泰來。前監察臣徐文淑。前縣監臣金夏錫。前縣監臣郭昌徵。前都事臣吳遂大。前縣令臣李敬秀。
168_361a大槩臣等。目見君父無前罔極之擧。而適在散班外列。不得與於庭僚之末。無以自伸其區區痛迫之忱。玆敢相率籲呼。以冀聖明之翻然改圖。亟收前後批旨。以幸宗社事。
時備忘下後。事機漸迫。而䟽本自崔公錫鼎。李公塾處。各有草來者。時日已暮。議未歸一。將迤至明日。公言此事必及今夕。又有以無寫手爲難者。公乃自寫。臨紙裁截。諸作未暇細檢。故文有未醇備云。

 
南溪先生朴文純公文正集卷第六十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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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題跋
題煙村遺蹟後 癸亥閏六月八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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完山崔邦彥美伯以大人察訪公之命。請跋先祖煙村生遺蹟。世采謹卒業曰。夫士有至德範世。而民或知其賢。不知其所以爲賢。苟推其極而言之。如我夫子論泰伯事亦其一也。先生仕至直提學。乃於文宗二年乞退而歸。未幾國家多故。人皆橫罹。而先生已去。所築存養樓本在場圃中。其詩只道當時居閒祝聖之趣而已。未嘗及於命名正義。將使百世之下聞其風者。想像咨嗟。不知其心胸面目爲何許人。眞所謂知其賢不知其所以賢者矣。然而尙論140_402a之士往往以高節正學歸之於先生。久而不已者。必有其故也。蓋竊思之。國家禮樂人文。莫盛於英顯之際。先生年未七十。乃懇請致仕。程朱之學。猶不大顯於時。而先生輒得以存養揭號。則其後所値雖或否泰相乘。酬酢萬變。而先生素履固浩而自在也。然則爲此說者。固已有聞於聖人微顯闡幽之意。而摠其歸趣。雖謂之至德範世亦可矣。不識美伯以爲何如也。察訪公名世榮。是爲跋。
 
산당집(山堂集)
형태서지 | 저 자 | 가계도 | 행 력 | 편찬 및 간행 | 구성과 내용
  형태서지
권수제  山堂集
판심제  山堂集
간종  목판본
간행년  1866年刊
권책  5권 2책
행자  10행 20자
규격  20.9×14.7(㎝)
어미  上花紋魚尾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도서번호  奎4040
총간집수  한국문집총간 16
 저자
성명  최충성(崔忠成)
생년  1458년(세조 4)
몰년  1491년(성종 22)
 弼卿
 山堂
본관  全州
특기사항  金宏弼의 문인. 南孝溫 등과 교유
 가계도
 崔德之
 直提學
 崔
 司勇
 密陽朴氏
 
 崔大成
 
 崔忠成
 
 全義李氏
 參議 李若水의 女
 崔演文
 萬戶
 女
 
 薛俊
 忠順衛

기사전거 : 家狀 및 萬姓大同譜에 의함
 행력
왕력 서기 간지 연호 연령 기사
세조 4 1458 무인 天順 2 1 羅州에서 태어나다.
세조 11 1465 을유 成化 1 8 형을 따라 漢陽을 여행하다.
성종 14 1483 계묘 成化 19 26 月出山을 유람하다.
성종 15 1484 갑진 成化 20 27 長湍의 湧巖山을 유람하다.
성종 16 1485 을사 成化 21 28 한양의 三角山ㆍ白嶽山, 송도의 天磨山ㆍ聖居山을 유람하다.
성종 17 1486 병오 成化 22 29 瑞石山을 유람하다.
성종 18 1487 정미 成化 23 30 頭流山을 유람하다. 도중에 金鍵과 함께 南孝溫을 방문하여 「小學」ㆍ「近思錄」을 講論하다. ○ 점필재 金宗直이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하자 글을 올려 佛巫의 폐단을 물리칠 것을 청하다.
성종 19 1488 무신 弘治 1 31 봄, 方丈山을 유람하다. ○ 金宏弼의 부친상을 조문하러 嶺南에 가다. ○ 여름, 完山ㆍ玉川 등지를 유람하다. ○ 가을, 雪山을 유람하다. ○ 8월, 昌平監試에 응시하다. ○ 9월, 金堤文場에 응시하다. ○ 겨울, 金鍵 등과 더불어 月出山 精廬에서 講學하다.
성종 20 1489 기유 弘治 2 32 겨울, 鳳城에서 中風으로 병석에 눕다. 〈蒸室記〉, 〈警慮焚刻記〉를 짓다.
성종 21 1490 경술 弘治 3 33 전라도 관찰사에게 글을 올려 약을 구하다.
성종 22 1491 신해 弘治 4 34 3월 24일, 졸하다. 羅州 可芝洞 선산에 묻히다.
현종 6 1665 을사 康熙 4 - 2월, 士林이 祖 崔烟村이 享祀되어 있는 存養祠에 배향하다.
숙종 11 1685 을축 康熙 24 - 후손 崔秀華가 소장하고 있던 유고를 朴世采에게 校勘을 받다.
숙종 39 1713 계사 康熙 52 - 存養祠에 제관을 보내 致祭하고 ‘鹿洞書院’으로 賜額하다.
순조 5 1805 을축 嘉慶 10 - 9대손 崔爀이 2권 1책으로 문집을 간행하다.
순조 28 1828 무자 道光 8 - 후손 崔鍾翼이 家狀을 짓다.
고종 1 1864 갑자 同治 3 - 宋來熙가 行狀을 짓다.
고종 3 1866 병인 同治 5 - 후손 崔秉潤 등이 문집을 增補하여 간행하다.

기사전거 : 家狀ㆍ行狀에 의함
 편찬 및 간행
저자의 문집은 후손 崔邦彥이 소장하고 있던 草稿를 朴世采에게 校勘하여 1685년 원집 2권 1책으로 편집하였다. 그러나 오래도록 간행되지 못하고 稿本으로 남아 있던 것을 1805년에 9대손 崔爀이 宋煥箕의 序文을 받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초간본》
그 후 후손 崔秉潤 등이 그의 부친이 轉寫하여 보관하고 있던 것에 부록을 덧붙여 別集ㆍ附錄 합 3권 1책을 편차하고 1866년 원집과 함께 5권 2책으로 간행하였다.《중간본》 현재 국립중앙도서관과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본서의 저본은 1866년에 간행된 중간본으로 서울대학교 규장각장본이다.
 구성과 내용
본 문집은 原集 2권ㆍ別集 1권ㆍ附錄 2권 합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의 雜著는 〈續原人〉ㆍ〈讀小學文〉 외에 「小學」에 관한 글 3편, 〈讀進學解〉ㆍ〈正名論〉ㆍ〈天堂地獄辨〉 등이 실려 있다. 이 중 「小學」에 관한 글이 많은 것은 저자가 金宏弼의 제자로 「小學」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을 생활의 기본으로 삼은 데 연유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正名論〉은 군신과 부자의 名分을 바르게 함으로써 인륜을 밝히는 것이 중요함을 논하였으며, 〈藥戒〉는 병자가 藥으로 치유하는 이야기를 中心으로 국가 다스리는 것을 身體를 調理하는 데 비유하여 설명한 글이다.
권2의 書는 〈上佔畢齋先生書〉와 〈上湖南方伯求藥書〉로, 전자는 1487년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점필재에게 佛巫의 폐해를 물리칠 것을 청하는 상서이며, 후자는 1490년 中風을 앓을 때 전라도 관찰사에게 약을 구하기 위해 올린 글이다. 記는 〈蒸室記〉와 〈警慮焚刻記〉로 中風을 치유하려고 힘쓰던 때의 기록이다. 傳은 〈山堂書客傳〉으로 1488년 과거에 응시하여 낙방한 후에 지은 自傳的인 글이다. 그 밖에 〈擬送張舍人歸江東序〉ㆍ〈擬齊王田橫墓誌〉ㆍ〈擬褚遂良諫立武氏爲后疏〉는 모두 擬作으로 義理ㆍ三綱을 강조한 내용들이다. 권미에는 1491년 盧伯玉이 쓴 〈上山堂書〉가 부록되어 있고, 1685년에 쓴 朴世采의 識가 있다.
권3은 別集으로 招宦遊子文, 雜說, 慶會樓記, 送韓侍郞謫湖州序, 題明道先生墓碑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招宦遊子文은 1488년 과거에 응시하여 낙방한 뒤에 지은 것으로 富貴에 집착하지 않고 江湖에서 自適하는 생활을 권하는 내용이다. 雜說은 두 편인데, 하나는 養材에 관한 글이고, 다른 하나는 仁을 통한 成材에 관한 글로 그 긴요함을 잘 나타낸 글이다.
권4는 附錄으로 家狀(후손 崔鍾翼 撰), 行狀(宋來熙 撰), 墓表(宋穉圭 撰)와 저자가 享祀된 鹿洞書院에 관한 기록 등을 모은 것이다. 그중 鹿洞書院에 관한 기록은 配享通文, 祝文, 金昌協과 宋相琦 등의 請賜額疏, 1713년 延額時 賜祭文과 후손 崔鍾翼이 이 事蹟 뒤에 썼던 글 등을 모은 것인데, 金昌協 등의 請賜額疏와 墓表 등은 편집상태 및 版型으로 보아 1866년 重刊시에 追刻한 것으로 보인다.
권5는 附錄으로 擅勝樓題詠과 저자의 손자 崔彥潾의 詩, 증손 崔福男의 行狀 2편(崔尙重ㆍ尹濟弘 撰)ㆍ墓表(李肇源 撰)를 모은 것이다. 그중 擅勝樓題詠은 저자의 아들인 崔演文의 別墅에 대해 읊은 金麟厚와 林億齡의 詩를 收錄한 것이다. 끝에 1866년에 쓴 후손 崔秉潤의 附錄後識가 있다.

필자 : 鄭弼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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