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다산 정약용의 한시

다산시문집 제4권 고시(古詩) 27수 (펌)

아베베1 2009. 11. 22. 18:06

고시(古詩) 27수


편안히 살던 십 년 전에는 / 安坐十年前
십 년 동안 할 일을 헤아리며 / 商量十年事
나가거나 들어앉거나 도에 맞게 하고 / 行藏與道揆
전원에다 자리를 잘 잡았지 / 田園整位置
하는 일들 모두 조리가 있어 / 鑿鑿有條理
밤중까지 기뻐 잠이 안 왔는데 / 中宵欣不寐
금년에 한 가지 일 잘못 판단하고 / 今年一計誤
명년에는 사건 하나 만나고 / 明年一事値
뜬구름 변하듯 모든 게 바뀌어 / 變幻如浮雲
이상한 일들이 뜻밖에 벌어지네 / 神怪出不意
풋내기 바둑이 고수를 만났으니 / 拙棋對高手
그 속임수를 무슨 수로 당하리 / 安能測詭祕
황홀하여 응수할 겨를도 없고 / 恍忽未暇應
멍한 게 푹 취한 것만 같아 / 瞢騰似沈醉
예부터도 현인 달사들이 / 自古賢達人
그 때문에 많이들 미끄러졌다네 / 以玆逢顚躓

좋은 꽃이 한창 예쁠 때야 / 好花方艶時
누가 꽃되기를 바라지 않으랴만 / 誰不願爲花
시들어 떨어지기 시작하면 / 迨其萎而隕
갓 자라난 풀싹만도 못하단다 / 不如凡草芽
서쪽에 와 이십 년 노는 동안 / 西游二十年
성쇠를 거듭하기 몇 집이런가 / 盛衰知幾家
눈앞에 분명히 본 일인데 / 分明在眼前
어디 간들 전거가 없을 것인가 / 何處無前車
고동목을 다잡아 매두지 않고 / 金柅不蚤繫
기름통을 자랑만 하면서 / 膏方自夸
멋대로 이리 돌고 저리 돌다가는 / 翔徊俟其便
눈 깜짝할 사이 걱정거리 사고 말지 / 轉眄離虞羅
어린 시절부터 늘 경계하여 / 戒之在嬰稚
일찍이 이런 마음 갖지 않게 해야지 / 早使此心遐

하늘 땅은 넓고도 가이 없어 / 二儀廓無際
만물로도 채울 수가 없다네 / 萬物不能實
작디작은 일곱 자 몸이야 / 眇小七尺軀
사방 한 발 방이면 살 수 있지 / 可容方丈室
새벽에 일어날 때 머리통은 찧더라도 / 晨興雖打頭
밤에 누우면 무릎은 펼 수 있어 / 夕偃猶舒膝
작은 빈궁은 동정하는 벗이라도 있지만 / 小窮有友憐
되게 궁하면 돌봐주는 사람도 없다네 / 大窮無人恤
태평연월의 전야 백성들 / 熙熙田野氓
몸놀림 얼마나 걸림새없이 편하던가 / 動作何豪逸

당파 싸움 오래도록 끝나지 않아 / 黨禍久未已
그거 참으로 통곡할 일이로세 / 此事堪痛哭
낙촉 후예들은 소식도 없고 / 未聞洛蜀裔
지보 살붙이들만 가리고 있다네 / 遂別智輔族
싸움 등살에 양심마저 다 흐려져 / 爭氣翳天良
티끌만 마음에 걸려도 막 죽인다 / 纖芥恣殺戮
순한 양들 짹소리 못하고 죽어도 / 羔羊死不號
승냥이와 범은 눈알을 부라리고 / 豺虎尙怒目
높은 자는 뒤에서 조종을 하며 / 尊者運機牙
낮은 자는 칼과 살촉을 간다네 / 卑者礪鋒鏃
그 뉘라서 큰 잔치를 열어 / 誰能辦大宴
화려한 집에다 장막을 둘러치고 / 帟幕張華屋
천 항아리에 빚어넣은 술과 / 千甕釀爲酒
만 마리 소 잡아 만든 전골로 / 萬牛臠爲肉
함께 앉아 옛 폐습 다 버리기로 하고 / 同盟革舊染
평화로운 복을 맞게 하려나 / 以徼和平福

동녘 잿마루에 피어오른 흰구름 / 白雲出東嶺
처음에는 소담하기 모란꽃 같다가 / 初如牧丹花
점점점 산더미처럼 부풀어 / 轉作峯巒勢
금방이라도 천둥벼락이 떨어질 듯 / 硉矹藏雷車
뭉게뭉게 하늘을 가득 메운 / 溶溶滿碧虛
기이한 빛이 온 누리에 비치면 / 奇光照邇遐
그 모습 왜 아름답지 않으랴만 / 豈不美可愛
바람이 부는 날이면 어떻게 할까 / 風吹當奈何
별들은 붙어있는 자리가 있고 / 星曜有躔絡
초목도 뿌리와 싹이 있지만 / 草木有根芽
너는 한 곳에 못 있는 게 탈이어서 / 念汝不能住
나를 길이 탄식하게 하누나 / 使我長咨嗟

못 안에서 활기차게 뛰노는 고기 / 撥剌池中魚
발랄하게 못 속을 다니면서 / 撥剌池中行
연잎 사이에서 놀기도 하고 / 游戲蓮葉間
오물대고 쪼아먹고 제멋대로였는데 / 呷唼常適情
무단히 멀리 놀고 싶은 생각으로 / 矯然思遠游
흐름 따라 큰 바다로 들어갔다네 / 隨流入滄瀛
양양한 바다 갈 곳을 잃고 / 望洋迷所向
거센 물결에 넋이 도망갔으며 / 蕩潏魂屢驚
가까스로 교룡 악어를 피했더니 / 崎嶇避蛟鰐
필경에는 큰 고래를 만나 / 至竟値長鯨
고래가 들이켜면 빨려들어가 죽었다가 / 倏鯨吸而死
고래가 뿜어내면 다시 살아났다네 / 忽鯨歕而生
자나깨나 옛 못이 그리워서 / 耿耿思故池
시름시름 걱정만 하던 차에 / 圉圉憂心縈
그 고기를 불쌍히 여긴 용왕이 / 神龍哀此魚
세찬 비를 소리나게 내려주었다네 / 雷雨會有聲

풀이면 다 뿌리가 있는데 / 百草皆有根
부평초만은 매달린 꼭지가 없이 / 浮萍獨無蔕
물 위에 둥둥 떠다니며 / 汎汎水上行
언제나 바람에 끌려다닌다네 / 常爲風所曳
목숨은 비록 붙어있지만 / 生意雖不泯
더부살이 신세처럼 가냘프기만 해 / 寄命良瑣細
연잎은 너무 괄시를 하고 / 蓮葉太凌藉
행채도 이리저리 가리기만 해 / 荇帶亦交蔽
똑같이 한 못 안에 살면서 / 同生一池中
어쩌면 그리 서로 얼그럭덜그럭 할까 / 何乃苦相戾

제비가 처음 날아와서는 / 鷰子初來時
쉬지 않고 비비배배 비비배배지 / 喃喃語不休
무슨 말 하는지 뜻은 잘 몰라도 / 語意雖未明
집이 없다고 호소하는 것만 같애 / 似訴無家愁
늙은 고목나무 구멍도 많은데 / 楡槐老多穴
왜 거기서 안 사는가 했더니 / 何不此淹留
다시 날아와 비비배배하는 소리 / 燕子復喃喃
사람이 한 말에 대꾸하는 것 같데 / 似與人語酬
느릅나무 구멍은 황새가 와 쪼아먹고 / 楡穴鸛來啄
홰나무 구멍에는 뱀이 와 더듬는다고 / 槐穴蛇來搜

가지 늘어진 정원 속의 대나무 / 冉冉園中竹
말쑥한 자태 너무나도 소박한데 / 修節擢澹素
지방사람들 대가 중한 줄 모르고 / 土人不重竹
대 베어 채마밭 울타리 만든다네 / 伐竹爲樊圃
네가 북쪽 지대에만 났더라면 / 苟汝生北方
사람들이 왜 널 사랑하지 않으리 / 豈不人愛護
잎 하나라도 혹시 다칠세라 / 一葉疑有損
갔다가도 다시 와서 보살피련만 / 旣去復來顧

바다 장사치들 많은 이득을 노려 / 海賈射重利
사나운 파도도 마다 않는데 / 不避風濤險
높이 날 앞길만 트인다면야 / 前程有騰翥
영해 귀양살인들 왜 마다하리 / 安辭嶺海貶
서릿발 같은 탄핵 글발에 / 彈文凜如霜
정기는 위세가 꺾여버렸다네 / 正氣凌威燄
꿰뚫어지게 보는 눈 숲 속에 있거니 / 林下有慧眼
그 속셈을 무슨 수로 가린다던가 / 肝肺何能掩

뜰 중심에 있는 푸르른 파초 / 庭心綠芭蕉
피어나는 잎 그 빛 너무 곱지 / 展葉何光絢
우유초는 가을 들면 씨알 따고 / 牛乳待秋摘
봉미초는 바람결에 간들대지만 / 鳳尾含風轉
아침에 피는 한 송이 꽃은 / 朝來吐一花
차마 볼 수 없는 꼴불견이지 / 陋恣不堪見
만물이 좋은 점은 하나씩인 것 / 萬物各一美
뿔과 어금니를 독차지할 수 있는가 / 齒角寧得擅
달관이 시 쓰기도 좋아한다면 / 達官好作詩
궁천한 자는 무얼 차지할 것인가 / 何以待窮賤

이상하게도 융만 시절의 시는 / 異哉隆萬詩
껄끄럽기 마른 장작개비 같아 / 枯澁如槁木
원서가 설루를 깔아뭉개면 / 袁徐轢雪樓
매도하기 마치 종 다루듯 했지
/ 罵誶如奴僕
청 나라 시대에는 또 한 번 변하여 / 淸人又一變
예쁘장하게 뼈와 살이 알맞았기에 / 嫩艶勻骨肉
비록 뼈대 있게 독특하진 못했어도 / 雖乏崛强態
그런대로 함축미는 있었지 / 猶能有涵蓄
그 성쇠도 세상 따라 좌우되는 것 / 盛衰隨世運
봄은 따스하고 가을은 쌀쌀하기 마련이야 / 春溫必秋肅

수리부엉이도 밤중에 날면 / 茅鴟中夜飛
빠르기 순풍 만난 기러기나 같다네 / 翼若鴻遇風
속일 수 없는 것이 공리이며 / 公理不可誣
어디서나 통해야 그게 달도이지 / 達道皆相通
친구 팔아먹는 사람은 없고 / 未有賣友人
임금 섬기는 데는 그래도 충성이라네 / 猶能事君忠
막야는 철이라도 척척 끊고 / 鏌釾利食鐵
금잠은 벌레를 되는 대로 먹는다네 / 金蠶恣啗蟲
섶을 비록 산더미같이 쌓은들 / 抱薪雖如山
제 어찌 하늘을 불태우리 / 何能焚太空

벗이여 달 아래서 마시려거든 / 友欲月下飮
오늘밤 달을 놓치지 말게나 / 勿放今夜月
만약에 내일로 미룬다면 / 若復待來日
바다에서 구름이 일 것이며 / 浮雲起溟渤
또 내일로 더 미룬다면 / 若復待來日
둥근달이 이미 이지러질 거야 / 圓光已虧缺

숲 속에 표범이 엎드려 있으면 / 文豹伏林中
나무 위에서 까막까치가 짖어대고 / 烏鵲樹頭嗔
울타리에 긴 뱀이 걸렸으면 / 長蛇掛籬間
참새 떼가 조잘조잘 사람에게 알리며 / 瓦雀噪報人
개백장이 올가미 차고 지나가면 / 狗屠帶索過
뭇 개들이 요란하게 짖지 / 群吠鬧四隣
새 짐승은 곧이곧대로기에 / 禽獸不藏怒
그 아는 것이 귀신 같다네 / 其知乃如神
마음이 포학하면 겉으로 나타나는 법 / 內虐必外著
어리석은 백성이라고 어떻게 속일 것인가 / 何以欺愚民
사덕이 물론 다 아름다운 것이나 / 四德雖竝美
군자는 늘 인을 우선으로 치지 / 君子每先仁
산 풀도 밟지 않는다니 / 生草猶不履
그 기린 얼마나 어진가 / 賢哉彼麒麟

태양이 빛나기 수정덩어리라도 / 太陽赫光晶
준오가 별처럼 속에 널려 있고 / 踆烏乃星羅
밝은 달이 저리도 교교하지만 / 明月皎如彼
계수나무가 늘 너울거리듯 / 桂樹長婆娑
몸 깨끗이 갖자 아무리 다짐을 해도 / 潔身雖自勵
생기는 오점을 누가 없애주리 / 玷汚將誰磨
깨끗이 씻어버릴 뜻 왜 없을까만 / 豈無洗濯志
약한 힘으론 바다를 끌어올 수 없어 / 弱力莫挽河
뉘엿뉘엿 해는 저물어가는데 / 冉冉天色暮
두리번거리기만 하다가 어찌할까 / 徘徊當奈何

우리 정원에 한 그루 뽕나무가 / 吾園一株桑
하필이면 서루 기둥 가까이 있어 / 苦近書樓楹
아기종이 가지를 쳐버리면 / 小奴剪其枝
새 가지가 더 많이 돋아나고 / 新條益暢榮
사랑방 객이 몸통을 베버려도 / 舍客伐其榦
봄이면 등걸에서 움이 돋아 / 槎蘖又春萌
해마다 치고 벰을 당하고도 / 年年受剪伐
해마다 늘 자라나기만 해 / 年年也自生
그 마음 얼마나 괴로울까 싶어서 / 苦心良可感
북돋우어 주고 잘 자라게 했더니 / 培壅使其成
거년 봄에는 상마상으로 하여 / 前春上馬桑
더위와 추위 모르고 살았다네 / 免使吳楚爭
좋은 나무는 버릴 수가 없는 법 / 良木不終棄
가시나무 따위가 감히 겨룰 수 있으랴 / 樲棘敢相嬰

솥은 오물 버리기 위해 엎고 / 鼎顚利出否
자버러지는 펴기 위해 굽히지 / 蠖屈本求伸
악인도 하느님을 섬길 수 있고 / 惡人事上帝
우리 길은 가지 발전이 제일이야 / 吾道貴自新
들리는 명성 태산 같아도 / 聞名若泰山
가까이 대하면 진짜 아닌 게 많고 / 逼視多非眞
듣기에는 도올처럼 들려도 / 聞名若檮杌
보면 볼수록 가까이할 만한 이도 있어 / 徐察還可親
칭찬은 수많은 입 거쳐야 하지만 / 讚誦待萬口
훼방은 한 입으로도 족한 것 / 毁謗由一脣
금방 기뻐하고 걱정할 게 뭐라던가 / 憂喜勿輕改
눈 깜짝할 사이 재요 먼지인 것을 / 轉眼成灰塵

만물은 제각기 분수가 있고 / 萬物各有分
힘이나 숙명이 서로 틀린 게 많아 / 力命多不敵
청학은 높은 소나무에서 살고 / 靑鶴巢喬松
황작은 갈대에다 둥지 틀어야지 / 黃雀巢葦荻
황작이 높은 소나무에서 살다간 / 黃雀巢喬松
바람 불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아 / 風吹遭蕩析
난쟁이 주제에 짧은 옷 주웠대서 / 僬僥受短襦
불평을 품을 것이 뭐라던가 / 胡爲銜戚戚
조절을 꼭 그리워할 것 없이 / 藻梲何須慕
진창길이 바로 제격인 것이지 / 泥塗方自適

천고의 인물 두루 골라봐도 / 歷選千古人
내가 바라는 건 진미공이야 / 但願陳眉公
곤산 속에다 오막살이 짓고는 / 結廬崑山內
도서에 파묻혀 일생을 보냈다네 / 棲身圖史中
오와 월에 궁한 선비들이 많아 / 吳越多窮儒
서로 필연으로 도우며 상종했기에 / 筆硯相磨礱
고물고물 끝이 없는 비급 총서를 / 紆餘秘笈書
엮어내는 데 별 힘 들지 않았다오 / 薈蕞不費功
우산의 풍자를 받기는 하였지만 / 縱被虞山刺
시원한 맑은 바람이 일지 / 蕭然有淸風

장저 걸익은 따라가기가 어렵고 / 沮溺邈難企
또 생각나는게 소운경이야 / 且憶蘇雲卿
정원 가꾸며 기이한 행적 감추고 / 灌園晦奇跡
외 팔면서 높은 명성 숨겼었네 / 賣瓜鞱高名
참외는 크기가 항아리만 하고 / 甘瓜大如甕
물외는 길이가 술단지만 하였다 / 苦瓜長如罌
우스워라 장씨라는 사람 / 可笑張氏子
옛 정이 그리워 옥백 보냈으나 / 玉帛存故情
하룻밤에 전가족이 도망가고 없어 / 盡室一夜逃
사마가 마구 울어댔다네 / 駟馬啾交鳴
흰구름은 어딜 가나 일어나는 것 / 白雲處處起
그 즐거움을 누가 있어 다투리 / 此樂誰與爭

절인 고기는 썩은 냄새가 없고 / 鮑魚無敗臭
자버러지는 색이 따로 없다네 / 尺蠖無異色
안자(晏子)가 이르기를, “자버러지는 누른 것을 먹으면 몸이 금방 누렇게 되고, 푸른 것을 먹으면 몸이 금방 푸르게 변한다.” 하였음.
권세있는 집안에는 충객도 많지만 / 熱門多忠客
사랑과 그리움은 진실에서 나오는 것 / 愛慕由悃愊
묻노라 그대 왜 그러는 것인가 / 問君何爲爾
아마 세력이 부러워서이겠지 / 無乃羨勢力
사실은 그 사람이 현명한 거야 / 斯人實賢明
문장이 높고 큰 덕을 닦으면 / 高文修大德
눈알이 벌써 희끄무레하여 / 眼珠已迷昧
자기 마음을 자기가 모른다네 / 自心不自識
뭇 선이 골짝을 메우듯 몰려오면 / 衆善趨如壑
찬미의 노래가 하북에 가득하련만 / 謠誦滿河北

갈바람에 벽오동 잎이 지고 / 秋風摧碧梧
둥우리 제비도 들보를 하직한다 / 巢鷰辭雕梁
문정에는 참새 떼 모여드는데 / 鳥雀集門庭
찾던 객들 잊어버린 듯 조용하네 / 舊客如相忘
묻노라 그대 왜 그러는 것인가 / 問君何爲爾
아마 염량이 달라서이겠지 / 無乃殊炎涼
그 사람 사실로 오만방자해 / 斯人實傲妄
뭇 헐뜯음도 모두 아랑곳없이 / 衆毁皆滄浪
자신 대의명분을 지킨다면서 / 自辭負義名
은근히 상대로 하여금 드러내주게 하는데 / 微令彼過彰
뭇 악은 하류로 모여드는 법 / 衆惡歸下流
여러 입들 야단법석을 한다네 / 羣喙如蜩螗

노수가 도를 강론하면서도 / 魯叟講斯道
그 절반이 왕도정치에 관한 것이며 / 王政居其半
회옹이 누차 올린 바른 상소도 / 晦翁屢抗章
그 내용은 모두 조정 당면 문제였지 / 所論皆廟算
지금 선비들은 공리공담만 좋아하고 / 今儒喜談理
실제 정치에는 빙탄처럼 용납하지 못하니 / 政術若氷炭
감히 못 나가고 깊이 들어앉았지 / 深居不敢出
나갔다간 남의 노리갯감 되니까 / 一出爲人玩
그리하여 거칠고 경박한 사람들이 / 遂令浮薄人
발벗고 나서 국사 맡게 만든다네 / 凌厲任公幹

수 양제 때 시작된 과거제도 / 詞科自隋煬
그 독이 이 나라에도 유전되었다네 / 流毒至洌浿
논리 정연한 생원론이야말로 / 粲粲生員論
무릎 치며 쾌재를 부를 만하지 / 擊節成一快
피어오른 뭉게구름 같은 재주라도 / 才俊如霞雲
모두 그 속에 들어가 패하면서 / 盡向此中敗
늙어빠져 백분이 되면서도 / 龍鍾到白粉
지칠 줄 모르고 새기고 그린다네 / 雕繪猶未懈

소인배들 벼슬 한자리 해보려고 / 細人巧爲宦
밤낮없이 남의 맘을 재면서 / 揣摩窮夜晝
단 한 번도 까닭이 있어 움직이지만 / 一動皆有因
백 가지 짓이 하나도 맞는 게 없어 / 百爲無一偶
열성스런 벗 따라 꽃구경하고 / 看花趁熱友
채소 먹으며 원래 청백한 체하지 / 喫菜示素守
오활한 유자들만 생각 잘 못하고 / 迂儒少商量
비바람 맞아가며 무단히 쏘댄다네 / 風雨浪奔走

벌레들도 제 몸 방어는 다 잘하고 / 昆蟲盡自衛
발톱 어금니 발굽 뿔도 골고루지 / 爪牙蹄角毒
평화롭다고 군대 접어두었다가 / 時平不講兵
적이 오면 제멋대로 맡겨둬서야 / 寇來任隳觸
명장은 송골매와 같아서 / 名將如蒼鷹
날쌔고 보는 눈도 촛불 같지만 / 驍邁眸如燭
비대한 자가 장단에 오르면 / 胖夫輒登壇
한다는 소리 지장불여복장이란다네 / 云智不如福
요즘 들어보면 홍이포라는 것이 홍이포는 오랑캐 나라의 병기임. / 近聞紅夷礮
새로 만들어진 것으로 무섭다는데 / 創制更殘酷
앉아서 태고풍이나 지키면서 / 坐守太古風
활 화살 따위나 익힌대서야 / 弓箭有課督


[주D-001]전거(前車) : 후인이 경계해야 할 지나간 일들. 《순자(荀子)》성상(成相)에, “앞 수레가 이미 전복되었는데도 뒤에 가는 수레가 그것을 모른다면 깨달을 때는 언제일 것인가.” 하였음.
[주D-002]낙촉 …… 없고 : 정직한 학자들은 다 없어졌다는 뜻. 송 철종(宋哲宗) 때 낙양(洛陽)의 정이(程頤)을 선두로 한 낙당(洛黨), 촉(蜀)의 소식(蘇軾)을 선두로 한 촉당(蜀黨)이 있었음. 거기에 삭방(朔方)의 유지(劉摯)를 선두로 한 삭당(朔黨)을 합쳐 원우삼당(元祐三黨)이라고 불렀다.《小學紺珠 名臣類 下》
[주D-003]지보 …… 있다네 : 자기들 가까운 쪽만 찾음. 지씨(智氏)와 보씨(輔氏)는 전국(戰國) 시대 진(晉)의 공족(公族)이었음. 《尙友錄》
[주D-004]우유초(牛乳蕉) : 파초의 일종. 닭알 만큼한 씨알이 소의 젖모양으로 생겨 얻어진 이름.《本草 甘蕉》
[주D-005]봉미초(鳳尾蕉) : 상록목본(常綠木本)의 식물 이름. 여름에 꽃이 피는데 단성(單性)이며 화피(花被)도 없다고 함.《本草 無漏子》
[주D-006]융만 시절 : 명(明) 나라 중엽, 즉 융경(隆慶)ㆍ만력(萬曆) 시절. 융경은 명 목종(明穆宗, 1567~1572) 연호이며, 만력은 신종(神宗, 1573~1620) 연호임.
[주D-007]원서가 …… 다루듯 했지 : 명 나라 중기의 학풍(學風)을 말한 것. 명 세종(明世宗) 때 이반룡(李攀龍)이 이선방(李先芳)ㆍ사진(謝榛)ㆍ오유악(吳維岳)ㆍ왕세정(王世貞) 등과 시사(詩社)를 결성하고 일대를 풍미하여 소위 왕리지학(王李之學)이라는 이름으로 시문(詩文)에 있어 당대의 종장(宗匠)이었다. 그러나 신종(神宗) 대에 와서는 원굉도(袁宏道) 형제가 왕ㆍ리의 학풍을 맹렬히 비난하고 나섰고, 서위(徐渭)는, 왕세정ㆍ이반룡이 당초의 동사인(同社人)이었던 사진을 뒤에 와서 배척했다 하여, 맹세코 그들 둘이 이끄는 당(黨)에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였음. 원서(袁徐)는 원굉도와 서위이며, 설루(雪樓)는 이반룡을 가리킨 것임.《明史 卷287ㆍ288》
[주D-008]막야 : 고대 오(吳)에 있었다는 유명한 보검(寶劍) 이름.
[주D-009]금잠 : 벌레 이름. 금잠충(金蠶蟲)이라고 하는 독충(毒蟲)임.
[주D-010]준오 : 태양 속에 있는 세 발이 달렸다는 까마귀.《淮南子 精神訓》
[주D-011]상마상 : 말에다 싣고 다니는 뽕. 원호문(袁好問)의 〈추잠(秋蠶)〉 시에, “ …… 아침에 그것들에게 상마상을 먹였더니, 대밭에 빗소리가 잠박 너머에서 들려오네.[朝來飼却上馬桑 隔簇仍聞竹間雨]" 하였음.
[주D-012]조절 : 동자기둥에다 그림을 그려 장식하는 것. 왕공귀인(王公貴人)의 거소.
[주D-013]진미공 : 명(明) 나라 진계유(陳繼儒). 미공(眉公)은 그의 호임. 어려서부터 영오하고 문장에 능하여 그 명성이 동기창(董其昌)과 막상막하였고, 왕세정(王世貞)으로부터도 매우 인정을 받았다. 후에는 오직 저술에만 몰두하여 경사제자(經史諸子)는 물론, 술기(術伎)ㆍ패관(稗官)과 노ㆍ불(老佛)의 설에 이르기까지 그 모두를 비교 핵실하였으며, 심지어 쇄언(瑣言) 벽사(僻事)에 이르러서도 그를 모두 추려 기록으로 남겨 이른바 《진미공정정비급(陳眉公訂正祕笈)》이라는 총서(叢書)를 내놓기에 이르렀음. 《明史 卷298》
[주D-014]우산(虞山) : 우산종백(虞山宗伯)으로 청(淸)의 전겸익(錢謙益)을 말함. 시에 능하였고, 《열조시집(列朝詩集)》을 만들었는데, 고종(高宗) 때에 와서 비방(誹謗)의 내용이 많다 하여 책판[版]을 불태워버리고 간행을 금했다가 청 나라 말기에 와서야 다시 간행되었음. 《淸史 卷483》
[주D-015]장저 걸익 : 춘추 시대의 두 은자 장저(長沮)와 걸익(桀溺). 《論語 微子》
[주D-016]소운경 : 송대(宋代)의 사람. 일년 내내 해진 옷 한 벌 짚신 한 켤레로 채소 심고 신 삼아 팔아 그것으로 자급자족하고 틈이 있으면 온종일 문 닫고 누웠거나 아니면 무릎꿇고 하루를 보내 주위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젊은 시절에 장준(張浚)과 다정한 사이였는데, 그 후 장준이 재상이 되어 끊임없이 서한을 보내고 많은 선물이 답지하자 다 버리고 어디론가 떠나버렸음. 《宋史 卷459》
[주D-017]장씨라는 사람 : 장준(張浚)을 말함. 앞의 주 58) 참조.
[주D-018]노수(魯叟) : 공자(孔子)를 이름.
[주D-019]생원론 : 청(淸) 나라 고염무(顧炎武)가 쓴 생원에 대한 논(論).
[주D-020]백분(白紛) : 어려서부터 한 가지 재주를 익히기 시작하여 머리가 다 희도록 해도 제대로 되지 않고 어지럽기만 한 것. 《法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