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다산 정약용의 한시

다산화사(茶山花史) 20수 등 매천집

아베베1 2012. 6. 28. 13:33

 





다산 정약용 선생 다산문집 5권의내용중에  


다산화사(茶山花史) 20수

유자 동산 서편에 그윽하고 예쁜 다산 / 茶山窈窕橘園西
천 그루 소나무 속에 흐르는 시내 하나 / 千樹松中一道溪
시냇물이 처음으로 발원한 곳 가면 / 正到溪流初發處
깨끗한 바위 사이에 조용한 집 있다네 / 石間瀟洒有幽棲

작은 못이 참으로 초당의 얼굴인데 / 小池眞作草堂顔
그 중앙에 돌을 쌓아 봉우리 셋을 만들고는 / 中起三峯石假山
철 따라서 피는 백화 섬돌을 둘러 있어 / 差次百花常繞砌
아롱다롱 자고무늬가 물 속에 늘 어른거리지 / 水心交纈鷓鴣斑

대밭 속의 부엌일을 중 하나가 해내는데 / 竹裏行廚仗一僧
갈수록 더 꺼벙해지는 그 몰골이 가련하이 / 憐渠鬚髮日鬅鬅
불가의 계율 따윈 지금 와서 다 깨버리고 / 如今盡破頭陀律
생선도 마구 잡아 손수 맡아서 요리한다네 / 管取鮮魚首自蒸

이 숲동산 옛날에 모이는 때가 있었는데 / 林園宿昔住佳期
차가운 매화 한 가지가 필 무렵이 그때였지 / 期在寒梅第一枝
부끄럽다 그 모임은 먹통이 되어버리고 / 慚愧盟詞成鰂墨
저렇게 꽃 다 지고 열매만 올망졸망이라니 / 如今花落子離離

우물 위에 두서너 가지 붉게 핀 복숭아꽃 / 井上緋桃三兩枝
산이 깊어 외인은 못 보리라 여겼더니 / 山深不許外人窺
봄바람이 오는 길을 봉우리들도 막지 못해 / 攢峯未礙春風路
들에 마을에 벌 나비들이 용케도 알았다네 / 野蝶村蜂聖得知

차나무가 밀집하여 푸른 숲을 이뤘는데 / 油茶接葉翠成林
서갑같이 모서리진 학정도 무성하다네 / 犀甲稜中鶴頂深
봄바람에 곳곳마다 꽃만을 피우기 위해 / 只爲春風花滿眼
그것들은 뜰 한 쪽에서 피거나 지거나라네 / 任他開落小庭陰

바다 하늘 억센 바람 모래 멀리 날리기에 / 海天風力遠飛沙
들창 앞에 한일자로 대바자를 쳐놓았지 / 故揷牕前一字笆
산 사람 병들까봐 그를 막은 게 아니라 / 不是山人養衰疾
오로지 모란꽃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네 / 祇應遮護牧丹花

새로 돋은 작약 싹이 너무도 탐스러워 / 紅藥新芽太怒生
죽순보다 뾰족하고 붉기는 경옥 같아 / 尖於竹筍赤如瓊
산 영감이 행여나 그 싹이 다칠까봐 / 山翁自守安萌戒
아이들을 언덕 곁에 못 가도록 막는다네 / 不放兒孫傍塢行

다락머리 나무 하나 다닥다닥 잎만 쳤지 / 一樹當樓葉亂抽
가지 끝에 붙어 있는 꽃망울은 전혀 없어 / 都無蓓蕾著枝頭
정원지기가 지난 해에 잘못 잘라버렸는데 / 前年枉被園丁斸
꽃이 피어 그때 보니 그게 바로 수구였다네 / 待到花開是繡毬

해류의 화판이 그 크기가 술잔만한데 / 海榴花瓣大如杯
그 종자가 처음에는 일본에서 온 거라네 / 種子初從日本來
삼월까지 메마른 자태 비웃지 말지어다 / 莫笑枯寒到三月
모든 꽃들 다 지거든 그때 가서 필 거라네 / 群芳衰歇始應開

치자가 인간에게 유별난 물건이라는 / 巵子人間誠絶殊
두소릉이 읊은 시가 거짓은 아니겠지 / 少陵詩句未應誣
느지막이 오는 비에 긴 가래 들고 가서 / 晩來微雨携長鑱
한 뿌리를 몇 그루로 나누어서 심었다네 / 一樹分栽得數株

부양이 학명으로는 그것이 백일홍인데 / 膚癢於經是紫薇
한 가지에 꽃이 피면 한 가지는 져간다네 / 一枝榮暢一枝衰
아쉬울 때 꽃 피라고 정원에 둬둔 것이지 / 直緣承乏編園籍
세상에 드문 꽃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네 / 不是孤芳絶世稀

월계화 분재한 것 고작해야 한 그룬데 / 月季移栽僅一盆
어린 가지 너무 약해 뿌리를 잘 못 내리네 / 穉枝纖弱未舒根
어느 때나 바람 안고 눈과 싸워 이기려나 / 含風鬪雪知何日
마주보는 야윈 길손 넋이 금방 빠지려드네 / 瘦客相看欲斷魂

간들바람에 잎새마다 너울대는 해바라기 / 戎葵葉葉拂輕風
때가 되면 한 길 높이서 꽃을 피워 보이겠지 / 時至須看一丈紅
꽃다운 그 마음이 해를 향할 줄만 알아 / 自是芳心知向日
버드나무 그늘 속에는 뿌리 내리지 않는다네 / 孤根不入柳陰中

국화는 꽃이 펴야 예뻐지는 게 아니라네 / 非是花開始菊娟
잎도 줄기도 언제든지 너무나도 예쁘다네 / 由來莖葉絶堪憐
단 한 가지 제 주인이 동리 연분이 적기에 / 主人只少東籬分
몇 그루가 쓸쓸하게 잡초 속에 있을 뿐이지 / 數本蕭條雜草邊

자초는 잗다랗게 하얀 꽃을 피워내고 / 茈䓞些些放白花
담장 머리 호장은 이제 막 싹이 트고 / 墻頭虎掌始舒芽
산에 살며 여러 종류 약을 심지 않은 것은 / 山家種藥無多品
산 속에는 일만 그루 차가 있기 때문이라네 / 爲有山中萬樹茶

행랑 아래 포도덩굴 울퉁불퉁 그 모양은 / 廡下葡萄骨格麤
지난해 눈 얼음에 묵은 덩굴 말라서인데 / 去年氷雪老藤枯
아침에 보니 뜻밖에 용수가 뻗어나와 / 朝來忽有龍鬚展
가을 되면 젖 나오는 마유가 열리겠네 / 秋至應懸馬乳酥

사랑 아래다 새로이 조세 없는 밭을 일궈 / 舍下新開稅外田
층층이 자갈을 쌓고 샘물을 가두었지 / 層層細石閣飛泉
금년에야 처음으로 미나리 심는 법을 배워 / 今年始學蒔芹法
성 안에 가 채소 사는 돈이 들지 않는다네 / 不費城中買菜錢

산정에 서적이라곤 쌓여 있는 게 전혀 없고 / 都無書籍貯山亭
있는 것이 기껏해야 화경이요 수경이라네 / 唯是花經與水經
좋은 것은 귤림에 비가 새로 지나간 후 / 頗愛橘林新雨後
바위샘 손으로 퍼서 찻잔을 씻는 일이지 / 巖泉手取洗茶甁

이 동산에서 누리라고 하늘이 보낸 선생 / 天遣先生享此園
봄에 자고 또 취하고 문을 열지 않는다네 / 春眠春醉不開門
산정에 일색으로 이끼가 덮였는데 / 山庭一冪莓苔色
수시로 사슴 지난 자국 있을 뿐이라네 / 唯有時時鹿過痕





다산시문집 제7권
 시(詩) - 우세화시집(又細和詩集)
독좌음(獨坐吟)


세상에선 나를 버리고 나는 내 몸 잊어라 / 世云棄我我忘身
일곱 자 이내 신세를 남에게 맡겨 버리고 / 七尺浮沈付與人
밝은 달밤에 우연히 강호에 와 있노라니 / 偶落江湖明月夜
수정 같은 세계에 먼지가 일지 않네그려 / 水晶界上不生塵

마을 남쪽 마을 북쪽에 온갖 꽃이 활짝 피니 / 村南村北百花光
늙은이가 봄을 만나 소년이 되고자 하네 / 翁意逢春欲變郞
목로집 할멈께 연일 진 빚 웃으며 물어 보아 / 笑問壚婆連日債
닭털 붓으로 베개 맡의 벽에다 기록하노라 / 鷄毛筆記枕邊牆

예로부터 좋은 명성을 여기에서 구하나니 / 從古脩名向此求
하늘이 궁한 길은 선인이 가도록 허락했네 / 窮途天許可人由
굴원도 만일 자신이 영달을 누렸더라면 / 靈均若使身榮達
이소경이 이뤄지기를 기필하지 못할레라 / 未必離騷在案頭

정원의 상수리 밤 거두어 겨울 대비했는데 / 園收橡栗禦窮冬
또한 괴이해라 봄엔 농사짓기 싫증이 나서 / 還怪春來懶作農
다만 이웃 사람 보내어 쟁기 대신 잡히고 / 但遣村隣操耒耜
밥도 잊고 홀로 지팡이 의지하기에 무방하네 / 不妨忘食獨搘筇

슬픔과 기쁨 서로 돌아 끼니마다 변하여라 / 悲歡回互變三飧
용은 진흙에서 시들고 고니는 붕새로 변하네 / 龍爛泥沙海化鯤
필경에는 인간 세상에 좋은 일이 없으니 / 至竟人間無好事
돌아오지 못하는 넋을 불러 올 것 없다오 / 不須招返未歸魂

즐거운 일은 원래 순식간에 없어지는 법 / 樂事元來轉眼空
헤어질 땐 문득 서로 다시 만나길 한하나니 / 臨分却恨有相逢
가련타 손들 멀리 가고 술동이 텅 빈 뒤에 / 遙憐客散樽空後
낮은 집에 홀로 누워서 슬피 읊던 공융
이 / 矮屋悲吟臥孔融

일찍이 문장을 닦아 농사 대신 벼슬하려고 / 曾業文章擬代耕
지름길 잘못 찾아 고통이 지경에 빠졌네 / 誤尋徑路入愁城
촌늙은이는 항상 유여한 낙을 누리나니 / 田翁常做閑閑樂
이는 바로 평생에 일자무식인 때문이라오 / 賴是平生不識丁

동해의 봉래산 약수 삼천 리를 말하지 말라 / 海山休說路三千
이미 진부한 인생 육십 평생이 되었나니 / 已作陳人六十年
즐겨 유안의 닭과 개의 뒤를 따라서 / 肯逐劉安鷄犬後
금단을 가득 쥐고 하늘을 오르지 않으랴
 / 金丹滿握不昇天

비 온 뒤의 먼 산은 유별히도 우뚝해라 / 雨後遙山別樣孤
고인이 하늘 끝에서 머리를 내민 것 같네 / 故人天末見頭臚
구름 창에 기대어 턱 받치고 꿈을 꾸노니 / 雲窓做得搘頣夢
백 척의 누각 앞에 만 이랑의 호수로세 / 百尺樓前萬頃湖

물 다한 남쪽 하늘엔 소식도 드물어라 / 水盡南天信使稀
가을이 오면 누가 은사의 옷을 지으리오 / 秋來誰製芰荷依
뱃전 두드리며 강호로 떠날 계제가 없어 / 無因鼓枻江潭去
석양을 마주하여 멀리 창랑가를 부르노라
 / 遙唱滄浪對夕暉

소 탄 사람도 안 오는데 더구나 총마 탄 사람이랴 / 騎牛不到況乘驄
쓸쓸한 초막집에 와상 기대 앉아 있노니 / 隱几蕭然草屋中
창 밖에 너른 세계가 없는 건 아니련만 / 隔紙非無寬世界
평생에 창문 뚫는 벌 되기는 부끄럽다오 / 平生羞作鑽窓蜂

빈객이 모인 자리에서 언설을 일으키어 / 休將言說惹賓筵
한가로이 일현금 타는 나를 방해 놓지 마소 / 妨我閒中撫一絃
오만타거나 미쳤다거나 다 네게 맡겨 두나니 / 謂傲謂狂都任汝
가을 바람에 매미 울지 않는 나무 없다오 / 西風無樹不鳴蟬

평생 친구를 찾았으나 지기지우 드물어라 / 平生求友少蘭金
죽은 뒤에 그 누가 묘갈 음기를 기록할꼬 / 身後何人識碣陰
양자운처럼 상자 속에 태현경 초해 놓고서 / 不爲傳玄留篋草
천 년 뒤에 알아 줄 이 있길 기다리지 않으리 / 子雲千載待知音

곤궁해도 꼭 친구가 멀지만은 않은 거라고 / 窮居未必友朋疏
꿈을 참인 줄 알았는데 깨고 보니 헛일일세 / 將夢爲眞覺屬虛
기억하건대 산중에 지난 밤 내린 비 속에 / 記得山中前夜雨
친한 친구가 말 타고 마당가에 이르렀었지 / 同心騎馬到階除

가시 사립문 종일토록 누굴 위해 닫아 놓고 / 柴荊終日爲誰關
뭇 궁귀들을 품에 안고 내보내지 않는고 / 抱得群窮不放還
전금이 벼슬에서 쫓겨날 줄은 이미 알건만 / 已料展禽官合黜
소 먹이는 늙은이 홀아비 신세를 어떡하나 / 那堪牧犢老因鰥

섬돌 돌아 콸콸 흐르는 물소리 슬피 울려라 / 循階㶁㶁水悲鳴
맑은 밤에 홀로 앉았는 정 허전하기도 한데 / 惆悵淸宵獨坐情
다만 사람 없는 텅 빈 산에 한 조각 달이 있어 / 只有空山一片月
하늘 저 편의 친구와 밝음을 나누네그려 / 天涯分與故人明

고금천지에 한가롭고 조용한 이내 몸이 / 今古乾坤閒靜身
중이 됐다가 하산한 사람 된 걸 뉘우치노라 / 爲僧悔作下山人
봄 지난 뒤에 꽃구경하는 꿈을 깨고 나서 / 春過喚醒看花夢
선상에 한번 오르니 온 세상이 티끌이로세 / 一上禪牀滿地塵


나의 인생 쓸데없고 또한 바라는 것도 없어 / 吾生無用亦無求
내가 내 집에서 내 자유대로 지낼 뿐인데 / 吾在吾廬吾自由
오늘은 우연히 뜰에 자라난 풀을 보고서 / 今日偶看庭草長
문전에 오는 손 없어 머리도 빗지 않노라 / 門前無客罷梳頭

돌아온 뒤로 어느덧 삼동이 지났어라 / 歸來不覺過三冬
나는 삶이 없길 배우고 아이는 농사를 배우네 / 我學無生兒學農
듣건대 석산에는 산길을 고쳤다 하니 / 聞說錫山山路改
좁은 길 찾아 천천히 지팡이를 끌리라 / 要尋蹊徑懶携筇

하고한 날 아침저녁 끼니를 폐하다 보니 / 悠悠晨夕廢饔飧
육백이 마치 북해의 곤어를 탄 듯하여라 / 六魄如登北海鯤
출세하는 게 응당 별다른 법칙 없나니 / 出世也須無異法
허무함 속에 신령하지 않은 곳이 없다오 / 虛無無處不神魂

무더우면 절로 의당 음우가 많은 법이라 / 鬱蒸自合多陰雨
서늘한 달빛 맑은 밤을 만나기 쉽지 않네 / 涼月淸宵不易逢
용정과 옥호에는 자연의 소리 고요한데 / 龍井玉壺天籟靜
소상강 이슬 아래에는 대가 무성하도다 / 瀟湘露下竹融融

며느린 새밭에 밥 내가고 아들은 밭 갈아라 / 婦餉新菑子出耕
산창의 꽃나무들은 동성서부터 피어 오네 / 山窓花木自東城
이 늙은이도 부지런히 일하며 살아 왔는데 / 老傖已向勤中過
호적상에 장정의 부역이 막 면제되었네 / 力役初除籍上丁

어찌 꼭 삼천 년 복숭아를 심은 것 있겠나 / 種桃何必歲三千
씨 하나를 심은 지 바야흐로 십팔 년일세 / 一核剛投十八年
방장산 작은 뜰엔 천척의 나무가 있는데 / 方丈小庭千尺樹
나의 집에도 또한 동중천이 있다오 / 吾廬亦有洞中天

병든 학이 돌아오매 파리한 형상 외로워라 / 病鶴歸來瘦影孤
호량의 맑은 물에 머리가 환히 비치네 / 濠梁淸淺照頭臚
고기를 잡자면 어찌 갈매기를 안 따르리오 / 求魚何不隨鷗鷺
피라미 자가사리가 오호에 한없이 있다오 / 無數鰷鱨在五湖

내 붉은 꽃 사랑하는데 붉은 건 이내 드물고 / 我愛花紅紅便稀
여러 해를 짙푸름이 옷을 어둡게 하누나 / 經年綠暗暗人衣
모르겠노라 햇빛은 어느 때에 지나갔는지 / 日光不識何時過
손이 문전에 이르면 언제나 석양이로세 / 有客到門常落暉

남쪽 이웃에 손이 있어 청총마를 매어라 / 南隣有客繫靑驄
서울의 풍광이 관보 안에 실려 있도다 / 京洛風光邸報中
듣자 하니 새 소식이 모두 옛 소식 같아라 / 聽說新聞皆似舊
남가군의 개미요 역사하는 벌들이로세 / 南柯庭蟻午衙蜂

청루의 구슬 주렴 화려한 비단 자리에는 / 靑樓珠箔綺羅筵
관현악 연주 속에 꾀꼬리 제비가 봄을 다투네 / 鶯鷰爭春傍管鉉
종세토록 일찍이 적막함을 싫어 않거늘 / 終歲未曾嫌寂寞
왜 번거로이 내 나무에 새 매미 울어대는고 / 何煩吾樹有新蟬

중천의 붉은 태양 아래 황금이 번쩍이어라 / 中天亦日耀黃金
비로소 녹음 속에 있는 꾀꼬리를 보았네 / 始見黃鸝在綠陰
머리 희어 울음 금치 못한다는 한 구절 갖고 / 頭白不禁啼一句
가서 좋은 소리로 지음을 향해 울어다오 / 去將嬌滑向知音

힘 약해서 원래 나무 심는 일 드물거니와 / 力弱元來種植疏
백일홍 꽃나무는 일찍 창틈에 푸르러 있는데 / 紫薇花早碧窓虛
교사한 마음 오히려 갈거미와 서로 겨루어 / 機心猶與蠨蛸角
가지 위의 거미줄을 스스로 제거하도다 / 枝上牽絲自起除

듣자니 되놈 먼지로 대궐이 캄캄하다 하는데 / 見說胡塵暗九關
뱁새가 어이 다행히 일찍 돌아올 줄 알았나 / 鷦鷯何幸早知還
나같이 외로운 벼슬아치를 남들이 다 웃지만 / 鰥官似我人皆笑
오늘에야 비로소 사람은 안 외로움을 알겠네 / 今日方知人不鰥

삼경에 베개 밀치고 천둥 소리 듣고 나서 / 三更推枕聽雷鳴
남녘서 몰아 온 비바람에 또한 마음 놀라라 / 風雨南來亦動情
이는 본디 수많은 별들을 깨끗이 씻어서 / 自是要將星斗洗
반 바퀴 산 달과 밝음을 겨루려 함이로세 / 去爭山月半輪明
이상은 원중(原仲)의 시이다.

수다히 많은 사람 중에 이 몸이 남아 돌아라 / 紛總總中剩此身
이 몸이 되레 귀신인지 사람인지 알 수 없네 / 不知還是鬼邪人
장차 하루하루 흐르는 세월에 따라서 / 憑將窓明窓暗色
어느 한순간에 한 티끌이 되고 말리라 / 一刹那間了一塵

수습하여 돌아오매 눈빛이 늙었어라 / 收拾歸來冷眼光
일찍이 어린 시절 거쳐 신랑이 되었었네 / 曾經塗抹做新郞
이 몸은 이미 저 보리수와 같은지라 / 此身已似菩提樹
가지만 나눠 주고 담장을 나가지 않는다오 / 分付枝柯莫出墻

궁한 늙은이 응당 분수 밖의 요구가 없어 / 窮老應無分外求
개면 가고 비 오면 그침이 모두 한가로워라 / 霽行潦止摠悠悠
빛나게 오고 빛나게 가고 하는 가운데 / 光光來得光光去
푸른 하늘만이 내 머리 위에 있을 뿐일세 / 只個靑天在我頭

시절이 돌고 돌아 한겨울에 이르러라 / 回薄天時屬大冬
이 몸 쇠해 복희 신농씨를 다시 꿈꾸지 않네 / 吾衰不復夢羲農
초막집에도 절로 양양히 즐기기 족하거늘 / 衡門自足洋洋樂
어찌 다시 지팡이 짚고 불탄 언덕 향하리오 / 肯向焦原更著筇

서생이 정치를 논하면서 끼니를 연연한다면 / 書生談治慕罋飧
남쪽 사람이 북해의 곤어를 말함과 뭐 다르랴 / 何異南人說北鯤
나는 스스로 모기 눈썹 위에 소요하면서 / 我自逍遙蚊睫上
문제자에게 초혼부를 짓지 말게 하노라 / 不敎門弟賦招魂

남은 생은 이미 오만 인연 다했음을 알거니 / 餘生已覺萬緣空
올 가을에 국화를 다시 만난 게 부끄럽구려 / 媿殺今秋菊再逢
생각건대 황천에 가서 혈육들이 서로 만나면 / 臥想黃泉團骨肉
저승에서 응당 절로 즐거움이 넘치리라 / 冥間應自樂融融

본디 한 이랑도 몸소 농사지을 토지 없어 / 本無一畝可躬耕
헛 입맛만 다시면서 그 옛날 성 안에 있었지 / 朶却空頣舊在城
궁향에 한번 버려져 몸이 문득 늙고 나니 / 一斥窮鄕身便老
나라 위해 다시 장정에 충원될 수가 없네 / 不堪與國更充丁

항하의 모래와 같이 수많은 삼천 세계에 / 恒沙世界渺三千
못과 골짝 성과 해자가 만년을 번갈았네 / 淵谷城隍遞萬年
사람마다 똑같이 부여했다고 말을 말라 / 莫道人人均賦授
하늘은 본디 소리도 냄새도 찾을 수 없다오 / 本無聲臭可尋天

장기 바다며 얼음 산에 자취는 외롭지만 / 炎海氷山跡也孤
늘그막에도 예전 그 머리는 명백하여라 / 老年明白舊頭臚
강산은 간 곳마다 손도 주인도 없는 것이라 / 江山在處無賓主
군왕께 감호를 비는 일은 면하였다오 / 免向君王乞鑑湖

썰렁한 가시 사립엔 새들도 아니 오는데 / 地冷柴門鳥雀稀
마름과 연잎 다 시들어 초의로 바꿔 입었네 / 芰荷秋盡返初衣
정원의 나무 동서의 그림자를 눈여겨보니 / 待看庭樹東西影
석양빛 뉘엿뉘엿 앞처마를 넘어가누나 / 消却前榮冉冉暉

소 타는 게 그 옛날 말 탄 것보다 좋아라 / 騎牛較好舊乘驄
분수에 따라 초택에서 소리쳐 노래하노라 / 隨分狂歌草澤中
필경엔 꿈틀거리다 죽을 때만 기다리나니 / 至竟蠕蠕唯待化
인생살이가 집에 든 벌과 무엇이 다르랴 / 人生何異入窠蜂

임시 거적자리로 꽃다운 자리 대신하나니 / 權將草席代芳筵
물새의 소리 또한 관현악보다 낫구려 / 亦有江禽勝管鉉
만사가 생기지 않고 계교할 일 드물어 / 萬事不生間計較
노년의 맑고 적막함이 매미 허물 같도다 / 老年淸寂似枯蟬

물결에 달 비취니 오만 물결이 금빛이요 / 月出波心萬濤金
물과 하늘 맑고 푸르러라 구름이 걷히었네 / 水天晴碧解雲陰
우수수 소리가 문득 귀를 맑게 하는데 / 翛翛忽覺淸人聽
묻나니 이것이 바람 소린가 나무 소린가 / 問是風音是樹音

신선이나 부처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 없어 / 說仙說佛計全疏
이 내 몸 몽땅 가져다 태허에 부치고서 / 都把吾身寄太虛
세상을 수월하게 사는 법칙을 터득하여 / 透得局中休歇法
수다히 어지러운 곳에 득실을 완상하노라 / 亂紛紛地玩乘除

하늘이 만물을 내리는 데 상관할 것 없어라 / 天生萬物不相關
이심전심의 오묘한 법이 바로 팔환이로세 / 妙法單傳是八還
선생에게 말해 주노니 계교를 하지 마소 / 說與先生休計較
사람 외로움이 하필 벼슬 외로움보다 심하랴 / 人鰥何必勝官鰥

천지가 어찌 지렁이 우는 소리를 없앴던가 / 天地何嘗廢蚓鳴
모든 생물이 어찌 제 뜻을 다 펴지 못하리오 / 物生那得盡無情
이 마음은 언제나 저 태양처럼 맑으니 / 此心炯炯常如日
아마도 죽은 구천의 밤 또한 밝으리라 / 想像重泉夜亦明
이상은 외심(畏心)의 시이다.

 


매천집 제3권
 시(詩)○무술고무술고(戊戌稿)무술년(1898, 광무2)에 지은 시이다. 매천이 44세 때이다.(戊戌稿)
선오와 함께 짓다〔同善吾作〕


쓰름쓰름 매미 소리에 절로 바람이 일어 / 蟬處翛翛自欲風
온 숲의 서늘함이 작은 마을로 흘러드네 / 一林凉意數鄰通
매우 한가한 긴 날에 손님 오길 생각하니 / 甚閒永日方思客
이십여 일 작은 가뭄 풍년에 해롭지 않았구나 / 少旱兼旬不害豐
때 이른 저녁연기는 백조를 몰아내고 / 未夕村烟驅白鳥
가을 앞서 들 농사는 백일홍에서 징험하네 / 先秋野候驗赬桐
시속의 말에, 백일홍이 다 지고 나면 올벼가 익는다고 한다.
작은 시는 그저 산중 생활 기록하는 것일 따름 / 小詩只錄山居事
거칠게 엮은 솜씨 기교 논해 무엇하랴 / 潦草寧論字句工

뜰 앞의 담장 아래 길 자취가 희미하니 / 庭前墻下徑痕微
한가로이 거닐면서 사립 밖을 안 나갔네 / 日日閒行不出扉
나무 심기 십 년에 몸은 이미 늙었으나 / 種樹十年身已老
일천 권 책이 있으니 집에서는 빛이 나네 / 擁書千卷屋生輝
〈남산가〉 부르기엔 또한 때가 늦었고 / 白石要人謌亦晩
황량몽이나 꾸려 했더니 꿈도 도로 글렀구나 / 黃粱玩世夢還非
취했으나 오늘밤은 달 구경을 못할지니 / 醉來無藉今宵月
두어라 오동나무에 저녁 비나 뿌리도록 / 一任梧桐暮雨霏

거친 숲 속 연기는 개울 동쪽 서쪽에 솟고 / 荒林煙火澗東西
열흘이라 황토물에 양쪽 언덕이 어수선해 / 十日黃流兩岸迷
긴 장마에 고생하여 얼굴과 수염이 시커멓고 / 積雨苦人顔髮黑
더운 바람이 과일을 키워 가지가 늘어졌네 / 炎風長果蔓條低
글자 책은 아이에게 옆에 앉혀 가르치고 / 字書伴授髫齡子
들 일은 노련한 아내와 함께 앉아 의논하네 / 田事平參老手妻
긴긴 날 손님 없다 근심할 것 하나 없지 / 晝永不愁來客少
현허(玄虛) 얘기 나눌 벗은 베갯머리 닭이라네 / 談玄賴有枕邊鷄

부귀공명 침을 뱉고 짚신 생활 연모하니 / 唾看軒駟戀芒鞋
청산의 은거 생활 누가 나와 함께할까 / 禽向山靑孰我偕
학생에게 마음 쓰기를 코끼리를 길들이는 듯 / 推心學子如馴象
농부에게 몸 굽히기를 개구리에게 절하는 듯 / 屈軆農丁慕式蛙
한잔 술에 흥겨운 노래가 그럭저럭 괜찮으며 / 酒後狂歌聊復爾
멀리서 온 옛 벗이 회포를 달래 주네 / 天涯舊雨正堪懷
시를 지어 잊어야지 장마의 괴로움을 / 課詩忘却長霖苦
아침저녁 구름 안개 온갖 변화 볼만하네 / 朝暮雲嵐萬變佳

그대 와서 본 달이 몇 번이 둥글었나 / 子來見月幾回輪
강남의 맛있는 술을 잊지 못한 때문이리 / 爲戀江南下若春
백발이 머리 가득해도 유람이 지치지 않고 / 白髮滿頭游未倦
새로 지은 시는 비단 같아 말이 모두 매끄럽네 / 新詩如錦語皆馴
군후의 벗 사귀는 도리가 요즘 사람 같지 않고 / 郡侯友道非今世
금사(錦士)가 송후춘(宋厚春)을 매우 아꼈다.
사책에 오른 충신 현인은 좋은 후사 있는 거라 / 國史忠賢有後人
송후춘은 송규암(宋圭菴)의 후예이다.
하찮은 나물 반찬으로 이틀을 묵었는데 / 苜蓿村盤成信宿
훌륭하다, 그대는 내 가난을 잊었으니 / 多君不記我家貧
송후춘에게 화답하듯이 썼다.

시냇물이 두어 달째 지겹도록 콸콸대더니 / 溪流連月厭淙潺
오늘은 하늘 맑아 한 번 크게 웃어 보네 / 今日天晴一破顔
팥은 꽃을 피워 돌길을 가득 메웠고 / 小荳引花埋石逕
매미들이 떼를 지어 사립 앞에 모여 있네 / 亂蟬成隊集松關
장마 끝에 백박은 거친 피부 희멀겋고 / 經霖白縛麤膚淡
지붕 위의 황단은 늙은 배가 단단하네 / 跨屋黃團老腹頑
나의 집이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닌데도 / 不是吾廬高處在
손이 오면 그래도 오르는 데 힘이 들지 / 客來猶自費躋攀

한 해를 둘로 나눠 이미 절반이 지났으니 / 一歲平分已半年
은하수는 지붕 서쪽으로 자리 조금 옮겨 갔네 / 絳河稍徙屋西邊
강 노을은 붉은 실로 벽을 붉게 물들이고 / 江霞引縷棲丹壁
골짝 달은 긴 눈썹을 하늘에 남겨 놓았네 / 峽月留眉戀橢天
숲 속 새도 서늘한 기운에 둥지에서 잠잠하고 / 林鳥亦隨凉氣定
풀벌레는 노인 도와 회포를 끌어내네 / 草蟲能與老懷牽
주인은 아직 수심을 다 떨쳐 내지 못했는데 / 主人未遣閑愁了
내일 아침 일어나면 술값이 모자라리 / 酲起明朝乏酒錢

흰 띠 같은 맑은 강이 비단 안개를 토하니 / 練帶淸江綺吐霞
산속 생활 시의 경계 또한 뽐낼 만도 하지 / 山居詩境亦堪誇
벼슬은 대조하며 받는 서 되 술이 없지만 / 宦無待詔三升醞
노래는 선생의 일곱 잔 차가 있는 거라 / 歌有先生七椀茶
몽당비 같은 시문은 그저 혼자 즐길 뿐이고 / 弊帚詩文聊自好
집안 가득 꽃나무는 사치스럽다 할 순 없지 / 全家花木不嫌奢
성긴 숲 매미 소리 멈추니 문전이 씻은 듯 고요한데 / 疎林蟬斷門如洗
평상에 다리 걸치고 달빛을 감상하네 / 掛脚胡床弄月華

솔숲 깊은 그늘에 들어앉은 띠 집에서 / 松陰深處掩茅堂
약 썰고 샘 치느라 하루 일과가 바쁘다네 / 斸藥疏泉日計忙
장마가 걷혀 가니 산이 문득 푸르르고 / 霖潦欲開山忽碧
가을이라 오곡 익어 달빛도 누렇구나 / 歲秋將熟月多黃
나무에선 버섯 자라 반찬거리 잇대어 쓰고 / 木生耳長連供饌
보리쌀에 나방 나니 양식을 점검하네 / 麥化蛾飛始檢糧
진짜 시는 여항에 있다는 그 말이 참말이라 / 合謂眞詩閭巷在
농부 노래와 나무꾼 피리 소리가 문장을 이룬다네 / 農謳樵笛盡成章

 



목은시고 제34권
 시(詩)
백일홍(百日紅)을 노래하다. 1수(一首)


사시 내내 푸르고 푸른 소나무 잎이라면 / 靑靑松葉四時同
백일 내내 빨갛게 피는 선경의 꽃이로다 / 又見仙葩百日紅
새것과 옛것이 서로 이어 한 색깔을 이루다니 / 新故相承成一色
조물의 묘한 그 생각은 끝까지 알기 어렵고녀 / 天公巧思儘難窮
서리와 눈 겪으면서 내 마음 더욱 고달픈데 / 經霜與雪心逾苦
여름부터 가을까지 꽃 모습 여전히 농염해라 / 自夏徂秋態自濃
만물은 원래 다른 법 같게 될 수가 있겠는가 / 物自不齊齊者少
흰머리 늙은이 너를 대하며 거듭 탄식하노라 / 對花三歎白頭翁

[주D-001]만물은 …… 있겠는가 :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각 존재는 똑같을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존재 일반의 속성이다.[夫物之不齊 物之情也]”라는 명제가 나온다.

 


택당선생 속집 제6권
 시(詩)
여산(礪山)의 관사(官舍)에서 백일홍(百日紅)을 보고


호해를 갈 적이면 늘상 통과하였던 곳 / 湖海經過地
지난 자취 모두가 꿈속의 일들인 듯 / 陳踪似夢中
귀밑머리 하얗게 변한 몸을 이끌고서 / 羞將雙鬢白
백일홍을 다시 보니 부끄러워라 / 重見十旬紅
요염하게 늦게 피어 연꽃을 기롱하고 / 晚艷欺荷粉
새 모습 꾸미고서 대나무 떨기에 아양떠네 / 新粧媚竹叢
아 생각나누나 우일촌의 시내 마을 / 仍思雨溪里
어릴 적에 지었던 제법 멋진 시구들 / 佳句自兒童

백일홍은 호남 지방에서 많이 볼 수가 있다. 내가 어렸을 적에 고부(古阜) 우일촌(雨日村)에서 이 꽃을 소재로 장구(長句)를 지었는데, 시명(詩名)을 얻게 된 것이 실로 이때부터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헌선생속집 제1권
 시(詩)
백일홍(百日紅) 오언 절구(五言絶句)


온갖 초목들 모두 아름다운 꽃이 있지만 / 衆卉莫不花
한 달 가는 꽃 없다는데 / 花無保全月
너 홀로 백 일 동안 붉어 / 爾獨紅百日
나를 위해 봄빛을 남겨주누나 / 爲我留春色

 

헌선생속집 제1권
 시(詩)
백일홍(百日紅오언 절구(五言絶句)


온갖 초목들 모두 아름다운 꽃이 있지만 / 衆卉莫不花
한 달 가는 꽃 없다는데 / 花無保全月
너 홀로 백 일 동안 붉어 / 爾獨紅百日
나를 위해 봄빛을 남겨주누나 / 爲我留春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