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다산 정약용의 한시

다산 선생님의 여름날 흥풀이[夏日遣興] 8수

아베베1 2011. 6. 23. 11:42

 

 

 

                 

 

 

 

           

             다산 정약용

             다산시문집 제4권

                       

       여름날 흥풀이[夏日遣興] 8수


여름철에 병들어 누워 있으려니 숨통이 꽉 막힌다. 한양에 있는 누각과 정자들, 바람이 소 리내며 문으로 솔솔 들어오던

일들이 그리워 왁하고 소리 지르며 발광을 해보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러나 그 옛날을 생각하고 지금의 현실을 슬퍼할 때 옛날 두보(杜甫)가 가을을 흥겨워했던 그 뜻을 잊을 수가 없다 하겠다.

 

창의문 앞에는 돌길이 뚫려 있고          / 彰義門前石逕通
삼각산 봉우리가 중천에 꽂혀 있지       / 華峯三角揷天中
시냇물 돌아흘러 마음까지 시원하고     / 回溪不斷澄心水
높다란 버드나무 시원한 바람 불었는데 / 高柳長吹拂面風
명사들이 잔치 열어 국가 기상 결정짓고 / 名士開筵關氣象
영왕이 칼 씻은 곳 영웅호걸 따로 없지 / 寧王洗劍想豪雄
지금은 장독 서린 오랑캐 접경에 / 如今瘴熱鰕夷界
낮은 처마 대에 막히고 햇빛만 이글거리네 / 竹壓矬檐海日紅
이는 세검정(洗劍亭)을 읊은 시다. 세검정은 창의문에서 북쪽으로 5리 거리에 있음.

성을 끼고 길게 뻗은 서교로 가는 길 / 西郊馳道夾城長
한여름에 그 길 따라 시원한 참에 댈라치면 / 朱夏追隨趁晩涼
사통오달 덩그런 집 깊은 골에 열려 있고 / 四達軒楹開僻巷
한 무리 말 탄 손님 꽃못에 비치느니 / 一群鞍馬照芳塘
사대에 날 다스워 잔디싹이 푸르르고 / 射臺日煖莎苗綠
어함에 부는 미풍 연꽃이 향기로워 / 魚檻風微菡萏香
오얏 담그고 외 띄우고 웃으며 즐기다가 / 沈李浮瓜欣笑傲
언제든지 석양이 다 되어서야 돌아왔지 / 常時歸影逼斜陽
이는 천연정(天然亭)을 읊은 시다. 천연정은 돈의문(敦義門) 밖에 있음.

유하정이 중간에는 근신들에게 귀속되어 / 中歲流霞屬近臣
하얀 담에 화초들이 봄을 서로 시새웠지 / 粉墻花木媚靑春
용산에 비단 돛대 한도 없는 풍류였고 / 龍山錦帆風流遠
봉각의 황금패는 새로운 제도였어 / 鳳閣金牌制度新
묵은 약속 자연히 오징어 먹물 되어버려 / 宿約自然成鰂墨
마음이야 누구인들 농어 순채 생각 없으리 / 本心誰不憶鱸蓴
막다른 골에 유락한 신세 먼지나는 바닷가 / 窮荒落跡塵生海
고국 산천 생각하니 눈물이 수건 적시네 / 故國回頭淚滿巾
이는 유하정(流霞亭)을 읊은 시다. 유하정은 광희문(光熙門)에서 10리 거리인 두모포(豆毛浦) 가에 있는데,

선왕조 때에 그것을 내각(內閣)에 귀속시켜 용산 독서당(龍山讀書堂)으로 쓰게 했던 고사가 있음.

 

바위도랑 서쪽에 자그마한 서향각 / 書香小閣石渠西
밤마다 동쪽 벽에 별들이 나직하다네 / 東壁星辰夜夜低
언제나 자색 안개 용호 기운 서려 있고 / 紫霧常留龍虎氣
푸른 못은 봉황이 와 놀도록 하였다 / 碧池曾許鳳凰棲
옥섭을 보노라면 님의 얼굴 떠오르고 / 恭瞻玉躞天顔近
특별히 주신 상아 첨대 님이 손수 쓰신 거였지 / 密降牙籤御手題
듣기에 화영전을 새로 또 지었다는데 / 聞道華寧新象設
유대 앞 길가에는 풀빛이 무성하리 / 乳臺前路草萋萋

이는 서향각(書香閣)을 읊은 시다. 서향각은 춘당대(春塘臺) 북쪽에 있는데 내부(內府)의 서적과 어진(御眞)을

모셔둔 곳이고, 화영전은 화성(華城)에 있는데 역시 어진을 모셔둔 곳임.

파릉의 물빛이 검천까지 닿아 있고 / 巴陵水色接黔川
강 위의 붉은 누각 반공중에 솟아 있지 / 江上朱樓落半天
버드나무 밖에는 조군이며 돛대뿐이요 / 漕步帆檣煙柳外
들창 앞에 보이는 것 어촌이요 섬이었다 / 漁村洲嶼綠窓前
은대의 직책으로 난여 따라 가보았고 / 銀臺職從鸞輿日
아버지 교훈 받던 시절 지부관으로 오셨었죠 / 地部官臨鯉對年
님 계신 곳 아득하고 어버이도 아니 계셔 / 弓劍杳然風樹隕
객상에서 읊는 시에 눈물이 왈칵 솟네 / 客牀吟眺重汪然

이는 읍청루(挹淸樓)를 읊은 시다. 읍청루는 숭례문(崇禮門) 밖 10리 거리에 있는 용산(龍山) 위에 있는데, 선인(先人)께서 호부(戶部)에 계실 때 그 누각에 한 번 오르신 일이 있고, 왕조 시절 대가(大駕)가 거기 가실 때는 내가 또 승지(承旨)로서 호종(扈從)했던 일이 있었음.
노량진 작은 토성 강을 띠고 쌓여 있고 / 露梁津堡帶江橫
구불구불 연로가 화성까지 닿아 있지 / 輦路逶迆接華城
물가 언덕 정자 하나 구름 일어 장막 되고 / 水岸亭孤雲幕起
바다에 돛 사라지면 그림다리가 놓여졌지 / 海門帆落畫橋成
님 탄 수레 움직이려면 화살 셋이 날았으며 / 鸞鑣欲動飛三箭
타고가 울리면서 두 곳 영도 풀리었지 / 鼉鼓交鳴解兩營
병조에 있으면서 님의 행차 모셨을 때는 / 憶忝兵曹陪羽衛
내반에서 편미 들고 기둥 앞에 섰었건만 / 內班鞭弭列朱楹

이는 망해정(望海亭)을 읊은 시다. 망해정은 노량진에 있는데, 선왕께서 화성(華城)에 행차했다가 돌아올 때면

 언제나 그 정자에서 조금 쉬었다가 배에 오르곤 하였음.

서쪽으로 호문 나서면 북영이 거기 있고 / 虎門西出北營深
주합루를 동으로 보면 왕기가 서려 있어 / 宙合東瞻御氣臨
복도 밑을 흐르는 시내 대낮에도 요란하고 / 閣道溪聲喧白日
황단 주위 나무들은 녹음이 짙었었지 / 皇壇樹色暗濃陰
사장을 자주 열어 능피도 옮겨오고 / 數開射埒移綾被
곁에다는 서루 지어 한림으로 삼았었다 / 旁起書樓作翰林
연꽃에 늘 취해서 못가에 가 누웠었는데 / 每醉藕花池上臥
서글프게 동쪽 끝 바닷가에서 읊노라네 / 傷心扶木海邊吟

이는 군자정(君子亭)을 읊은 시다. 군자정은 요금문(耀金門) 밖에 있는데 황단(皇壇)ㆍ주합루(宙合樓)와

마주보고 있으며 거기가 바로 북영(北營)임.
인왕산이 비스듬히 세심대를 끼고 있어 / 仁王斜抱洗心臺
님 수레가 일년 일차 꽃구경을 오셨다네 / 玉輦看花歲一廻
구름이 산을 막아 그대로 막차이고 / 雲擁翠微開幕次
꽃시내를 흐르는 물 술잔 띄우기 알맞아 / 水流芳澖汎觴杯
고요한 이빈의 궁 드문드문 버들이요 / 李嬪宮靜垂疎柳
깊숙한 서씨 정원 매화가 비쳤었지 / 徐氏園深映遠梅
독보라는 휘호를 지척에서 하시면서 / 咫尺揮毫稱獨步
몇 번이고 님께서 이 비재를 인정했는데 / 幾回天語獎菲才
이는 세심대(洗心臺)를 읊은 시다. 세심대는 경복궁(景福宮) 서쪽에 있는데 그 아래 선희궁(宣禧宮)이 있음.


 

[주D-001]명사들이 …… 결정짓고 : 세검(洗劍)은 인조반정(仁祖反正)을 앞두고 김유(金瑬)ㆍ이귀(李貴) 등이 그곳에 모여 거사(擧事)를 모의한 다음 그 물에 칼을 씻어 칼집에 넣었다 하여 생긴 이름이기에 한 말임.
[주D-002]영왕 : 하늘의 명을 받아 국가를 안정시킨 왕. 여기서는 인조(仁祖)를 말한 것.
[주D-003]황금패 : 규장각(奎章閣)에서 쓰는 부신(符信). 나무조각에 금물을 도금하여 만든 패. 규장각을 출입할 때 쓰여졌음.
[주D-004]농어 순채 생각 없으리 : 향수(鄕愁)는 사람마다 다 있음을 말한 것이다. 진(晉)의 장한(張翰)이 자기 고향의 순채국과 농어회가 생각나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었음. 《晉書 張翰傳》
[주D-005]편미 : 말채찍과 꾸미지 아니한 활. 왕의 행차 때 쓰던 도구들임.
[주D-006]능피 : 능견(綾絹)으로 만든 이불. 상서랑(尙書郞)으로서 입직(入直)한 사람에게 푸른색 비단 이불을 제공했다고 함. 《漢官典職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