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혼상제 예절/언행록 (2)

생활태도와 언어

아베베1 2010. 2. 18. 23:25

언행록 2
 유편(類編)
생활태도와 언어


거처는 반드시 조용하고 정돈되었으며, 책상은 반드시 말끔하고 깨끗했고, 벽에 가득한 책들은 항상 가지런히 순서대로 되어 있어서 어지럽지 않았다. 새벽에 일어나 반드시 향불을 피우고 고요히 앉았고, 온종일 책을 읽어도 나태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김성일-

평상시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서 이부자리를 정돈하고, 세수하고 머리 빗고 의관을 바로하고는, 날마다 《소학》의 글대로 했다. 조금 자라서는 서당에 나갔는데, 비록 여러 사람들과 함께 쉴 때에도 반드시 얼굴빛을 가다듬고 단정히 앉아서, 옷매무새를 반드시 바르게 하였으며, 말이나 행동을 언제나 삼가서 했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사랑하고 공경해서, 감히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김성일-

평상시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 의관을 갖추고, 서재에 나가 자세를 가다듬고 단정히 앉아 조금도 어디에 기대는 일이 없이 온종일 책을 읽었다. 간혹 고요히 앉아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시(詩)를 읊조리기도 했으나, 세속 사람이 즐기는 바는 한 번도 그의 마음을 스쳐 가는 일이 없었다. -정유일-

평상시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서 방에 고요히 앉아 마음을 삼가고 사색하는 것이 마치 흙으로 빚어 만든 사람 같았다. 그러나 학자들이 와서 묻는 일이 있으면 샅샅이 파고 캐어 환히 깨우쳐 주었으므로, 비록 아주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모두 깨달아 흥기하였다. -우성전-

선생은 한가히 있을 때에도 온종일 단정히 앉았고, 혹 기운이 피로하고 몸이 곤하더라도 어디에 기대거나 자세가 풀어지는 기색이 없었다. 정신이 아주 피곤할 때에는 잠깐 강대(江臺)에 나가 기분을 풀거나, 책상에 기대어 조금 쉬거나 할 뿐이었다. -이덕홍-

온종일 고요히 앉아 있어서, 혹 무릎을 포개어 앉을 때라도 반드시 단정하고 엄숙해서, 조금도 기대지 않았다. 가끔 몸이 피로해지면 눈을 감고 단정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우성전-

선생은 앉을 때는 반드시 단정하고 엄해서 손발을 움직이지 않았고, 제자들과 상대할 때에는 귀한 손님이 자리에 있는 듯이 하기 때문에, 제자들이 모시고 앉았어도 감히 쳐다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제자를 앞에 앉히고 글을 가르칠 때에는 화한 기운이 풍기며, 가르쳐 깨우침은 다정하고도 친절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환해서 의심스럽고 모호한 데가 없었다. -정사성(鄭士誠)-

을축년(1565, 명종20) 가을에서 겨울에 걸쳐 성전이 계남서재(溪南書齋)에 있을 때였다. 선생은 항상 동재(東齋)에 계셨는데, 밤이 깊어서야 자리에 드시고, 날이 밝기도 전에 의관(衣冠)을 가다듬고 서재에 나오셨다. 이렇게 하기를 날마다 변함이 없었다. -우성전-

선생은 평소 집에 있을 때나 산(山)에 있을 때에, 학문을 강하고 친구를 접대할 때를 제외하고는 주위에 아무도 없이 조용하였다. 일찍이 말하기를,

“내가 혼자서 완락재(玩樂齋)에 잘 때인데, 한밤중에 일어나 창을 열고 앉았더니, 달은 밝고 별은 깨끗한데 강산이 괴괴하고 얼어붙은 듯이 고요하여, 마치 천지(天地)가 열리기 이전의 세계인 듯한 생각이 들었다.”

하였다. -이덕홍-

무진년(1568, 선조1) 7월 18일 아침 일찍 출발해서 서울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광나루에 이르렀는데, 때마침 큰 비바람을 만났다. 물결이 높이 일어나서 거의 배가 뒤집힐 지경에 이르자, 배 안의 사람이 모두 놀라고 두려워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선생은 홀로 신색에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이안도-

선생은 사람을 대할 때나 사물을 접할 때, 언행의 동작과 침묵에 반드시 절도(節度)가 있었다. 그래서 혹 사람이 묻지 않을 것을 묻거나, 말하지 않을 것을 말하거나 하면, 반드시 정색을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김성일-

선생은 여러 사람들과 말할 때에는 부드럽고 화목하여 다투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大夫)들과 말할 때에는 반드시 정색을 하고 끝까지 따져서 시비를 가려 내고야 말았다. -이국필(李國弼)-

남의 잘못을 말하지 않지만, 혹 들리는 바가 있으면 반드시 불쌍히 여겨 애석해하는 뜻이 있었고, 당시의 정치의 잘못을 말하지 않지만, 혹 들리는 바가 있으면 반드시 걱정하는 얼굴빛을 하였다. -우성전-

묻기를,

“남의 착하지 못한 것을 보고 가엾게 여겨 성내지 않는 것은 어떻습니까?”

하니, 선생이 이르기를,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불인(不仁)을 미워하는 것은 또한 천하를 공평하게 하는 마음이다. 마땅히 두 가지를 아울러 행하는 것이 옳다.”

하였다. -이국필-

선생은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의 말이 이치에 맞으면 기꺼이 따르되, 만일 그 말이 이치에 맞지 않으면 곧 잠자코 대답하지 않으므로, 사람들이 자연 두려워하였다. 그러므로 거만하고 잡스러운 말이나 속되고 번거로운 말이 그의 귀에까지 들린 적이 없었다. -이덕홍-

무릇 사람들과 온종일 이야기할 때에는 간절하고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갈수록 더하여 갔다. 혹 남의 말이 마음에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나 얼굴빛을 변하는 일이 없었고, 그렇다고 또한 거만하거나 희롱하거나 업신여기는 마음도 없었다. -우성전-

평소에는 말을 잘 못하는 것 같지만, 학문을 논할 때는 그 말이 통쾌해서 의심스럽거나 걸리는 바가 없었고, 몸은 옷을 이기지 못하는 듯하지만, 일을 처리할 때는 꿋꿋하여 흔들림이 없었다. -우성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