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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래비서

아베베1 2013. 7. 21. 10:06

 

 

 

 

임하필기 제3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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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래비서(蓬萊秘書)

[봉래비서(蓬萊秘書) 서(序)]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오래 살려고 하는 것은 모두 욕심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욕심은 그래도 충족시킬 수 있지만, 문장에 대한 욕심은 쉽게 충족시키지 못하며, 산수(山水)에 대한 욕심은 더욱더 충족시키기 어렵다. 산수는 명산대천(名山大川)을 가리키는 것이고 문장 또한 명산대천에 있는 것인데, 명산대천은 오직 사마천(司馬遷)만이 두루 유람하고 잘 활용하였다.
나는 을축년(1865, 고종2)에 여러 산과 팔경(八景)을 두루 답사한 다음, 한 권의 그림책을 만들어 이름을 ‘봉래비서’라 하고 여러 명승지의 고사 따위를 열거하여 적고 우리나라 사람의 문집을 널리 상고하여 시어(詩語)를 대략 적었다. 그러나 서적을 총망라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나의 고루함이 부끄러울 뿐이다. 진미공(陳眉公)이 말하기를, “마음을 깨끗이 가지고 욕심을 적게 가지면 어떠한 사물도 나의 뜻을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하였는데, 산천도 바로 만물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비록 한없는 욕심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산수를 옮겨 놓았다는 말은 듣지 못했으니, 옮겨 놓을 수 있는 것이라면 진시황(秦始皇)과 한 무제(漢武帝)가 벌써 이 산수를 아방궁(阿房宮)과 백량대(柏梁臺)에 옮겨 놓았을 것이다.


 

 

 
 임하필기 제3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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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래비서(蓬萊秘書)
금강산(金剛山)의 유래와 고사

《화엄경(華嚴經)》에 이르기를, “바다 가운데에 ‘금강산(金剛山)’이라 불리는 곳이 있는데, 예부터 여러 보살(菩薩)들이 이곳에 살고 있었다. 현재에는 법기(法紀)라는 이름을 가진 보살이 그 가솔인 여러 보살 1200명과 함께 항상 이곳에 있으면서 불법을 강론한다.” 하였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의 보살주처품(菩薩住處品) 31의 제소(第疏) 6에 이르기를, “어떤 산 하나가 동해의 동쪽 가까이에 있는데, 비록 전체가 금으로 된 것은 아니나 상하 사방을 위시하여 그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속의 모래까지도 모두 금을 함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멀리서 바라보고는 곧 전체가 금이라는 말들을 한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이 산에서 이따금씩 성현이 출현한다.” 하였다.
또 진본(晉本)에 의하면, 바다 가운데에 살 곳이 두 군데 있는데, 그 하나는 이름을 ‘지달나(枳怛那)’라 한다. 현재 그곳에 담무갈(曇無竭)이란 보살이 있고, 1만 2천 명의 보살 권속(眷屬)이 있다. 지달(枳怛)이라 말한 것을 ‘일지다(昵枳多)’라고 이르는데, 이것은 용출(踊出)을 가리키는 것이다. 금강(金剛)은 체(體)를 말하고, 용출(踊出)은 상(狀)을 말한다. 담무갈이라는 것은 여기서는 법생(法生)이나 법용(法勇) 또는 법상(法尙)이라 한다. 지금 말하는 법기(法起)는 법생이나 법용과 뜻이 같은데, 바로 상제보살(常啼菩薩)의 벗이다. 보살의 권속 수가 지금의 불경보다 10배나 되니, 번역자의 잘못인 듯하다.

《이칭일본전(異稱日本傳)》에 이르기를, “금강산은 조선의 강원도에 있는데, 본조(本朝)의 금강산과 이름이 같다. 《화엄경》에 ‘이로부터 동방에 금강산이 있는데, 법희보살(法喜菩薩)이 불사(佛事)를 일으켰다.’ 하였는데, 조선과 일본의 금강산은 모두 이것을 근거로 한 것이었던가.” 하였다.

《삼재도회속집(三才圖會續集)》에 이르기를, “만폭동(萬瀑洞)은 금강산 속에 있다. 수많은 비천(飛泉)이 골짜기에서 쏟아져 나오는데, 그 형태가 한결같지 않고 다양하기 때문에 이름을 ‘만폭동’이라 한다. 골짜기의 어귀에는 ‘오인봉(五人峯)’이란 봉우리가 있는데, 청학(靑鶴)이 거기에 깃든다고 한다. ‘관음담(觀音潭)’이라 부르는 못 하나가 있는데, 그 못가에는 이끼가 끼어 있어 미끄러우므로 사람들은 모두 등나무 덩굴을 붙잡아야만 그곳을 지나갈 수 있다. 또 ‘수건애(手巾崖)’라는 절벽이 있는바 돌 가운데가 마치 확[臼]처럼 파여 있는데, 속설에 관음보살이 빨래하던 곳이라 전한다. 보덕굴(普德窟) 앞에 이르면 튀기는 여울물이 바위를 감돌아 언덕에 부딪혀 마치 펄펄 날리는 눈발처럼 뿜어져 나오므로 맑은 날씨의 대낮에도 어두컴컴하다. 돌 밑에 있는 물은 마치 쪽빛처럼 푸르다. 또 몇 보 떨어진 지점에 성난 폭포가 구슬을 날리고 눈발을 흩으며 격렬하게 물줄기를 뿜어낸다. 그중에서 큰 것은 12층이고 작은 것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그러므로 ‘만폭동’이라 한다. 그 아래는 ‘주연(珠淵)’이다. 또 마치 거북이 못 속에 엎드린 것처럼 생긴 돌 하나가 박혀 있는 것을 ‘구담(龜潭)’이라 하며, 또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못 하나를 ‘화룡담(火龍潭)’이라 한다. 그리고 그 위에 있는 봉우리를 ‘사자암(獅子巖)’이라 한다. 골짝 안에는 보덕굴이 있다. 절벽을 파서 판자를 가로지르고 구리쇠 기둥을 밖에 세워서 세 칸짜리의 작은 집을 그 위에 짓고 이름을 ‘관음각(觀音閣)’이라 하였다. 그 관음각은 쇠사슬로 비끄러매고 바위에 못질을 하여 공중에 떠 있게 하였으므로, 사람이 오르면 흔들린다. 그 가운데에는 불함(佛函)을 두어 주옥(珠玉)으로 장식하고 밖에는 철동(鐵銅)을 설치하여 손으로 만지는 것을 방지하였다.” 하였다.

청(淸)나라 사람 남회(南匯) 오성란(吳省蘭)의 《예해주진(藝海珠塵)》에 이르기를, “금강산은 회양부(淮陽府)에서 동쪽으로 167리쯤 떨어진 지점에 있다. 산 이름은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금강산(金剛山), 둘째는 개골산(皆骨山), 셋째는 열반산(涅槃山), 넷째는 풍악산(楓嶽山), 다섯째는 기달산(枳怛山)인데, 백두산(白頭山)의 남쪽 가닥이다. 회령부(會寧府)의 우라한현(亏羅漢峴)으로부터 갑산(甲山) 동쪽에 이르기까지는 두리산(頭里山)이고, 영흥(永興)의 서북쪽은 검산(劍山)이고, 영흥부의 서남쪽은 분수령(分水嶺)이고, 서북쪽은 철령(鐵嶺)이고, 통천(通川)의 서남쪽은 추지령(楸池嶺)인데, 장양(長楊)의 동쪽 고성(高城)에까지 이른다. 이 산이 분수령으로부터 여기에 이르기까지는 830여 리이다. 금강산은 봉우리가 1만 2천 개인데, 모두 바위로 되어 있고 동쪽으로 바다에 임해 있으며, 삼나무와 전나무가 하늘 높이 솟아 있는바, 바라보면 한 폭의 그림과 같다. 그리고 일출봉(日出峯)과 월출봉(月出峯)이 있는데, 해와 달이 뜨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내금강(內金剛)과 외금강(外金剛)에 있는 절들은 모두 108개인데, 그중에서 표훈사(表訓寺), 정양사(正陽寺), 장안사(長安寺), 마하연(摩訶衍), 보덕굴(普德窟), 유점사(楡岾寺)가 가장 유명한 절이라 한다.” 하였다.

《문헌비고(文獻備考)》에 이르기를, “분수령에서 북동쪽으로는 청하(靑霞), 추포(楸浦), 풍류(風流), 철령(鐵嶺)에 이르고, 또 동쪽으로는 판기령(板機嶺), 기죽령(騎竹嶺)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저유(猪踰), 추지(楸池), 판막(板幕), 쇄령(灑嶺)에 이르고, 동남쪽으로는 온정(溫井)에 이르고, 또 남쪽으로는 금강산 같은 명산이 되었으며, 남쪽에는 통천군(通川郡)의 군소재지가 있다. 그리고 쌍학(雙鶴)으로부터 동쪽으로 뻗어가 고봉총석(姑峯叢石)의 승경에 이른다. 쇄령 한 가닥이 서쪽으로는 말휘령(末暉嶺)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백옥산(白獄山), 부로봉(扶老峯)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장미(獐尾), 의관산(義館山)에 이르고, 남쪽에는 회양부(淮陽府)의 부소재지가 있다. 말휘령으로부터 남쪽으로 뻗어가 단발령(斷髮嶺), 천마령(天磨嶺), 대동파령(大東坡嶺), 소동파령(小東坡嶺)이 되었고, 화천(和川)과 오천(烏川)이 그 아래로 모인다. 온정령(溫井嶺)이 동쪽으로 뻗어가 고성군(固城郡)의 군소재지에 이른다. 북쪽에는 삼일포(三日浦)가 있다. 금강산은 남쪽으로 회전령(檜田嶺), 진부령(珍富嶺), 마기령(磨耆嶺), 흘리령(屹里嶺), 미시령(彌時嶺)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설악산(雪嶽山)에 이른다.
설악산의 한 가닥은 동쪽으로 영혈(靈穴), 사현(沙峴), 현산(峴山)에 이른다. 남쪽에는 양양부(襄陽府)의 부소재지가 있다. 사현으로부터 동북쪽으로 뻗어가 낙산사(洛山寺), 오대산(五臺山)에 이르고, 동남쪽으로 대관령(大關嶺)에 이른다. 대관령 한 가닥이 동쪽으로 뻗어가 구산(丘山)에 이르고, 또 뻗어가 강릉부(江陵府)의 부소재지에 이른다. 북쪽에는 경포대(鏡浦臺)가 있다. 청옥산(靑玉山) 한 가닥이 동쪽으로 갈야산(葛夜山)에 이른다. 삼척부(三陟府)의 부소재지가 있으며, 죽서루(竹西樓)의 승경이 있다.” 하였다.

《택리지(擇里志)》에 이르기를,
“강원도는 함경도와 경상도 사이에 있다. 영(嶺)의 등성이가 철령(鐵嶺)으로부터 남쪽으로 태백산(太白山)에 이르는데, 마치 하늘에 맞닿은 구름처럼 뻗쳐 있다. 영 동쪽에는 아홉 고을이 있으니, 북쪽으로 함경도 안변부(安邊府)와 경계가 닿은 흡곡(歙谷), 통천(通川), 고성(高城), 간성(杆城), 양양(襄陽), 옛 예맥(穢貊)의 도읍지였던 강릉(江陵), 삼척(三陟), 울진(蔚珍), 평해(平海)인데, 이 지역에는 이름난 호수와 기이한 바위가 많다. 높은 데 오르면 바다가 망망하고 골짜기에 들어가면 물과 돌이 아름다워 경치가 나라 안에서 실상 제일이다. 누대(樓臺)와 정관(亭館)의 훌륭한 경치가 많아 사람들이 ‘관동팔경(關東八景)’이라 부른다.
철령은 북쪽으로 통하는 큰길이고, 그 아래는 추지령(楸池嶺)과 금강산이다. 고성의 삼일포(三日浦)는 맑고 묘한 중에 화려하고 그윽하고 고요한 중에 명랑하여, 마치 곱게 단장한 숙녀와 같으므로 사랑스럽고 존경스럽다. 강릉의 경포대(鏡浦臺)는 마치 한(漢)나라 고조(高祖)의 기상처럼 활달한 중에 웅장하고 아늑한 중에 조용하여, 그 형상을 이루 형언할 수 없다. 간성의 화담(花潭)은 달이 맑은 샘에 빠져 있는 것과 같고, 영랑호(永郞湖)는 구슬이 큰 못에 갈무리된 것과 같다. 양양의 청초호(靑草湖)는 거울 앞의 화장대와 같다. 삼일포는 호수 복판에 사선정(四仙亭)이 있는데, 곧 네 신선이라 이름한 신라의 영랑(永郞)ㆍ술랑(述郞)ㆍ남석행(南石行)ㆍ안상(安詳)이 놀던 곳이다. 호수의 남쪽 석벽(石壁)에 있는 붉은 글씨는 곧 네 신선이 이름을 쓴 것인데, 붉은 글씨가 벽에 스며들어서 바람과 비에도 지워지지 않았다. 읍소재지의 객관(客館) 동쪽에는 해산정(海山亭)이 있다. 거기에 앉아서 서쪽으로 돌아보면 금강산 천 봉우리가 겹쳐 있고, 동쪽으로 바라보면 창해 만리가 탁 트여 있으며, 남쪽을 굽어보면 한 줄기 긴 강이 넓고 웅장한 데다 크고 작은 골짜기와 평야의 경치를 겸하였다. 남강(南江) 상류에는 발연사(鉢淵寺)가 있고, 곁에는 감호(鑑湖)가 있다. 옛날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이 호숫가에다 정자를 짓고 손수 ‘비래정(飛來亭)’이란 세 큰 글자를 써서 벽에 걸어 두었다. 그 후 어느 날 벽에 걸어 둔 ‘비(飛)’ 자가 갑자기 바람에 휘말려서 하늘로 올라갔는데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비’ 자가 날아간 날짜와 시각을 알아보니, 바로 양봉래가 세상을 떠난 그날 그 시각이었다.
경포대는, 작은 산기슭 하나가 동쪽을 향하여 우뚝 솟았는데, 누대는 그 산기슭 위에 있다. 앞에 있는 호수는 주위가 20리이며, 물의 깊이는 사람의 배에 닿을 정도여서 작은 배가 다닐 수 있다. 동쪽에는 강문교(江門橋)가 있고, 다리 너머에는 흰 모래둑이 겹겹으로 둘러막혀 있다. 호수는 바다와 통하고, 둑 너머에는 푸른 바다가 하늘에 연하여 있다. 옛날 최전(崔澱)이 약관의 나이로 경포대에 올라가서 쓰기를, ‘봉호에 한 번 들어가니 삼천 년인데, 은빛 바다 아득한데 물은 맑고 얕네. 피리 불며 오늘 홀로 날아왔으나, 벽도화 아래에는 보이는 사람 아무도 없네.[蓬壺一入三千年 銀海茫茫水淸淺 鸞笙今日獨飛來 碧桃花下無人見]’ 하였는데, 이 시는 드디어 고금에 없는 절창(絶唱)이 되었고 그를 계승할 사람이 없었다. 시에는 조금도 속인(俗人)의 기상이 없으니, 이것은 바로 신선의 말이다.
총석정(叢石亭)은 금강산의 한 기슭이 곧장 바다에 들어가서 섬같이 된 곳이다. 기슭 북쪽 바다 가운데에는 높이가 백 길쯤 되는 큰 돌기둥이 있다. 무릇 돌 봉우리는 위는 뾰족하고 밑둥은 풍만한 법인데, 이 경우는 위와 아래가 똑같으니 이것은 기둥이지 봉우리가 아니다. 기둥은 몸뚱이가 둥글고 둥근 중에도 깎은 흔적이 있으니, 밑에서 위에까지 마치 목수가 칼로 다듬어 놓은 것과 같다. 그리고 기둥 위에는 더러 묵은 소나무가 점점이 붙어 있다. 기둥 밑, 바다 물결 가운데에는 수없이 많은 작은 돌기둥들이 혹은 서 있거나 혹은 거꾸러진 채 파도에 부딪히고 침식되어 마치 사람이 만든 것과 같으니, 조물주가 물건을 만든 것이 지극히 교묘하고 지극히 기이하다. 이것은 천하에 기이한 경관이요, 또 반드시 천하에 둘도 없을 것이다.
죽서루(竹西樓)는 오십천(五十川)을 차지하여 훌륭한 경치를 이룬다. 절벽 아래에는 컴컴한 구멍이 있는데, 물이 그 위에 이르면 새어 낙숫물 지듯 하고, 남은 물은 죽서루 앞 석벽을 따라 옆으로 읍내 마을을 지나간다. 옛적에 뱃놀이하던 사람이 잘못하여 구멍 속에 들어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였다. 사람들은 ‘읍터가 공망혈(空亡穴)에 위치하였으므로 인재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 밖에 양양의 낙산사(洛山寺), 간성의 청간정(淸澗亭), 울진의 망양정(望洋亭), 평해의 월송정(月松亭)은 모두 바닷가에다 지었다. 바닷물은 몹시 푸르러서 하늘과 하나가 된 듯하며, 앞에는 가리는 것이 없다. 해안(海岸)은 강변이나 시냇가와 같이 작은 돌과 기이한 바위가 언덕 위에 섞여 서 있어 푸른 물결 사이에 보일락 말락한다. 해변은 모두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 모래라서 밟으면 사각사각 하는 소리가 마치 구슬 위를 걷는 것과 같다. 모래 위에는 해당화가 활짝 피었고, 가끔 우거진 솔숲이 하늘 높이 솟아 있다. 그 안에 들어가면 사람의 생각이 홀연히 변하여, 인간 세상이 어떤 지경인지 자신의 형체가 어떤 것인지 모르도록 황홀해져서, 공중에 오르고 하늘을 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이 지역을 한 번 거치면 그 사람은 저절로 딴사람이 되니, 지나간 자는 비록 10년 후에라도 얼굴에 오히려 산수 자연의 기상이 있다.”
하였다.
○ 또 이르기를,
“금강산 1만 2천 봉은 순전히 돌 봉우리, 돌 골짜기, 돌 내[川]이다. 봉우리, 멧부리, 골짜기, 샘, 못, 폭포가 모두 하얀 돌이 맺혀서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일명 ‘개골산(皆骨山)’이라고도 하는데, 산에 한 치의 흙도 없음을 말한 것이다. 만 길 산꼭대기와 백 길 못까지도 온통 한 개의 돌이니, 이것은 천하에 둘도 없는 것이다.
산 한복판에 정양사(正陽寺)가 있고, 절 안에 헐성루(歇惺樓)가 있는데, 가장 요긴한 곳에 위치하여 그 위에 올라앉으면 온 산의 참모습과 참정신을 볼 수 있다. 마치 구슬 굴속에 앉은 듯 맑은 기운이 상쾌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장위(腸胃) 속의 티끌과 먼지를 씻어 버리게 한다. 정양사 서쪽에 표훈사(表訓寺)와 장안사(長安寺)가 있다. 이 절에는 원(元)나라 때와 고려 때의 옛 자취가 많고, 또 궁중에서 하사한 값진 보물이 많다. 정양사에서 북쪽으로 들어가면 바로 만폭동(萬瀑洞)인데, 못이 아홉 곳이나 있어 경치가 훌륭하다. 골짜기 벽면에는 양사언(楊士彦)이 쓴 ‘봉래풍악 원화동천(蓬萊楓嶽元化洞天)’이라는 여덟 자의 큰 글자가 있는데, 글자의 획이 마치 살아 있는 용과 범처럼 생동감이 넘치며, 날개가 돋쳐서 너울너울 날아 신선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안쪽에는 마하연(摩訶衍)과 보덕굴(普德窟)이 허공에 매달려 있다. 그 지은 솜씨는 귀신의 조화 같아 거의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칠 바가 아니다. 제일 위에 있는 중향성(衆香城)은 만 길 봉우리 꼭대기에 위치하였다. 바닥이 모두 흰 돌이며, 층계가 마치 상(床)과 탁자를 벌여 놓은 것 같다. 그 위에 하나의 선돌이 놓여 있다. 불상(佛像) 같으면서 눈썹과 눈은 없는데, 이것은 천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좌우 돌상[石床] 위에도 작은 석상(石像)들이 두 줄로 벌여 서 있는데 또한 눈썹과 눈은 없다. 전해 오는 말에 ‘담무갈(曇無竭)이 여기에 머물러 있었다.’ 한다. 앞은 만 길 골짜기이고, 오직 서북쪽에 있는 가느다란 길을 따라 들어가게 되는데, 만 봉우리가 하얗고, 물과 돌, 못과 골이 굽이굽이 기이하여 다 기록할 수 없다. 이름난 암자와 작은 요사(寮舍)가 그 위에 섞여 있어, 거의 칠금산(七金山)과 인조산(人鳥山)의 제석궁전(帝釋宮殿) 같으며 인간 세상에 있는 것 같지 않다. 제일 꼭대기는 비로봉(毘盧峯)이다. 거센 바람이 바로 치솟아서 거기에 오르면 비록 여름이라 해도 오히려 추워서 솜옷을 입어야 한다. 산 서북쪽에 영원동(靈源洞)이 있어 따로 한 경계를 이루었다. 동쪽은 내수참(內水站)인데 곧 영(嶺)의 등성이인 산맥이며, 등성이를 넘으면 곧 유점사(楡岾寺)이다.
유점사의 동북쪽에는 구룡동(九龍洞) 큰 폭포가 있다. 높은 봉우리에서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므로 구멍이 패여 커다란 돌 확[臼]으로 된 것이 아홉 층인데, 층마다 확이 있고 확마다 용(龍)이 있어 지킨다고 한다. 산 벼랑과 물길이 모두 빛나고 조촐한 흰 돌이다. 다만 위태롭고 험하여 발을 붙일 수 없을 뿐 아니라, 삼엄하고 숙연하여 가까이 갈 수 없다. 유점사에는 고적(古蹟)이 가장 많다. 승려의 말에, 불상(佛像) 53구(軀)가 천축(天竺)에서 바다를 건너오므로 지주(地主) 노춘(盧椿)이 절을 세워서 안치했다 하는데, 황당한 일이어서 말할 것이 못 된다. 그러나 지난 세대에 불탑(佛塔)과 불당(佛堂)을 숭봉하던 정도는 웅장함과 화려함을 다하였던 것이다. 유점사의 서쪽을 내산(內山), 동쪽을 외산(外山)이라 한다. 물은 흘러서 동해로 들어간다. 내산과 외산은 예부터 뱀과 범이 없어 밤길을 거리낌 없이 다닐 수 있으니, 이것은 천하에 기이한 일인바, 당연히 나라 안에 제일가는 명산이 될 것이다. 그러니 ‘고려에 태어나기를 원한다’는 말이 어찌 헛말이겠는가.
불씨(佛氏)의 《화엄경》은 주(周)나라 소왕(昭王) 후기에 처음 만들어진 것이다. 이때는 서역(西域) 천축국(天竺國)이 중국과 통하지 않았던 때이니, 하물며 중국 밖에 있는 동이(東夷)의 경우이겠는가. 그런데 ‘동북쪽 바다 복판에 금강산이 있다.’는 말이 이미 경문(經文)에 기재되어 있으니, 부처의 눈이 멀리 내다보고 기록한 것이 아닐까. 세간에서는 금강산을 봉래산(蓬萊山), 지리산을 방장산(方丈山), 한라산을 영주산(瀛洲山)이라 하는데, 이른바 삼신산(三神山)인 것이다.”
하였다.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금강산에서 상인(上人)을 전송하다’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기민이 넘쳐흐르는 곳에 오묘한 발자취 들여놓나니 / 機鋒擾處躡玄蹤
분명히 알겠다 대사는 허공에 떨어지지 않을 것을 / 了了知師不落空
동서남북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 / 曾是東西南北客
일만이천봉을 보려고 하는구나 / 要看一萬二千峯
음침한 골짝은 신선의 세계요 / 陰陰洞壑仙都府
넓은 바다는 해신(海神)의 궁궐과 같도다 / 納納滄溟海若宮
오묘한 경지 다 보고 일찍 돌아와서 / 觀盡瑰奇早回錫
호계에서 함께 거닐기를 바란다오 / 虎溪思欲共搘笻



깊은 곳에 세들어 저자 소리 멀리하고 / 賃屋深坊遠市聲
단정히 앉아 늦가을 개인 날씨 더욱 사랑한다 / 端居秋末愛新晴
꼿꼿한 삼나무 바람 앞에 우뚝 솟고 / 風前挺挺杉翹幹
곱디고운 국화 서리 아래 꽃피웠네 / 霜下鮮鮮菊秀英
한직(閒職)에 몸 한가하니 병든 것 같지 않고 / 散地身閒如不病
흉년에 집 텅 비니 진짜 맑은 것 같구나 / 凶年家空似眞淸
근래엔 선유하는 땅 꿈에도 그리워지니 / 邇來夢想仙遊地
언제나 벼슬 버리고 홀로 멀리 떠나갈까 / 何日投簪獨遠征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풍악산(楓嶽山)에서 본 것을 읊다’라는 삼천언시(三千言詩)는 다음과 같다.

혼돈 상태로 아직 갈라지기 전엔 / 混沌未判時
하늘과 땅을 구별할 수 없었다네 / 不得分兩儀
음과 양이 서로 움직이고 고요한데 / 陰陽互動靜
누가 그 기틀을 잡고 있는 것인가 / 孰能執其機
만물의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지마는 / 化物不見迹
미묘한 이치는 기이하고도 기이하다 / 妙理奇乎奇
하늘과 땅이 개벽되고 나서야 / 乾坤旣開闢
위와 아래가 여기서 나눠졌다 / 上下分於斯
중간에 있는 만물의 형태들은 / 中間萬物形
일체 다 이름 붙이기 어렵도다 / 一切難可名
물은 하늘과 땅의 피가 되고 / 水爲天地血
흙은 하늘과 땅의 살을 이루었다 / 土成天地肉
흰 뼈가 쌓이고 쌓인 그곳이 / 白骨所積處
저절로 드높은 산을 이룩하였다 / 自成山崒嵂
특별히 맑은 기운이 모인 산을 / 特鍾淸淑氣
개골산이라 이름하였다 / 名之以皆骨
아름다운 이름이 사해에 알려져서 / 佳名播四海
모두들 우리나라에 태어나길 원했다 / 咸願生吾國
세속 말에 의하면, 중국 사람들이 이르기를, “고려국에 태어나서 친히 금강산을 보고 싶다.”라고 운운하였다 한다.
공동산부주산은 / 崆峒與不周
여기에 비하면 모두 보잘것이 없다 / 比此皆奴僕
내가 괴담을 적어 놓은 책에서 보니 / 吾聞於志怪
하늘의 형상도 다 이 돌이어서 / 天形皆是石
옛날 전설에 나오는 여와씨가 / 所以女媧氏
돌을 다듬어 뚫어진 하늘을 보수했다 하네 / 鍊石補其缺
이 산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지 / 玆山墜於天
속세에서 생긴 물체가 아니리라 / 不是下界物
나아가면 눈을 밟는 듯하고 / 就之如踏雪
바라보면 늘어선 구슬 같아라 / 望之如森玉
이제야 알겠노라 조물주의 솜씨가 / 方知造物手
이 금강산에다 그 힘을 다한 줄을 / 向此盡其力
이름만 들어도 사모하게 되었거늘 / 聞名尙有慕
하물며 멀지 않은 지역에 있음에랴 / 況在不遠域
나는 평생에 산수를 좋아하기에 / 余生愛山水
일찍이 발걸음을 한가로이 하지 않았네 / 不曾閒我足
지난날 꿈에서도 보았으니 / 夙昔夢見之
그 먼 곳이 잠자리에 옮겨 왔었네 / 天涯移枕席
오늘 아침에 호연히 오고 보니 / 今朝浩然來
천리의 먼 거리가 지척과 같도다 / 千里同咫尺
처음이라 떠돌이 승려를 따라 / 初從行脚僧
그 여러 민둥산을 다 거쳐서 / 過盡千山禿
점차 아름다운 경지에 들어가니 / 漸漸入佳境
걷는 오솔길에 지루함도 잊었네 / 渾忘行逕永
그 참모습을 보고 싶어서 / 欲見眞面目
곧장 단발령으로 올라갔다네 / 須登斷髮嶺
산에서 30리 못 미친 곳에 재가 있으니, 그 이름이 바로 단발령이다. 올라가 바라보니, 망월산(望月山)의 전체가 우뚝 솟아 마치 하늘을 버티고 있는 듯하여, 장엄한 모습이 경외할 만하였다.
일만 이천의 봉우리가 / 一萬二千峯
눈길 닿는 데마다 모두 맑기만 하여라 / 極目皆淸淨
아지랑이는 휘몰아친 바람에 흩어지고 / 浮嵐散長風
우뚝한 봉우리는 푸른 허공을 버티었네 / 突兀撐靑空
멀리서 바라만 보아도 기쁜데 / 遠望已可喜
더구나 산속에서 유람함이랴 / 何況遊山中
흔연히 지팡이를 잡았는데 / 欣然曳靑藜
산길은 다시 끝이 없어라 / 山路更無窮
시냇물은 두 갈래로 흘러내려 / 溪分兩派流
골짝을 벗어나 유유히 가누나 / 出谷何悠悠
동구(洞口)에 두 시냇물이 나뉘어 흐르니, 하나는 비로봉(毘盧峯) 물의 딴 갈래이고, 다른 하나는 일만이천봉의 물로 합류하여 흘러간다.
험한 다리에선 몇 번이나 정강이 시큰거렸나 / 危橋幾酸股
이끼 낀 바위 위에서 자주 멈추어 쉬었노라 / 苔石頻就休
맨 처음 장안사에 들어서자 / 最初入長安
동구에 구름이 잠깐 동안 걷히었다 / 洞口雲乍收
절이 화재를 당한 뒤라 / 琳宮値火後
새로 범종루를 세웠구나 / 新起梵鍾樓
산 어귀에 있는 장안사가 몇 해 전에 화재를 당하였으므로, 그 절 승려가 절을 중창(重創)하고 종루를 세웠다.
그 절 승려들은 나무하러 흩어졌는데 / 居僧散樵徑
나무 베는 소리에 산은 더욱 그윽하네 / 伐木山更幽
문 곁에 서 있는 사천왕(四天王)은 / 天王立門側
그 성난 눈초리 사람을 놀라게 한다 / 怒眼令人愕
장안사와 유점사(楡岾寺)에 다 천왕상(天王像)이 있다.
뜰 앞에는 무엇이 있는가 하면 / 庭前何所有
두어 포기 붉은 작약 피었다 / 數叢紅芍藥
참선하는 평상에 두 발을 뻗고 / 禪牀展兩足
하룻밤을 묵으면서 피로를 풀었노라 / 困疲留一宿
내일은 어느 곳으로 향해야 하나 / 明朝向何許
길은 천만 굽이를 감돌았으리라 / 路轉千萬曲
금장암과 은장암은 / 金藏與銀藏
푸르른 절벽 곁을 높이 차지하였네 / 高占蒼厓傍
금장암(金藏庵)과 은장암(銀藏庵)은 장안사 동쪽에 있다.
보이는 경치 점차 기이해져 가는데 / 所見漸奇秀
간수와 산등성을 들락날락 걸었다 / 出入行澗岡
높은 봉우리 내 앞에 우뚝 서는데 / 高峯立我前
칠보로 단장한 듯 호화찬란하다 / 七寶爲其粧
한 봉우리가 두 암자 동편에 있어, 그 기암괴석이 마치 영락(瓔珞) 구슬이 드리워진 것 같은데, 산승(山僧)은 그것을 칠보장엄(七寶莊嚴)이라 일컬었다.
갑자기 유점사 근처에 다다르니 / 忽近楡岾寺
소나무 회나무 줄지어 울창해라 / 松檜鬱成行
날 듯한 누각 간수에 걸터앉아 있어 / 飛樓跨澗水
물에 비친 그림자 푸른 산빛 가린다 / 映奪靑山光
절 문 앞의 누각이 간수(澗水)에 걸터앉아 있는데, 이름을 산영루(山暎樓)라 한다.
절 문 앞의 넓은 평지에는 / 門前平地闊
사초가 봄을 만나 푸르르네 / 沙草逢春綠
문에 들어서자 식은땀이 주르르 흐르니 / 入門駭汗出
양편에 선 신장한테 깜짝 놀라서 / 神將相對立
푸른 사자와 흰 코끼리의 상(像)들은 / 靑獅與白象
입을 쩍 벌리고 두 눈을 부릅떴네 / 呀口瞋雙目
문에는 신장(神將)과 사자 따위의 상(像)들을 세워 놓았는데, 그 얼굴이나 눈이 다 사나워서 놀랄 만하였다.
종소리 속에 천지관음(千指觀音)이 맞이하고 / 撞鍾千指迎
소매를 감돌아 향 연기는 가볍게 피어오른다 / 繞袖香煙輕
뜰 복판에는 높은 탑이 우뚝 솟고 / 庭中聳高塔
풍경 소리는 땡그랑땡그랑 나누나 / 風鐸聲琮琤
날아갈 듯이 반듯한 삼매궁 / 翬飛三昧宮
그 규모 어이 그리도 웅장한고 / 結構何其雄
마루 가운데 오래된 불상은 / 堂中古佛像
먼지에 흐릿한 금빛 얼굴이네 / 塵埃暗金容
멀리 천축으로부터 올 때 / 遠自天竺來
황룡을 따라 바다를 건넜네 / 駕海隨黃龍
이암과 게방에 / 尼巖與憩房
낱낱이 그 발자취를 남겼다나 / 一一留其蹤
참인지 거짓인지 가릴 수 없으니 / 眞贗不可辨
그 일이 꼭 괴담집(怪談集)과 같구나 / 事與齊諧同
절의 기사(記事)에, “천축(天竺) 사람이 불상(佛像) 53구(軀)를 만들어 바다에 띄웠더니 황룡(黃龍)이 이 불상을 업고 이 산에 도착하였다. 고성(高城) 사람이 이 소문을 듣고 불상을 찾다가 길가에 작은 사람의 발자국이 있는 것을 보고 곧 산중으로 들어가니, 석가모니가 돌에 걸터앉아 그 불상이 있는 곳을 가리키므로, 거기에 유점사를 지어 안치하였는데, 후인들이 석가모니가 걸터앉은 돌이라 하여 이를 이암(尼巖)이라 하고, 그 발자국을 본 곳을 이름하여 게방(憩房)이라 하였다.”라는 말이 실려 있다.
명적암은 그 서편에 있고 / 明寂在其西
흥성암은 그 동편에 있다 / 興聖在其東
그윽한 곳을 찾느라 잠시도 쉬지 않고 / 尋幽不暫閒
짙은 연하 속으로 흥겨웁게 들어갔노라 / 興入煙霞濃
고요한 가운데에 위치한 두운암 / 寂寥斗雲庵
구름 속에선 물방아 저절로 방아 찧는다 / 雲碓水自舂
두운암은 유점사의 북쪽에 있다.
시내에 다다라 돌다리를 건너니 / 臨溪渡石矼
콸콸거리는 물소리 요란스럽다 / 活水聲淙淙
성불암은 높은 봉우리에 기대 섰고 / 成佛倚高峯
푸른 바다는 동쪽 창문 밖에 있다 / 滄溟在東窓
성불암(成佛庵)은 두운암의 동북쪽에 있어 불정대(佛頂臺)와 서로 연이어 있는데, 동해(東海)가 내려다보인다.
공중으로 우뚝 치솟은 불정대 / 嵯峨佛頂臺
그 절정 둘도 없이 높다랗구나 / 孤絶更無雙
내 와서 아침 해돋이 바라보니 / 我來看朝曦
구름 새의 붉은빛 눈이 부시네 / 滿目紅雲披
물과 하늘 둘 다 끝없이 펼쳐졌는데 / 水天兩無際
불의 기운이 수신(水神)을 놀라게 한다 / 火氣驚馮夷
머리를 들어 백전면을 바라보니 / 擧頭白巓面
열두 폭포 하늘에서 큰 띠 드리운 듯 / 十二天紳垂
백전면에 열두 폭포가 있는데, 불정대에서 바라볼 수 있다.
다시 옛적에 걷던 길을 찾았더니 / 回尋舊時路
이르는 곳마다 모두 기쁘기만 하다 / 到處皆可怡
상견성암(上見性庵)과 하견성암(下見性庵)은 / 上下二見性
모두 날아갈 듯이 길가에 우뚝 서 있다 / 臨路危甍飛
불정대에서 다시 서쪽으로 가면 상견성암과 하견성암이 모두 두운암의 북쪽에 있다.
축수라 불리는 석굴은 / 石窟名竺修
냇가에 자리 잡아 깨끗하기도 하다 / 瀟灑澗之湄
축수굴(竺修窟)은 하견성암 서쪽에 있는데, 앞에는 물이 흐르고 뒤에는 바위가 펼쳐져 있으므로 그 맑은 경치가 사랑스럽다.
영대암과 영은암은 / 靈臺與靈隱
구름과 안개가 뜰에서 피어오른다 / 雲霧生階墀
영대암과 영은암은 다 축수굴 서남쪽에 있다.
험악한 길이라 오르내리기 힘겨워 / 崎嶇勞涉險
두 다리를 스스로 가누기 어려워라 / 兩脚難自持
다리가 부서진 곳에선 뗏목을 탔고 / 橋摧臥古槎
길이 끊긴 데선 나뭇가지를 더위잡았다 / 路斷攀樹枝
흐르는 여울은 귀를 따갑게 소리 내고 / 流湍亂我耳
뿌리는 물방울은 옷자락을 씻어 주누나 / 濺沫灑人衣
그윽하고도 깊숙한 구연동에는 / 幽深九淵洞
풀이 우거져 사람의 발자취 희미하구나 / 草合人迹微
구연동은 영은암 서쪽에 있는데, 그윽하고도 깊숙하여 맑기 그지없었다.
보현암을 배회하다가 / 徘徊普賢庵
우러러보니 봉우리가 우뚝하다 / 仰見峯巒危
진견성암에 취미를 붙여 / 寄傲眞見性
떠나려 하다가 그대로 머뭇거렸네 / 欲去仍留遲
보현암과 진견성암은 다 구연동 안에 있다.
비를 무릅쓰고 향로암 찾아드니 / 冒雨入香爐
인기척은 없고 사립문만이 닫혀 있구나 / 人靜關柴扉
향로암은 구연동 남쪽에 있다.
하늘은 어두컴컴 밤기운 감도는데 / 天陰與夜氣
온 산 가득히 가랑비만이 부슬부슬 / 滿山同霏霏
내원암에서 반나절 머물며 / 內院半日留
선탑에서 속세 잊길 배웠다오 / 禪榻學忘機
내원암은 향로암 서북쪽에 있는데, 여기서부터 점차 깊은 경내로 들어간다.
다시 미륵봉을 찾아가리 만큼 / 更尋彌勒峯
산을 사랑하는 마음 기갈을 느꼈노라 / 愛山如渴飢
봉우리 위의 돌 모양이 부처 같아서 / 峯頭石如佛
이 때문에 미륵봉이란 이름 붙여졌다네 / 得名良在玆
미륵봉은 내원암의 서쪽에 있는데, 봉우리 위의 돌 모양이 미륵불과 같다.
남초암은 쓸쓸하기 그지없지만 / 蕭條南草庵
거기에 거처하는 승려는 신선 자태 있다 / 居僧有仙姿
남초암은 미륵봉 남쪽에 있는데, 가장 깊은 곳이다.
나를 보자 승려가 절의 음식 차려 와서 / 見我薦山羞
향기로운 나물로 나의 허기를 면하였노라 / 香蔬療我饑
이 산골에 산나물이 매우 많다.
이 산골의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 此洞深幾許
이 산에 사는 승려도 모른다는구나 / 山僧亦不知
세속의 시비 소리 들리지 않는데 / 是非聲不至
뭐 수고롭게 귀 씻을 필요 있으랴 / 何須勞洗耳
저녁이면 원숭이와 함께 읊조리고 / 暮共白猿吟
아침에는 학을 따라서 일어나도다 / 朝隨蒼鶴起
발길 돌려 만경대에 오르니 / 還登萬景臺
사방을 모두 환하게 볼 수 있었노라 / 四方皆洞視
도로 동구(洞口)를 향해 이 만경대에 올랐다. 만경대는 남초암의 동북쪽, 영은암(靈隱庵)의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양진이란 깊은 동굴이 있는데 / 有窟名養眞
너무 스산해서 오래 머물기 어려워라 / 過淸難久止
양진굴(養眞窟)은 만경대의 서북쪽에 있다.
인간 세상과 격리된 딴 천지라 / 人寰隔霄壤
세상 피하는 선비가 살 만한 곳 / 宜居避世士
뒷날 다시 오기로 기약하였지만 / 他時期再來
산골 나오며 자주 머리 돌려지네 / 出洞頭屢回
이 산골의 암석이 다른 곳보다 희다.
승려의 말이 내금강은 상전처럼 격이 높고 / 僧言內山好
외금강은 하인처럼 격이 떨어진다 하네 / 外山同輿儓
외금강이 벌써 이처럼 수려한데 / 外山已如此
저 내금강이야 그 경치 오죽하겠나 / 況彼內山哉
빨리 서둘러 선경에 들어가서 / 急須入仙境
먼지 속에 찌든 병을 씻어야겠네 / 以滌塵中病
산의 동남쪽을 외금강이라 하고 서북쪽을 내금강이라 하는데, 내금강이 더욱 기묘하게 뛰어나고 암석도 보다 희기 때문이다.
나무 그늘 속을 걷고 걷노라니 / 行行樹陰中
저물녘 바람이 솔솔 불어오네 / 晩風吹不定
영은암(靈隱庵)에서 북쪽으로 걸어가면 내금강까지 당도할 수 있다.
이름 모를 산새들은 / 山禽不知名
저마다 두세 마디 소리 내어 우는구나 / 自呼三兩聲
시내를 가로지른 작은 나무다리 / 小溪通略彴
기울어져서 도저히 건널 수 없네 / 敧側不可行
옷을 벗고 맑은 물을 희롱하니 / 解衣弄淸泚
형체와 그림자 서로 조롱한다 / 形影聊相戲
한 몸은 바위 위에 서 있고 / 一身在巖上
한 몸은 물속에 잠겨 있네 / 一身在水裏
너는 지금 내가 아니지만 / 爾今不是我
나는 지금 도리어 너로구나 / 我今還是爾
흩어져 백동파가 되었다가 / 散爲百東坡
경각간에 다시 여기에 모인다 / 頃刻復在此

저 물속에 잠겨 있는 사람아 / 好在水中人
가는 곳마다 물들거나 닳지 말아라 / 到處無緇磷
선암인 묘길상은 / 禪庵妙吉祥
주변이 말끔하여 티끌 하나 없다 / 面戶淸無塵
내금강에서 최초로 보이는 암자이다.
그 곁에 있는 문수암은 / 其傍有文殊
외진 곳이라 찾아가기 어려워라 / 地祕人難臻
오르고 올라 불지암에 왔는데 / 登登到佛地
후미진 산비탈을 몇 번이나 거쳤던고 / 幾經山嶙峋
묘길상의 서쪽에 있다.
바위 밑에 있는 자그마한 암자 / 小庵在巖下
그 이름은 계빈이었다 / 厥號爲罽賓
계빈은 굴(窟) 이름인데, 불지암 서쪽에 있다.
나무들로 둘러싸인 금전은 / 萬樹衛金殿
그 이름이 마하연이다 / 名是摩訶衍
불지암 서쪽에 있다. 이 암자는 금강산의 한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 주봉(主峯)이 바로 비로봉(毘盧峯)이다.
웅장한 봉우리가 그 뒤에 솟아 있고 / 雄峯峙其後
높은 재가 그 앞에 마주 보고 있다 / 峻嶺當其面
서리고 두른 산세 천연으로 이뤄져 / 環回天所成
앞에서 본 경치보다 훨씬 뛰어나네 / 絶勝前所見
온 산의 울창한 아름다운 경개에 / 佳氣鬱蔥蔥
마음 깜짝 놀라 얼굴빛 변했노라 / 心驚顔爲變
사방으로 둘러싼 산세는 천연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아, 가장 신령스러운 이 명승지가 / 吁嗟最靈地
천년 동안 헛되이 버려져 있었구나 / 千載空虛棄
용렬한 승려들이 경치를 더럽혔는데 / 庸僧汙雲霞
이제 와서 한탄을 한들 무엇하리요 / 感歎知奈何
거쳐 온 금강산 속의 많은 암자들 / 山中所歷庵
이루 다 등급을 매길 수 없노라 / 多少難爲科
자세히 알려고 하나 알 수 없으니 / 欲詳不可得
내 시험 삼아 그 대략만을 말하리라 / 我試言其略
금강산 속의 암자가 백 개가 넘을 정도로 많은데, 다 거명할 수 없으므로 우선 그 대략만을 기재할 뿐이다.
묘봉암과 사자암은 / 妙峯與獅子
마하연 곁에 가까이 있고 / 近在摩訶側
두 암자는 마하연 서쪽에 있다.
만회암과 백운암 / 萬回與白雲
선암과 가섭암 / 船庵與迦葉
묘덕암과 능인암 / 妙德與能仁
원통암과 진불암 / 圓通與眞佛
수선암과 기기암 / 修善與奇奇
개심암과 천덕암 / 開心與天德
천진암과 안심암 / 天津與安心
돈도암과 신림암 / 頓道與神林
이엄암과 오현암 / 利嚴與五賢
안양암과 청련암 / 安養與靑蓮
운점암과 송라암이 / 雲岾與松蘿
차례로 기라성처럼 나열해 있는데 / 次第如星羅
이상은 모두 암자 이름이다. 만회암은 마하연 북쪽에 있고, 백운암은 만회암 북쪽에 있으며, 선암은 백운암 서북쪽에 있고, 묘덕암은 능인암 서쪽에 있으며, 능인암은 원통암 북쪽에 있고, 원통암은 진불암 남쪽에 있으며, 진불암은 선암 서남쪽에 있고, 수선암과 기기암은 선암 동남쪽에 있으며, 개심암과 천덕암은 원통암 서쪽에 있고, 천진암과 안심암은 개심암 북쪽에 있으며, 돈도암은 표훈사(表訓寺) 동남쪽에 있고, 신림암은 표훈사 서쪽에 있으며, 이엄암과 오현암은 돈도암 동북쪽에 있고, 안양암과 청련암 등은 장안사(長安寺) 동쪽에 있는데, 다 그 협운(協韻)을 취하였기 때문에 순서가 없이 적었다.
더러는 가장 높은 봉우리에 기대서 / 或倚最高峯
손으로 은하수를 어루만질 듯싶고 / 手可捫銀河
더러는 쏟아지는 폭포를 베고 있어 / 或枕急流瀑
고요한 속에서도 무척 시끄러웠다 / 靜中喧聒聒
더러는 바위 아래에 있어서 / 或在巖石下
머리를 숙여야 겨우 드나든다 / 低頭僅出入
더러는 붉고 푸른 봉우리를 대해서 / 或對紫翠峯
저물녘 산빛이 문에 비춰 아른거린다 / 暮色來排闥
더러는 큰 바위 위를 점거해 있어서 / 或占大巖上
실낱 같은 길 겨우 걸어갈 수 있노라 / 綫路纔容跡
더러는 깊숙한 곳에 숨어 있어서 / 或隱幽邃處
영원히 속세와는 격리되어 있노라 / 永與塵勞隔
외부의 나그네가 오지 않더라도 / 雖無外客來
속삭이면 산울림이 메아리쳐 준다 / 小語山已答
더러는 수목 속에 묻혀 있어서 / 或祕樹木中
짙은 그늘이 햇빛을 가려 주노라 / 濃陰遮日色
더러는 낭떠러지 끝에 자리 잡아서 / 或據斷崖頭
뜰에 가득한 건 온통 괴석뿐이다 / 滿庭皆怪石
그 기이한 형상과 특이한 모습은 / 奇形與異狀
붓으로 끝내 다 기록할 수 없다 / 記之終難悉
눈으로 봤으나 입으론 말하기 어려워 / 眼看口難言
모두 빼먹고 겨우 하나쯤 적어 둔다 / 漏萬纔掛一
나는 표훈사를 사랑하는데 / 我愛表訓寺
그 울창한 숲 기슭에 의지해 있네 / 鬱鬱依林麓
개심사(開心寺) 남쪽에 있다.
승려는 한가롭고 단청 전각은 비었는데 / 僧閒畫殿空
한낮이라 누각 그늘이 직선을 이루었다 / 日午樓陰直
나는 정양사를 사랑하는데 / 我愛正陽寺
천 길이나 되는 구렁텅을 굽어보네 / 俯臨千丈壑
표훈사 위에 있다.
옷을 걷고 뜰 위에서 산보를 하다가 / 褰衣步庭除
사방을 돌아보니 산이 쌓인 것 같네 / 四顧山如積
나는 수미대를 사랑하는데 / 我愛須彌臺
겹겹이 쌓인 바위 높은 대 이루었다 / 疊石成崔嵬
진불암(眞佛庵) 서북쪽에 있다.
맑은 지경 뛰어나 선경과 같으니 / 淸絶似仙區
봉래산을 찾을 필요 없다 / 不必求蓬萊
나는 망고대를 사랑하는데 / 我愛望高臺
사면이 먼지 한 점 없이 깨끗하구나 / 四面收黃埃
장안사 북쪽, 표훈사 남쪽에 있다.
높이가 얼마인지 알고 싶은가 / 欲知高幾何
퉁소 소리 천상에서 들려온단다 / 笙簫上天來
구름을 깔보고 오르는 것 쾌활했지만 / 凌雲縱快活
쇠줄을 더위잡는 일 정말 위태로웠네 / 執鎖誠危哉
망고대를 올라갈 때 길이 끊어진 곳에는 쇠줄이 드리워져 있으므로 더위잡고 올라갔다.
나는 시왕동을 사랑하는데 / 我愛十王洞
산세가 모두 빙빙 에돌고 감돌았다 / 山勢皆盤回
장안사의 동북쪽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하였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옛 탑이 있다.
연대를 알 수 없는 옛 탑 하나가 / 古塔不記年
벼랑에 매달려 우뚝하게 서 있다 / 兀立懸崖邊
나는 만폭동을 사랑하는데 / 我愛萬瀑洞
세차게 떨어지는 폭포 수은을 쏟는다 / 飛流瀉靑汞
표훈사의 동쪽, 사자암의 서쪽에 있는데, 순전히 암석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바위 하나가 몇 리를 연이었는데 / 一巖連數里
미끄럽고 깨끗해 발붙이기 어려워라 / 滑淨難所倚
구불구불 둘러서 동구에 이르렀더니 / 逶迤至洞口
온 골짝 모두가 흐르는 물뿐이었네 / 滿洞皆水流
움푹 패인 곳은 깊은 못이 되었는데 / 坎處陷爲淵
그 밑엔 화룡연이 있다네 / 下有火龍眠
경사진 곳에는 거센 여울을 이루어서 / 傾處激爲湍
천둥을 치듯이 빈 산을 진동하누나 / 鳴雷振空山
평평한 곳에는 맑은 물이 고여 있어 / 平處湛不流
거울처럼 내 얼굴을 비추어 주는구나 / 如鏡鑒吾顔
맑은 바람이 좌우에서 불어오니 / 淸風左右至
더운 열기가 찬 기운으로 변하네 / 炎熱變爲寒
옷깃을 헤치고 나무 아래에 앉으니 / 披襟坐樹下
내 신세가 한가함을 비로소 알았다 / 始知身世閒
나는 보덕굴을 사랑하는데 / 我愛寶德窟
구리쇠 기둥이 천 자나 되게 높았다 / 銅柱盈千尺
보덕굴은 골짝 복판에 위치하고 날아갈 듯한 누각이 허공에 걸쳐 있는데, 세 면은 바위에 의지했고 한 면은 구리쇠 기둥으로 떠받쳤다. 그 구리쇠 기둥은 백 자나 되었는데, 가장 기이한 절경이었다.
날아갈 듯 날렵한 누각 허공에 솟았는데 / 飛閣在虛空
하늘이 만든 게지 인력으로 된 게 아니리 / 天造非人力
아래에서 바라볼 땐 그림과 같았는데 / 未至望如畫
막상 오르고 나니 땀이 몸에 흥건하네 / 旣登汗如沐
선승은 속세와 인연을 끊어 버리고 / 禪僧萬緣虛
종이 포대에 솔잎을 담아 두었구나 / 紙帒儲松葉
이곳에서 살려는 생각을 갖는다면 / 若欲棲此地
곡기를 끊는 법부터 배워야 하리라 / 應須學絶粒
가야 할 몸이라 머무를 수 없으니 / 去矣不可留
나는 산을 돌면서 유람이나 하리라 / 我將巡山遊
사자와 꼭 닮은 바위 하나가 / 有石類獅子
봉우리 꼭대기에 우뚝 서 있다 / 屹立乎峯頭
사자암(獅子庵) 앞에 있다.
성곽처럼 쌓은 암자도 있었는데 / 有庵似築城
그 누가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 不知誰所營
사자암 곁에 있다.
이 세상에 동방삭(東方朔)과 짝할 이 없으니 / 世無方朔儔
기괴한 일 물어볼 길이 막연하구나 / 怪事問無由
내금강에서 열흘을 머무는 동안 / 內山留十日
볼만한 곳은 두루 둘러보았다 / 遊尋略已周
동쪽으로 걸어서 상원에 도착하니 / 東行到上院
층층 쌓인 봉우리만 멀리 보인다 / 路傍層巒遠
여기에서 백전면(白巓面)으로 향하는데, 상원이 길가에 있었다.
적멸암에서 개심암으로 올라가니 / 寂滅上開心
산에 낀 구름 아직 걷히지 않았다 / 橫雲時未捲
두 암자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였으니, 적멸암에서는 동해를 볼 수 있다.
창문을 열면 무엇이 보이는가 / 開窓何所見
비단을 펼친 듯 바다가 평평하다 / 赤海平如練
승려가 백전면을 가리키면서 / 山人指白巓
인간의 도솔천이라 하네 / 人間兜率天
흰 산봉우리를 도솔이라 하는 것은 아마 깨끗한 명승이기 때문이리라.
여러 암자들 푸른 산에 널려 있으니 / 諸庵列翠微
종소리와 북소리 번갈아서 들리누나 / 鍾鼓聲相連
성문이라 불리는 그 골짜기엔 / 有洞名聲聞
수석이 어찌 그리 어수선한가 / 水石何紛紜
바라볼 순 있어도 찾아갈 순 없으니 / 可望不可尋
청학동과 형제가 될 만하다 / 靑鶴爲弟昆
적멸암 밑에 성문동(聲聞洞)이라 불리는 골짜기가 있다. 굽어보면 바위가 기이하고 물이 맑으나 들어갈 길이 없는데, 지리산(智異山)의 청학동과 같다.
발연사와 마주한 그 절벽은 / 鉢淵對絶壁
자연의 조화가 갈고 깎은 것이다 / 天工所磨削
한줄기 긴 무지개를 내뿜는 폭포 / 一條噴長虹
그 밑엔 맑은 못이 마냥 푸르다 / 其底澄潭碧
승려들은 아무런 할 일도 없어서 / 山僧無一事
뒹굴어 떨어지는 것을 낙으로 삼네 / 轉下聊爲樂
베틀의 북처럼 급히 몸을 던지는데 / 投身急如梭
엎어졌다 거꾸러졌다 몹시 현란하다 / 顚倒眩莫測
발연사는 적멸암의 동쪽에 있다. 그곳에 매우 높은 폭포가 있는데, 암석이 매우 미끄럽다. 승려나 속인이나 이곳에 와서 구경하는 자들은 으레 모두가 옷을 벗고 바위에 올라가서 폭포를 따라 뒹굴어 떨어지는 것으로 놀이를 삼는데, 비록 엎어지고 거꾸러져 떨어지더라도 끝내 다치는 일은 없다.
구정봉을 빙빙 돌아서 오르니 / 回登九井峯
우거진 계수나무 꺾을 수 있다 / 桂樹森可折
구정봉은 적멸암 북쪽에 있으며 매우 높고 험준한데, 계수나무가 있다.
부상도 손으로 잡을 수 있으니 / 扶桑手可挹
밤중에도 해돋이를 볼 성싶구나 / 夜半看日出
구룡연을 구경하려고 하였더니 / 欲見九龍淵
승려는 길이 험하다고 말한다 / 僧言路險惡
만약 소나기라도 만나게 되면 / 若遇驟雨來
죽고 삶이 경각에 달려 있단다 / 死生在頃刻
구룡연은 비로봉(毘盧峯) 동쪽에 있는데, 가장 기려(奇麗)한 곳이다. 다만 길이 험하고 돌이 미끄러우니, 비를 만나면 정말 죽게 된다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나는 무서워서 가지 않았다.
차라리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 / 不如上高峯
신선의 발자취 밟는 게 낫단다 / 以躡飛仙蹤
이 말을 일단 곧이 믿기로 하고 / 斯言定信乎
비로봉을 오르기로 뜻을 굳혔다 / 決意登毘盧
솔뿌리가 돌 모서리에 얽히고 설켰으니 / 松根絡石角
손으로 더위잡아야 발을 붙일 수 있다 / 手攀足可踏
비로봉은 이 금강산의 절정이다.
승려가 앞에서 길을 인도하면서 / 有僧導我前
아래를 굽어보지 말라고 당부한다 / 戒我勿俯矚
위험한 곳에서 아래를 굽어봤다간 / 臨危若俯矚
어지러워 정신을 잃기 일쑤라 하네 / 目眩神必惑
산의 형태를 보고 싶다 하더라도 / 若欲見山形
최고의 봉우리엔 올라가지 말란다 / 莫上最高嶽
만약 최고의 봉우리에 올라간다면 / 若登最高嶽
보이는 것은 모두 황홀하기 때문이다 / 所見皆怳惚
너무 높으면 보이는 것이 분명하지 않다.
승려의 이 말을 스승으로 삼아서 / 此言爲我師
게으름 피우지 않고 부지런히 힘썼다 / 勉旃無怠忽
하루낮 하룻밤을 꼬박 걸은 뒤에야 / 一經晝與宵
비로소 산 중턱에 이를 수 있었노라 / 始及山之腰
피곤해서 반석 위에 누워 있노라니 / 困臥盤石上
위아래로 보이는 게 모두 아득하여라 / 廓落迷俯仰
마음이 안정되어 머리를 치켜드니 / 心定始擡首
뭇 봉우리들 죄다 나에게로 향하네 / 衆峯皆我向
높고 낮고 멀고 가까운 봉우리들이 / 高低與遠近
하나같이 모두 깎아서 세운 듯하다 / 一槪皆削粉
이곳에선 먼 거리도 가깝게 보여 / 百里不盈尺
크건 작건 모두 숨김없이 드러난다 / 巨細皆無隱
홀연히 흰 안개 뭉게뭉게 피어올라 / 忽然蒸白霧
시야가 흐려져서 멀리 볼 수 없어라 / 澒洞失遠覯
처음에는 한 골짜기에서 피어나더니 / 初依一谷生
점점 이 산 저 산을 덮으며 내달린다 / 漸蔽群山走
끝내는 산들을 아스라하게 만들고 / 遂使山蒼蒼
다시 바다까지 아득하게 만들도다 / 飜作海茫茫
넓디 넓은 동일한 기운이건만 / 浩浩同一氣
아득하여 측량하기 어려워라 / 漠漠難爲量
듣건대 천지가 개벽되기 이전에는 / 吾聞太極前
모든 조화가 개장되지 않았다네 / 萬化不開張
그런데 산신령은 무슨 뜻을 가지고 / 山靈意何如
나에게 만물의 시초를 보여 주는지 / 示我物之初
바람은 없는데 안개가 점차 흩어져 / 無風漸飄散
반쯤은 걷히고 반쯤은 자욱하구나 / 半卷還半舒
두어 점 빼어난 봉우리 비로소 드러나 / 始露數點秀
천상의 산처럼 외롭게만 보이는구나 / 孤如天上岫
짙푸른 색으로 긴 눈썹을 그려 놓은 듯 / 濃靑畫修眉
바다에서 목욕하던 붕새 부리를 쳐든 듯 / 浴海褰鵬噣
조금 후에 세찬 바람이 일어나는데 / 俄頃疾風起
빠르기가 마치 달리는 천리마와 같았다 / 駛若驊騮驟
잠시 동안에 한 점도 없이 안개가 걷히니 / 須臾無點滓
시야가 사방으로 시원스레 툭 트이는구나 / 眼力皆通透
어떤 봉우리는 칼끝처럼 뾰족하고 / 或尖若劍鋒
어떤 봉우리는 제기처럼 둥그스름하다 / 或圓若籩豆
어떤 봉우리는 달아나는 뱀처럼 길고 / 或長若走蛇
어떤 봉우리는 누워 있는 짐승같이 짧다 / 或短若臥獸
어떤 봉우리는 만승천자(萬乘天子)가 / 或如萬乘尊
대궐 문을 활짝 열고 조회를 받을 때 / 朝會開天門
만조백관들이 엄숙하게 모시고 선 듯 / 衣冠儼侍立
구름처럼 모여 있는 거마와 같기도 / 車馬如雲屯
어떤 봉우리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 或如釋迦佛
중생을 거느리고 영취산에 계실 때 / 領衆依靈鷲
오랑캐 군주나 귀신 우두머리들이 / 蠻君與鬼伯
앞을 다투어 나오는 머리들 같기도 / 競進頭戢戢
어떤 봉우리는 오기(吳起)나 손빈(孫臏)이 / 或如吳與孫
북을 울려 삼군을 벌여 세운 다음 / 擊鼓陳三軍
철마로 창과 칼을 휘두르면서 / 鐵馬振刀鎗
장사들이 앞을 다투어 추격하는 듯 / 壯士爭追奔
어떤 봉우리는 짐승의 왕인 사자가 / 或如獅子王
위엄으로 온갖 짐승 떼를 제압하는 듯 / 威壓百獸群
어떤 봉우리는 비를 내리는 용이 / 或如行雨龍
갈기를 날리며 검은 구름을 뿜는 듯 / 奮鬣噴陰雲
어떤 봉우리는 바위에 기댄 호랑이가 / 或如靠巖虎
돌아보면서 길 복판에 쭈그려 앉은 듯 / 顧眄當路蹲
어떤 봉우리는 첩첩이 쌓아 놓은 / 或若文書積
업후의 삼만 권 책과도 같고 / 鄴侯三萬軸
어떤 봉우리는 층층이 쌓아 올린 / 或若建浮圖
소량의 구층 탑과도 같다 / 蕭梁九層塔
어떤 봉우리는 다닥다닥 연이은 무덤 / 或若纍纍塚
정령위(丁令威)가 고국을 찾을 때처럼 / 令威尋古國
어떤 봉우리는 서로 향해 읍양을 하는 듯도 / 或向如揖讓
어떤 봉우리는 등을 돌려 독기를 품은 듯도 / 或背若抱毒
어떤 봉우리는 서먹서먹 서로 피하는 듯도 / 或疎若相避
어떤 봉우리는 오손도손 서로 친밀한 듯도 / 或密若相狎
어떤 봉우리는 얌전한 새아씨가 / 或如窈窕女
깊은 규방에서 정숙을 지키는 듯도 / 深閨守貞淑
어떤 봉우리는 글 읽는 선비가 / 或如讀書儒
머리를 숙이고 책을 펼치는 듯도 / 低頭披簡牘
어떤 봉우리는 분육 무리가 / 或如賁育徒
용기를 뽐내며 호통을 치는 듯도 / 賈勇氣咆勃
어떤 봉우리는 좌선하는 승려가 / 或如坐禪僧
명아주 평상에 무릎을 꿇은 듯도 / 藜牀穿兩膝
어떤 봉우리는 토끼를 잡는 새매와도 같고 / 或若搏兔鷹
어떤 봉우리는 새끼를 안은 사슴과도 같다 / 或若抱兒鹿
어떤 봉우리는 놀란 오리가 나는 듯도 / 或翔若驚鳧
어떤 봉우리는 우뚝 서 있는 고니와 같기도 / 或峙若立鵠
어떤 봉우리는 거만스러운 자세를 하고 있고 / 或偃然肆志
어떤 봉우리는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 或靡然自屈
어떤 산은 뿔뿔이 흩어져 합쳐지지 않았고 / 或散而不合
어떤 산은 죽 연이어져 끊기지 않았다 / 或連而不絶
만상이 각각 다른 자태를 드러내고 있으니 / 萬象各異態
실컷 구경하느라 발걸음 옮길 줄을 잊었네 / 貪翫忘移足
도저히 중도에서 폐지할 수가 없어서 / 不可廢半道
나는 결국 높은 절정에까지 오르려 한다 / 我欲窮其高
몸을 둘러싼 것은 이 무슨 물건인고 / 繞身是何物
수시로 지나가는 외로운 구름일러라 / 時有行雲孤
지나가는 구름도 못 미치는 곳에는 / 行雲不及處
강한 바람만 씽씽 세차게 불어 댄다 / 肅肅剛風號
날아다니는 솔개나 깃들이는 새매도 / 飛鳶與棲鶻
빠른 나의 걸음을 따라올 수 없노라 / 莫能追我翺
곧바로 최상의 절정에 올라가서 / 直到無上頂
낭랑하게 시 읊으며 즐겁게 노닐었네 / 朗詠聊遊遨
수풀 끝에는 아침 해가 떠오르고 / 林端拂朝日
바위 위에는 저녁 달이 걸렸구나 / 石頭礙夜月
몸 구부려 요란한 소리 들으니 / 俯聽蟻動聲
산 중턱에서 벼락 치는 소리 일어난다 / 山腰起霹靂
산천이 사면을 둘러싸 있어서 / 山川圍四面
주위가 모호하여 분별할 수 없다 / 糢糊不可辨
큰 봉우리는 언덕처럼 보이지마는 / 大者類丘垤
작은 봉우리는 보아도 보이지 않네 / 小者視不見
이루처럼 밝은 눈을 가졌다 해도 / 縱有離婁目
어떻게 성곽을 분별할 수 있겠는가 / 安能辨城郭
호연히 휘파람을 길게 부노니 / 浩然發長嘯
그 소리 상제의 궁궐에 들리리 / 聲入淸都闕
신선들이 듣고 몹시 놀랄 것이고 / 仙侶定駭愕
옥황상제도 응당 깜짝 놀라리라 / 玉皇應驚詰
상제의 궁궐이 여기서 멀지 않지만 / 天宮縱不遠
도가 깊지 않으니 어찌하리오 / 其奈道根淺
들으니 천상계의 신선들도 / 吾聞上界仙
관부가 한가롭지 못하다 하네 / 官府不得閒
어째야 세속에서 벗어난 사람 되어 / 何如方外人
신선과 범부 사이에 있지 않을 건고 / 不在仙凡間
마음이 텅 비면 만사가 하나요 / 心虛萬事一
기운이 꽉 차면 우주도 비좁다 / 氣大六合窄
곤륜산은 손에서 벗어난 공이요 / 崑崙脫手毬
바닷물은 발에 바르는 기름이다 / 大海塗足油
가슴속에 산수가 들어 있으니 / 胸中有山水
이곳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다 / 不必於此留
한 번 유람으로 만족할 줄 안다고 / 一覽便知足
조물주가 나를 꾸짖지는 않을 테지 / 造物不我尤
승려의 말이 이 산 경치는 / 僧言此山景
사철 내내 모두 승경이라네 / 四時皆淸勝
더위와 추위가 세간과는 사뭇 달라서 / 炎涼異世間
음산한 기운 봄에도 오히려 기세부리네 / 陰氣春猶盛
범상한 꽃이야 어찌 꽃을 피우랴 / 浮花豈吐蘂
겨울에 피는 매화만이 꽃이 핀다오 / 只有寒梅瑩
산중이라 사오월이 되어야만 / 山門四五月
비로소 봄철의 흥취를 느낀다 / 始有尋春興
천만 길이나 되는 낭떠러지에 / 層崖千萬丈
철쭉꽃이 화사하게 서로 비추네 / 躑躅紅相映
대지가 용광로 속으로 들어갈 때도 / 大地入紅鑪
승려들은 오히려 추위에 시달린다오 / 衲僧猶苦冷
모기 따위가 사람에게 덤비지 못하니 / 撲緣不侵人
쉬파리는 그림자도 나타내지 못한다 / 蒼蠅絶形影
가을바람은 왜 그리 일찍 오는지 / 秋風來苦早
낙엽이 돌 길을 온통 메워 버린다 / 落葉塡石逕
봉우리는 앙상하게 모가 나는데 / 峯巒瘦生稜
흰 달은 휘영청 더욱 빛을 더한다 / 素月增耿耿
솔숲 사이에 단풍나무 뒤섞여 있어 / 松林間楓樹
붉은빛 푸른빛 수없이 요란하다 / 紅碧紛無數
물이 줄어들자 높은 바위 드러나는데 / 水落露危巖
세차게 부딪치는 노도(怒濤) 소리 요란하다 / 激激波聲怒
추운 겨울엔 수신(水神)이 교만 부려 / 冬寒水官驕
쌓인 눈이 천주보다 훨씬 높다 / 積雪高天柱
연기 나는 곳에 절이 있는 줄 알겠지만 / 煙生知有寺
문이 막혀 있어 열고 들어가기 어렵다네 / 門礙難開戶
비하자면 딴 세계와 같아서 / 譬如別世界
하얀 은으로 국토를 이루었다오 / 白銀爲國土
푸른 전나무가 줄줄이 늘어서서 / 翠檜列幾行
수염 같은 잎들이 물결을 드리운다 / 鬚髮垂滄浪
그대는 왜 이런 것들을 보지 않고서 / 君胡不見此
도리어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하는가 / 反思歸故鄕
기록한 것들은 사철 경치로서 모두 산중의 실사(實事)이다.
이 산에 신선이 있어 / 此山有羽人
바람 타고 마구 허공을 다닌다네 / 馭風凌空行
푸른 머리털을 연기처럼 휘날리고 / 綠髮飄若煙
바위 구멍에다 그 몸을 감춘다오 / 巖竇藏其形
천년 동안 송진만을 먹고서는 / 千年食松脂
매미처럼 허물 벗고 장생불사한다오 / 蟬蛻得長生
사람을 보고도 말을 붙이지 않는데 / 見人不接言
얼굴 수려하고 모난 눈동자 맑다오 / 顔秀方瞳淸
그대는 어째서 이 사람 보지 않는고 / 君胡不見此
속세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 없는가봐 / 似無物外情
금강산 속에 어떤 사람이 솔잎만 먹으면서 살고 있었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솔잎을 먹은 끝에 몸이 가벼워 공중으로 오가고 온몸에는 푸른 털이 났다. 승려가 땔나무를 하고 나물을 캘 때 흔히 만나 보게 된다고 한다.
금강산에는 또 이상한 짐승이 있는데 / 此山有異獸
호랑이도 아니고 시랑이도 아닌 것이 / 非虎非豺狼
우람한 몸집은 산처럼 커다랗고 / 雄形大如山
성난 눈초리는 거울처럼 빛난다오 / 怒眸若鏡光
수시로 큰 나무에다 몸을 문지르면 / 有時磨大木
그 푸른 털이 백 척 높이에 걸린다네 / 翠毛掛百尺
발자국은 수레바퀴처럼 넓어 / 足迹廣如輪
진정 범상한 짐승 종류가 아니리 / 諒非凡獸匹
그대는 어찌 이 짐승을 보지 않고 / 君胡不見此
두려움에 떨듯이 피해 가려 하는고 / 避去如畏怯
금강산 속에는 이 시에서 소개하는 것과 같은 어떤 짐승이 있다 한다.
이 산에는 선학이 살고 있는데 / 此山有仙鶴
크기가 하늘에 드리울 날개를 가졌다 / 大如垂天翼
흰 구름 위로 훨훨 날아다니다가는 / 翺翔白雲上
해 지면 돌아와 푸른 벽에 서식한다오 / 暮還棲翠壁
때로는 수컷과 암컷이 춤을 추는데 / 有時舞雌雄
두 그림자가 봉우리 앞에 떨어진다네 / 雙影峯前落
고상한 사람도 오히려 친하지 못하는데 / 高人尙不親
더구나 억측으로 대하길 구할 수 있으랴 / 況求對以臆
그대는 어찌 이 선학을 보지 않아서 / 君胡不見此
마음속에 속됨을 면하지 못하는가 / 胸次未免俗
금강산 속에 두루미보다 큰 새가 살고 있다. 푸른 바탕에 붉은 이마를 지녔고 암수 한 쌍이 날고 있는데, 사람들이 그 새를 학이라 이른다.
내 이상과 같은 승려의 말을 듣고 / 我聞此僧言
돌아오려고 하다가 다시 발길 돌려 / 將還更回躅
결국은 반년 동안이나 머물렀는데 / 遂作半歲留
앞서 들은 것이 헛된 말이 아니었네 / 所聞非虛說
승려는 말한다 이 산의 이름은 / 僧言此山名
금강과 기달이라오 / 金剛與怾怛
수많은 보배가 합쳐 이뤄졌는데 / 衆寶所合成
그 속에 담무갈이 머물러 있었다오 / 中有曇無竭
나는 말하겠노라 불경 속에서 / 我言佛書中
조선국이란 것을 보지 못했고 / 不見朝鮮國
또 금강이 바다 속에 있다 했으니 / 又云在海中
이 산과는 동일하지 않는 것이다 / 不與此山同
승려가 말하기를, “불경에 ‘바다 가운데에 금강산이 있어, 담무갈이란 성인이 그곳에 머물렀다.’ 했으니, 바로 이 산이다.”라고 운운하였다. 그렇다면 이 산은 아마도 바다 가운데 있는 산이 아니겠는가.
아마도 용백국의 호걸이 / 我疑龍伯豪
한 번에 여섯 마리 자라를 낚았는데
/ 一釣連六鰲
삼산에서 마침내 방향을 잃어 / 三山遂失所
바다에 떠서 신선들을 놀라게 하고 / 泛海驚仙曹
정처 없이 떠돌다가 우리 강토에 이르러 / 漂流到我疆
뭇 산 중에서 제일가는 산이 되었나봐 / 作此群山王
또 의심컨대 서하의 오강(吳剛)이 / 又疑西河吳
계수나무 곁으로 도끼를 메고 가서
/ 荷斧桂樹旁
계수나무 베다 이 땅에 떨구었는데 / 斫桂落此地
만고의 세월이 멈추지 않는 동안에 / 萬古無時停
옥 같은 계수나무 줄기가 돌로 화하여 / 玉幹化爲石
높이 쌓여 푸른 하늘에 솟았는가보다 / 高積巉靑冥
허위와 진실을 그 누가 분별할 것인가 / 虛實竟誰分
어떤 이가 산경(山經)을 지을 것인가 / 何人作此經
이번에 자유로운 유람을 하고부터 / 自從作天遊
비로소 우리 인생 허무함 깨달았다 / 始覺吾生浮
산에서 내려와 골짝을 나오려 하자 / 下山將出洞
산신령이 나를 향해 걱정하더니 / 山靈向我愁
꿈속에서 나타나 나를 보고는 / 夢中來見我
요구할 게 있다고 스스로 말하네 / 自言有所求
천지 사이에 생겨난 온갖 만물들은 / 物生天宇間
사람으로 인하여 이름이 빛나게 된다 / 因人名乃休
중국의 여산은 이백이 없었던들 / 廬山無李白
누가 그 폭포를 읊을 수 있었겠으며 / 誰能詠其瀑
난정은 왕희지(王羲之)가 없었던들 / 蘭亭無逸少
누가 그 자취를 오래 전할 수 있었겠는가 / 誰能壽其迹
두자미는 동정호에서 시를 썼고 / 子美題洞庭
소동파는 적벽부를 지었다 / 東坡賦赤壁
모두가 큰 솜씨의 문장을 빌려 가지고서 / 咸因大手筆
훌륭한 이름이 내내 사라지지 않았느니 / 令名垂不滅
그대도 이제 나의 산에 노닐어서 / 君今遊我山
풍경을 남김없이 다 구경했거늘 / 風景皆收拾
어찌 이에 대한 시를 읊지 않고 / 胡爲不吟詩
도리어 입을 다물고 말이 없는가 / 反作緘口默
그대는 부디 큰 붓 휘둘러서 / 請君揮巨杠
금강산이 빛을 더하게 해 주게나 / 庶使山增色
나는 말하겠네 산신령의 과한 생각을 / 我言子過矣
산신령의 부탁은 내가 감당할 바 아니네 / 子言非我擬
나는 본디 시문에 재주가 없는데 / 我無錦繡腸
앞의 분들을 어떻게 따를 수 있겠는가 / 安能追數子
가슴에 가득한 건 하나의 옹졸함뿐이니 / 滿腔惟一拙
글을 지어내더라도 사람들이 기뻐하지 않을 걸세 / 吐出人不喜
산신령이 구슬 같은 시문을 얻고 싶다면 / 子欲得瓊琚
가장 값진 큰 솜씨를 찾아가서 요구하오 / 往求無價手
산신령은 기뻐하지 않은 낯빛으로 / 山靈色不悅
자리를 비켜선 채 오랫동안 응시하더니 / 側立久凝視
혀를 차면서 나를 가리켜 말을 한다 / 咄咄指我言
그대같이 고약한 사람은 없을 거야 / 惡賓無汝似
내 끝내 사양할 수 없음을 알고서는 / 我知不能辭
하찮은 글이나마 짓기로 허락하노라 / 遂許撰荒鄙
얼굴은 마치 술을 깬 것처럼 열리나 / 形開如酒醒
들은 것은 모두가 황당한 일뿐일세 / 所聽皆慌爾
그러나 약속한 걸 저버릴 수 없으니 / 有約不可負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대로 적어 두노라 / 聊以記終始

○ ‘풍악산에서 본 것을 읊다’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나는 타고난 천성이 산수를 좋아한 탓에 / 吾生賦性愛山水
지팡이에 나막신 신고 동쪽으로 유람하노라 / 策杖東遊雙蠟屐
세상일은 모두 관심 밖에 팽개쳐 버리고 / 世事都歸掉頭中
명산을 찾아서 풍악산으로 향했을 뿐이네 / 只訪名山向楓嶽
처음에 석천을 따라 작은 길을 발견하였는데 / 初沿石川得小逕
갈수록 차츰 험한 길이 산기슭으로 통했다 / 漸見鳥道通山麓
알겠노라 가까운 숲 속에 절이 있다는 걸 / 林間有寺知不遠
푸른 연기 피어오르는 곳에 종소리 나누나 / 靑煙起處疎鍾落
걷고 걷다 보니 해도 저물고 길도 끝날 때에 / 行行日暮路窮時
퍼런 전나무 우거진 사이로 붉은 누각 보인다 / 蒼檜蕭森露朱閣
승방에 누웠건만 단잠을 이루지 못하고 / 僧房寄臥不成夢
밤새도록 창 너머 폭포 소리만 들었노라 / 隔窓終夜聞飛瀑
이른 아침 죽 공양 때 목탁 소리 울리니 / 平明粥熟木魚動
수많은 승려들 뜰에 가득 죽 늘어선다 / 一庭緇髠羅千百
내 그 무렵에 문을 나와서 앞길을 물었더니 / 我時出門問前途
어떤 승려 손끝으로 푸른 산 북쪽을 가리키네 / 有僧指點靑山北
옷 걷고 풀 헤쳐 가는 괴로움 마다 않으니 / 褰衣披草不辭勞
맑은 바람으로 두 겨드랑을 끌게 하고 싶다 / 欲使淸風駕兩腋
햇빛 가린 덩굴 속으로 골짝 깊숙이 들어가니 / 藤蔓蔽日入洞深
좁은 길이라 돌 모서리에 옷자락이 걸리는구나 / 石角拘衣知路窄
곧장 높은 봉우리에 오르자 시야가 탁 트이니 / 直上高峯始豁然
여러 지경의 삼라만상을 다 수렴할 수 없어라 / 萬境森羅收不得
물소린지 바람 소린지 도무지 분별하기 어려운데 / 風聲水響浩難分
몇 개의 쏟아지는 폭포가 골짝을 요란케 뒤흔드는고 / 幾道飛泉喧衆壑
머리 쳐들고 동쪽을 바라보니 눈망울 아물아물 / 擡頭東望眼力盡
넓다란 큰 바다 하늘과 연하여 푸른빛 띠었다 / 茫茫大洋連天碧
유람하다 어느덧 속세를 벗어난 사람 되었나 봐 / 逍遙便作物外人
가슴속의 수많은 번뇌를 한꺼번에 씻어 버렸네 / 洗盡胸中塵萬斛
수풀 끝에 절이 있는 것을 갑자기 발견하고 / 忽驚蘭若在林端
곧장 찾아가서 선방 문을 똑똑 두드렸노라 / 往叩禪扉聲剝啄
텅 빈 고요한 뜰에는 새 한 마리 울고 있고 / 空庭寥寂一鳥鳴
문밖에 흐르는 맑은 냇물 발 씻기 어려워라 / 門外溪淸難濯足
다시 그윽한 길 찾아 위태로운 바위를 돌고 / 更尋幽逕傍危巖
손 올려 덩굴 휘어잡다 여러 번 미끄러졌다 / 引手攀蘿屢敧側
험한 산길 헤매다가 작은 암자 발견했으나 / 崎嶇上下得小庵
사방이 방초일 뿐 사람 흔적 볼 수 없어라 / 四面芳草無人迹
깎아 세운 듯한 봉우리 날아갈 듯 괴상하고 / 峯巒削立怪欲飛
눈빛 서린 높은 산세는 감돌아 끝이 없다 / 雪色嵯峨迥無極
푸른 하늘 땅에서 한 자도 안 떨어졌으니 / 靑天去地不盈尺
머리 위의 별들을 손으로 딸 것만 같구나 / 頭上星辰手可摘
어디를 쳐다보아도 오가는 구름뿐이라 / 雲來雲去何所見
뜰 아랜 수많은 봉우리 푸르거나 흰빛 / 階下千峯靑又白
은은히 나는 천둥소리 귀기울여 듣고서 / 雷聲殷殷俯可聽
인간에 비바람이 일어나는 줄을 알겠노라 / 知是人間風雨作
문 열고 홀연히 선정에 든 스님을 보니 / 排門忽見入定僧
수련으로 단련된 몸 여윈 모습 학과 같다 / 鍊得身形瘦如鶴
흔연히 나를 보나 서로 말은 하지 않은 채 / 欣然見我不相語
깨끗이 선상 쓸고 나를 멈춰 묵게 하누나 / 淨掃禪牀留我宿
이른 새벽 나를 깨워 해 뜨는 걸 보라기에 / 凌晨蹴我見出日
놀라 일어나 창문을 열고 멀리 바라보았네 / 驚起開窓遙送目
동방이 온통 붉은 비단 속으로 빠져 들어가 / 東方盡入紅錦中
아침노을과 바다 빛을 분별할 수 없다 / 不辨朝霞與海色
잠시 뒤 햇님 얼굴 부상에 솟아올라 / 須臾火輪涌扶桑
하늘과 땅을 비춰서 어둡던 밤 깨뜨려 버렸네 / 照破乾坤一夜黑
승려는 말한다 이 땅이 가장 절호한 곳이라고 / 僧言此地最奇絶
세간은 어찌 다만 신선과 범부 그 격차뿐이랴 / 世間何翅仙凡隔
애석타 나는 아직 세속 인연 다 끊지 못했으니 / 嗟余俗緣磨不盡
이곳에 살며 나의 즐거움 온전히 할 수 없으리 / 不能棲此全吾樂
후년에 만일 이 승유를 계속하게 되거들랑 / 他年勝遊如可續
산신령께서는 꼭 기억해 주시라고 부탁을 합니다 / 寄語山靈須記憶


간이(簡易) 최립(崔岦)의 금강산(金剛山) 시는 다음과 같다.

산은 수점으로부터 돌아갈 생각을 잊게 하고 / 山從水岾欲忘歸
바위는 황룡담을 지나자 옷의 먼지를 털게 한다 / 石度黃龍爲振衣
고마울시고 희공께서 전송해 주신 뜻이 / 多謝煕公相送意
마하연에는 지키는 스님도 드문데 / 摩訶衍裏住僧稀

○ ‘산봉우리를 바라보다’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숲을 지나고 바위산 넘기를 사양 않고 많이도 했으니 / 穿林跋石不辭多
비로봉을 멀리서 바라만 보아도 그 기쁨이 어떠하리 / 但見毘盧喜若何
수점에서 바라볼 땐 너무 드러난 듯하였지만 / 水岾望時疑太露
흘러가는 구름이 또 옅은 안개되어 잠시 가려 주네 / 歸雲俄復作微霞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의 ‘풍악산으로 유람 가는 인언 상인(印彦上人)을 보내다’라는 시 14수는 다음과 같다. 그 첫째 수에서
석장(錫杖) 짚고 명산 길 걸으려 / 飛錫名山路
정처 없이 훌쩍 떠나누나 / 飄然不定蹤
구름에 앞서서 아침엔 재를 넘고 / 先雲朝度嶺
학과 함께 저녁엔 소나무에 의지한다 / 共鶴暮依松
천관산에서 여름 석 달을 지냈고 / 天冠經三暑
두류산에서 한 해 겨울을 머무네 / 頭流駐一冬
동쪽으로 돌아가는 건 또 무슨 일인가 / 東歸又何事
중향봉에 가을이 깊어서이지 / 秋晩衆香峯
하였고, 그 둘째 수에서
신상의 일 허다히 뜻과 같지 않은데 / 身事多違意
가을이 오니 더욱더 슬퍼지네 / 秋來轉益悲
어찌하여 산을 기억하는 날 / 如何憶山日
공연히 승려 보내는 시를 짓게 되는고 / 空賦送僧詩
나뭇잎 떨어지니 산봉우리들 빼어나고 / 木落千峯秀
구름 생기니 골짝들 기묘하구나 / 雲生萬壑奇
응당 밝은 달밤에 / 只應明月夜
꿈속에서 서로 따르리라 / 幽夢遠相隨
하였고, 그 셋째 수에서
어릴 때 풍악산이 기묘하다는 걸 들었건만 / 學語曾聞楓嶽奇
선경에 가 보지 못하고 살쩍 전부 희었네 / 丹梯未躡鬢全稀
진성에 또 가을바람이 일어나는데 / 秦城又見秋風起
승려는 구름과 함께 돌아가는구나 / 僧與白雲空自歸
하였고, 그 넷째 수에서
백옥 같은 산봉우리 푸른 바닷가에서 / 白玉峯巒碧海邊
한유한 모임 약속한 지 사십오 년 되었네 / 幽期四十五年前
스님의 말에 따라 산신령과 말하기를 / 憑師說與山靈道
연하 낀 최상의 산마루에서 여생을 마치리라고 / 終老煙霞最上巓
하였고, 그 다섯째 수에서
석 자 길이의 철쭉 지팡이 / 躑躅枯枝三尺長
그걸 짚고 방장산에서 왔다간 금강산으로 들어가네 / 拄來方丈入金剛
십 년 동안이나 벼슬길을 달렸으니 / 十年走馬東華路
명산에 가 보지 못하고 살쩍 이미 희었다 / 未到名山鬢已霜
대사는 철쭉 가지를 지팡이로 삼았다.
하였고, 그 여섯째 수에서
그대를 봉래산으로 놀러 보내니 / 送爾蓬萊山上遊
부용이 동천의 가을에 빼어났다 / 芙蓉秀出洞天秋
날개 달린 신선을 만날 것 같으면 / 羽衣仙侶如相見
영단을 얻어서 이 백두에게 부쳐다오 / 乞得靈丹寄白頭
하였고, 그 일곱째 수에서
연래엔 이 늙은 눈 빼어 가지고 / 年來只欲抉昏眸
돌아가는 승려의 석장 머리에 달아 보내 / 挂却歸僧錫杖頭
곧장 금강산 제일봉에 올라가서 / 直上金剛峯第一
잠시 만산의 가을빛 두루 보고 싶어 하노라 / 暫時看遍萬山秋
하였고, 그 여덟째 수에서
백병의 침투로 몸 자유스럽지 못하니 / 百病侵身不自由
명산 찾는 일 또 일 년을 저버렸다 / 尋山又負一年秋
승려 와서 갑자기 관동 가겠다 알리니 / 僧來却報關東去
서풍과 휘날리는 황엽 속에 시름하노라 / 黃葉西風滿眼愁
하였고, 그 아홉째 수에서
가는 사람 옷깃 끌어서 삼일을 머물렀으니 / 挽却征裾三日留
평생 병 많은 이 몸 또 가을을 만났구나 / 百年多病又逢秋
신선의 산을 동쪽으로 바라보며 고향 가고픈 생각을 / 仙山東望思歸意
쉬지 않고 울어 대는 베짱이에게 부치노라 / 附與寒蛩吟不休
하였고, 그 열째 수에서
몸은 외로운 학과 같고 자취는 구름과 같아 / 身如孤鶴跡如雲
허공을 나는 듯 걸으니 본래 보통이 아니었다 / 飛步凌空本不群
남쪽 고을 두루 둘러보고 또 동쪽으로 달려가노라면 / 踏遍南州又東走
정양사는 가을빛으로 비단 무늬를 이루었으리라 / 正陽秋色錦成紋
하였고, 그 열한째 수에서
해가 성동 길에 떨어졌는데 / 日落城東路
승려는 바닷가 산으로 돌아간다 / 僧歸海畔山
가을바람 살쩍털을 휘날리는데 / 秋風吹鬢髮
단풍은 한철 아롱졌구나 / 霜葉一時斑
하였고, 그 열두째 수에서
늙은 이 몸 계속 병을 앓는데 / 老子身仍病
가을 산성에 낙엽은 또 날리누나 / 秋城葉又飛
구룡담 위엔 달 밝을 것인데 / 九龍潭上月
공연히 한 승려를 보내노라 / 空送一僧歸
하였고, 그 열셋째 수에서
풍악은 두 산 이름에 하나인데 / 楓嶽二山一
그 봉우리 일만 이천이다 / 其峯萬二千
인간에 붙어 있을 수 없어 / 人間不可托
뭇 신선을 찾아가려고 하네 / 直欲訪群仙
하였고, 그 열넷째 수에서
개골산이 동쪽에 있는데 / 皆骨山東指
해마다 그곳으로 승려를 보내노라 / 年年送衲衣
어느 때에나 사람들이 나를 보내려는가 / 幾時人送我
가을날에 수미산에 오른다 / 秋日上須彌
하였다.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의 ‘풍악산으로 들어가는 유정(惟政)을 보내다’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풍악산 봉우리 몇 층이나 되는가 / 楓嶽岡巒第幾層
걸음걸음 금승 길을 걸어가리 / 須知步步着金繩
아득해라 남긴 발자취 희미해지니 / 蒼茫未了鴻泥迥
어렴풋이 꿈속에서나 서로 만나리 / 縹緲難廻鶴夢凝
쌍필로 수만 갑을 다투어 전하고 / 雙筆爭傳數萬甲
일지로 백천 등을 나누어 비추리 / 一枝分照百千燈
천향 가득한 고요한 사원 속에 / 天香滿院鳥肩靜
백수와 유상이 후일에 징험하리 / 栢樹柔桑是後徵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의 금강산 시 다섯 수는 다음과 같다. 그 첫째 수에서
금강산이 천하에서 제일이니 / 金剛雄六合
조화를 여기에 쏟아 놓았구나 / 造化此偏鍾
바다에는 동남의 땅이 있고 / 海有東南地
산은 일만이천봉을 열었다 / 山開一萬峯
문전엔 구슬 같은 나무 빼어나고 / 門前琪樹出
동구에선 신선을 만난다 / 洞口羽人逢
절벽은 은하수를 통하였고 / 絶壁通河漢
연못 속엔 옥황상제가 용을 하사하였다 / 淵中帝賜龍
하였고, 그 둘째 수에서
부상은 동쪽에 있고 / 扶桑在東海
약수는 서쪽을 향해 흐른다 / 弱水向西流
일만이천봉이 솟아났고 / 一萬峯巒出
삼천 세계가 떠 있다 / 三千世界浮
은하수 위를 오를 것 같으면 / 如登銀漢上
적송자와 노닐 수 있다 / 可與赤松遊
총생하는 계수나무는 회남왕이 읊었었지만 / 叢桂淮南樹
유인이 머무르기에는 부족하다 / 幽人不足留
하였고, 그 셋째 수에서
개골산이 하늘과 가지런하니 / 皆骨與天齊
하늘이 높아도 오를 수 있다 / 天高亦可梯
회오리바람이 앞을 막는 것이 아니라 / 風飆非是阻
대외산이 본래 희미하다 / 大隗本來迷
동해에는 삼신산이 있고 / 東海三神在
중원의 오악이 낮다 / 中原五嶽低
뭇 신선들은 굴택을 다투니 / 群仙爭窟宅
서왕모는 서쪽에 산 걸 한한다 / 王母恨居西
하였고, 그 넷째 수에서
해상에 서린 뿌리가 크니 / 海上盤根大
우람한 기운이 장엄하다 / 峨峨氣壯哉
속명은 바로 개골산이나 / 俗名是皆骨
기실은 곧 봉래산이다 / 其實卽蓬萊
폭포수는 푸른 하늘에서 떨어지고 / 瀑水靑霄落
신선은 대낮에 온다 / 仙人白日來
진(晉)나라의 손작(孫綽)이 만일 이 산을 보았다면 / 興公如見此
천태부를 짓지 않았으리 / 爾不賦天台
하였고, 그 다섯째 수에서
산 뿌리가 성하게 서려서 / 山根鬱盤結
바다의 정동쪽에 들어가 열렸네 / 入海正東開
그 머리는 어디에 있는가 / 其首知安在
하늘에서 곧장 북쪽으로 왔다 / 從天直北來
누대에 구름이 끼면 청학이 내리고 / 臺雲靑鶴下
연담(淵潭)에 비 내리면 화룡이 돌아왔다 / 淵雨火龍廻
어떻게 고승의 말을 얻어서 / 焉得高僧語
그와 함께 산천을 유람할까 / 同渠渡一盃
하였다.


계곡(谿谷) 장유(張維)의 ‘낙전공자(樂全公子)가 풍악산을 유람하다’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누가 명산에 놀고 싶지 않겠는가만 / 名山誰不遊
속객은 산이 싫어한다네 / 俗客山所嗔
묻노니 누가 속객인가 / 問誰爲俗客
마음에 먼지 많이 낀 사람이지 / 靈臺多垢塵
선생에겐 도의 기운이 있어 / 夫子有道氣
고상한 마음 속진에 물들지 않았는데 / 雅尙無緇磷
귀공자 티 내지 않고 / 脫略綺紈習
청정한 인연과 결탁하였다 / 結託淸淨因
더구나 지금 선구를 찾아서 / 況今訪仙區
신령스러운 샘물로 신심을 씻고 / 靈泉澡雪頻
수정같이 솟아나는 땀방울들을 / 瑩然出淸泚
맑은 가을 햇볕에 말린 경우임에랴 / 曝向高秋旻
몸과 마음 둘 다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 身心兩無染
꽃다웁고 깨끗함 날로 새로워지리 / 芳潔得日新
이러한 몸과 마음으로 풍악산에 들어가니 / 將此入楓嶽
때는 바로 시원한 가을이네 / 時哉屬蕭晨
산신령은 좋은 손님을 반기고 / 山靈喜佳客
경치도 불평하지 않으리라 / 雲物不嚬呻
비로봉 정상에서 옷을 떨치고 / 振衣毘盧頂
사면 팔방을 다 관람하리라 / 一覽窮八垠
정양사로 돌아와 밤을 맞으면 / 歸來正陽夜
향내음 속에서 천진을 발하리 / 妙香發天眞
나의 시가 혹시 도움을 준다면 / 吾詩或有助
구연에 잠긴 용을 감동시키리 / 九淵感潛鱗


백강(白江) 이경여(李敬輿)의 ‘금강산 승려의 시축에 쓰다’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나무에서 우는 매미 소리를 누워서 듣고 / 臥聽蟬鳴樹
가지에 내려앉는 새를 한가히 보노라 / 閒看鳥墜枝
승려가 와서 시를 지어 달라고 하기에 / 有僧來乞句
병든 몸 부축하며 억지로 시를 쓰노라 / 扶病強題詩
절은 바로 옛날에 놀던 곳인데 / 寺是曾遊處
사람은 지금 예전과 다르구나 / 人今異昔時
언제 운무의 굴에서 / 何當雲霧窟
너희와 유기를 맺을까 / 與爾結幽期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금강산인(金剛山人) 법연(法演)의 시축에 차운하다’라는 시 두 수는 다음과 같다. 그 첫째 수에서
진(晉)나라 때 혜원 법사(慧遠法師)가 백련사(白蓮社)를 만들자 / 蓮社當年五老峯
호계를 오간 이 중에는 도연명도 있었지 / 虎溪來往有陶翁
금강산엔 석실이 그리 많지도 않은데 / 金剛石室無多地
오늘날 도리어 고풍을 잇는구나 / 今日還堪嗣古風
하였고, 그 둘째 수에서
풍악산 속의 덕이 높은 스님은 / 楓嶽山中白足師
오묘한 불경에 본래 신기한 재주 지녔네 / 蓮華貝葉本神奇
가을바람이 멀리 종남산 밑을 지나갔으니 / 秋風遠過終南下
사림의 시를 몇 수나 더 얻었는가 / 添得詞林幾首詩
하였다.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풍악산 가는 도중’이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가는 길이 선경으로 깊이 들어가니 / 路入丹丘邃
이 몸이 돌아온 백학인가 의심된다 / 身疑白鶴歸
봉우리는 돌칼을 배열한 양 삼엄하고 / 峯危排石劍
비탈은 이끼에 덮여 미끄럽다 / 崖滑老苔衣
절 근처에서 비를 피하고 나서 / 避雨叢林近
희미한 외나무다리 건너 근원을 찾는다 / 窮源小彴微
구름 속에 있는 문 닫아 놓지 않아도 / 雲關曾不掩
속세 사람의 발자취 드물게 이른다 / 塵躅到今稀


용주(龍洲) 조경(趙絅)의 ‘풍악산에 노닐다’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일흔 살 늙은 나이 명산 유람 쉽잖은 일 / 七十遊山事異常
승경을 찾기엔 몸은 비록 약하지만 마음만은 넉넉하다네 / 雖無勝具勝情長
맑게 들리는 장안사 속의 종소리 / 長安寺裏淸鍾響
밝게 비치는 진헐대 앞의 달빛 / 眞歇臺前白月光
눈앞의 일만이천봉 연꽃처럼 솟았고 / 滿眼芙蓉峯萬朶
하늘 위의 은하수는 골 복판에 꽂혔네 / 倒天河漢洞中央
신령스러운 땅이라 곳곳에 창포 널렸으니 / 地靈步步菖蒲在
흰머리 검어져서 다시 소년이 되고 싶어라 / 便欲仍之掃鬢霜


서하(西河) 이민서(李敏敍)의 ‘금강산에 노닐다’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산에 놀러 다니는 일 술 마시는 일과 같은 것 / 遊山如飮酒
그 취미를 오늘 아침에 알았노라 / 趣味識今朝
여럿이 마시면 시끄러운 것이 괴롭고 / 群飮苦號呶
혼자 마셔도 무료하기 그지없다 / 獨酌亦無聊
두세 사람이 가장 알맞으니 / 最宜兩三輩
서로 권하고 서로 시끄럽지 않다 / 相勸不相囂
나의 산행이 갑자기 이루어져서 / 我行旣倉卒
미처 동행을 부르지 못하였다 / 儔侶無由招
산속에서 이 사람을 만나니 / 山中得之子
좋은 술에 취하듯이 기쁘도다 / 喜如醉醇醪
지팡이 나란히 짚고 높은 봉우리 오르고 / 並策登高岡
소매를 연하고 위험한 다리를 건넌다 / 連袂度危橋
시를 지으며 저녁나절을 보내기도 하고 / 吟詩或竟夕
술을 마시며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하네 / 對酌或通宵
적적할 땐 사람의 발소리만 들어도 반가운데 / 空虛喜跫音
더구나 자네는 영남의 영걸이 아닌가 / 況子嶺之翹
자네가 지금 나를 버리고 돌아가니 / 子今捨我歸
나의 마음이 쓸쓸하기 그지없네 / 我懷殊切忉
이후에 혹시 서로 생각이 나거든 / 他時倘相思
서신으로 보고픈 마음을 풀자꾸나 / 尺素紓鬱陶

○ ‘금강산을 유람하러 가는 도중에’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들으니 삼신산이 해동에 있다고 하는데 / 聞道神山在海東
이번에 가는 길이 어찌 그리도 험한가 / 此行前去路何窮
연기 빛은 시냇가의 버들을 깍듯이 보호하고 / 煙光偏護溪邊柳
가을빛은 봉우리 위의 단풍을 먼저 침범하였다 / 秋色先侵峯上楓
구루산에서 신단(神丹)을 만들던 옛 비결을 찾고 / 句漏燒丹尋祕訣
녹문산에서 약을 캐던 옛 모습을 사모한다 / 鹿門採藥慕高風
산중에서 한번 취하면 천일 만에 깨는데 / 山中一醉經千日
깨서 보면 뜬구름이 태공으로 변하리라 / 起看浮雲變太空


시남(市南) 유계(兪棨)의 ‘양진역(養眞驛)에서 금강산을 바라보며’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뭇 산들을 다 보다가 눈이 문득 새로워지니 / 歷盡群山眼忽新
공중에 가득한 떨기 옥이 죽순처럼 뾰족하다 / 滿空叢玉矗如筍
도리어 싫구나 밤새 눈에 모든 바위 희어진 것 / 還嫌夜雪千巖皓
금강산의 새로운 본색을 분변치 못하겠다 / 不辨金剛本色新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의 ‘풍악산에서 돌아오다가’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유람객들과 함께 바다 구름 따라 나는 듯이 걸어서 / 遊笻共逐海雲飛
봉래도의 맑은 바람 소매 속에 가득 담고 돌아오노라 / 蓬島淸風滿袖歸
오늘 아침에 또 남쪽 호수에 배를 띄우고 / 今朝又泛南湖水
푸른 연기 나그네의 옷을 물들이게 맡겨 두노라 / 一任蒼煙染客衣


명재(明齋) 윤증(尹拯)의 ‘율곡(栗谷)의 풍악 삼십 운(韻)에 차운하다’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서책 속에 삼십 년 동안 머리를 묻어 / 書册埋頭三十年
한가히 놀러 다닐 겨를이 없었노라 / 不暇偸閑事遊屐
내 큰 뜻을 가지고 옛사람을 사모한다 / 嘐嘐我思古之人
자양의 주희(朱熹) 선생이 여산(廬山)을 사랑한 일 / 紫陽先生愛廬岳
나는 듯이 한번 좁은 방에서 벗어나서 / 翩然一出圭竇中
이 몸이 벌써 금강산에 이르렀노라 / 此身已到金剛麓
처음 여러 내를 건너 유점사에 당도하니 / 初從百川得楡岾
수많은 묵은 잣나무들 낙락하게 푸르다 / 老柏千章翠落落
산영루의 이름이 한 골짜기에서 으뜸가는데 / 山暎樓名擅一洞
돌로 징검다리 만들고 그 위에 웅장한 집 지었다 / 石作矼橋跨傑閣
부처님 머리 위의 큰 돌이 뒤쪽에 꽂혔으니 / 佛頂危石插腦後
은하수 같은 십이폭을 완연히 보겠다 / 宛見銀河十二瀑
산 동쪽에 우뚝 선 미륵이라 부르는 것은 / 山東特立號彌勒
비하자면 준재와 호걸이 천명이나 백명 속에서 나온 것과 같다 / 譬如俊乂出千百
우람한 뭇 봉우리들이 일월을 향해 치솟았는데 / 群峯合沓拱日月
만명에 뛰어난 영웅 같은 것이 그 북쪽에 있다 / 萬夫之雄在其北
가벼운 남여(籃輿)로 나는 듯이 안문령을 지나가니 / 輕籃飛過鴈門嶺
그윽한 마하연이 오른쪽 자락에 감춰져 있다 / 窈窕摩訶藏右腋
옷을 걷어올리고 구룡연을 건너가니 / 褰裳去襲九龍淵
구름과 안개를 뿜어내 동부가 협소하다 / 泄霧噴雲洞府窄
제갈 무후의 사당을 세우려고 하는데 / 欲爲諸葛武侯祠
서원 은자를 지금 얻기 어렵다 / 西原隱者今難得
돌아오니 문득 우사를 보내어서 / 歸來却煩雨師送
나를 위하여 한 번 골짝을 씻는구나 / 爲我一番洗林壑
정양사 안에서 이틀을 머무르며 / 正陽寺裏二日留
높은 곳 바라보니 여러 봉우리들 면전에 푸르네 / 望高諸峯面前碧
칠담의 흰 돌에서 튀기는 물방울 장관을 이루며 / 七潭白石玩飛沫
옥반에 떨어지니 구슬이 백곡이나 되는구나 / 迸落玉盤珠百斛
문득 신선이 되고 싶은 마음이 생겨 / 便欲仍之托銅柱
영지를 먹고 곡식을 끊을 방법을 배우려 한다 / 學得餐芝謝飮啄
어느덧 안팎의 좋은 경치들 다 둘러보았지만 / 居然迸盡表裏勝
내 마음에 흡족치 못한 것이 우습구나 / 堪笑吾心未云足
댕댕이덩굴 부여잡고 다시 비로봉 오르려 하는데 / 攀蘿更指毘盧頂
이 땅이 사람을 잘 포용해 주려는지 모르겠다 / 此地豈容人扶側
발을 자주 들면 들수록 몸은 더욱 높아가는데 / 擧足愈數身愈高
돌길에 분명 옛날 올랐던 자취가 있구나 / 石磴分明有舊迹
천 길이나 높은 곳에서 옷을 떨치니 속이 탁 트이는데 / 振衣千仞始豁然
끝없이 펼쳐진 삼라만상 장관을 이루고 있구나 / 萬象森羅浩無極
산간에 좋은 경치 저절로 드러났으니 / 山間勝妙自呈露
전부터 찾아와 애써 구경을 하였노라 / 向來區區勞抉摘
망망대해는 눈앞에 광활하게 펼쳐졌고 / 大海茫茫眼底闊
밝은 해는 머리 위에 하얗게 솟아 있다 / 日輪昭昭頭上白
오늘에야 비로소 평소의 소원을 풀었으니 / 今朝始副百年心
나의 걸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기뻐하노라 / 方喜吾行不虛作
누군가는 담무갈(曇無竭)이 머물렀다 함부로 말하고 / 何人妄說住曇竭
어떤 사람은 학 타고 나는 신선 있다 공연히 말한다 / 有客空談控鸞鶴
기괴한 일 자랑하기 위하여 심한 궤변 늘어놓는데 / 爭奇騁怪極詼詭
온 세속 캄캄한 밤에 자고 있는 것처럼 혼매하구나 / 擧俗昏昏長夜宿
은근히 스물여덟 글자를 새기니 / 慇懃二十八字刻
천 사람 만 사람의 눈이 놀라게 되리라 / 庶刮千人萬人目
다시 나의 성명을 돌에 새겨 놓으니 / 還將名姓記石間
좋든 나쁘든 부끄러운 기색을 갖지 않겠노라 / 好醜能無有媿色
노는 걸음 여기에 이르자 자연 돌아갈 생각 잊어 / 淸遊到此自忘歸
서산에 해가 지려고 하는 줄도 알지 못하였다 / 不知崦嵫日將黑
후일 이곳에 오는 자들은 의심을 갖지 말라 / 後來來者莫持疑
이 지경은 본래 사람에게 간격을 두지 않는다 / 此境於人本無隔
서운한 건 평소에 절친한 두세 친구와 / 惆悵平生二三子
같이 와서 나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지 못하는 것 / 不能同來共吾樂
붓 휘둘러 부질없이 율곡의 시편에 화답하여 / 濡毫漫和石潭篇
멀리 좋은 벗에게 부쳐 생각하는 마음을 위로한다 / 遠寄良朋慰相憶

○ ‘폐암(廢庵)을 읊다’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높은 절벽 중첩된 봉우리 면면이 같은데 / 峭壁攢峯面面同
고승이 한 번 떠나자 암자가 비어 버렸다 / 高僧一去小庵空
산간의 취미에 대해 이해할 사람 없는데 / 無人解語山間趣
계곡 물은 말없이 달빛 속에 졸졸 흐른다 / 澗水潺湲月影中

○ ‘봉래도(蓬萊島)’라는 삼오칠언(三五七言) 시 두 수는 다음과 같다. 그 첫째 수에서
첫째는 금강산 / 一金剛
둘째는 봉래산 / 二蓬萊
원화동에는 별천지가 있고 / 元化別有天
자동에는 바람이 대에 가득하다 / 紫洞風滿臺
너의 정신이 속물이 아님을 알겠는데 / 知爾神精非俗物
어찌 학으로 화해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가 / 何不化鶴復歸來
만폭동에 ‘원화동천(元化洞天)’이라 새겼다.
하였고, 그 둘째 수에서
서쪽은 금강산 / 西金剛
동쪽은 봉래산 / 東蓬萊
부처로 바위를 이름하지 않고 / 不以佛號巖
신선으로 대를 표하였다 / 卽將仙標臺
불가와 선가가 서로 쟁탈하도록 일임해 두고 / 一任二家互爭奪
홀로 산간의 맑은 경치를 취하여 오노라 / 獨取山間淸景來
하였다.


미수(眉叟) 허목(許穆)의 금강산 시는 다음과 같다.

푸른 절벽 아래의 길을 따라 짙은 구름 속을 들어가니 / 緣蒼壁路入雲重
누대는 시 잘 하는 유람객을 머물게 하는구나 / 樓使能詩客住笻
용의 조화라 폭포를 뿜어 눈처럼 하얗게 날리고 / 龍造化噴飛雪瀑
칼의 정신이라 산봉우리를 깎아서 하늘에 꽂았네 / 劍精神削插天峯
처마엔 몇천 년 된 하얀 학 오락가락하고 / 簷禽白幾千年鶴
고개엔 만 길가량 된 푸른 소나무 드높아라 / 嶺樹靑高萬丈松
승려는 나의 봄 졸음 곤하게 든 걸 모르고 / 僧不知吾春睡困
갑자기 무심코 종을 두들겨 소릴 내는구나 / 忽無心打日邊鍾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의 풍악(楓嶽) 시 절구 네 수는 다음과 같다. 그 첫째 수에서
오강(吳剛)이란 신선이 계수나무를 찍고 여가가 있어 / 老吳斫桂常多暇
다시 연꽃 일만 이천 개를 깎아 놓았다 / 更斲蓮花萬二千
벽공에 살포된 연꽃들 뿌리는 땅에 꽂혀 있으니 / 散擲碧空根插地
시끄럽구나 손뼉 치며 떠드는 뭇 신선들 소리 / 呀呀拍手烘群仙
하였고, 그 둘째 수에서
일일이 새김에 정교함을 다했으니 / 一一雕鎪獨殫巧
조물주가 온 정성을 다 쏟아 놓았구나 / 化翁猶自費心機
오악에 비하면 이 산이 단연 으뜸이니 / 比將五嶽堪雄長
삼산 중의 하나라 하여 시비를 결정짓겠노라 / 擬着三山定是非
하였고, 그 셋째 수에서
죽 늘어서서 서로 경쟁을 벌인 듯하고 / 排排比比如相競
기기괴괴하여 신이 있는 것과도 같구나 / 怪怪奇奇似有神
다만 염려스러운 건 무궁한 연꽃송이 / 只恐蓮花無盡朶
여래의 분신으로 분해될까 하노라 / 如來葉葉解分身
하였고, 그 넷째 수에서
만 송이 활짝 핀 연꽃은 이슬에 씻긴 듯 / 萬朶蓮開濯露容
천 갈래로 죽 꽂힌 창은 서슬이 시퍼런 듯 / 千枝戟插洗霜鋒
신선이 봉래산에 가는 길을 잃고서 / 神仙失去蓬萊脚
불사(佛寺)를 찾아들어 종소리를 듣누나 / 偸放花宮曉晩鍾
하였다.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의 ‘금강산을 바라보다’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자주 보면 무슨 물건이든 곱지 않고 / 數見物不鮮
여러 번 가 보면 어떤 곳이든 싫증 나기 쉽다 / 屢度情易疲
그런데 어찌하여 이 풍악산은 / 夫何此楓嶽
나를 세 번이나 오게 하느냐 / 令我三來爲
진세에서 온갖 근심을 쌓고서 / 塵區積百憂
문밖을 나와 우연히 여기에 왔노라 / 出門偶及玆
단발령을 내려오면서부터는 / 自下斷髮嶺
나의 말이 더디게 달리는 것을 자주 꾸짖었다 / 屢叱我馬遲
신원에서 잠깐 쉬고 / 新院暫流憩
백사장에서 점심을 먹었다 / 午飯白沙湄
살구꽃은 푸른 들을 환하게 비추고 / 杏花照綠野
아름다운 풀은 은은한 물결을 이루네 / 瑤草被漣漪
어언간에 노닐 만한 곳에 왔는데 / 於焉已堪棲
나갈 길은 더욱 기구하구나 / 進路轉懷奇
세찬 바람 석양의 아지랑이 걷으니 / 高飆褰晩靄
산의 반 모습이 구름 새로 드러나네 / 半山出雲馳
높다랗게 옥을 겹겹이 쌓아 올렸는데 / 崢嶸積玉標
그 형세 바람에 쓰러질 것만 같아라 / 勢將逐風欹
응당 아홉 번 물을 건너야 할 텐데 / 臨當九渡水
기가 펄펄 나서 자제할 수 없구나 / 氣狂不自持

○ 봉래가(蓬萊歌)는 다음과 같다.

봉래산 뭇 봉우리 푸른 하늘에 나열되어 있으니 / 蓬萊群峯羅碧天
세상 사람들 억지로 일만이천봉이라 이름한다 / 世人強名萬二千
옛날엔 발해 속에 있었다고 전하였는데 / 往昔傳在渤澥中
어느 때에 발해 가로 옮겨 왔느냐 / 何時移來渤澥邊
중국의 여러 임금들 오악을 가볍게 여기고 / 赤縣群主輕五嶽
이 산에 올라 신선이 되길 원하였네 / 願登此山爲神仙
격랑이 휘몰아친 지 몇 해가 되었고 / 鯨翻颶作經幾載
문을 나서 서쪽으로 오니 산이 우람하네 / 出門西來山崒然
어찌도 이처럼 산은 높고 공기는 맑아서 / 是何山高氣太淸
나로 하여금 혼돈 세계로 착각케 하는고 / 使我起疑鴻濛前
장안사 계곡 어귀엔 잣나무 빽빽이 늘어서고 / 長安谷口列柏森
향로봉 앞엔 만폭동이 깊구나 / 香爐峯前萬瀑深
운무 자욱한 옛길 경굴 쪽으로 통해 있어서 / 氤氳古道走瓊窟
거듭 궁벽한 숲을 뚫음으로써 푸른 산봉우리를 대신했네 / 合沓窮林遞碧岑
여기는 바로 적송자(赤松子)나 왕자교(王子喬) 같은 신선들이 출입하는 문 / 此是松喬出入門
이슬과 영지를 먹고 사니 신선되는 도가 번거롭지 않았다 / 餐露茹芝道不煩
가면서 구름을 쓸고 돌을 어루만지니 / 行掃白雲捫石髮
구룡연은 푸르고 봄꽃은 화사하도다 / 九淵蕩碧三花春
우르릉 우렛소리는 용들을 움직이고 / 嘈嘈天籟矯游龍
울창한 계수나무는 사람을 취하게 한다 / 翳翳菌桂醉幽人
별도로 높고 밝은 천일대가 있기에 / 別有高明天逸臺
돌아와서 지팡이 짚고 거듭 배회하노라 / 歸來倚策重徘徊
배회하며 동쪽 바라보니 산들이 눈에 가득한데 / 徘徊東望山滿眼
일일이 보노라니 참으로 봉래산일러라 / 一一乃見眞蓬萊
봉래산 다시 봉래산 / 蓬萊復蓬萊
깎은 듯이 높이 솟았다 / 刻削以崢嶸
온갖 물건들을 상징한 곳인데 / 物類之所象
너무 높이 솟아 깜짝 놀라기도 한다 / 竦跱或若驚
은은한 빛은 가랑눈과 같고 / 隱隱煙雪
번쩍이는 것은 나열된 별과 같다 / 的的羅星
푸른 아지랑이 어른거리는 영랑점이요 / 靑靄焂忽永郞岾
흰 구슬이 층층이 쌓인 중향성이로다 / 白玉錯落衆香城
중향성 맑은 공기 짙은 노을을 결성하고 / 香城灝氣結繁霞
한 마리 학 높이 올라 구름 위로 멀리 나네 / 一鶴高厲雲路賒
잇따라 생각건대 봉래산이 바다에 떨어질 때 / 因憶蓬萊落海時
은대와 금궐이 내려와 앉은 듯하고 / 銀臺金闕坐來疑
부상에 솟은 붉은 해가 설산에 파도치자 / 扶桑日紅波雪山
뭇 산은 다시 물결에 놀라 달리는 것과 같네 / 衆岫復似驚波馳
산은 높고 바다는 넓어 변화가 통하니 / 山高海闊變化通
태일신(太一神)이 아래를 보고 아쉬움을 더하리 / 太一下顧增嗟咨
인간의 어느 땅이 이 산에 견주랴 / 人間何地擬此山
천상의 어떤 신선이 왕래하지 않겠는가 / 天上何仙不往還
봉래산을 세 번이나 찾은 나는 그 어떠한가 / 我奈蓬萊三入何
눈이 아물아물해지고 검은 살쩍 희어졌노라 / 空花飄眼玄鬢斑
머무름도 오래해서는 안 되고 / 留亦不可久
흥도 지나치게 해서는 안 된다 / 興亦不可闌
응당 속진 속으로 내려가야 할 텐데 / 臨當下黃塵
다시 비로봉을 어찌하리오 / 更奈毘盧何
천태산 사만 팔천 길은 / 天台四萬八千丈
진(晉)나라의 손작(孫綽)만이 그 높은 경치를 잘 읊었다오 / 興公獨不負嵯峨
높은 산에 올라 시를 잘 지은 후인이 많은데 / 登高能賦後人多
나는 우선 중향산의 양지에서 약초를 캐리라 / 我姑採藥於香城之陽阿


구당(久堂) 박장원(朴長遠)의 ‘금성(金城)을 출발하여 풍악산으로 향하다’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길은 통구현과 달라서 / 路異通溝縣
칠반과 같이 기구하다 / 崎嶇似七盤
신선산이 바야흐로 눈에 들어오니 / 仙山方在眼
나그네 비로소 안색이 화사하다 / 客子始怡顔
시구를 얻으니 푸른 나귀 수척하고 / 得句靑驢瘦
서리를 겪으니 붉은 잎이 차갑도다 / 經霜赤葉寒
알겠노라 오늘 밤의 흥취를 / 懸知今夜興
밝은 달 장안에 가득하리라 / 明月滿長安


정재(定齋) 박태보(朴泰輔)의 금강산 시는 다음과 같다.

아로새긴 것이 어쩜 그리도 기교한가 / 雕鎪何怪巧
서리고 얽힌 것이 참으로 웅장하도다 / 盤結儘雄閎
늘어선 봉우리들은 모두 높음을 다투고 / 列岫俱爭峻
흐르는 샘물은 각각 맑음을 경쟁한다 / 奔泉各競淸
풍운은 아마도 세력을 빌린 듯한데 / 風雲疑借勢
주옥만은 어찌 오로지 정결한가 / 珠玉豈專精
천하에서 오직 이 산악만이 / 天下惟玆嶽
실상이 이름과 부합될 수 있다 / 偏能實副名

[주D-001]담무갈(曇無竭) : 보살 이름으로, 중향성(衆香城)의 왕이 되어 항상 《반야바라밀다경(般若波羅蜜多經)》을 설법하자, 상제보살(常啼菩薩)이 와서 그 설법을 들었다고 한다.
[주D-002]공망혈(空亡穴) : 지관(地官)이 묘터나 집터를 정할 때에 쓰는 용어로, 공망혈에다 터를 잡으면 글자의 뜻 그대로 사람과 재물이 저절로 없어지고 아무 일도 잘 되지 않는다고 한다.
[주D-003]호계(虎溪) : 중국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 앞에 있는 시내이다. 진(晉)나라 때 혜원 법사(慧遠法師)가 동림사에 있으면서 찾아온 손님을 전송할 때에는 호계를 지나가지 않았으며, 지날 경우에는 범이 울어서 알렸다. 하루는 혜원 법사가 시인 도잠(陶潛), 도사 육수정(陸修靜)과 함께 이야기하면서 가다가 그만 호계를 넘은 줄도 깨닫지 못하였는데, 범이 울었다. 그래서 세 사람은 크게 웃고 헤어졌다 한다.
[주D-004]퇴계(退溪) …… 시 : 《퇴계집》에는 시 제목이 ‘병중에 손님이 와서 관동의 산수를 이야기하므로 개연히 멀리 상상하면서 다시 앞의 시운에 화답하다.[病中有客 談關東山水 慨然遠想 復和前韻]’라고 되어 있다.
[주D-005]공동산(崆峒山) : 중국 섬서성(陝西省)에 있는 명산 이름이다.《讀史方輿紀要》
[주D-006]부주산(不周山) : 중국의 곤륜산(崑崙山) 서북쪽에 있는 명산 이름이다.《山海經 大荒西經》
[주D-007]귀 씻을 필요 있으랴 : 옛날에 요(堯) 임금이 천자의 자리를 허유(許由)에게 물려주려고 하자, 허유는 은자(隱者)의 본분에 맞지 않다고 거절한 후,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해서 귀를 씻었다고 한다.
[주D-008]흩어져 …… 모인다 : 《동파집(東坡集)》 범영(泛穎) 시에, “채색 배에서 거울 같은 물을 굽어보며, 물속의 그림자에게 네가 누구냐고 물어본다. 갑자기 출렁출렁 물결이 생겨서, 내 수염과 눈썹을 흩뜨린다. 흩어져 백동파가 되었다가, 경각간에 다시 여기에 모인다.[畫船俯明鏡 笑問汝爲誰 忽然生鱗甲 亂我鬚與眉 散爲百東坡 頃刻復在玆]” 하였다.
[주D-009]물들거나 닳지 말아라 : 《논어(論語)》 양화(陽貨)의, “단단하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갈아도 엷어지지 않는다. 희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검게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는다.[不曰堅乎 磨而不磷 不曰白乎 涅而不緇]”라는 말에서 인용한 것이다.
[주D-010]묘길상(妙吉祥) :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의 역명(譯名)인데, 이것으로 암자 이름을 삼은 것이다.
[주D-011]계빈(罽賓) : 서역(西域)의 나라 이름인데, 이것으로 암자 이름을 삼은 것이다.
[주D-012]마하연(摩訶衍) : 대법승(大法乘)이란 뜻인데, 이것으로 전(殿) 이름을 삼은 것이다.
[주D-013]동방삭(東方朔) : 한 무제(漢武帝) 때 사람으로, 삼천갑자를 살았다 한다. 저승사자가 그를 잡아가려 하였지만 그를 알아볼 길이 없자 꾀를 내어 냇가에서 숯을 씻고 있었더니, 동방삭이 지나가면서 숯을 씻는 이유를 물어보고는 “삼천갑자를 살았지만 숯을 씻는 것은 처음 보았다.” 하므로, 그가 동방삭임을 알고 잡아갔다 한다.
[주D-014]도솔천(兜率天) :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욕계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을 이르는 말로, 그중 내원(內院)은 미륵보살의 정토(淨土)이고 외원(外院)은 천상(天上)의 중생들이 만족한 마음으로 사는 곳이라 한다.
[주D-015]부상(扶桑) : 해가 뜨는 동쪽 바다 가운데 있다는 신목(神木)이다.
[주D-016]오기(吳起)나 손빈(孫臏) : 모두 전국 시대 병법가(兵法家)로, 오기는 위(魏)나라 사람이고, 손빈은 제(齊)나라 사람이다.
[주D-017]업후(鄴侯) : 당(唐)나라 이필(李泌)의 봉호(封號)로, 그는 장서(藏書)가 2만여 권에 이르렀다 한다.
[주D-018]소량(蕭梁) : 남조(南朝)의 양(梁)나라를 소씨(蕭氏)가 세웠기 때문에 붙여진 칭호이다. 양 무제(梁武帝)는 사탑(寺塔)을 세우고 불도(佛道)를 독실히 믿었다.
[주D-019]정령위(丁令威) : 한(漢)나라 때 요동(遼東) 사람으로, 영허산(靈虛山)에서 도(道)를 배운 뒤 학(鶴)으로 화신하여 요동에 돌아와 공중을 배회하면서, “새여 새여, 정령위여. 집 떠난 지 천년 만에 이제 돌아오니, 성곽은 여전하나 사람은 그렇지 않네. 어째서 신선을 배우지 않아, 무덤이 다닥다닥 생겼는고.[有鳥有鳥丁令威 去家千年今始歸 城郭依故人民非 何不學仙塚纍纍]” 하였다 한다.
[주D-020]분육(賁育) : 맹분(孟賁)과 하육(夏育)으로, 모두 춘추전국 시대의 용사(勇士)이다.
[주D-021]용백국(龍伯國)의 …… 낚았는데 : 용백국은 옛날 거인(巨人)들이 살았다는 나라 이름으로, 《열자(列子)》 탕문(湯問)에 “용백국에 거인이 살고 있는데, 그는 오산(五山)에 이르러 한 번 낚시질로 여섯 마리의 자라[鰲]를 연달아 잡았다.” 하였다.
[주D-022]서하(西河)의 …… 가서 : 오강(吳剛)은 전설상의 신선 이름으로, 그는 신선술을 배우다가 잘못을 저질러 달 속으로 귀양 가 계수나무 베는 작업을 했다 한다.
[주D-023]금승(金繩) : 황금으로 만든 끈이다. 불가의 말로, 이구국(離垢國)의 도로는 황금으로 만든 끈으로 그 가를 표시하였다 한다.
[주D-024]일지(一枝) : 여기서는 불교의 한 종파(宗派)를 가리킨 듯하다.
[주D-025]구루산(句漏山) : 중국 광서성(廣西省) 북류현(北流縣) 동북쪽에 있는 산인데, 진(晉)나라 때 갈홍(葛洪)이 이 산에서 신단을 만들었다 한다.
[주D-026]녹문산(鹿門山) : 중국 호북성(湖北省) 양양현(襄陽縣) 동남쪽에 있는 산인데, 한(漢)나라 말기에 방덕공(龐德公)이 이 산에 들어가서 약을 캐고 돌아오지 않았다 한다.
[주D-027]산중에서 …… 깨는데 : 《박물지(博物志)》에 의하면, 옛날 유현석(劉玄石)이 중산(中山)에서 선주(仙酒)를 사 먹고 집에 와서 천 일 만에 깼다는 말이 있고, 《수신기(搜神記)》에 의하면, 중산 사람 적희(狄希)는 천일주(千日酒)를 잘 만들었는데 그 술을 마시면 천 일 동안 취했다 한다.

 

임하필기 제3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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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래비서(蓬萊秘書)
단발령(斷髮嶺)


단발령은 곧 금성(金城)과 회양(淮陽)의 경계가 나뉘는 곳으로서, 회양군 군소재지에서 서북쪽으로 120리 떨어진 지점에 있다.
천마산(天摩山) 한 산맥은 길이 몹시 험준하니, 꼬불꼬불 감돌아서 마치 양의 창자와 같고 또는 서려 있는 뱀과도 같았으며, 좌우의 우거진 숲들은 서로 어리비쳤다. 가운데 봉우리에 이르자 오량동(五兩洞)이 있고 영천(靈泉)이 쏟아졌는데, 물맛이 꽤 산뜻하고 시원하였다. 재로 10리를 가서 비로소 그 정상에 오르니 갑자기 풍악(楓嶽)의 여러 봉우리들이 나타났는데, 역력히 삼삼하고 명랑하였다. 비로봉(毘盧峯) 이하 흰 옥과 같은 만 층의 여러 봉우리들이 반공중에 첩첩이 쌓여 있었으니, 바라봄에 모골이 쭈뼛하였다. 옛 기록에서 이르기를, “신라의 태자가 여기에 올라서서 바라보고 마음이 기쁜 나머지 머리를 깎았다. 그래서 마침내 단발령이라고 이름하였다.” 하였다. 위에는 토단(土壇)이 있는데 우리 조선의 세조(世祖)가 잠시 머물렀던 곳이며, 토단 아래에는 손수 심은 두 그루의 전나무가 있다 한다.
표훈사(表訓寺) 앞에는 절재[拜岾]가 있는데, 가정(稼亭) 이곡(李穀)의 《동유기(東遊記)》에 이르기를, “금강산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이 재를 거쳐야 하는데, 재에 오르면 산이 보이고 산이 보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래서 ‘절재’라 한다.” 하였는바, 또한 단발령에 얽힌 뜻과 같은 맥락이다. 풍악산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가 있는데, 통구(通溝)를 건너면 단발령을 경유하게 되고, 화천(和川)으로 들어가면 마휘령(摩暉嶺)을 경유하게 된다. 요컨대 이 두 재의 정상에서는 일만이천봉의 신수(神秀)하고 괴기(瑰奇)한 경관을 거의 다 음미할 수 있는데, 다만 정면으로 대하고 비스듬히 대하는 것이 조금 다를 뿐이다. 그러나 전면(全面)과 반면(半面)에는 각각 나름대로의 자태가 있으니, 참으로 소동파(蘇東坡)가 말한, “횡면으로 보면 재를 이루고 측면으로 보면 봉우리를 이룬다.”라는 것이다.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의 시는 다음과 같다.

제일 봉우리 위에서 기갈증 위로하니 / 第一峯頭慰飢渴
인간에 별천지가 있다는 것을 믿겠네 / 人間信有別乾坤
옥산이 무너져 가니 구름 뿌리 움직이고 / 玉山頹去雲根動
설령이 차가워지니 학의 날개 번득이네 / 雪嶺寒來鶴翼翻
우뚝 솟은 봉우리는 장로 격이요 / 嵂崒孤撐爲長老
나열된 봉우리들은 아손과 같네 / 巑岏羅立似兒孫
인간의 영욕에 얽매인 일 누가 바라겠는가 / 貪癡却笑何人意
멀리 떠나려면 먼저 승려가 되어야 하느니 / 遐擧先須作晩髠


석주(石洲) 권필(權韠)의 ‘원 상인(元上人)에게 지어 주다’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풍악이 바로 신선들의 세계라 말하는데 / 人言楓嶽是丹丘
만고토록 가파른 바위 바다 머리에 서 있네 / 萬古巉嵒碧海頭
현폭과 단애는 빼어난 절경 많고 / 懸瀑斷崖多秀絶
불당과 선당은 머물러 있을 만한 곳 / 佛堂禪室可淹留
석문엔 담쟁이덩굴 사이로 달이 길이 비치고 / 石門長照綠蘿月
아름다운 나무는 단풍진 가을을 알지 못한다 / 琪樹不知紅葉秋
진토에서 몇 년이나 몽상을 괴롭혔던가 / 塵土幾年勞夢想
유유히 떠나는 그대의 종적이 부럽구려 / 羨君蹤跡去悠悠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의 ‘도중(途中)에 입으로 부르다’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풍악산이 어디에 있느메뇨 / 楓嶽在何許
구름이 가리니 산 보이다 말다 하네 / 雲遮山有無
선승을 찾고자 단발령을 넘고 싶어 / 尋禪欲斷髮
길을 물으니 바로 통구란다 / 問路是通溝
가 보기도 전에 마음 먼저 상쾌하고 / 未去心先爽
경치 들어 보니 병이 벌써 나았다 / 聞來病已蘇
봉래산은 바라보는 속에 아른거리는데 / 蓬萊只望裏
신선들을 보는 것과 방불하구나 / 彷彿見仙徒


서하(西河)의 시는 다음과 같다. 그 한 수는
이 걸음 괴로운데 어디를 가려고 하는가 / 此行辛苦欲何之
소나무 계수나무 떨기 속 저문 비 내릴 때 / 松桂叢中暮雨時
봉우리들은 서로 연이어 띠처럼 맺어져 있고 / 關嶺相連縈似帶
길은 일정한 방향이 없어 뒤엉킨 실과 같다 / 路岐無定亂如絲
천 굽이 경사진 시내는 말이 뜰 만큼 깊고 / 千回急澗深浮馬
한 면의 기이한 봉우리는 반쯤 눈썹 드러냈네 / 一面奇峯半露眉
신선산의 구경은 옛날부터 품어 온 뜻이었으니 / 自是仙山存宿計
옷 젖는 것도 배고픈 것도 상관할 게 없다 / 不妨沾濕又長飢
하였고, 또 한 수는
단발령을 올라서서 / 準擬登玆嶺
금강산을 대면하려 하였다 / 金剛對面看
지금 와서 갑자기 잃었으니 / 今來忽相失
어느 곳에서 장안사를 찾을까 / 何處覓長安
하였으며, 또 한 수는
나무 그늘 침침하고 시냇물은 급히 흐르는데 / 山木陰陰溪水急
젖은 구름 모여들고 비는 분분이 내리는구나 / 濕雲回合雨紛紛
뭇 산들 갑자기 천 길 구렁텅으로 변했는데 / 群山忽變千尋壑
창해의 동쪽 가에서 땅을 점령하고 있도다 / 滄海東邊占地分
하였다.


서계(西溪)의 시는 다음과 같다.

서쪽 산 동쪽 산 합했다 다시 열렸는데 / 西崖東嶂合還開
말 타고 다리 건너며 몇 차례나 바라봤나 / 跋馬溪橋望幾回
지대가 낮아져서 다 보지를 못하였기에 / 却爲因低看不盡
굽이굽이 돌아서 다시 단발령 위로 오노라 / 盤盤更上嶺頭來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의 시는 다음과 같다. 그 한 수는
저녁에 신산의 근처에서 잠을 자며 / 夕宿近神山
머리 들어 구름 낀 재를 바라보노라 / 矯首望雲嶺
승경을 찾는 일 이제 처음이 아니니 / 冥討匪今始
경치 뛰어난 곳을 벌써 알고 있노라 / 勝處心已領
이불 둘러쓰고 기이한 생각에 잠기고 / 虛衾擁奇想
베개 어루만지며 잠 이루지 못하노라 / 撫枕情耿耿
정신이 벌써 신선과 친구를 삼아서 / 神有羽人交
꿈속에 그와 함께 하늘을 날아다녔다 / 夢與天路永
뒤척이다 보니 벌써 새벽이 되었는데 / 輾轉遂已曙
하인 녀석이 와서 날씨가 맑다고 알린다 / 僕夫告晴景
하였고, 또 한 수는
내가 동쪽에서 노닐고 돌아오면서부터 / 自我東遊還
신령스러운 산이 뇌리에 새겨져 있노라 / 靈山在肺腑
되새겨 보면 십여 년이 훌쩍 지나갔는데 / 宛宛一紀餘
오늘 다시 금강산을 보리라 생각했으랴 / 不謂今再覩
맑은 새벽에 높은 재를 올라가니 / 淸晨躋崇嶺
이채로운 빛이 공중에 가득하다 / 異彩滿空宇
총총히 박혀 있는 일만 이천의 봉우리들 / 叢叢千萬峯
일일이 날개를 치며 춤을 추는 것 같구나 / 一一如翔舞
높아서 기울어진 하늘의 기둥을 떠받치고 / 高扶天柱傾
맑아서 땅의 영기가 모인 것을 보겠노라 / 淸見地靈聚
불그스름한 노을은 농후하게 끼어 있고 / 蔚蔥絳霞氣
옥 같은 봉우리들은 밝게 죽 늘어서 있다 / 森朗群玉府
우람한 장관은 구주(九州)를 덮었고 / 偉觀掩九有
수려한 경치는 천고에 으뜸을 차지하였네 / 秀色竟千古
평생을 돌아다니며 보아온 산들은 / 平生所見山
쇄세한 것들인데 다 셀 수 있겠는가 / 瑣細誰復數
잠시 후 절정에 올라가려 하는데 / 行當上絶頂
혹시 우리 강토가 작아 보일 수 있을는지 / 或可小東魯
하였다.


구당(久堂)의 시는 다음과 같다.

천 겹의 단발령에 올라서서 / 斷髮千重嶺
둘러보니 금강산 일만이천봉 / 回頭萬二峯
통구의 오늘 밤 밝은 달이 / 通溝今夜月
나의 옛 모습을 비춰 주누나 / 照我舊時容


만정당(晩靜堂) 서명균(徐命均)의 ‘통구(通溝) 도중에’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나는 동헌(東軒)에 앉아서 / 我坐黃堂裏
날마다 고량진미를 포식하노라 / 日飽列鼎几
마음은 백성의 굶주림을 염려하나 / 心雖念民飢
내가 직접 겪은 것만은 못하노라 / 猶未若在己
지금 전야 사이를 나가 보니 / 今出田野間
애처로워서 볼 수가 없도다 / 怛然不可視
긴 산협은 첩첩이 얽히고설켜 감돌아 앉았는데 / 長峽莽回互
쓸쓸하게 몇몇 마을이 그 가운데 자리 잡았다 / 蕭蕭數村里
전토가 모두 산마루에 있으니 / 有田皆高巓
곡식이 절반은 익지 않았다 / 荒穀半無穗
주민들은 대부분 비쩍 말랐는데 / 居民多鵠形
죽 늘어서서 절을 하고 꿇어앉네 / 紛然羅拜跪
상공과 관세 등으로 / 上供與官稅
독촉받는 것이 너무도 많다 / 徵責多色類
먹는 것도 오히려 넉넉치 못한데 / 所食猶不贍
죄를 면하기 어려울 걸 염려한다 / 恐難免係纍
나는 세를 정감해 주고 싶지만 / 我欲與停減
또한 마음대로 놓아두기도 어렵다 / 亦難一任意
한갓 탄식하는 마음만을 품고 있으니 / 徒然懷歎咨
옛 양리에게 깊이 부끄러워하노라 / 深愧古良吏


허원(許源)의 시는 다음과 같다.

단발령에 올라서니 하늘을 잡을 수 있는데 / 髮嶺初登可捫天
봉래산을 동쪽으로 바라보니 아득하기만 하다 / 蓬山東望杳無邊
잠시 후에 해가 솟고 구름이 걷히니 / 須臾日出煙雲卷
금강산 일만이천봉이 드러나네 / 露出崢嶸萬二千


 


 

 

임하필기 제3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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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래비서(蓬萊秘書)
장안사(長安寺), 만천교(萬川橋), 청련암(靑蓮庵), 가섭굴(迦葉窟)


재에서 30리를 가는 동안에 한 물을 무려 아홉 번이나 건너서 장안동(長安洞) 어귀에 이른 다음 일조문(日照門)으로 들어가서 만천교를 건넜는데, 만천교는 바로 금강산의 문이다. 그 다리는 또한 비홍교(飛虹橋)라고도 칭한다. 다리 안에는 산영루(山暎樓)가 있었는데, 정유년의 홍수에 다리는 떠내려가고 누각은 무너졌다. 다리가 옛날에는 돌로 되어 있던 것이 지금은 나무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 곁에는 기적비(紀蹟碑)가 서 있고, 동쪽에는 송월(松月)과 응상(應祥) 두 승려의 비석이 있다.
처음에 절에 들어가면 문 위에는 ‘장안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또 ‘해동제일명산대찰(海東第一名山大刹)’이란 여덟 글자가 걸려 있는데, 소고(嘯皐) 윤사국(尹師國)의 글씨이다. 누각은 범종루(泛鍾樓)와 신선루(神仙樓)였고, 불전(佛殿)들이 한 골짜기에 그득하였다. 석가봉(釋迦峯)ㆍ지장봉(地藏峯)ㆍ관음봉(觀音峯)이 가장 높고, 장경봉(長慶峯)이란 산봉우리가 안대(案對)가 되었으며, 서쪽에는 토산(土山)이 있어 주진(主鎭)이 되었다.
절은 신라 시대의 율사(律師)인 진표(眞表)에 의해 창건되었고 회정(懷正)에 의해 중건되었다. 그들이 지적한 곳은 보현암(普賢庵), 수월암(水月庵), 용선암(龍船庵), 어향암(御香庵), 해은암(海恩庵), 도솔암(兜率庵), 청련암(靑蓮庵) 등이다. 부처 앞에 진열된 고동기(古銅器) 및 금은서장경(金銀書藏經)은 모두 원(元)나라 순제(順帝)가 하사한 것이고, 지정(至正) 연간에 기황후(奇皇后)가 금폐(金幣)를 내어 중수 자금으로 써서 황자(皇子)를 위해 복을 빌게 했다 한다.


소재(蘇齋)의 ‘다시 장안사에 들어가면서’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백 리쯤 된 신선의 지역을 드나들고 / 出入仙區百里奇
장안동 입구에 또 말을 멈추었노라 / 長安洞口又停騑
여러 겹 작은 봉우리들은 만나는 것마다 뚜렷하고 / 殘巒數疊逢明白
천 겹이나 되는 높은 멧부리는 바라보면 은은하다 / 崇岳千重望隱違
모랫벌에 앉기도 물가 버드나무에 의지하기도 / 坐印金沙依柳渚
돌 틈을 뚫고 가서 이끼 낀 너덜 위에 앉았노라 / 行穿碧石住苔磯
가련타 옛날부터 보고 싶던 경치를 어느 때에나 다 구경할 것인가 / 可憐宿債何時盡
재차 와도 처음 온 것 같아서 돌아갈 줄 모르노라 / 再到如新不覺歸


월사(月沙)의 ‘장안사에서 자면서 노승에게 주다’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오십삼 구의 금불상이 / 世傳五十三軀佛金像
서방으로부터 바다에 떠서 왔다고 하네 / 浮海而來自西方
경에 이르기를 일만 이천의 담무갈이 / 經云一萬二千曇無竭
동해의 금강에 머물러 있었으므로 / 住在東海之金剛
산이 금강이란 이름 얻은 건 예서 시작한 것이라 하니 / 山之得名蓋始此
이 말은 어찌 그리도 종잡을 수 없이 황당한가 / 此言恍惚何茫茫
또 들으니 천자가 예폐를 보내므로 / 又聞天子遣禮幣
세시엔 사신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한다 / 歲時冠蓋來相望
금주와 보패는 산에 그들먹하고 / 金珠寶貝溢山阿
산중의 초목들은 모두 향기롭다 / 山中草木皆馨香
비로소 알겠노라 이 산의 명승은 일국에서 독보일 뿐만 아니라 / 始知玆山名勝不獨擅一國
천하의 으뜸으로서 손색이 없다는 것을 / 冠絶天下無與讓
이 때문에 중국 사람이 한번 보기를 원하여 / 是以華人願一見
그림을 그려서 벽에 걸어 놓고 공연히 탄상을 한다 / 作圖掛壁空歎賞
금강산 속엔 옛날부터 절 백팔 개가 있어서 / 山中舊有百八寺
붉은 언덕이 황금방에 어리비친다 / 丹崖照映黃金牓
장안사와 표훈사가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데 / 長安表訓最雄麗
옛날에 바로 중국에서 창건한 절이다 / 舊是中朝之所創
삼천의 정계와 복지에는 / 三千淨界與福地
화려한 건물 빽빽이 들어섰네 / 畫棟綉栱森萬象
내가 온 이때는 지루한 비가 갠 맑은 가을철이라서 / 我來淸秋積雨霽
백령이 정숙하여 산이 씻은 듯 선명하다 / 百靈整肅山如刮
뭇 바위는 옥부용처럼 경쟁적으로 빼어나서 / 群巖競秀玉芙蓉
푸른 하늘에 어리비쳐 기특한 풍채를 드러냈다 / 映燭蒼霄露奇骨
갓 내린 서릿발은 비단 빛을 토해 내고 / 新霜幻出錦繡光
눈을 현란시키는 단청은 짙은 화장을 한 것과 같다 / 爛眼丹靑似濃抹
부상에서 뜨는 해가 비치니 / 扶桑旭日照
촉룡이 빛을 머금고 붉은 물방울을 뿜어내고 / 燭龍含曜噴紅沫
엄자산에 떨어지는 해가 밝으니 / 崦嵫落日明
신선이 사는 아름다운 궁궐 눈이 부시다 / 眩晃瓊宮與銀闕
삼경에 달이 밝은 빛을 토하니 / 三更月吐輝朗然
억만 길 빙설이 쌓인 듯하다 / 億丈堆氷雪
높이가 사만 팔천 길이나 되는 천태산도 / 天台四萬八千丈
이를 대하면 응당 꺾일까 근심할 터이고 / 對此應須愁到折
높다는 태백산도 삼백 리 밖에 솟아오르지 못했으니 / 太白去天只三百
웅대한 세력이 바다에 닿았다는 말 듣지 못했네 / 未聞雄蟠際溟渤
내 듣건대 여섯 마리의 자라가 죽자 삼산이 흘러갔다 하니 / 吾聞六鰲死三山流
이 산이 바로 그 하나가 아니겠는가 / 無乃玆山卽其一
천하에 신선이 없다면 그만이거니와 / 天下仙人無則已
이 산이 바로 신선의 굴택(窟宅)이다 / 玆鄕定是神仙窟
산중의 노승은 지금 나이 여든인데 / 山中老僧年八十
오랫동안 고요히 앉아 불도를 닦네 / 靜坐觀空度小劫
천상(天上)의 묘화(妙花)는 떨어져 선창에 날아들고 / 天花散落入禪窓
수시로 신선의 수레가 석탑에 오는 걸 보도다 / 時見雲車來石榻
나는 그대와 함께 신선의 자취 밟으려 하니 / 吾將與爾躡仙蹤
문득 오장 속에 선약(仙藥)이 생기는 걸 깨닫겠네 / 倐覺五內生金砂
비로봉 위의 제일 층에서 / 毘盧峯上第一層
석실을 깨끗이 쓸고 가을 노을에 존다 / 淨掃石室眠秋霞


서하(西河)의 ‘장안사를 나가며’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많고 많은 산수 속에 자유로이 노니는 사람이요 / 萬水千山自在身
흰 구름 붉은 단풍 곧잘 찾아가는 사람이어라 / 白雲紅葉好隨人
오늘 아침 또다시 불사(佛寺)를 떠나니 / 今朝又出招提境
은거지를 찾아서 신선을 만나려 하노라 / 欲向商顔訪隱淪


서계(西溪)의 ‘장안사에서 월사(月沙)의 시운에 차운하여 승려에게 주다’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오악과 십주와 삼십육 동천은 중국에 있는 신선 세계인데 / 五嶽十洲三十六洞天
풍악은 아득히 창해의 동쪽에 있으면서 / 楓嶠邈在滄海東
저 세 부류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뛰어났다 / 獨絶彼三方
도가에서는 모두 이것이 봉래산인가 의심하고 / 道流俱疑是蓬萊
불가에서는 이것이 금강산이라고 믿고 전한다 / 浮屠傳信爲金剛
두 집에서는 모두 억설을 따랐으니 / 二者皆從胸臆說
근거 없는 묘연한 말로 간주할 수밖에 없도다 / 麾之且可付杳茫
일만 이천의 은삼과 옥순처럼 생긴 봉우리들이 / 但見銀蔘玉筍萬千千
동서남북으로 죽 늘어서 있는 것을 볼 뿐이로다 / 東西南北羅列森相望
가을 서리에 잎이 물드니 수많은 비탈이 붉고 / 秋霜葉染萬崖赤
봄바람에 꽃이 피니 곳곳의 간수가 향기롭다 / 春風花發千澗香
신선들이 노닌다는 적성산도 정말 부끄러워할 것이고 / 赤城定羞慙
현포도 응당 양보하고 말 것이다 / 玄圃應避讓
너무도 험악하니 한퇴지(韓退之)를 울게 하겠고 / 險絶堪敎韓子哭
몹시 그윽하니 응당 사영운(謝靈運)의 탄상 받으리 / 幽深合被謝公賞
붉고 푸른 누각이 잠깐씩 숨었다 나타났다 하는데 / 丹樓翠閣乍隱見
장안사라는 큰 현판이 걸려 있구나 / 長安之寺懸大榜
비탈과 절벽을 파서 동량을 설치했으니 / 刳崖剜壁置棟梁
누가 이처럼 귀신을 시킨 듯 기묘하게 지었나 / 驅神使鬼誰開創
인도의 불교가 동쪽으로 와서 크게 세력을 떨쳤으나 / 竺敎東來亦大肆
세간에는 응당 고승(高僧)이 있지 않으리 / 世間不應有龍象
늘그막에 놀러 다니다 마침 이런 곳을 만나니 / 垂老淸遊適邂逅
눈에 낀 먼지 마음에 낀 때가 깨끗이 씻어진다 / 眼塵心垢得洗刮
남여 타고 산을 오르매 나는 원숭이보다 빠르니 / 籃輿上山捷飛猿
지팡이 힘을 빌지 않아도 노쇠한 몸을 부축한다 / 不勞藤杖扶衰骨
정양사의 동쪽 누대에서 늦은 경치를 구경하니 / 正陽東樓看晩景
정말로 천상의 소아와 옥녀가 서로 다정하게 / 正似素娥玉女相倚偎
연지 곤지로 곱게 단장을 한 것과 같구나 / 懶將鉛粉更塗抹
만폭이 향로봉을 겹겹이 감싸고 / 萬瀑匝香爐
푸른 절벽에서 물거품을 뿌린다 / 靑壁灑飛沫
백천이 앞을 다투어 한 문으로 흐르고 / 百川爭一門
두 봉우리 우뚝 솟아 높은 집 이루었다 / 兩峯矗高闕
모춘 초에 날씨가 매우 따스한데 / 暮春之初天氣暖
아직도 비로봉 정상에 눈은 쌓였다 / 猶壯毘盧峯頂雪
흰말이 힘차게 달리려는 듯 / 白馬雄雄欲騁驟
앉으려던 기러기가 다칠세라 높이 날아오른다 / 落鴈迢迢恐摧折
높고 낮은 봉우리마다 각각 자태를 지니고 / 峯峯低昻各有態
은하수에 의지하기도 바다를 굽어보기도 한다 / 倚霄漢俯溟渤
한없이 좋은 신선산을 설명하려면 / 欲說仙山無盡好
긴 막대 같은 큰 붓을 가졌다 하더라도 / 雖有巨筆如長杠
일일이 다 설명할 수는 없으니 / 不能道一一
다만 노승과 함께 / 但思伴老釋
곡식을 끊고 암굴에 깃들고 싶다 / 絶粒棲巖窟
형체와 정신이 초탈할 수 있다면 / 形神獲超脫
이익과 권세의 몰아침을 피할 수 있으리라 / 利勢謝驅劫
이 뜻이 끝내 잘못된 망상이라면 / 此意終謬闊
하룻밤 선탑을 빌려 묵어 가리라 / 一宿借禪榻
돌아오는 길에 허전하기가 마치 무엇을 잃은 듯하여 / 歸路惘惘似有失
옥담으로 가서 주사를 눈여겨보았노라 / 玉潭聊就數珠砂
산을 나서서 뒤를 돌아보니 거쳤던 곳은 희미하고 / 出山回望迷所歷
오직 나무 끝에 붉은 노을 나는 것만이 보일 뿐이다 / 惟見木末飛丹霞


삼연(三淵)의 ‘장안사에 들어가면서’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절을 바라보며 돌 위에 앉아 있기도 하고 / 望寺石上坐
마음이 즐거워서 앞의 개울물에 양치질하기도 한다 / 心樂漱前川
바야흐로 머뭇거리다가는 / 方將且踟躕
다시 이리저리 빙빙 도노라 / 聊復此周旋
가벼운 남여로 옛길을 나가서 / 輕輿古道出
먼지 낀 멍에를 물가에 버렸다 / 塵鞅棄水邊
소나무 전나무 그늘임을 미처 몰랐는데 / 不知松檜陰
몸은 벌써 진선에 가까웠노라 / 身已近眞仙
긴 다리가 붉은 구렁에 가로놓였는데 / 長橋架丹壑
이 물은 만폭동의 물과 연해 있노라 / 此水萬瀑連
찬란하게 빛난 채색 전각은 웅대하고 / 炯晃彩殿大
흩어져 있는 흰 조약돌들은 둥글도다 / 離列白礫圓
머리를 쳐들고 푸른 산을 바라보니 / 矯首望積翠
눈에 들어오는 경치 모두 전과 같다 / 滿眸悉如前
곱고 기교하고 화려한 물건들 / 婉婉奇麗物
꿈을 꾸어온 지 몇 해였던고 / 夢爾曾幾年
영원암에 조각구름이 돌아가니 / 靈源片雲歸
기다란 그림자 맑은 물에 비친다 / 長影倒淸漣
해 저물녘에 다시 다리를 건너가니 / 日暮更步橋
아득하다 지경 안의 모든 경관들 / 緬矣區中緣


만정당(晩靜堂)의 장안사 시는 다음과 같다.

하늘이 수려한 기운을 쏟아 부었으니 해동에서 으뜸가는 산이요 / 天鍾神秀海隅宗
땅이 머니 진나라와 한나라에서 봉토한 일 없었다 / 地遠曾無秦漢封
동남쪽으로 수백 리에 걸쳐 펑퍼짐하게 뻗쳤고 / 盤礴東南數百里
크고 작은 봉우리 일만이천 개가 빙 둘러 있다 / 環羅大小萬千峯
일월이 솟고 지는 경관을 굽어보고서 / 俯看日月昇沈景
산하의 방대한 얼굴을 비로소 알았노라 / 始知山河闊大容
여기에서 봉래 영주와의 거리가 멀지 않으리니 / 此去蓬瀛應不遠
허공을 타고 곧장 신선의 자취를 밟으려 하노라 / 凌虛直欲躡仙蹤


농암(農巖)의 ‘청련암(靑蓮庵)에서 묵다’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아득한 청련의 지경에 / 迢遙靑蓮界
잠깐 앉았는데 날 벌써 저물었네 / 少坐日已曛
모르겠다 어느 암자의 경쇠가 / 不知何庵磬
가까이서 들리는 듯 유양한고 / 悠揚如近聞
어둑어둑한 궤안(几案)의 밖에는 / 冥冥隱几外
만학이 안개를 머금었다 / 萬壑含氤氳
조용히 보니 화로 속의 연기가 / 靜觀爐中煙
중향성(衆香城)의 구름으로 변화하려고 한다 / 欲化香城雲


간이(簡易)의 백천교(百川橋) 시는 다음과 같다.

백천이 와서 모이고 백천이 돌아가는데 / 百泉來會百川歸
그 가운데 못이 있어 물결이 출렁거린다 / 潭在中涵動靜機
진원은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하겠으니 / 最是眞源窮不得
각도로 머리 돌리매 생각이 아득하여라 / 回頭閣道思依依


삼연(三淵)의 석교(石橋) 시는 다음과 같다.

신선산을 본 지 이미 오래인데 / 仙山違面久
석교의 기이함을 비로소 보겠다 / 始覩石橋奇
비가 개니 무지개는 천 자나 뻗치고 / 截雨虹千尺
하수 위에 뜬 달 바퀴는 반쯤 둥글다 / 凌河月半規
시냇물은 더욱 우렁차게 흐르고 / 溪流增響亮
구름 그림자는 희미하게 어른거린다 / 雲影迷逶迤
여기에서 단구가 아마도 가까울 것인데 / 自此丹丘近
왕자교(王子喬)와 적송자(赤松子)는 누굴꼬 / 喬松爾是誰

○ 가섭굴(迦葉窟) 시는 다음과 같다.

승려를 데리고 비경을 찾으려고 / 携僧將索祕
산을 넘고 그윽한 골짝을 건너노라 / 逾往涉幽昧
댕댕이덩굴을 부여잡고 이슬에 젖으며 / 捫蘿拂厭浥
구렁텅으로 내려가서 구름을 뚫는다 / 降壑貫靉靆
정신이 상쾌하니 쌓인 피로를 잊고 / 神恬忘積疲
지경이 바뀌니 새로운 경치가 생긴다 / 境遞生新愛
파란 공중에는 가벼운 비단이 깔리고 / 空靑散輕綺
맑은 물은 흐르면서 계속 패옥 소릴 낸다 / 淸涓續鳴珮
돌길이 빙빙 돌아 붉은 산빛을 가르고 / 磴轉絳氣拆
댕댕이덩굴이 바람에 너울너울 춤을 춘다 / 風蘿儛肺肺
신령스러운 굴에 담박함이 깃들어 있고 / 靈窟棲淡泊
그윽한 감실은 고요히 서로 대하고 있다 / 幽龕寂相對
사슴의 무리가 많지 않은데 / 邃然麋鹿寡
누구와 이곳을 지킬 것인가 / 守玆誰能每
사찰은 나벽이 기우뚱하고 / 僧夏蘿壁頓
불영엔 약방이 어슴푸레하다 / 佛影葯房晦
처마를 빙 둘러서 산 그림자가 두텁고 / 環簷山影厚
구슬 같은 봉우리는 하얗게 쌓여 있다 / 瓊峯皓以戴
기교한 물상은 쭈뼛하게 솟고 / 環奇竦物象
천연적인 자태는 맑게 빼어났다 / 淸鬆秀天態
새벽에 올라가니 어찌 높지 않겠는가 / 晨登豈不峻
높은 구름 속으로 반쯤 들어갔노라 / 半入高雲內
옷을 떨쳐 입자 내가 아닌 듯싶으니 / 振衣恐非余
어리둥절하여 마음을 흐리게 하노라 / 惝怳使心曖
한 몸에 오르내림이 있으니 / 一身有升降
묘한 물건들 일신에 매인 것 / 妙物趁身在
솔개는 막힘없이 높이 날고 / 鳶高暢不閡
물고기는 거리낌 없이 헤엄친다 / 魚淪悅無礙
결국은 모두 인간 이외의 낙이니 / 竟皆人外樂
목숨이 다해도 나는 후회가 없으리 / 畢命吾無悔


 

 

 

임하필기 제3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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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래비서(蓬萊秘書)
명경대(明鏡臺), 태자성(太子城), 수렴폭(水簾瀑), 징명탑(澄明塔), 백탑(百塔), 영원암(靈源庵)


장안사 북쪽 5리 지점의 석가봉(釋迦峯) 아래에 석벽이 5, 6십 길쯤 되는 높이로 우뚝 솟아 있으니, 너비는 10길쯤 되고 색깔은 약간 누르며 마치 거울을 걸어 놓은 것과 같았다. 거북 모양의 큰 돌이 있는데, 명경대ㆍ옥경대(玉鏡臺)ㆍ업경대(業鏡臺)라고 새겨져 있다. 왼쪽에는 석성(石城)이 있고 작은 구멍이 문과 같았는데, 신라의 왕자가 난세를 피했던 곳이다.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신라 경순왕(敬順王)이 고려에 항복하려 할 때 태자가 항복하지 말도록 간하였으나 듣지 않자, 드디어 통곡하고 이 산에 들어와 바위에 의지해 집을 지은 다음 삼베옷을 입고 푸성귀를 먹으며 일생을 마쳤다 한다.
앞에는 황류담(黃流潭)이 있는데, 물빛이 감황색(紺黃色)이었다. 그리고 10리쯤 떨어진 지점에는 수렴폭이 있고, 5리쯤 떨어진 지점에는 바위가 문처럼 마주 대하고 있는데 그것은 문탑(門塔)이었으며, 또 5리쯤 떨어진 지점에 있는 일산과 같이 생긴 것은 다보탑(多寶塔)이고 버티고 선 것 같은 것은 다진탑(多眞塔)이며, 5리쯤 떨어진 지점에 있는 쌍탑은 징명탑과 온탑(溫塔)이다. 또한 5리쯤 떨어진 지점의 큰 반타석(盤陀石)에는 백탑동천(百塔洞天)이라고 새겨져 있다. 한 탑의 높이는 백여 길가량 되는데 사면으로 기대거나 붙지 않고 오뚝 서 있으며 색깔이 희므로 백탑(白塔)이라 한다. 크고 작은 백 개의 탑이 있었다.
명경대로부터 북쪽으로 6, 7리쯤 떨어진 지점에 가섭굴(迦葉窟)이 있다. 그리고 영원(靈源)이라 새긴 것은 곧 영원암의 동구였다. 암자는 작은 지장봉(地藏峯) 아래에 위치하였는데, 곧 영원조사(靈源祖師)가 입정(入定)한 곳이다. 그러므로 암자 이름을 영원암이라 한 것이다. 암자 왼쪽에는 배석(拜石)이라 새겨진 한 바위가 있고 주위에는 시왕봉(十王峯)이 빙 둘러 있는데, 승려들의 말이 ‘조사가 시왕에게 예배하던 곳이다.’ 하였다. 오른쪽에는 바위 다섯 개가 들쭉날쭉 서 있는데 그것은 옥초(沃焦)라 하였으며, 그 바위 위에는 영원조사의 석상(石像)이 있다.
지장봉이 우뚝 서서 주봉(主峯)이 되고, 그 나머지 나열된 것들은 시왕봉이다. 죄인(罪人)ㆍ사자(使者)ㆍ우두(牛頭)ㆍ마면(馬面)ㆍ장군(將軍)ㆍ동자(童子)는 다 봉우리의 이름이다. 하나의 산속에 세 개의 큰 동천이 있는데, 곧 원화동천(元化洞天), 원통동천(圓通洞天), 영원동천(靈源洞天)이다.


명재(明齋)의 ‘신라(新羅) 왕자(王子)를 추억하다’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거승들이 담무갈에게 참례할 줄만 아니 / 居僧只解參無竭
행객이 초의태자를 물어볼 길이 없도다 / 行客無從問草衣
넋은 유심과 함께 지하에서 놀고 / 魂與劉諶遊地下
지금은 오직 옛 산의 고사리만 남아 있다 / 秪今唯有舊山薇


삼연(三淵)의 ‘신라 태자 유성(遺城)’이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신령한 산엔 간직한 것이 많으니 / 靈山多所蘊
승경을 찾기 한없이 괴로워라 / 冥探苦無際
발걸음이 태자의 무덤에 이르니 / 足及靈輿宅
진정한 그 마음에 동정이 가노라 / 神投應眞契
서성거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 從容方未央
갑자기 이에 울분의 느낌을 갖노라 / 忽此感睥睨
아득한 저 계림 사람이여 / 蒼莽鷄林人
패기가 고래로 침체되었도다 / 霸氣昔來滯
쓰러진 나무에서도 새움이 돋는데 / 顚木有由蘖
종자(宗子)가 어찌 나라를 지키지 않겠는가 / 宗城非自衛
촉나라의 유심(劉諶)은 성을 등지고 분노하고 / 蜀諶背壕憤
제나라의 전횡(田橫)은 섬으로 갈 계획을 하였다 / 齊橫就島計
오광(吳廣)은 나라가 망한 것을 상심한 끝에 / 廣傷主器覆
한 귀퉁이라도 지킬 것을 도모하였네 / 偏圖一隅閉
상상이 간다 그 가래 자루 잡을 무렵에 / 想其操鍤初
몸을 일으키니 장사들 피눈물 흘렸으리 / 起躬士血涕
만백성을 잃어 가는 마당에 / 將無萬夫地
갑자기 천명(天命) 띨 기세를 일으켰네 / 倐起帶天勢
돌을 굴릴 땐 옥산이 우르릉거리고 / 轉石玉山雷
경내의 운물 품 안으로 들어왔으리 / 雲物入包係
경영한 일은 지금 볼 수 있지마는 / 經營今可見
일이 있은 지 오래라 끝내 희미하다 / 事遠終昧翳
흙을 다룬 솜씨는 옛 성과 틀리고 / 頳糊反故隍
꾸밈없는 치첩은 반 제도는 갖췄다 / 素雉宛半制
신령한 시내는 다시 못이 아니 되고 / 靈溪不復池
적막한 속에 맑디 맑게 흐르는구나 / 寂寞以淸逝
솔숲은 울창하게 우거져 있고 / 松林氣屈強
묵은 등나무는 푸르게 얽혀 있다 / 老藤絡蒼茘
천년 동안 우는 학이 모여드니 / 千年鳴鶴集
신선들이 흥망성쇠를 슬퍼하노라 / 仙侶惋興替
아침에 망고대 길을 따랐는데 / 朝從望高道
시간이 지나자 산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 歷時山雨細
높은 바위 아래에서 노래를 부르니 / 永歌危石下
뭉게구름이 옷소매를 적시누나 / 鬱然雲沾袂


소재(蘇齋)의 배점(拜岾) 시는 다음과 같다.

이 무릎은 오래도록 꿇지 않았는데 / 此膝久不屈
이 마음은 무슨 일로 놀라는가 / 此心何事驚
빙산에는 채색 일광이 나타나고 / 氷山彩晛見
분첩에는 흰 무지개가 뻗어 있다 / 粉堞白虹嬰
멀리 보이는 경관 현란타 말하지 마오 / 不道遐觀絢
가까이 보이는 경관 선명함 어찌 알랴 / 何知褻翫明
수시로 각각 면모를 드러내니 / 時時各呈面
날마다 더욱더 정이 생긴다 / 日日轉生情


율곡(栗谷)의 영대암(靈臺庵) 시는 다음과 같다.

평상에 누워 높은 봉우리 마주 보니 / 一牀高臥對高峯
천리 길 고향은 소식조차 막연하여라 / 千里家山信不通
밤중에 학의 울음소리 베갯머리에 들리니 / 半夜鶴聲來枕上
비로소 알겠다 이 몸 적막 산중에 있음을 / 始知身在寂寥中


농암(農巖)의 ‘영원암(靈源庵)에서 상인(上人)에게 주다’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삼계의 유래는 믿을 수가 없는데 / 三界由來不可憑
백발 성성한 속세 사람이 산승에게 이르렀네 / 人間白髮到山僧
서로 만나서 당년의 일 함께 얘기하다가 / 相逢共話當年事
눈 내리는 밤 등불 켜고 대승에서 잔다 / 夜雪懸燈宿大乘


삼연(三淵)의 영원암 시는 다음과 같다.

빈 암자에 와서 고요함을 익히고 / 空庵來習靜
호올로 누워서 절 사립을 닫노라 / 獨臥掩禪扉
고요한 사원 속엔 홈통 물이 떨어지고 / 院晏槽泉滴
처마 머리 바람엔 떡갈나무 잎이 날린다 / 簷風槲葉飛
우두커니 앉았으니 누구와 짝을 할거나 / 嗒焉誰與偶
모든 욕심 사라져 돌아가고 싶지 않노라 / 澹爾欲無歸
중도에서 시승(詩僧)을 만났는데 / 半路逢寒拾
송화다식으로 나의 주림을 위안해 준다 / 松茶慰我饑

○ 영원동(靈源洞) 시는 다음과 같다.

지팡이가 영원동 어귀에 이르니 / 杖及靈源口
얽힌 구름이 오솔길에 그윽하다 / 縈雲一逕幽
붉은 잎 떨어진 게 뭐 해로우랴 / 何妨紅葉脫
흰 봉우리 빽빽함 더욱 알게 된다 / 愈覺素峯稠
백탑은 어느 곳에 간직되어 있나 / 百塔藏何處
천담이 온통 아래로 내리흐른다 / 千潭摠下流
길 잃은 나루에 봄날처럼 따뜻하니 / 迷津春曖曖
심신이 상쾌하여 가을을 만난 것이 기쁘다 / 寥朗喜逢秋

○ 백탑동(百塔洞) 시는 다음과 같다.

험한 구룡연을 거쳐서 가노라니 / 經險九龍淵
즐거움이 남은 끝에 정신이 오히려 분주하다 / 樂餘神猶奔
백탑에 대한 미련 버리지 못하여 / 遺想在百塔
가서 고승의 말을 실천에 옮기노라 / 往踐高僧言
흔들흔들 쇠지팡이 앞서서 가고 / 飄颻金策先
너울너울 소나무겨우살이 번뜩인다 / 颯纚蘿衣翻
화창한 날씨에 한 길에 올라서 / 氤氳登一路
이리저리 천지의 원기를 찾노라 / 屈折訪渾元
푸른 절벽은 수려한 것들 많고 / 翠壁多瑩秀
붉은 봉우리는 서로 우뚝 솟았다 / 丹嶂互飛騫
절은 아스라한데 잔도는 끊어졌고 / 寺遠棧梯斷
무성한 풀밭에 괴상한 돌 서 있네 / 莓莓怪石□
사슴처럼 간수를 움켜서 마시고 / 厲澗隨飮鹿
원숭이처럼 칡덩굴 부여잡고 오른다 / 攬蔓擬騰猿
신은 부드러운 띠풀에서 미끄러지고 / 屣滑柔林荑
띠는 늙은 나무 뿌리에 걸리는구나 / 帶掣老樹根
자주 앉는 건 피로 풀기 위함 아니라 / 屢坐非息疲
옥 구르는 듯한 물소리 퍽 사랑스러워서 / 多愛玉溜喧
연하를 헤치고 그윽한 광채를 더듬고 / 披煙摘潛穎
바람을 따라서 난초 향기 풍기는구나 / 順風馥幽蓀
약을 캘 마음 한없이 떠오르기에 / 采藥心無限
쌓여 있는 흰 구름 우러러보노라 / 高視白雲屯
해가 장차 서산으로 지려고 하니 / 曜靈將半規
구경 끝까지 하지 못할까 염려되네 / 每懷未窮源
산의 해미에 비는 장차 맺히려 하고 / 山霾雨將結
산봉우리 높으니 눈 아직 쌓여 있다 / 嶺極雪猶繁
이 골은 온갖 경치 총집합된 곳인데 / 終然諸景萃
어찌 백탑이 있는 곳 볼 필요 있으랴 / 惡睹列塔存
삼거의 수가 하나로 귀착하니 / 三車數歸一
목적을 이루었으면 수단은 잊어야 하리 / 得魚筌可諼
흥에 끌려 흥이 이미 유쾌한데 / 誘興興已暢
세속의 잡념 버리는 일 다시 어찌 논하랴 / 遣有復奚論


 

[주D-001]유심(劉諶) : 중국 삼국 시대 촉(蜀)나라 사람이다. 후주(後主)의 아들로 북지왕(北地王)에 봉해졌었는데, 나라가 멸망한 것을 상심하여 자살하였다.
[주D-002]삼거(三車) : 불가에서 말하는 우거(牛車), 녹거(鹿車), 양거(羊車)이다.


 

 

임하필기 제3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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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래비서(蓬萊秘書)
백천동(百川洞), 명연(鳴淵), 백화암(白華庵), 삼불암(三佛巖)


영원암(靈源庵)으로부터 서쪽으로 5리쯤 떨어진 지점에 백천동이라고 새겨진 것이 있다. 왼쪽의 영원과 오른쪽의 명연이 합하여 띠처럼 빗겨 흐르는데, 비스듬하기도 하고 반듯하기도 하기 때문에 백천(百川)이라 한 것이다.
명연은 곧 장안사(長安寺)에서 동쪽으로 5리쯤 떨어진 지점에 있는 큰 늪인데, 글씨가 새겨져 있으며, 만폭동(萬瀑洞)의 하류이다. 명연은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데, 일명 금동연(金同淵)이라고도 한다. 금동은 고려 말의 거사(居士)인데, 나옹(懶翁) 및 혜륵(惠勒)과 함께 도술을 다투었다. 나옹이 묘길상(妙吉祥)을 새기자 금동이 정으로 그것을 깨뜨리려고 하였는데, 하늘이 우렛소리를 내며 비를 내려서 금동을 못에 빠뜨렸다. 이에 금동은 이무기로 변하였으며, 물이 그 때문에 슬프게 우니, ‘울연(鬱淵)’이라 하기도 하고 ‘명운연(鳴韻淵)’이라 하기도 한다.
백화암과 부도(浮圖)는 삼불암에서 수백 보쯤 떨어진 지점에 있는데, 청허대사(淸虛大師) 휴정(休靜)이 오랫동안 머무르던 곳이다. 근년에 중건하였는데, 지공(指空)ㆍ나옹ㆍ무학(無學)의 영정이 있고, 청허대사 및 사명대사(泗溟大師) 유정(惟政)의 영정이 곁들여져 있다. 암자 뒤에는 일곱 개의 부도와 네 개의 돌비석이 있다. 부도는 청허, 제월당(霽月堂) 경헌(敬軒), 취진당(就進堂) 의영(義瑩), 편양당(鞭羊堂) 언기(彦起), 청백당(淸白堂) 명조(明照), 풍담(楓潭) 의담(義湛), 월송당(月松堂) 응상(應祥)의 것이고, 비는 이백헌(李白軒 이경석(李景奭)), 이월사(李月沙 이정귀(李廷龜)), 이백주(李白洲 이명한(李明漢)), 이정관재(李靜觀齋 이단상(李端相))의 글이고, 의창군(義昌君 이광(李珖)), 동양위(東陽尉 신익성(申翊聖)), 오죽남(吳竹南 오준(吳竣)), 낭선군(朗善君 이오(李俁))의 글씨이다.
삼불암은 표훈사(表訓寺)에서 남쪽으로 3리쯤 떨어진 지점에 있다. 큰 바위가 길을 가리고 서 있는데, 석가(釋迦)ㆍ미륵(彌勒)ㆍ미타(彌陀) 세 불상이 새겨져 있다. 모퉁이에는 거사(居士)가 새겨지고 뒤에는 비구(比丘)가 새겨져 있는데, 앞의 것은 바로 나옹이 새긴 것이고 뒤의 것은 바로 금동이 새긴 것이다. 또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는데 역시 금동이 새긴 것이다. 나옹은 세 불상을 새겼고, 금동은 쉰셋의 불상을 새긴 다음 또 열한 불상을 더 새겼으니,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서였다. 왼쪽에 새겨진 ‘삼불암’이란 글자는 윤소고(尹嘯皐)의 글씨이다.


서하(西河)의 백천동(百川洞) 시는 다음과 같다.

물소리 귀에 차니 세상 잡음 안 들리고 / 水聲盈耳世音息
산빛 옷깃에 비치니 속된 생각 가셔지네 / 山色橫襟塵相空
눈과 마음 시원하여 다른 생각 없으니 / 泠然心眼無他物
맑고 차가운 물 거두어서 뱃속을 채우리라 / 收取淸寒滿腹中


농암(農巖)의 백천동(百川洞) 시는 다음과 같다.

남여를 타고 시냇가를 천천히 가노라니 / 溪行籃輿緩
석문으로 황폐한 길이 좁게 나 있다 / 石門荒路隘
지난번에 노닐 때도 어리둥절하였는데 / 曾游已惚怳
두 번째 보자하니 끝내 정신이 혼미해지네 / 再窺終幽昧


소재(蘇齋)의 명담(鳴潭) 시는 다음과 같다.

높은 고개는 천 길이나 솟았고 / 危峴千尋倒
차가운 폭포는 백 길이나 난다 / 寒泉百丈飛
산이 울려 골짝이 찢어지려 하니 / 山鳴谷欲裂
응당 두 자루의 보검이 용으로 화하여 돌아가리라 / 應有兩龍歸


명재(明齋)의 금강연(金剛淵) 시는 다음과 같다.

신라가 누려 온 역대는 이천 년인데 / 新羅世後二千年
왕자가 불도 닦은 그 일 묘연하다 / 王子修禪事杳然
오직 자통천 밑의 물이 있어서 / 惟有子筒泉底水
월정문 밖에 맑은 못을 이루었다 / 月精門外湛空淵


삼연(三淵)의 ‘명연(鳴淵)을 지나며’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났더니 / 一宿起能早
정신이 말끔하고 또 한가하다 / 神宇恬且閒
나와 함께 유람하는 자들아 / 肅我同遊子
일어나서 푸른 산을 보게나 / 子興視靑山
아침 햇살에 노을 피어오르니 / 朝暾蔚舒霞
금벽이 장안사에 가득하도다 / 金碧滿長安
두루 보며 동쪽 물가에서 읊조리고 / 覽周吟東濱
빙빙 돌아서 꽃 사이로 들어가노라 / 邐迤入花間
길이 온통 우거진 풀에 젖었으니 / 一路盡蒨潤
봄옷이 축축하여 마르지 않는구나 / 春衣殊不乾
좋은 새는 꽃다운 숲에 숨어서 / 好鳥隱芳杜
높은 산이 울리도록 울어 댄다 / 嚶鳴激巑岏
대숲은 빽빽하여 많은 내를 덮고 / 竹密百川翳
바위는 솟아 여러 암자를 둘렀다 / 石出諸庵環
새로운 감실이 수월에 떠 있기에 / 新龕浮水月
잠깐 쉬면서 흐르는 물 구경하노라 / 少歇觀潺湲
맑은 빛이 눈에 가득히 넘쳐서 / 淸輝溢眄睞
물굽이 빨리 건너도록 날 재촉한다 / 催我渡玄灣
위험한 잔도 음침한 골짝에 걸렸는데 / 危棧俯陰壑
고래가 구불구불 서려 있는 줄 알았다 / 知是鯢桓蟠
한번 빙긋 웃고 표연히 지나가니 / 一笑過飄然
몇 발자국 사이에 심신이 맑아졌다 / 跬步改心顔


후계(后溪) 조유수(趙裕壽)의 백화암(白華庵) 시는 다음과 같다.

관아에 있는 것이 뜻에 맞지 아니하여 / 衙居意不適
말에 멍에 메워 가을 산에 들었다 / 命駕入秋山
산봉우리들은 서리가 흰빛을 더해 주고 / 萬嶂霜添縞
단풍나무들은 날마다 붉은빛을 감한다 / 千楓日減殷
석양에 헐성루를 바라보고 / 斜陽歇惺望
백화암에서 이틀 밤 묵고 돌아왔다 / 信宿白華還
무슨 일로 마하연까지 구경할 건가 / 何事窮訶衍
여러 못의 그 푸른 물빛 일반일러라 / 諸潭綠一般


서하(西河)의 관음석상(觀音石像) 시는 다음과 같다.

깎아지른 만 길 벼랑 티끌 한 점 없는 곳에 / 蒼崖萬丈迥無塵
하늘 높이 새겨 놓은 우람한 부처 한 구 / 刻畫彌天大士身
텅 빈 산속 정결한 땅 저 홀로 지켜 서서 / 獨立空山淸淨界
천년 세월 보고 있네 오가는 사람들을 / 千秋度過去來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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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래비서(蓬萊秘書)
표훈사(表訓寺), 현불암(顯佛庵)

표훈사는 백화암(白華庵) 위에 있는데, 신라 문무왕(文武王) 때 승려 표훈(表訓)이 창건한 것이다. 오선봉(五仙峯)이 주산(主山)이고 왼쪽에는 청학대(靑鶴臺), 앞에는 능파루(凌波樓), 남쪽에는 함영교(含影橋)가 있다. 불전에는 가산(假山)을 설치하여 금강(金剛)을 형상하고 감실(龕室)을 만들어서 담무갈(曇無竭)을 봉안하였는데, 신라의 승려 법기(法起)가 그렇게 한 것이다. 법기는 금강산에서 도를 깨치고 그 상(像)을 받들어 주벽을 삼은 것이다. 불전의 남쪽에는 불좌(佛座)를 동쪽으로 향해서 설치하였는데, 그것은 이 지대가 움직이는 배처럼 생겼기 때문에 키[舵]에 앉은 모양으로 부처를 봉안한 것이라 한다. 현불암은 그 곁에 있다.


소재(蘇齋)의 표훈사(表訓寺) 시는 다음과 같다.

어지러운 돌 거두어 비스듬히 베개 이루고 / 閑收亂石欹成枕
일부러 비천을 가로막아 소금을 뿌린다 / 故閉飛泉散作鹽
독서에 지치기를 기다려 서서히 걸어가니 / 待倦讀書徐步去
금강대 밖에 두 개의 뾰족한 봉우리 보인다 / 金剛臺外看雙尖


용주(龍洲)의 표훈사 시는 다음과 같다.

명산은 비장하기 어려워 중국에 알려지니 / 名山難祕聞中國
사액의 표훈사라 임금이 표기 하사했네 / 表訓招提帝賜幡
화재의 신이 시기하여 자꾸 불을 내었으나 / 回祿鬱攸頻逞忮
솜씨 좋은 목수들이 가득 모여들었다네 / 工倕繩墨又盈門
불공하는 향의 연기 금선좌를 감아 돌고 / 供香煙繞金仙座
머리 감는 사람들은 옥녀분에 다다른다 / 沐髮人臨玉女盆
잠깐 선상을 빌려 두 다리를 뻗노니 / 暫借禪床伸兩脚
이전에 무엇 때문에 벼슬에 얽매었던고 / 向來何事騁高軒


서하(西河)의 표훈사 시는 다음과 같다.

날은 저물려 하고 빗발은 가늘지 않은데 / 山日將昏雨不微
좁은 길엔 사람 없고 산새만이 날아 넘네 / 細路無人唯鳥飛
시냇물 꺾여 흐르는 곳에는 돌부리가 패였고 / 溪流百折石齧足
물밑에 둥글둥글한 바위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듯 / 水底戢戢群羊肥
산은 깊고 길은 침침하여 갈 곳이 희미한데 / 山深路黑迷所向
옛 절을 물으려 하나 행인이 드물게 다니네 / 欲問古寺行人稀
쓸쓸한 바람은 쐐하고 나의 의상을 펄럭이고 / 悲風颯颯吹我裳
마부는 자빠지고 넘어지고 말은 또 굶주린다 / 僕夫顚僵馬又飢
지척에 있는 장안사를 건너갈 수가 없어서 / 咫尺長安不得渡
수풀 너머 마을 찾아서 밤에 사립문 두드렸다 / 隔林孤村夜叩扉
하룻밤 창 밖에 빗소리 쐐하고 지나갔는데 / 一夜窓間度雨聲
평명에 나가려 하니 아직도 비가 뿌리는구나 / 平明欲出猶陰霏
구불구불 돌고 돌아 표훈사를 찾아가니 / 逶迤始訪表訓寺
간수 소리와 바람 소리 서로 에워쌌네 / 澗水松風聲合圍
사문에서 나를 맞아 불당에 앉히고서는 / 沙門迎我坐佛堂
죽으로 허기를 채우고 불로 옷을 말려 준다 / 僧粥充飢火燎衣
아, 나의 이 걸음이 어찌 우연한 일이겠는가 / 嗟余此行豈偶然
몇 달 동안 다행히 홍진을 벗어날 수 있겠네 / 數月幸脫紅塵鞿
산령이 속히 쾌청하게 해 주기를 나는 원하니 / 我願山靈速放晴
이 산 다 구경 않으면 나는 돌아가지 않으리 / 不窮此山吾不歸


삼연(三淵)의 표훈사 시는 다음과 같다.

산영루라는 누대가 있고 / 三樓山影號
표훈사가 그 중간에 장엄하다 / 表訓壯中間
흰 옥들이 군락을 이루는 곳 / 萬玉崢嶸圃
뭇 신선들이 나들이하는 문 / 群仙出入關
구름은 학의 둥우리에 덮여 있고 / 雲棲胎鶴穴
우레는 용이 싸우는 곳에서 우르릉 / 雷吼鬪龍灣
율곡(栗谷)의 장편시가 남아 있고 / 栗老長篇在
청사초롱이 사면 벽에 둘러 있다 / 紗籠四壁環


구당(久堂)의 표훈사 시는 다음과 같다.

높고 낮은 잔도엔 푸른 담쟁이덩굴 덮였고 / 梯逕高低關碧蘿
백옥 같은 봉우리는 우람하게 나열하였다 / 玉峯羅列白峩峩
여산의 진면목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는데 / 廬山面目尋眞在
천모의 연하는 꿈속에서보다 많다 / 天姥煙霞較夢多
이 몸 진세에서 벗어난 것 잠시 기뻐하고 / 乍喜此身超汗漫
묵묵히 전사를 생각하며 마냥 읊조리도다 / 嘿思前事費吟哦
누가 세상에서 장편시를 잘 지어서 / 誰堪海內爲長句
동유곡 한 곡조에 화답할 줄 알겠는가 / 解和東遊一曲歌


백주(白洲) 이명한(李明漢)의 현불암(顯佛庵) 시는 다음과 같다.

산은 천 층의 백옥처럼 우뚝 서 있고 / 山立千層玉
내는 백 길의 무지개처럼 드리워 있다 / 川垂百丈虹
사람은 보이지 않고 경내는 고요한데 / 寂寥人不見
흰 구름 속에서 혼자 왔다 갔다 하노라 / 來往白雲中


구당의 ‘현불암에서 백주(白洲)의 시에 차운하다’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절은 폐허된 채 붉은 잎만 쌓여 있고 / 寺廢塡紅葉
가을은 맑은데 채색 무지개 떨어졌다 / 秋晴落彩虹
나그네는 왔다가 스스로 돌아가는데 / 客來還自去
산빛은 석양 하늘에 호화찬란하구나 / 山色暮天中


곤륜(昆侖) 최창대(崔昌大)의 표훈사 시는 다음과 같다.

동부 속의 석산들 빙 둘러 하늘에 꽂혔고 / 洞裏巖巒環插天
산 앞의 빽빽한 누관들 연하를 머금었네 / 山前樓觀密含煙
맑은 못엔 아름다운 꽃 그림자 비치고 / 淸潭寫影幽花細
옛 돌엔 늙은 잣나무 그늘을 드리웠다 / 古石垂陰老柏圓
높은 전각은 향 연기 속에 몹시 고요하고 / 寶殿香爐深寂寂
푸른 숲은 서리 내린 뒤에 곱게 물들었다 / 碧林霜旭淨娟娟
심오한 이치는 무언 속에 있는 법이니 / 玄機只在無言地
한가한 승려와 함께 팔뚝 베고 조노라 / 獨伴閒僧枕肘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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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래비서(蓬萊秘書)
정양사(正陽寺), 헐성루(歇惺樓)


정양사는 표훈사(表訓寺)에서 북쪽으로 5리쯤 떨어진 지점에 있다. 금강의 정맥(正脈)에 터를 잡았기 때문에 정양이라 이름한 것이다. 혹은 남쪽으로 앉은 방향이 정남향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한 것이라고도 한다. 《대장경(大藏經)》 한 질을 간직하고 있다.
내금강은 모두가 돌로 되어 있는데, 헐성루가 있는 지대만은 두터운 흙이 많다. 평평한 언덕 위에는 몇 길의 둥근 둔덕을 이루었다. 헐성루에 올라가서 바라보았더니 위치가 높고 지세가 광활하였으므로 1만 2천 봉이 모두 눈앞에 있었다. 동북쪽에 웅거하여 우뚝 솟은 것은 비로봉(毘盧峯)인데 금강산의 주봉이다. 비로봉 왼쪽에 있는 것은 영랑점(永郞岾)이고, 영랑점 앞에 있는 것은 가섭봉(迦葉峯)이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몇 리를 뻗친 것은 중향성(衆香城)인데, 내금강의 주된 등성이다. 중향성 앞에 걸터앉은 산봉우리가 둘이 있는데, 하나는 대향로봉(大香爐峯)이고 다른 하나는 소향로봉(小香爐峯)이다. 오른쪽에는 법기봉(法起峯)이 있는데, 천연적으로 법기의 상을 지었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또한 은연히 쌍을 이룬 상투와 같은 것은 일출봉(日出峯)과 월출봉(月出峯)이고, 헐성루 앞에 하얗게 솟은 것은 혈망봉(穴望峯)인데 봉우리에 구멍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오른쪽에 있는 울창한 곳은 망군대(望軍臺)인데, 신라의 왕자가 군사를 바라보던 곳이다. 망군대 왼쪽에 헌칠하게 공수(拱手)하고 있는 것은 승상봉(丞相峯)이고, 망군대 오른쪽에 우뚝 솟은 것은 장군봉(將軍峯)이며, 두 봉우리 사이에 아스라하게 날아오르는 듯한 두 봉우리가 있는데, 하나는 동자봉(童子峯)이고 다른 하나는 석응봉(石鷹峯)이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둥근 봉우리는 미륵봉(彌勒峯)이고, 아래로 3층을 이룬 봉우리는 지장봉(地藏峯)이다. 미륵봉의 오른쪽에 연달아 세 봉우리를 이룬 것은 차일봉(遮日峯), 마면봉(馬面峯), 우두봉(牛頭峯)인데, 모두 모양을 가지고 이름한 것이다. 오른쪽에 솟아 있는 것은 백마봉(白馬峯)이고, 곁에 벌여 있는 것은 시왕봉(十王峯), 상관음봉(上觀音峯), 중관음봉, 하관음봉, 장경봉(長慶峯)이다. 난간을 마주하여 서 있는 것은 청학대(靑鶴臺)이고, 헐성루 남쪽에 있는 토봉(土峯)은 천일대(天逸臺) 또는 진헐대(眞歇臺)라고도 이름하는데, 전망이 더욱 광활하다. 방광대(放光臺)는 고려 태조가 고개에 올랐을 때 담무갈(曇無竭)이 영험을 나타냈으므로, 태조는 이마를 조아려 절을 하고 절을 건립하였다. 그리하여 그 산등성이를 ‘방광(放光)’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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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사(正陽寺), 헐성루(歇惺樓)


정양사는 표훈사(表訓寺)에서 북쪽으로 5리쯤 떨어진 지점에 있다. 금강의 정맥(正脈)에 터를 잡았기 때문에 정양이라 이름한 것이다. 혹은 남쪽으로 앉은 방향이 정남향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한 것이라고도 한다. 《대장경(大藏經)》 한 질을 간직하고 있다.
내금강은 모두가 돌로 되어 있는데, 헐성루가 있는 지대만은 두터운 흙이 많다. 평평한 언덕 위에는 몇 길의 둥근 둔덕을 이루었다. 헐성루에 올라가서 바라보았더니 위치가 높고 지세가 광활하였으므로 1만 2천 봉이 모두 눈앞에 있었다. 동북쪽에 웅거하여 우뚝 솟은 것은 비로봉(毘盧峯)인데 금강산의 주봉이다. 비로봉 왼쪽에 있는 것은 영랑점(永郞岾)이고, 영랑점 앞에 있는 것은 가섭봉(迦葉峯)이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몇 리를 뻗친 것은 중향성(衆香城)인데, 내금강의 주된 등성이다. 중향성 앞에 걸터앉은 산봉우리가 둘이 있는데, 하나는 대향로봉(大香爐峯)이고 다른 하나는 소향로봉(小香爐峯)이다. 오른쪽에는 법기봉(法起峯)이 있는데, 천연적으로 법기의 상을 지었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또한 은연히 쌍을 이룬 상투와 같은 것은 일출봉(日出峯)과 월출봉(月出峯)이고, 헐성루 앞에 하얗게 솟은 것은 혈망봉(穴望峯)인데 봉우리에 구멍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오른쪽에 있는 울창한 곳은 망군대(望軍臺)인데, 신라의 왕자가 군사를 바라보던 곳이다. 망군대 왼쪽에 헌칠하게 공수(拱手)하고 있는 것은 승상봉(丞相峯)이고, 망군대 오른쪽에 우뚝 솟은 것은 장군봉(將軍峯)이며, 두 봉우리 사이에 아스라하게 날아오르는 듯한 두 봉우리가 있는데, 하나는 동자봉(童子峯)이고 다른 하나는 석응봉(石鷹峯)이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둥근 봉우리는 미륵봉(彌勒峯)이고, 아래로 3층을 이룬 봉우리는 지장봉(地藏峯)이다. 미륵봉의 오른쪽에 연달아 세 봉우리를 이룬 것은 차일봉(遮日峯), 마면봉(馬面峯), 우두봉(牛頭峯)인데, 모두 모양을 가지고 이름한 것이다. 오른쪽에 솟아 있는 것은 백마봉(白馬峯)이고, 곁에 벌여 있는 것은 시왕봉(十王峯), 상관음봉(上觀音峯), 중관음봉, 하관음봉, 장경봉(長慶峯)이다. 난간을 마주하여 서 있는 것은 청학대(靑鶴臺)이고, 헐성루 남쪽에 있는 토봉(土峯)은 천일대(天逸臺) 또는 진헐대(眞歇臺)라고도 이름하는데, 전망이 더욱 광활하다. 방광대(放光臺)는 고려 태조가 고개에 올랐을 때 담무갈(曇無竭)이 영험을 나타냈으므로, 태조는 이마를 조아려 절을 하고 절을 건립하였다. 그리하여 그 산등성이를 ‘방광(放光)’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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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래비서(蓬萊秘書)
비로봉(毘盧峯), 구정봉(九井峯)


비로봉 동구는 묘길상(妙吉祥)의 동쪽에 있는데, 안문령(雁門嶺)으로 올라가서 바라보면 가장 가깝다. 범어로 ‘비로(毘盧)’는 지극히 높다는 뜻인데, 이 봉우리가 금강산에서 가장 높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비로봉은 곧 금강산의 내산과 외산의 조종인데, 오른쪽은 내산이 되고 왼쪽은 외산이 된다. 내산은 돌이 많고 흙이 적으며, 외산은 흙이 많고 돌이 적다. 이 때문에 외산은 푸르면서 웅장하고 내산은 희면서 뾰족하니, 이것이 내산과 외산의 구별법이다.


점필재(佔畢齋)의 ‘일출(日出)을 보다’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금강산이라 그 높음 하늘을 찌를 듯한데 / 金剛之山高插天
우뚝 솟은 바위들 앙상한 뼈를 드러냈네 / 白石亭亭露秋骨
부상(扶桑)의 먼 그림자 은연중 끌어들여 / 榑桑遠影暗句引
일관봉 높은 꼭대기와 함께 우뚝하네 / 日觀孤標共崷崒
내 옛날 기이한 곳 찾아 절정에 올라 / 我昔討奇跂絶頂
손으로 구름 헤치고 석실을 두드렸다 / 手闢雲關敲石室
동해 바다는 눈 밑의 작은 술잔과 같았고 / 滄溟眼底小如杯
팔방의 바람 다 불어와 정신이 상쾌했었지 / 八極風來神橫逸
함께 놀던 노승은 벽에 기대고 졸다가 / 同遊老僧倚壁睡
한밤중에 손님 깨워 일출 구경하자네 / 夜半蹴客候初日
북방의 새벽 공기 맑기가 술과 같고 / 北方沆瀣澄似酒
천상의 닭 우는 소리 어렴풋이 들렸다 / 天外鷄鳴聞彷彿
이때 해 뜨는 곳 밝기와 어두움 반반이더니 / 是時暘谷半明暗
소 모양 일산 모양 각양각색 드러내네 / 臥牛車蓋爭點綴
반짝이던 장경성 빛을 거두려 하고 / 長庚睒睒欲收芒
해 바퀴 갑자기 파도를 감돌아 나오니 / 火輪忽輾波濤出
붉은 광채 수십 길을 뛰어오르고 / 紅光騰起數十丈
만리의 파도 어룡의 굴을 진동시키네 / 萬里驚盪魚龍窟
속세 사람들 코 고는 소리 아직 우레 같은데 / 人寰鼻息尙雷鳴
나는 봉우리를 향해 머리털 말리노라 / 輒向峯頭晞我髮
평생에 기이한 구경 이만하면 족하니 / 平生偉觀此已足
태산에 노니는 것 어찌 이 같을 수 있으리 / 岱宗之遊豈相埒
서쪽의 해 지는 산 해 들어가는 곳은 볼 필요 없으니 / 不須崦嵫看入處
이제는 과보(夸父)의 목마름이 우습기만 하구려 / 至今冷笑夸父渴


율곡(栗谷)의 ‘비로봉(毘盧峯)에 올라’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지팡이 이끌고 산꼭대기 오르니 / 曳杖陟崔嵬
휘몰아치는 바람 사방에서 불어오네 / 長風四面來
푸른 하늘은 머리 위의 모자요 / 靑天頭上帽
파란 바다는 손바닥 안의 술잔이네 / 碧海掌中杯

○ ‘일출을 보다’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높은 봉우리들 흰 눈 이고 몇 천 길인가 / 嵯峨雪峯幾千仞
구름 밖 오솔길을 사람들이 걸어 오르네 / 鳥道人行白雲外
지팡이를 끌고서 높은 뫼에 올라서니 / 靑藜戛上犖确中
두 눈 앞에 조선 땅이 안겨 오는 듯싶어라 / 兩眼漸覺東丘隘
밤에 절간 찾아 앉은 채로 새벽 맞으며 / 夜投禪室徹曉坐
수시로 천상에서 나는 피리 소릴 듣는다 / 時聽笙簫來上界
닭 울 무렵 길을 떠나 산마루에 올라서니 / 金鷄一鳴登絶頂
날은 채 밝지 못해 만상이 희미하구나 / 萬境熹微天尙昧
잠깐 사이 붉은 불빛 천지에 차 넘치니 / 須臾火光漲天地
창파인가 안개인가 분별할 수 없어라 / 不辨滄波與曉靄
붉은 해 어느 사이 두어 길 솟았는데 / 朱輪轉上數竿高
한 송이 오색구름 일산처럼 펼쳐지네 / 一朶彩雲如傘蓋
푸른 물결 붉은 하늘 서서히 분리되니 / 靑紅漸分水與天
일망무제 동해 큰 줄 비로소 알았노라 / 極目始知東海大
해 솟는 곳과 해 지는 곳은 그 어드메뇨 / 扶桑暘谷渺何處
찾아보려 애를 써도 찾을 길 없어라 / 欲看出處知無奈
진황(秦皇)과 과보(夸父) 다 어린애 같아 / 秦皇夸父等小兒
천년 뒤 지금도 사람을 한숨 쉬게 하네 / 千載令人起一喟


미수(眉叟)의 구정봉(九井峯) 시는 다음과 같다.

지제산 높이 솟아 팔천 길인데 / 支題秀出八千丈
비로봉 서석봉 서로 마주 바라보네 / 毘盧瑞石參相望
그 위에 이끼 덮인 구룡정 있어 / 上有蒼苔九龍井
구름과 비를 변화시키며 바다에 잇닿았네 / 變化雲雨連溟漲
선인이 청대 사이 바위를 흔들었나 / 仙人搖石靑臺間
봉우리 무너질 듯이 위태롭게 서 있네 / 丘巒欲摧空低仰
오래 산다는 석표 보이지 않는데 / 長生石標祕不開
어찌하여 천고에 함부로 속여 왔나 / 豈爲千古恣欺誑
괴이한 일 아득하니 뉘라서 알아내랴 / 異事漠漠誰料得
나를 홀로 서서 마음 슬프게 하네 / 使我獨立神慘愴
천년의 석록거 옛 모습 그대로인데 / 依舊千年石鹿車
벼랑에 구부리고 흐릿한 날 바라보네 / 直俯虛崖窺㬒曭
바람 헤치고 안개에 노는 일 어찌 다하랴 / 排風遊霧安可極
요괴한 것 꾸짖고서 정신 더욱 왕성하네 / 呵妖叱怪神愈旺
머리 풀고 나는 듯이 상제 곁에 놀다가 / 翩然被髮戲帝傍
내려와 만물과 함께 마음대로 살리라 / 下與萬物俱跌踢


명재(明齋)의 비로봉 시는 다음과 같다.

구소의 바람을 다 받은 것 같이 시원하니 / 泠泠似御九霄風
만고에 막힌 가슴이 확 트인 듯하구나 / 豁豁方開萬古胸
이로부터 금강산이 승적을 전하리니 / 從此金剛傳勝蹟
회옹의 시가 최고의 봉우리에 있네 / 晦翁詩在最高峯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의 비로봉 시는 다음과 같다.

흥취는 비로봉 위의 솟은 달에 있고 / 興在毘盧月
마음은 만폭의 맑은 데로 달려간다 / 心馳萬瀑晴
막 봄 가려고 하는 것에 시름하다가 / 方愁春欲去
다시 그대 먼저 간 것을 부러워하네 / 更羨子先行
어느 날 유점사로 돌아갈 것인지 / 何日歸楡岾
오늘 아침에 한양을 떠나누나 / 今朝別漢城
가거든 승경을 잘 기억했다가 / 逝將追勝䠱
암자 밖에서 반갑게 맞아 주게 / 庵外肯相迎


성우(醒愚) 허계(許啓)의 ‘금강산의 상인(上人)에게 주다’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한 번 금강산 일만이천봉 작별하고 / 一別金剛萬二峯
십 년간 진세 생활에 벌써 노쇠했네 / 十年塵跡已衰翁
비로봉과 구정봉은 무병할 것이니 / 毘盧九井應無恙
시원한 바람 타고 노닐고 싶네 / 欲御泠泠兩腋風


삼연(三淵)의 비로봉 시는 다음과 같다.

나의 산유 여기에서 시작하여 / 吾遊於是始
가을날 비로봉을 오르노라 / 秋日上毘盧
확 트인 하늘 무엇이 있느뇨 / 寥廓天何有
높고 가파른 봉우리에 땅 이미 없노라 / 崢嶸地已無
둥글기도 한이 없이 둥글고 / 圓歸黃鵠睹
넓기도 가이 없이 넓어라 / 闊入大鵬圖
조선이 작다고 감히 말하랴 / 敢謂朝鮮小
하루살이가 이 몸 비웃노라 / 蜉蝣笑此軀

○ ‘일출을 보다’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반쯤 향로봉 베고서 꿈을 꾸다가 / 半枕香爐夢
창문 밀치니 해가 바다에서 솟네 / 推窓日涌溟
아스라이 둥근 바퀴 굴러 와서 / 迢迢賓駕轉
출렁이는 바다에 욕분처럼 떠 있누나 / 漾漾浴盆停
단풍나무는 붉은빛을 한층 더하고 / 紫合楓林壁
잣나무 숲은 푸른 그림자 움직이네 / 靑搖柏樹庭
이무기의 침과 고래의 세찬 호흡 소리는 / 蛟涎與鯨吸
일찍이 낙산의 비린내를 싫어했다네 / 曾厭洛山腥


하곡(荷谷) 허봉(許篈)의 ‘풍악산에서 아우에게 부치다’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그중 한 수는
팔월 십오일 밤에 / 八月十五夜
비로봉 정상에 홀로 섰네 / 獨立毘盧頂
계수나무엔 서릿발 차갑고 / 桂樹天霜冷
서풍엔 외기러기 날아가누나 / 西風一鴈影
하였고, 또 한 수는
형은 순천부에 계시고 / 兄在順天府
아우는 명례방에 사네 / 弟居明禮坊
해마다 이별의 한에 / 年年離別恨
쓴 눈물 가을 서릴 적시네 / 苦淚濕秋霜
하였다.


 

[주D-001]과보(夸父)의 목마름 : 《산해경(山海經)》에, “옛날 과보라는 사람이 자기의 힘을 헤아리지 않고 해와 경주하다가 목이 말라서 죽었다.” 하였다.
[주D-002]진황(秦皇)과 과보(夸父) : 진황에 관한 일은 《삼제략(三齊略)》에, “진시황이 바다에 돌다리를 만들고 바다를 지나서 해 뜨는 곳을 보려고 했다.”는 말이 보인다. 과보에 관한 일은 《산해경》에, “옛날 과보라는 사람이 자기의 힘을 헤아리지 않고 해와 경주하다가 목이 말라서 죽었다.”는 말이 보인다.
[주D-003]지제산(支題山) : 천관산(天冠山)의 별칭이다.
[주D-004]명재(明齋)의 비로봉 시 : 《명재집(明齋集)》에는 제목이 ‘비로봉에서 회옹의 시운에 차운하다[毘盧峯次晦翁韻]’로 되어 있다.